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308화 (308/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308화>

Quest 48. 슈퍼스타 천마님

네덜란드의 저명한 과학자이자, 양자역학에 대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한 헤라르트 엇호프트.

평소처럼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연구소에서 연구를 하는 삶을 살고 있던 그는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세상이 개편된다.

실물 세계에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지만, 미시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바뀐다.

그가 살고 있던 기존의 삶에, 또 다른 삶의 기억이 덧씌워진다.

하지만 그것이 기억에 혼선을 주거나, 자아에 혼란을 주진 않았다.

이는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보는 것과 같았다.

기억은 없지만 당연히 저러했을 것이며, 아마도 저러했을 것이라는 느낌.

그것을 비디오를 통해 알게 되는 느낌.

딱 그 느낌이었다.

이윽고 엇호프트는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그가 비디오를 보게 된 것은 스스로를 보기 위함이 아니었다.

그 비디오 어딘가에 아주 조그맣게 나오는 누군가.

그 누군가를 관측하고, 인식하기 위함이었다.

그의 관측은 소소했지만, 만약 모든 지구인들이 동일한 관측을 한다면 어떻게 될까?

이는 존재해야 함을 의미했다.

“진유성…….”

헤라르트 엇호프트는 이전에는 진유성이란 사람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의 조수와 학부생들에게 물어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그를 관측했고, 그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알게 되었다.

진유성의 삶과 행적을 정확히 눈으로 보았다는 소리가 아니었다.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삶을 눈으로 본 것은 아니지만,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다.

굳이 비유하자면 아주 길고 자세한 자서전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눈으로 읽은 자서전이 아니라, 저절로 알게 된 자서전이지만.

그때 조수가 그에게 물었다.

“교수님. 진유성이란 존재는 신이 아닙니까? 그 스스로는 신이 되고 싶지 않아했지만.”

“글쎄. 우리 세대에서는 신으로 추앙받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신은 아닐 거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오늘의 기억을 후대에 물려줄 수 없을 거니까.”

전 세계의 모든 인간이 한날한시에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도, 그것이 기록되면 어떻게 될까?

다음 세대에서는 비과학적인 어떤 일로 치부될 것이다.

인류 환각 현상 같은.

그 다음 세대에서는 과학적인 일로 해석할 것이다.

태양에 강력한 흑점 폭발이 일어나서 모든 사람들이 영향을 받았다던가, 미시 세계의 게이트 쇼크 같은 것이 일어났다던가.

다시 그 다음 세대에서는 신화나 설화의 영역으로 치부될 것이다.

옛 조상들이 어떤 일을 비유하기 위해 써 내린 이야기일 뿐이라고.

그러니 진유성은 신으로 남을 수가 없다.

그리고 이는 그가 바라는 일일 것이었다.

엇호프트가 조수에게 물었다.

“자네가 보기에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스타는 누구인가?”

“스타요? 글쎄요. 마이클 잭슨이나 비틀즈가 아닐까요?”

“전 세계 인구를 100으로 놓았을 때, 몇 퍼센트가 MJ나 비틀즈를 알 것 같나?”

“어…….”

조수가 머뭇거렸다.

꽤 높은 비율일 것 같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 대충 60% 정도는 알지 않을까요?”

“나는 50% 미만이라고 생각한다네. 지구에는 생각보다 서구 문명과 먼 사람들이 많거든.”

“아…….”

“그러나 60%라고 해 보자고. 그럼 그 60% 중에서 몇 프로나 MJ나 비틀즈에 대해 자세히 알 것 같은가?”

“어…… 한 10% 정도 되지 않을까요?”

“여전히 근거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 보자고.”

“…….”

“그렇다면 진유성은 어떨 것 같나? 몇 프로가 그를 알고, 몇 프로가 자세히 알 것 같지?”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100%와 100%.

“그가 신인지 아닌지 나는 모르겠네만 한 가지는 확실한 것 같군.”

엇호프트가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슈퍼스타는 틀림없을 것 같군.”

* * *

진유성은 혼란스러웠다.

그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신의 영역에 들어섰다.

이제 진유성은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을 것이었다.

스스로를 신으로 정의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신은 아니지만, 분명히 그의 존재는 신의 영역에 존재한다.

“…….”

그리고 그것을 전 세계인들이 알게 되었다.

단지 지구만 구하려고 했으면 그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성좌와 그릇에 의해 멸망한 중원의 차원도 구하고 싶었다.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평안토록 본래의 삶을 살길 바랐다.

그래서 아카샤와 함께 아카식 레코드가 아니라, 인과율의 개념으로 세상을 되돌렸다.

그래야만 아카식 레코드 밖의 세계인 중원도 되돌아올 테니까.

진유성은 주저하지 않고 선택했지만, 선택의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이제 자신은 신이 되었고, 만민의 경배를 받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그럴 거라고.

결단코…….

“꺄아아아아아악!”

“진유성! 진유성!”

이런 모습을 상상한 적은 없었다.

진유성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자 상소윤이 옆구리를 푹 찔렀다.

“야, 웃어. 분위기 망치지 말고.”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왜 나를 아이돌 가수 보듯이 보냔 말이다.”

그러나 진유성은 정답을 알고 있었다.

문화 콘텐츠 덕분이다.

전능의 차원이었던 중원에서는 무(武)에 경배와 공포가 무의식에 깔려 있었지만, 지구는 아니다.

지구에서 신이란 존재는 문화 콘텐츠를 통해 소비될 만큼 소비되었다.

상소윤이 예전에 말했던 것처럼 마블 영화의 수많은 캐릭터 중에는 신들이 있지 않은가.

진유성의 당혹스러운 표정을 본 상소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상소윤이 알고 있는 진유성은 타고난 관심종자였다.

당연히 전 세계의 관심을 얻게 되었으니 좋아해야 마땅한데, 이상하게 크게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그때, 장내 아나운서가 진유성의 이름을 호명했다.

진유성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마운드 안으로 들어섰다.

그랬다.

오늘 진유성이 방문한 곳은 야구장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야구를 관람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라, 시구를 하기 위해 찾아온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야구팀을 경영하는 JC 그룹 김정철 회장의 부탁을 받았고, 수락했다.

진유성은 늘 새로운 행위를 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운드에 들어선 진유성은 공을 만지작거렸다.

야구공은 오늘 처음 만져 보았지만, 투수가 던지는 건 몇 번 보았다.

결국 이것도 힘의 역학이다.

내공과 의념을 전혀 사용하지 않더라도 세계 기록 정도는 간단히 깰 수 있다.

그때,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방망이를 길게 잡고는 외야를 가리켰다.

홈런 예고.

“우와아아아아아!”

사전에 진유성과 약속된 퍼포먼스였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환호한다.

리그 최고의 타자가 신에게 도전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타자는 호승심을 느끼고 있었다.

‘신체 능력으로만 던진다고 했지?’

메이저리그의 공식적인 역대 최고 구속은 107마일(시속 172km).

비공식적인 기록은 110마일(시속 177km)이다.

그렇다면 진유성은 얼마를 던질까?

180km 정도는 던지지 않을까?

어쩌면 190km를 넘을 수도 있다.

‘반드시 배트에 맞춘다!’

타자는 한국 야구를 점령했으니, 다음 해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예정이었다.

그러니 설령 공을 쳐내지 못하더라도 배트에는 맞춰야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타자가 배트를 짧게 쥐는 사이, 진유성은 피식 웃었다.

타자의 호승심이 여기까지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적당히 던지려는 마음이 사라졌다.

이 정도로 승부를 하고 싶어 한다면 예의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진유성의 발이 마운드를 디뎠다.

그리고는 크게 와인드업 한다.

더그아웃에서 지켜보고 있던 투수들이 눈을 크게 떴다.

평범한 동작인데도 완벽한 신체 균형과 힘의 유려함이 느껴졌다.

몸의 어디 한 부분이라도 경직된 곳이 없으며 발바닥에서부터 무릎, 가슴, 어깨까지 힘이 쭈욱 끌어올려지는 느낌.

그리고.

진유성의 몸이 앞으로 쏘아지며, 팔이 휘둘러졌다.

본래 공을 던진다는 행위는 인체 역학적으로 그리 좋은 행위가 아니라서, 운동 에너지의 반발이 생긴다.

하지만 진유성은 그 반발조차 통제하며 신체 안에서 맴도는 운동 에너지의 9할 이상을 공에 담았다.

후우우웅!

타자는 진유성의 팔이 쏘아지는 순간에 곧장 방망이를 휘둘렀다.

평소 자신이 경험했던 공보다 훨씬 속도가 빠를 것이니 타이밍을 한참 앞당길 생각이었다.

‘너무 빠른가?’

순간적으로 방망이를 휘두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진유성의 폼이 너무나 완벽해서 본래 계획보다 더 빠르게 팔이 나갔다.

그러나.

퍼억!

배트가 절반 정도 나갔을 때, 이미 공은 포수의 미트 안에 정확히 박혀 있었다.

130마일.

거의 시속 210km에 달하는 말도 안 되는 속도였다.

“후후.”

만족스러운 공을 쏘아 낸 진유성이 뿌듯한 표정으로 관중들을 돌아보았다.

이제 사람들의 감탄이 터져 나올 차례였다.

순수한 신체의 힘으로 세계 기록을 갱신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와, 개빠른데?”

“내공으로 던졌겠지.”

“내공 안 쓴다던데?”

“그럼 저 속도가 나오겠냐? 쓴 거지.”

“하긴.”

사람들은 진유성의 기록 갱신에 관심이 없었다.

진유성의 얼굴이 와락 무너졌다.

그사이, 객석과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상소윤은 진유성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동안 진유성은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면서 특별한 행동들을 일삼아 왔다.

하지만 이제 그는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특별한 사람은 특별한 행동을 해도 그다지 감탄을 불러일으킬 수 없다.

그게 진유성을 당혹스럽게 만든 것이었다.

‘역시 타고난 관심종자.’

상소윤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객석에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 * *

“하나만. 하나만 묻겠네.”

“뭐죠?”

“자네에게 또다시 겨울이 닥친다면, 자네는 같은 선택을 할 건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마땅히 그러할 겁니다.”

진유성이 떠나고 텅 빈 오피스텔.

무언가를 아주 오랫동안 생각하던 강윤섭이 작곡용 오선지를 들었다.

그리곤 오선지 위로 음표를 빽빽이 채워 넣기 시작했다.

오선지의 제일 위에 적힌 제목은 <유성(流星)>이었다.

* * *

지금 들리는 노래는 강윤섭이 진유성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피아노곡이었다.

그때 양팀의 응원단장들이 지휘자처럼 팔을 젓더니 노래를 시작했다.

오오오오오.

너무 좋아요.

오오오오오.

이는 장난처럼 만들어진 곡이었다.

강윤섭은 자신의 무의식적으로 작곡했던 곡이 사실은 진유성을 보고 만든 곡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을 강윤섭의 손자가 SNS에 올리고, 거기에 또 누군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왔던 노랫말을 붙이면서.

찬송가가 탄생한 것이었다.

그리고, 진유성은 이 노래를 극도로 싫어한다.

뭔가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세상이 미친 것 같다.

“하지 마!”

진유성이 손을 휘둘러서 노래를 틀고 있는 스피커들의 전원을 전부 내려 버렸다.

하지만 한국인들이 누구던가.

떼창의 민족.

둥! 둥! 둥!

응원단장의 힘찬 북소리에 맞춰서 사람들이 아카펠라로 노래를 부른다.

오오오오오오.

너무 좋아요.

오오오오오오.

그 거지 같은 노래를 들으며 진유성이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허허, 업보로다…….”

그동안 너무 많이 관심종자로서의 행위를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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