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303화>
* * *
게이트 내에서 하늘 전체를 뒤덮는 회백색의 반구체를 쳐다보고 있던 성좌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설마 제 발로 돌아온 것이냐?]
진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가짜 입멸검을 뽑아들어 성좌를 겨눴을 뿐이었다.
[보아하니 그릇의 수작은 막은 것 같군.]
“고맙냐?”
[글쎄.]
“야, 뭐 하나만 물어봐도 되냐?”
[말하라.]
“너의 신성 역시 화전민 모녀의 죽음에서 기인한다면 너는…….”
피피피핏!
뭔가를 말할 것처럼 굴던 진유성이 성좌의 가슴을 찔렀다.
성좌가 눈살을 찌푸리며 크게 검을 휘둘렀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두 개의 검이 붙었다가 떨어진다.
[얕은 수를 부리는군.]
진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 사이에 더 이상의 대화는 필요치 않다.
모든 것은 명백해졌다.
해결책도 명확해졌다.
성좌를 죽이고, 그릇을 부순다.
유일한 변수가 있다면 성좌와 그릇이 손을 잡는 것이지만, 지금 당장은 그럴 수가 없다.
그릇이 성좌의 신성의 뿌리를 먹어치우려고 했으니까.
변수 없는 전장을 선택한다는 진유성의 말에는 이러한 의미가 있었다.
그렇게 진유성과 성좌의 싸움이 이어졌다.
검과 검이 부딪치며 떨어지고, 어깨와 어깨가 부딪치며 서로를 밀어낸다.
호신강기가 진흙처럼 흩어지고, 심검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것이 마음임을 증명한다.
파파파파팟!
싸움이 진행되며 유리한 고지를 점한 것은 성좌였다.
무공에서는 진유성이 유리했으나 얄팍한 차이였고, 힘의 격차는 아득하다.
또한 성좌는 상처를 곧바로 재생할 수 있지만, 진유성은 아니다.
앞선 패배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이 차이는 좁힐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성좌는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다.
뭔가 다르다.
앞선 싸움과 모든 조건이 같지만, 뭔가 달랐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음에도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
꽝!
크게 손을 휘둘러 거리를 벌린 성좌가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이지?]
“널 죽일 생각이다.”
[그렇게 방어만 하면서?]
성좌가 느낀 위화감은 진유성의 검세(劍勢)였다.
본디 진유성이란 존재의 검세는 공격으로 시작해 공격으로 끝난다.
그러나 지금, 진유성은 공격을 최소화하면서 수비에 집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더 이상 같은 공격을 하고 있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만해도 거울 속의 자신과 싸우는 것처럼 대칭으로 움직이고 있었는데 말이었다.
그게 이상했다.
하지만 진유성은 질문에 답을 주지 않았다.
굳건한 방어세를 유지하며 질문과 상관없는 또 다른 질문을 꺼낼 뿐이었다.
“너의 탄생 지역은 고려냐, 아니면 천신궁 게이트 앞에서냐.”
[…….]
“난 고려에서 태어났다.”
[그게 무슨…….]
성좌가 입을 여는 틈을 타서 다시 진유성이 검을 찌른다.
몹시 불쾌하다.
말을 하는 틈을 타서 공격을 하는 건 하수들의 싸움에서나 통하는 것이다.
그들은 입신지경에 올랐다.
한숨의 호흡으로 하루를 버틸 수 있으며, 한줌의 진기로 열흘을 달릴 수 있다.
그러니 이런 허섭한 공격은 의미가 없다.
[죽음의 공포가 네놈의 소우주를 망쳐 놓았구나!]
소리를 내지른 성좌가 커다란 횡베기로 진유성을 압박했다.
그사이, 진유성은 침착함을 유지하며 성좌의 검을 흘렸다.
앞선 싸움에서 진유성은 단번에 승부를 보려고 했었다.
성좌는 치명적인 상처조차 회복하는 능력이 있고, 자신에겐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강자’의 싸움이다.
[낮은 곳에서 낮은 곳을 보면 연명(延命)이지만,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보면 생존(生存)이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 서울역 사물함에 남겨뒀던 말.
중원어로 쓰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그 정체가 몹시 궁금하지만, 진유성은 생각을 뒤로 밀어두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 내용이다.
진유성은 무수히 많은 생존을 이루어냈다.
모두가 이번에는 죽을 거라고 생각할 때도 살아났고, 그의 적들이 이번에는 빠져나갈 길이 없다고 자신할 때도 살아나갔다.
이는 그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게 진유성의 진정한 힘이었다.
그리고 그 힘을 발휘하기 위한 첫 번째는 발걸음은 인정이다.
내가 ‘낮은 곳’에 있다는 인정.
진유성은 무림을 일통하고 황제보다 더욱 영광된 자리에 오른 순간부터 더는 낮은 곳에 있지 않았다.
그리고 강자로서의 싸움만을 이어 왔다.
하지만, 지금.
진유성은 자신의 낮음을 인정했다.
그는 성좌를 이겨내지 못했고, 그릇의 암계를 파악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은 천신궁의 진유성이 아니다.
고려에서 태어나 거지꼴로 백두산을 넘고 명나라에 도착한.
노예상에게 붙잡혀 멸마대에 팔려 가고, 거기서 살기 위해 도망친.
<생존대>의 진유성이다.
공교롭게도 생존대의 핵심인물인 신주청과 상림은 지금 그와 함께 싸우고 있었다.
째깍, 째깍.
그러니 진유성의 우주가 품은 시계가 백여 년 전으로 되돌아간다.
천신궁에서 괴로움과 외로움에 멈춰 버린 시계가 다시 움직인다.
살기 위해 아등바등 발버둥을 치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을 노려보던 때로.
성좌는 거기서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었다.
성좌의 탄생은 천신궁의 게이트 앞에서였으니까.
그는 평생 낮은 곳에 있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만 죽어라!]
성좌의 거침없는 공격이 퍼부어진다.
진유성은 생각했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수없이 죽인 그의 가장 큰 장기는 냉정이다.
상대의 감정을 요동치게 만들지만, 그 스스로의 감정은 한없이 둔해진다.
그 둔함 속에 날카로움을 숨긴다.
꽈과과과광!
하지만 이것만으로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죽일 수는 없다.
당장 눈앞의 성좌만 해도 감정이 흔들렸음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공격을 뿜어내고 있으니까.
위력적이다.
물론 거침없는 공세 속에는 늘 약점이 있기 마련이고, 진유성은 그 약점을 파고들어서 한 방 먹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상대에게 경각심을 심어 줄 필요는 없다.
특히 상처를 쉽게 재생하는 상대에게는.
그러니 기다려야 한다.
세월을 낚는 어부처럼.
파파파팟!
경력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한 진유성의 살갗에서 피가 배어 나온다.
이 정도 부상은 대수롭지 않다.
중요한 건 자신의 방어를 두드리던 성좌의 공격에서 균열이 일어났다는 것이었다.
불가에서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라고 했다.
이는 부처에 집착하지 말라는 소리다.
진유성은 마음속에 있는 ‘천신궁의 진유성’을 죽였다.
이제 더 이상 자신이 강자임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 뒤로는 살고 싶다는 마음 역시 죽였다.
진유성은 죽고 싶다는 마음을 지워 버림으로 온전한 심검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말이었다.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으니, 죽고 싶지 않다는 마음조차 생겨기 때문이었다.
생과 사에서 초월해야 한다.
그래야만 생사입멸을 관장할 수 있다.
그것이 입멸공이다.
프스스스스스스!
그 순간, 시종일관 방어세였던 진유성의 심동에서 공세가 일어났다.
심동을 제어하지 않았다는 것은 진유성이 거짓 없이 직선적인 공격을 내뱉을 것을 의미한다.
성좌가 상단을 공격하던 검을 뿌리며 뒤로 물러났고.
진유성이 바닥을 박찼다.
진유성의 공격은 입멸공이 아니었다.
일수격(一壽格).
일격에 목숨을 걸고, 상대의 목숨을 노리는 최후의 절초.
입멸공을 얻은 이후에는 사용해본 적이 없으나, 그 전에는 일수격으로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갔었다.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 사용했던 무공.
일수격의 정수(精髓)는 목숨을 거는 것이다.
이는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다.
정말로 이 싸움의 끝에는 하나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일초반식에 모든 것이 실려 있다.
고려의 왕자로 태어나 명나라로 도망칠 때 품었던 분노.
멸마대에서 얻은 수많은 기초들.
생존대에서 느낀 생존 본능.
화전민 모녀의 앞에서 품은 거룩함.
천마신교를 세우며 가진 야망.
중원을 평정하고 가장 위대한 자가 된 기쁨.
그 이후에 찾아온 외로움과 슬픔.
거기에는 그동안 가졌던 희로애락과 오욕칠정이 모두 담겨 있었다.
그 위로 심검의 다음 경지에 도달한 검공과 스스로 빚어낸 신성인 입멸공이 담긴다.
[소용없다!]
성좌가 선언하며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그의 선언은 진실이었다.
진유성이 모든 것을 불태운다고 하더라도 성좌의 방어를 뚫고 일격에 소멸까지 끌고 가긴 힘들었다.
방어를 뚫고 상처를 입힐 수는 있겠지만, 진체가 소멸하지 않는 이상 그는 영원히 재생한다.
하지만…….
지금의 진유성은 낮은 곳에 있다.
낮은 곳에 있다는 것은 그 어떤 것에도 제약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사일생의 상황에 상대의 눈에 흙을 뿌릴 수도 있고, 독을 쓸 수도 있다.
운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야 한다.
그게 생존이다.
성좌가 가진 힘의 총량이 넘실거리며 스스로를 보호하고, 진유성의 검이 거기에 닿기 직전.
진유성은 언제부터인가 왼손에 쥐고 있던 것을 꽈악 움켜쥐었다.
파삭.
검은 돌이 깨진다.
* * *
김정철 회장이 물었다.
“심연용? 이건 뭔가?”
“그게 뭔데요?”
“용이면 용이지, 심연용은 뭐지?”
종족 아이템에는 늘 종족의 이름이 앞에 붙는다.
누카 전사의 어금니처럼.
한데, 진유성이 공유한 리스트에 있는 ‘심연용의 화석’은 처음 들어 보는 종족명이었다.
애당초 용족 자체가 흔치 않은 종족 아이템이긴 했다.
진유성은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이 아이템은 그가 처음으로 들어간 서울역 게이트에서 얻은 아이템이었다.
-누카 종족의…….
-누카 종족의…….
-수인족의…….
-전사의…….
-심연용의…….
인벤토리 알람을 끄기 직전에 올라왔던 메시지였다.
“흠?”
진유성이 인벤토리 목록을 열어서 심연용의 화석을 확인했다.
-심연용의 화석
[심연용은 수명이 다하면 화석으로 돌아가고, 용족의 아카식 레코드와 화석을 연결해 천 년 후 부활합니다.
현재 심연용족은 멸망했기 때문에 영원히 부화할 수 없습니다.
흡수 시, 심연 마력 스탯이 생성, 활성화됩니다.]
‘내단 같은 거네?’
진유성한테는 별로 필요가 없는 물건이었다.
그는 중원에서의 내공을 회복하는 중이지만, 내단은 쓸모가 없었다.
‘상림한테 팔아야겠군.’
진유성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심연용의 화석이 깨지는 순간, 경험치가 차오른다.
진유성의 눈앞에 익숙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레벨 업!]
[레벨 업!]
[레벨 업!]
그가 기다리던 것.
[최초 레벨업 각성자 보호 시스템이 작동됩니다.]
시스템은 최초 레벨업 시 각성자를 보호해 몬스터의 행동을 제약한다.
본래 이것은 최초의 레벨업에만 발생되는 것이지만, 진유성의 레벨은 영원히 1이다.
모든 스탯을 내공으로 치환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에러 발생!]
[해당 플레이어 데이터 필드값에 각성자 보호 시스템 사용이 이미 기록 되어 있습니다.]
[최초 레벨업 각성자 보호 시스템이 중단됩니다.]
에러 발생.
최초 레벨업 각성자 보호 시스템 취소.
이때 중요한 건 보호 시스템이 발동되지 않는 게 아니라, 발동되었다가 취소된다는 것이다.
즉, 발동되고 취소되는 사이의 시간은 몬스터들은 공격할 수 없다.
물론 그 시간은 아주 짧다.
하지만 진유성은 그 찰나를 누구보다 잘 활용할 수 있는 고수였다.
찰나의 순간, 넘실거리던 성좌의 기운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렇군.’
진유성은 의아했었다.
그릇의 행위가 성좌의 신성에 위협이 된다면, 성좌는 압구정에 나타났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압구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또한 성좌가 등장하는 순간 시스템은 그를 보스 몬스터라고 불렀다.
이는 그가 지구에 현현하기 위해 감수한 제약이 아닐까.
몬스터로서 지구에 접근한다는 제약.
낮은 곳에 있었기에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고요하다.
고요함 속에서 진유성의 검만이 나아간다.
------!
성좌는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이는 허락되지 않았다.
그리고, 진유성이 검이 무방비한 성좌의 가슴팍에 닿는 순간.
투화아아아악!
환한 빛과 함께 성좌의 존재가 소멸을 맞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