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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304화 (304/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304화>

성좌가 소멸하는 순간, 그의 온몸에서 엄청난 신성이 뿜어졌다.

진유성이 품고 있는 힘과는 미묘하게 다르지만, 그래도 뿌리는 같다.

보통의 사람 같으면 성좌의 신성과 마주하는 순간 거력에 휩쓸려 자아를 잃어버렸겠지만, 진유성은 아니었다.

그는 성좌의 신성을 능동적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생사투를 벌이며 소모했던 대부분의 기력을 회복하고, 오히려 회복량이 이전의 양의 넘어서려고 할 때.

드드드득!

억지로 단추를 잡아 뜯는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서울역 게이트를 가득 채운 성좌의 신성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올 게 왔군.”

그 속에서 나타난 것은 아멜라 메건이었다.

아멜라 메건은 무표정한 얼굴로 진유성과 성좌가 존재했던 곳을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이 틀렸군.”

“왜? 놈이 이길 줄 알았냐?”

“99% 이상의 확률로 그러하다고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힘은 만의 하나에서 탄생한 것이다. 1%면 충분하지.”

만에 하나, 정도맹에 복수를 하고 중원을 얻게 된다면 난 세상을 바꿀 거다.

진유성이 품은 신성의 탄생 신화가 이것이었으니까.

진유성의 말에 아멜라 메건은 반응하는 대신 무채색의 눈동자로 응시할 뿐이었다.

잠깐의 시간 뒤, 아멜라 메건이 물었다.

“당황하지 않는군?”

“웃기는군. 체술로 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냐?”

공간에 흩뿌려진 성좌의 신성이 단번에 사라지는 순간, 진유성은 깨달았다.

현재 이 공간에서는 아무런 기운도 유동성을 갖지 않는다.

마치 죽은 공간처럼 그 어떤 기운도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진유성이 품고 있는 입멸공은 물론이고, 내공, 의념, 품고 태어난 선천진기까지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이 당황하지 않는 건, 아멜라 메건도 같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불가해한 능력을 뿜어내던 아멜라 메건의 기운도 동결된 상태였다.

즉, 지금의 진유성과 아멜라 메건은 맨몸으로 주먹을 말아 쥔 상태라는 뜻이다.

그리고 진유성은 진흙탕 싸움에 자신이 있었다.

내공이 사라진다고 해도 입신경지에 오른 그의 체술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그때 아멜라 메건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난 네가 두렵다.”

“의외로군. 신의 자아가 두려움도 갖냐?”

“나는 그릇이다. 내가 품지 못하는 존재는 없고, 내가 삼키지 못하는 힘은 없고, 내가 느끼지 못하는 감정은 없다. 내게는 두려움도 존재한다.”

“…….”

“너에게 십의 힘이 있을 때, 넌 백을 이길 수 있다. 너에게 백의 힘이 있을 때는 만을 이길 수 있다.”

표현하진 않았지만, 아멜라 메건은 진유성과 성좌의 격차가 그 정도라고 생각했었다.

진유성은 일백, 성좌는 일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은 성좌를 이겨 냈다.

그렇기 때문에.

“하지만 너에게 0의 힘이 있다면 어떨까?”

공간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본디 지구를 뒤덮은 게이트의 색은 회색이었으나, 그것은 결계 부분에만 해당되었다.

게이트 내부에는 별다른 색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게이트가 축소된다.

아니, 압축된다.

서울역에서 시작해 지구 전체를 뒤덮었던 게이트가 압축되며 영역을 서울역으로 한정 짓는다.

진유성과 성좌의 싸움으로 모든 사람들이 서울역에서 멀어져 있었다.

이 말은, 다시 인간들이 게이트 밖으로 나왔음을 의미했다.

“사, 살았다!”

“게이트 밖이야! 밖이라고!”

지구 곳곳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기뻐하고.

“엄마! 엄마!”

게이트에서 죽은 지인의 부재를 슬퍼하는 사이.

게이트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농밀하게 압축되었다.

이윽고 진유성과 아멜라 메건이 서 있는 서울역의 게이트 전체가 모든 색을 잡아먹을 듯한 짙은 회색으로 바뀌었다.

진유성은 알 수 있었다.

그릇은 지금 공간을 담았다.

서울역 게이트는 이제 단순한 공간이 아니다.

그릇의 신체가 되었다.

그 증거로 짚단처럼 풀썩 쓰러진 아멜라 메건이 서울역 게이트 밖으로 튕겨져 나가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릇의 진체(眞體)가 서울역 자체로 바뀌었다.

[너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배수가 있었다. 일의 힘으로 백을 내며, 백의 힘으로 만을 낸다.]

인간의 육신을 벗어던진 그릇이 심상을 전달한다.

[하지만 0에는 무슨 수를 곱해도 0일 뿐이다.]

지독히 짙어진 회색이 꼭 검은색처럼 보인다.

[그러니 인간들의 마지막 희망이여. 너는 나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

그 순간, 진유성은 서울역 게이트에 흩뿌려졌던 성좌의 신성 일부가 그릇에게 빨려 들어가는 걸 느꼈다.

사실 그릇이 품은 힘의 총량은 얼마 되지 않았다.

공간 전체의 기의 유동을 막아 놨기 때문인지, 그릇의 표현대로라면 십의 힘을 넘지 못했다.

[F급 보스 몬스터 : □□]

그렇기 때문에 게이트 시스템은 그릇을 고작 F급 보스 몬스터로 판단했다.

그 이름이 제대로 표기되지 않는 건, 아마 그릇이란 존재의 특성 때문일 것이고.

진유성에게 F급 몬스터는 너무나 간단한 존재이다.

하지만…….

현재 진유성이 품은 힘은 영이었다.

일과 십의 차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진유성이지만, 영과 십의 차이는 극복할 수 없다.

이는 인간(人間)과 인외(人外)의 격차이기 때문이었다.

[끝이구나.]

그릇이 진유성에게 힘을 뿜었다.

그 안에는 죽음이 담겨 있었고, 진유성은 피할 수 없었다.

* * *

“각하께서는…….”

“서거하셨다.”

대한민국의 김기영 대통령은 게이트 안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김기영 대통령뿐만 아니라, 게이트에 들어갔던 다수의 장차관 인사들도 사망했다.

그 결과, 현재 대한민국의 통수권은 계엄 사태에서 제1작전권을 거머쥐고 있는 최우한 장군이었다.

최우한 장군은 대한민국에서 비밀리에 키우는 각성자 부대와 함께 게이트에 들어갔기에 쉽게 생존할 수 있었다.

그는 공포에 질리지도 않았고, 패닉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서울역을 제외한 전 지구가 정상화되는 순간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다들 게이트 안에서 기묘한 영상을 보셨습니까?”

최우한 장군의 질문에 남아 있는 정계의 거물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영상이라기보다는 환상이죠.”

“그게 그거입니다. 중요한 건 안에 담긴 내용이죠.”

그들은 게이트 안에서 성좌와 진유성의 삶을 보았다.

두 사람의 입멸공이 충돌하며 전 지구에 인과율이 흩어졌고, 그 편린을 엿본 것이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이들은 진유성의 삶에 공감을 했지만, 최우한 장군 같은 이도 있었다.

“그는 지나치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류를 구원하려고 하지 않습니까?”

“핵무기는 전쟁을 억제하지만, 그 억제가 풀리는 순간 몹시 위험해집니다.”

“지금 우리의 토픽은 국가를 안정시키는 게 아니었소?”

“그 안정을 위한 최우선의 행동을 하자는 겁니다.”

최우한 장군이 스산한 눈으로 창밖을 쳐다보았다.

겉보기에 세상은 멀쩡하다.

건물이 무너지고, 땅이 붕괴된 것은 오히려 산발적으로 게이트가 열리던 때다.

전 지구가 게이트화가 된 이후에는 파괴의 행위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 속은 병들어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게이트 안에서 패닉을 경험했고, 겁에 질렸다.

최우한은 세상이 정상화에 든다면 이들이 누굴 신처럼 대할지 알고 있다.

진유성이다.

그러니.

“특수 부대와 각성자 부대를 파견하겠습니다. 계엄 상황이니 동의를 구할 필요는 없지만, 동의를 구하고 싶습니다.”

노회한 정치인들은 최우한 장군이 주어를 생략했음에도 ‘어디에’ 부대를 파견하겠다는 건지 이해했다.

“난 반대요.”

“나도 반대하겠소.”

“반대하시는 분들은 떠나 주시길 바랍니다.”

절반 정도의 정치인들이 자리를 떠났다.

그들이 반대한 이유는 다양할 것이었다.

누군가는 진유성의 삶에 감동해서, 또 누군가는 진유성의 힘이 두려워서.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니었다.

“가능성이 있겠소? LF 건설의 상림 대표도 강한 각성자처럼 보이던데.”

“그래봐야 한 명입니다. 한 명은 열 손을 못 막죠.”

결국 계엄 작전권이 실행되었다.

특수부대와 각성자 부대가 향하는 곳은 압구정, 상림의 집.

그들의 목표는 진유성의 가족 전체의 신원을 확보하는 것.

이는 핵무기를 억제하기 위함이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이는 아포칼립스 사태 이후로 가장 활동적인 국가 작전이었다.

그동안 국가는 아포칼립스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갈피도 잡지 못하고 있었다.

공격을 하자니 대상이 없고, 수비를 하자니 지역이 없다.

하지만 지금은 명확한 대상이 있다.

특수 부대원들과 각성자 부대원들은 월급 값을 하기 위해 분주히 포위 라인을 만들었다.

물론 개중에는 진유성의 가족의 신원을 확보한다는 작전에 불만을 가진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군인이다.

상명하복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1조, 진입 준비 완료.

-2조 마킹 준비 완료.

-3조 라인 준비 완료.

-특이 사항은?

-생체 반응에 잡히는 집안의 인원이 꽤 많습니다. 열 넷 입니다.

작전을 지휘하는 대령은 게이트 사태가 끝나고, 상림 대표의 지인들이 집으로 모여들었다고 판단했다.

-진입한다.

명령에 따라 전원 각성자로 이루어진 1조가 상림의 집으로 진입했다.

그들은 대부분이 C~E급의 각성자들이었지만, 사람을 상대할 줄 아는 이들이다.

수적 우위에 따라…….

꽝!

그 순간, 진입한 각성자들이 일거에 나가떨어졌다.

“위정자들은 다른 법이 없군.”

“형님! 죽이면 안 됩니다!”

그들을 단숨에 제압한 것은 신주청이었다.

1조가 제압당하는 순간, 마킹을 준비하던 2조가 고무탄을 발사했다.

비살상용 무기라고는 하지만, 머리나 눈에 맞으면 뇌진탕이나 실명을 일으킬 수도 있는 위력이다.

하지만…….

파파파파팍!

아놀드 벡, 문수혁, 차정명이 손을 휘두르는 순간 고무탄이 낙엽처럼 떨어졌다.

그 순간, 상림이 전력으로 질주해 3조의 라인을 부숴버리고 작전 지휘관을 제압했다.

“대령님, 이거 누가 시킨 겁니까?”

상림에게 붙잡힌 대령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나지막이 말했다.

“상림 대표. 진유성은 너무 위험하네. 그대들의 신원을 국가에게 맡겨 줄 순 없겠나?”

가슴 속의 시퍼런 불꽃을 되찾은 상림이 대답했다.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지.”

“…….”

“대령님. 작전 발의자에게 가서 전하십쇼. 이곳은 대한민국에 소속된 지역이 아니라고.”

“여긴 대한민국이네.”

“아뇨. 여긴 천…….”

상림은 문득 직접 입에 담기는 부끄러운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대령을 놔주고는 엉덩이를 걷어찼다.

“싹 다 철수시키고, 작전 발의자는 몸을 깨끗이 씻고 기다리라고 하십쇼.”

“그게 무슨 소리인가?”

“이왕 진유성한테 맞을 거라면 개운한 상태로 맞는 게 낫지 않겠어요?”

“…….”

상림은 당황한 대령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그래, 이제 그의 집은 대한민국의 영역이 아니게 됐다.

이곳은 새로운 천마신교였다.

* * *

꽈앙!

진유성과 그릇의 힘이 충돌하는 순간, 그릇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어, 어떻게!]

분명 진유성은 힘을 획득할 방법이 없었다.

기의 유동이 막힌 이상 그에게는 어떤 인외의 능력도 허용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진유성은 자신의 힘에 대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릇은 자신이 품고 있는 힘의 일부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릇의 힘을 막아 낸 진유성은 웃어 버렸다.

진유성의 손에 푸른 기운이 불꽃처럼 넘실거렸다.

* * *

[플레이어에게 가 안배됩니다.]

[F등급 게이트의 절대자 : 참여한 F등급 게이트에서 타인이 획득하는 경험치의 5%를 징수합니다.]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응?”

본래 룬 가호를 받으면 수락 여부를 묻는 메시지가 뜬다.

그러나 이번 메시지는 마치 통보하듯이 능력을 주고는 사라져 버렸다.

“뭐야?”

상태창을 열어서 룬 가호 페이지를 확인해 봤지만 는 보이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까 메시지 창에 룬 가호라는 말도 없었던 것 같다.

‘받긴 한 거야? 오류인가?’

* * *

서울역에서 얻었던 F등급 게이트의 절대자.

그것이 발동하며 그릇의 힘을 징수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인류배려자(신화, S등급) : 플레이어가 얻는 모든 종류의 경험치가 30% 상승합니다.]

그릇에게서 징수한 힘의 총량이 30% 늘었다.

“그래. 아카샤는 여기까지 봤단 말이지…….”

그래봐야 힘의 총량은 그릇이 훨씬 우위였다.

하지만, 그릇도 말하지 않았던가.

진유성에게는 알 수 없는 배수가 있다고.

진유성이 가짜 입멸검을 움켜쥐었다.

이 검은 가짜지만 아카샤를 베었었고, 성좌를 죽였었다.

신살(神殺)의 인과율을 여러 번 품었다는 뜻이다.

“끝을 보자.”

그렇게 모든 일의 끝에서, 진유성과 그릇의 마지막 싸움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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