<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309화>
* * *
인과율의 보정에 따라 진유성이 지구로 돌아온 것은 고등학교 3학년의 2학기가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정확히는 9월 초.
아마 이때부터 그릇이 본격적인 야욕을 드러냈기 때문인 것 같다.
진유성은 다시 고등학교 생활로 돌아왔다.
사실 세상에 정체가 드러난 이상 굳이 고등학교를 다닐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그가 고등학교로 돌아온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이왕 다녔으니 졸업을 하고 싶었고, 두 번째로는 대정고에 많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이유보다는 두 번째 이유가 더 컸다.
상소윤, 지종수, 고인수, 심도훈, 정새롬.
“야, 이 미친놈아!”
“다짜고짜 욕을 하느냐?”
“너 때문에 내가 얼마나 쪽팔렸는지 알아?”
“무슨 말이냐?”
이어진 고인수의 말에 진유성이 웃음을 터트렸다.
“갑자기 길거리에서 단추가 다 풀어졌단 말이야!”
“안에 티는 입고 있었느냐?”
“안 입었다!”
“노출증이 있는 게냐?”
“…….”
진유성은 인과율을 다루는 힘으로 고인수의 단추를 푼 적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진유성이 그 행위에 집착했다는 것이다.
‘하긴, 내가 좀 그렇긴 했지.’
기회만 오면 ‘인수분해’를 실현하기 위해서 노력했었으니 말이었다.
“야, 나중에도 갑자기 단추 떨어지고 그런 거 아니지?”
“그건 나도 모른다. 하지만 아주 좋은 방법이 있다.”
“뭔데?”
“지퍼로 된 옷을 입어라. 내가 지퍼에는 손을 댄 적이 없으니.”
“……진심?”
“진심.”
“이런 미친놈…….”
속마음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친구들은 진유성을 예전과 똑같이 대했다.
물론 처음에는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유성의 삶을 어렴풋이 알게 된 것과 다르게, 주변의 지인들은 보다 선명하게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 관계된 인과율이 많기 때문에 그것을 보정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고인수의 단추처럼.
그러니 그들은 진유성의 두려움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예전처럼 진유성을 대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노력은 필요 없었다.
진유성은, 여전히 진유성이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한 게 없다.
힘의 관점에서 보자면 훨씬 강해졌지만, 어차피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똑같다.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힘이 1이라면, 진유성은 1조에서 10조쯤으로 올라간 거니까.
그걸 깨닫게 된 순간부터 친구들은 더 이상 진유성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와, 왔니?”
“왔니?”
“오, 오셨니?”
“오셨니?”
“그, 그럼 내가 뭐라고…….”
“안녕하세요. 선생님.”
연기훈은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그렇게 진유성은 다시 대정고 생활에 녹아들었고, 대부분의 것들이 좋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거슬리는 것이 한 가지 생겨났다.
“야! 패스!”
지종수의 외침에 수비를 보던 심도훈이 전진 패스를 보내는 순간, 번개같이 나타난 진유성이 패스를 가로챘다.
사실 그 시점에서 수비수들은 수비를 포기했지만, 허무하게 골을 내줄 수는 없기에 진유성에게 달라붙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수비수들을 제치지도 않고 공을 툭 찍어 찼다.
분명 가볍게 찬 것 같지만, 완벽한 힘의 역학으로 찬 슈팅이다.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간 공이 가볍게 골망을 갈랐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지종수가 입을 열었다.
“아, 진유성 또 내공 썼네. 저렇게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게 말이 되냐.”
심도훈이 동조한다.
“그니까, 비겁하네.”
고인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였으면 내공 안 쓰고 했다.”
“…….”
어느 순간부터 진유성이 조금만 활약을 하면 내공을 썼다고 몰아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점잖게 타일러도 보았다.
“나는 스포츠를 즐길 때는 내공도 의념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의 스포츠맨십이다.”
“아, 내공은 못 참지.”
“아, 의념도 못 참지.”
하지만 전혀 통하지 않는다.
진유성은 깨닫게 되었다.
지종수를 비롯한 악당들은 정말로 자신이 내공을 썼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다.
내공과 의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냥 몰아가는 것이다.
간만에 좋은 건수를 잡았다고 생각하면서.
진유성은 그들의 공격에 반응하지 않으려고 했다.
본디 정신적인 공격에 대한 최고의 방어는 무반응이니까.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자 슬슬 열이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축구가 끝나고, 들른 화장실.
소변을 보고 있는데 따라 들어온 지종수와 심도훈이 진유성을 발견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 진유성 또 내공 쓰네. 저렇게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게 말이 되냐?”
“아, 그러네. 폭포수는 못 참지.”
“이제 하다하다 오줌을 싸면서도 내공…… 컥!”
더는 못 참겠다.
진유성이 품은 소우주에 균열을 내는 건 성좌와 그릇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지종수와 심도훈은 성공했다.
대단한 놈들이었다.
그러니 대단한 대우를 해 줘야겠다.
진유성이 옷을 추스름과 동시에 번개같이 움직여 지종수와 심도훈의 뒷덜미를 잡아챘다.
타타타탁!
그리고는 내공을 움직여 두 사람의 혈도를 점혈했다.
아주 악랄한 이들에게만 하는 점혈법.
회음혈 점혈.
“무, 뭐 한 거냐?”
점혈이 끝난 두 사람의 뒷덜미를 놓자 지종수가 두려운 눈길로 물었다.
“네놈들의 회음혈을 점혈했다.”
“회음혈이 뭔데?”
본디 회음혈은 사혈이라서 점혈을 할 수 없지만, 진유성 정도의 고수에게 불가능은 없다.
그리고 회음혈을 점혈당하면 한동안 상림화(化)가 진행된다.
“양기가 입으로 올라오는 걸 보니 하물은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기능을 중지시켰다.”
“하물이 뭔데?”
진유성이 대답대신 지종수와 심도훈의 중요 부분(?)을 쳐다보자, 두 사람이 찔끔했다.
“한동안 전혀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반성하도록 하여라.”
“한동안……?”
“이제 좀 겁이 나느냐?”
물론 한동안이라고 해봐야 삼 일도 안 갈 것이다.
몇 달을 쓰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럼 후유증이 남는다.
친구들에게 그 정도로 손을 쓸 수는 없었으니, 후유증이 남지 않는 선에서 벌을 준 것이었다.
하지만…….
“아, 진유성 또 내공 썼네.”
“아, 점혈은 못 참지.”
“……?”
심도훈과 지종수의 반응은 진유성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진유성은 혼란스러웠다.
설마 심도훈과 지종수는 자신의 이목조차 속일 수 있는 절정고수였나?
스스로 해혈할 자신이 있나?
그렇지 않다면 입을 놀릴 수가 없다.
하지만 현재 지구에서 가장 강한 무인인 상림조차 자신의 점혈을 쉽게 해혈하지 못한다.
“대체 무슨 생각인 게냐? 점혈이 두렵지 않느냐?”
“진유성. 넌 아무 것도 몰라.”
“우리에게 네 점혈은 통하지 않는다.”
“어째서?”
“쓸모없는 걸 앗아 간다고 협박해 봤자, 두렵지 않으니까.”
“…….”
“…….”
멈칫했던 진유성이 손을 움직였다.
그리고는 그들의 점혈을 풀어 주었다.
진유성은 마음먹은 것을 되돌리는 법이 없는 존재이지만, 이 경우에는 예외였다.
지종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동정하지 마라!”
“미안하다…….”
“사과하지 말라고!”
“내가 잘못했다…….”
* * *
진유성이 고등학교에 다니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좀 평범하게 봐 줬으면 좋겠다.
물론 진유성은 특별하고, 이제 모든 사람들은 그 특별함을 알게 되었다.
진유성도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제도권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다.
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진 이상 대한민국의 헌법을 따라야 하고, 따를 생각이다.
“그럼 군대도 가게?”
“상소윤, 너는 다 박색하지만 그 방정맞은 입이 제일 박색하다.”
군대만 빼고.
아무튼 진유성의 생각은 그러한데, 사람들은 자꾸 진유성을 법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취급한다.
오죽하면 대한민국 대통령이 찾아와서 진유성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봤겠는가.
사실 현재 두 국가는 ‘진유성 보유국’이란 타이틀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바로 중국과 한국이었다.
중국은 현재 진유성이 명나라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고려 태생이긴 하나, 고려에서 보낸 세월은 9년밖에 되지 않는다.
게다가 역성혁명 때문에 고려에서 추방당한 셈이니, 그 시점부터 진유성은 난민이 된 셈이다.
그런 난민은 품어 준 것이 명나라다.
그리고 진유성은 명나라에서 백 년이 넘는 세월을 보냈으니, 진유성은 명나라 사람으로 봐야 한다.
이것이 중국의 주장이었다.
실제로 중국 정부의 고위 간부가 진유성에게 접촉해 온 적도 있었다.
진유성은 딱밤을 한 대 먹여 주고는, 앞으로 쓸데없는 소리 하면 대머리 고자로 만든다고 쫓아냈지만.
아무튼 이런 이유로 진유성은 자신이 제도권의 인간이라는 걸 보여 주기 위해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통하고 있었다.
처음 세상이 개편될 때만 해도 온 세상이 들썩였었지만, 두 달 정도가 지나자 좀 잠잠해졌다.
아마 진유성이 수많은 방송 섭외나 외부 활동을 전부 무시한 탓도 있겠지만.
그렇게 진유성을 둘러싼 세상이 조금 평온해질 때쯤, 심도훈이 진유성을 찾아왔다.
“무슨 일이냐?”
“너 ST-1에서 개최하는 롤 자선 대회에 출전해라.”
“자선 대회?”
“어. 소아암 환자를 위해서 하는 건데…… 아, 어차피 규칙 설명해 봤자 네 맘대로 할 거니까 그냥 듣지 마.”
“건방지구나, 심도훈. 부탁하는 입장이라면 좀 더 공손해져라.”
“부탁 아닌데?”
“그럼 무엇이냐?”
“너, 내 아이디로 무슨 짓을 했는지 기억 안 나?”
심도훈의 말을 듣는 순간 파노라마처럼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 * *
[대정고 3학년 1반. 키 175, 몸무게는 68. 생일은 6월 9일.]
심도훈이 깜짝 놀랐다.
[아버지는…… 부잣집 자제였네? 공화시멘트.]
“뭐, 뭐야!”
심도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순간 너무 놀랐다.
유투브에서 봤던 딥웹 같은 해커 관련된 무서운 영상들이 마구 떠올랐다.
간신히 심도훈이 가슴을 진정시키는 순간, 지존천마의 채팅이 올라왔다.
천천히 올라오는 채팅이 어딘지 공포스러웠다.
[simkacola69.]
-!
남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영어 단어겠지만, 저것은 심도훈이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에서 쓰는 비밀번호였다.
[ㄴ구야!]
[누구냐고!]
심도훈이 오타까지 내면서 발작처럼 물어봤지만, 지존천마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그 대신.
[넌 평생 오늘의 일을 후회하게 될 거다.]
* * *
진유성이 심도훈의 눈을 피했다.
“내가 그때 얼마나 심적으로 힘들었는지 알아?”
“하지만 그 덕분에 네 멘탈이 단단해지지 않았느냐?”
“그걸 말이라고 해?!”
“크흠.”
진유성이 헛기침을 하자 심도훈이 말했다.
“출전해라. 오케이?”
“……알겠다.”
“그럼 구단에 전달한다.”
“한데, 네가 ST-1 구단의 일은 왜 하는 것이냐?”
“음, 사실 내가 진로를 정했거든.”
하고 싶은 것이 별로 없었던 심도훈의 유일한 취미는 게임이었다.
그러나 프로게이머가 되기에는 부족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결국 게임단 운영으로 꿈을 키우기로 했다.
말을 꺼낸 뒤로 아버지한테 맞아 죽을 뻔했지만,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
게다가 심도훈은 지종수와 다르게 독자가 아니다.
동생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더 쉽게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심도훈은 ST-1에서 프론트 일을 배우는 중이었다.
걸출한 성과를 내면 게임단을 차려 준다는 아버지의 약속을 믿고.
심도훈이 은근한 목소리로 진유성에게 물었다.
“야, 너 내가 팀 차리면 들어올 생각 없냐?”
“없다.”
“쳇.”
그렇게 진유성은 심도훈의 부탁을 통해 ST-1 구단의 자선 경기에 참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