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98화 (298/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98화>

촤아아악!

촤아아악!

상대를 베어 낸 두 사람은 뒤로 물러났다.

‘깊다.’

‘얕군.’

초수의 교환에서 이득을 본 사람은 진유성이었다.

성좌는 팔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베었고, 자신은 옆구리를 가볍게 베였으니까.

하지만 실질적인 손익을 따지자면 반대였다.

성좌의 상처는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으나, 진유성의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진유성의 입장에서는 극도로 불리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의 경지 차이는 그야말로 머리카락 한 올.

한데 상대는 상처의 의미가 없고, 자신은 의미가 있다.

성좌가 순식간에 아물어 버린 팔뚝을 쳐다보며 말했다.

[신이 되어 보니 알겠군. 네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를.]

“그걸 알면 좀 존경심을 표하지 그래? 어떻게 보면 내가 네놈 아빠가 아니냐?”

[친부살(親父殺)의 탄생 신화를 가진 신들은 널렸지.]

“친부는 아니지 않냐?”

[그보다 더욱 밀접하지 않겠느냐. 같은 피와 살을 가지고 있으니.]

“DNA라고 하는 거다. 무식한 놈아.”

내심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놈은 짭유성이란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했었다.

가짜라는 태생적 한계에 얽매여 있었다는 소리다.

그러나 지금은 무슨 말을 해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

유성(流星)과 성좌(星座).

별똥별과 별자리.

놈은 정말로 하늘 위로 올라간 것 같다.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내공으로 상처를 지혈했고, 성좌는 지켜만 보았다.

[치료는 끝났느냐?]

“오냐.”

[한 가지 대답을 해 주면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네 주변 사람들의 생을 연장해 주마.]

“내가 상실의 공간에서 선택한 것에 대해서 말이냐?”

[그러하다. 갈망은 사라졌으나 호기심은 남아 있구나.]

검과 기세를 곧게 세운 진유성이 답했다.

“비밀이다, 이 새끼야.”

쿠구구궁!

싸움이 재개되었다.

산을 쪼갤 듯한 상단세와 바다를 가를 듯한 하단세가 서로를 노린다.

두 사람의 공격이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줄곧 같은 맥락에서 싸우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선택이 갈린 것이었다.

성좌는 자신이 신체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진유성의 검공을 이겨 내려고 하지 않았다.

검공에서의 불리함을 시인하고, 뼈를 주더라도 살을 가른다.

이는 지는 것 같지만 이기는 길이었다.

꽈꽈광!

거력이 충돌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이 놀라고 땅이 진동한다.

그 외에는 두 사람의 싸움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두 사람의 싸움에서 파생된 충격파가 게이트 전체로 퍼져나가며, 게이트가 떨리기 시작한다.

그 아득한 싸움에서 시종일관 우위를 점한 것은 진유성이었다.

하지만.

피피핏!

점차 몸에 상처가 늘어난다.

결국 진유성은 결정을 내렸다.

‘빠르게 끝내야 한다.’

더 이상의 싸움은 불리함을 키우는 것뿐이다.

진유성이 자세를 취했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으며, 결과가 있어야 원인이 증명된다.

그래서 생사입멸의 최종오의들은 상대를 특정하지 않는다.

‘죽음’을 바라는 것과 ‘누군가의 죽음’을 바라는 것이 훨씬 무거운 인과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진유성은 <성좌의 죽음>을 결과로 품었다.

이것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인과율이 진유성을 침범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멸할 것이다.

진유성의 기세를 읽은 성좌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네가 품은 건 고작 1할의 신성일 뿐이다!]

성좌도 입멸공을 끌어올렸다.

원인을 필요로 하는 두 개의 결과가 맞닿는다.

인과율이 파지지직 소리를 내며 맞부딪쳤다.

성좌의 죽음.

진유성의 죽음.

어떤 결과가 성립되고 어떤 원인이 증명될 것인가는 순식간에 판가름될 것이었다.

두 존재는 서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움직였다.

기합은 없었다.

기세도 없었다.

아주 당연한 일인 것처럼 두 개의 검이 허공을 격하고 날아갔다.

그 검들은 곧게 뻗어 나가는 순간부터 무수히 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다.

무공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그저 느리다고 평가했을 것이다.

무공에 대해 아는 사람이 보았다면 그들의 경지에 놀랐을 것이었다.

하지만 무공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이 보았다면, 그들의 검초에 담긴 현묘함을 느끼고 기절해 버릴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들의 검초가 품고 있는 고절한 깨달음은 인세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마침내.

서로의 검이 서로에게 닿았다.

푸우우욱!

하나의 검이 한 명의 가슴을 찔렀다.

검에 찔린 이는.

진유성이었다.

“……!”

진유성이 이를 악물며 오른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찌른 검날을 붙잡았다.

날을 움켜쥔 손에서 피가 흘렀다.

그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검을 뽑아서 싸움을 이어 가야 한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상대는 진유성과 거의 대등한 무공을 지니고 있으며, 그보다 더 큰 힘을 품은 존재였으니.

“커억!”

성좌가 가슴팍에 박힌 검을 뽑자, 진유성이 백여 년 만에 처음으로 신음을 토해 냈다.

마지막에 몸을 틀어 심장은 피했지만, 상처가 위중했다.

결국 진유성은 균형을 잃고 비틀거렸다.

[끝이다.]

성좌가 곧장 검을 들어 목을 내리쳤다.

‘원인’을 획득하기 위한 성좌의 ‘결과’가 확증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진유성의 죽음>이란 인과율을 완성하는 순간.

투화아아아악!

환한 빛이 두 사람을 감쌌다.

* * *

유성(流星)과 성좌(星座).

두 존재는 다른 존재들이다.

서로 다른 마음을 품고 있으며, 서로 다른 목적으로 입멸공을 사용한다.

그러니 두 존재는 다르다.

* * *

유성(流星)과 성좌(星座).

두 존재는 같은 존재들이다.

같은 신체를 지녔으며, 같은 무공을 사용하고, 같은 입멸공을 사용한다.

그러니 두 존재는 같다.

* * *

패러독스(Paradox).

인과율의 주체는 누구인가.

인과율의 대상은 누구인가.

두 존재의 인과율이 엉킨다.

결과를 내지 못했으나, 그렇다고 실패한 것도 아니다.

본래 인과율은 본인 스스로에게는 적용시킬 수 없는 것이니.

그러나 진유성과 성좌가 내뿜은 힘은 간단히 해소되기에는 너무나 강력했다.

진유성과 성좌 사이에서 발생한 환한 빛이 게이트 전체로 퍼져 나갔다.

* * *

쿠르르릉.

우레와 같은 소리와 함께 게이트가 진동했다.

그 진동 속에는 엄청난 충격파가 들어 있었다.

“으아아악!”

일반인들이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자, 각성자들이 황급히 스킬을 펼쳤다.

막을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동안도 막아왔으니.

하지만 이번 충격파는 엄청났다.

‘모, 못 막는다.’

B급 각성자들 중 몇몇이 죽음을 직감하고 눈을 질끈 감는 순간.

파파파팟!

누군가 나타나서 충격파의 방향을 하늘로 바꿨다.

“무, 문수혁이다!”

“차정명!”

진유성의 가르침을 받고 SSS급에 올라선 문수혁과 차정명이 나타난 것이었다.

그 뒤로 우산도 멤버들이 우르르 나타나자,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산도가 어떤 이들인가.

S급 게이트를 두 번이나 클리어한 이들이다.

그때 문수혁이 주변을 둘러보더니 생존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 있는 분들, 어디 지역에 있던 사람들이죠?”

“오, 옥수역이요!”

“옥수역?”

“압구정으로 가던 길에…….”

문수혁이 고개를 들어 회백색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우산도 멤버들과 함께 일산 게이트를 클리어하던 중, 거대한 구체가 그들을 집어삼켰다.

처음엔 당황했으나, 이내 냉정을 되찾은 그는 사태를 파악하려 노력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은 충격적이었다.

지구 전체가 게이트가 되었다.

그렇다면 해야 할 일은 당연하다.

진유성이 있는 압구정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 그와 우산도 멤버들은 생존자들을 구출하면서 압구정의 방향으로 향한 것이었다.

한데 어느 순간부터 몬스터들이 없어지고, 무차별적인 충격파가 쏟아졌다.

SSS급인 문수혁도 간신히 방향만 바꿀 수 있는 엄청난 힘이었다.

‘언노운 엠페러는 어디 있는 거지? 대체 이 충격파들은 뭐고?’

그 순간이었다.

투화아아아악!

난데없이 터져 나온 거대한 빛이 문수혁을 휘감은 것이.

빛은 문수혁만 감싼 것이 아니었다.

주변의 생존자 전원을 감싼 것으로도 모자라 게이트 전체로 끊임없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어찌나 강한 빛이었는지, 회백색이었던 하늘이 밝아진다.

그 빛 속에서 사람들은 두 명의 삶을 엿보았다.

그렇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진유성’과 ‘성좌’라는 존재들의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 * *

진유성은 빛을 보는 순간 자신이 성좌에게 패배한 줄 알았다.

놈의 입멸공에 피격당해서 죽음이 찾아왔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한데, 아니었다.

그는 천신궁에 있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천신이시여, 기침하셨나이까?”

익숙한 궁인의 얼굴이 보인다.

진유성이 천신궁 게이트에 들어가기 전에 그를 모셨던 장씨다.

문제는 장씨가 너무나 늙었다는 것이었다.

그가 떠날 때만 해도 20대의 모습이었는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장씨의 모습은 50대다.

혹시 이것은 꿈일까?

하지만 상단전을 완전히 개방한 진유성은 일반적인 꿈을 꾸지 않고 자각몽만 꾼다.

그러니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고민하던 진유성이 장씨에게 말을 걸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진유성이 하려던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황족들은 어디 있느냐?”

분명 자신의 목소리였는데 말이었다.

“거, 건청궁에 모여 있나이다.”

게다가 이상하게도 장씨는 진유성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진유성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천신궁을 빠져나와 황족이 기거하는 건청궁으로 향했다.

‘이상한 기분이군.’

몸을 움직일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몸이 제멋대로 움직인다.

분명 꿈은 아닌데 말이었다.

잠시 뒤, 진유성이 건청궁에 도착했다.

그리고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촤아아악-!

건청궁에 도착한 진유성이 벌벌 떨고 있는 황족들을 모조리 베어 버린 것이었다.

피가 사방으로 튀고, 조금 전까지 생명의 일부였던 살점들이 덕지덕지 건청궁을 수놓는다.

본래 진유성은 사람을 벨 때 피가 튀지 않게 베었다.

또한 단숨에 베어서 장의사가 온전한 시체로 꿰맬 수 있도록 했었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을 죽일지라도 유가족들이 그 장례만큼은 불편하지 않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니 이런 살육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는 것이었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진유성의 마음속에 쾌감이 솟는다는 것이었다.

살인에 대한 쾌감.

학살에 대한 흥분.

그런 것들이 온몸을 맴돈다.

그때였다.

진유성의 머릿속으로 파노라마처럼 ‘진유성의 삶’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니, 진유성의 삶이 아니다.

이것은 자신이 떠난 이후 태어난 성좌의 삶이었다.

* * *

진유성이 성좌의 삶을 엿보고 있을 때, 성좌 역시 진유성의 삶을 엿보고 있었다.

파노라마처럼 진유성의 삶이 성좌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진유성의 삶은 일견 장난스러웠으나, 성좌는 그 안에 담긴 진유성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단 한 번이라도 평범하게 살아 보고 싶은 마음을.

그렇게 그들이 서로의 삶에 대해서 완전히 알게 되었을 때.

빛이 점차 사그라졌다.

옅어지는 빛 속에서 둘은 같은 장면을 보았다.

두 존재의 신성이 출발한 출발점이었다.

* * *

“만약.”

진유성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정말 만약, 우리가 정도맹에 복수를 하고 중원을 얻게 된다면 난 세상을 바꿀 거다.”

생존대원들이 말없이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적어도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지 않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무림인과 관리가 민초를 무제한적으로 수탈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화전민 모녀의 시신 앞에서.

“적어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그들은 다짐했다.

다 함께.

* * *

[그렇군. 우리는 입멸공으로 서로를 죽일 수 없군.]

성좌가 말했으나, 진유성은 답할 수 없었다.

“쿨럭.”

입멸공의 인과율은 상쇄되었으나, 성좌의 검이 그의 가슴에 박힌 것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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