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89화>
* * *
다시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한국의 사망자는 3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진유성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사망자였는데, 게이트의 발생 빈도가 점차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포칼립스 첫날 한국에서 발생했던 게이트는 18개.
어제 한국에서 발생한 게이트는 36개.
열흘 만에 게이트의 숫자가 정확히 두 배로 증가했고, 진유성의 몸은 하나였다.
진유성은 게이트를 찢고 들어갈 수는 있었고, 사람들과 함께 찢고 나올 수는 없었다.
그 압력을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진유성이 아무리 완벽하게 게이트를 클리어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다.
그나마 전국의 각성자들이 우산도와 한지후 본부장의 판단하에 움직여서 사망자 수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발생한 게이트의 수를 집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이 사회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은 현재 자국에 몇 개의 게이트가 열렸고, 몇 명이 죽었는지 알지 못했다.
통조림 하나를 뺏기 위해 살인이 일어나고, 강력한 각성자를 중심으로 생존 집단들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생존 집단은 원시 문명의 부족과 같이 가장 강한 자의 말이 곧 법이 되는 집단이다.
야만의 시대를 지나, 문명의 시대에 왔던 사회가 다시 야만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각국의 대통령을 포함한 지도층들이 한국으로 건너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현상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들은 자국을 경영하는 걸 포기했고, 유일한 안식처가 한국이라는 걸 인정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들의 망명을 받아 주었다.
게이트 사태가 마무리 될 수만 있다면, 지금의 호의가 국제 사회에서 큰 득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또한 사회 지도층들이 망명을 할 때는, 혼자가 아니라 각성자들을 대동하기 마련이니까.
자국에 각성자 수가 하나라도 많아진다는 것은 정부로서 환영할 일이었다.
하지만 진통이 없는 건 아니었다.
“왜 압구정으로 갈 수 없다는 것이요? 거기에는, 아주 강한, 각성자가 있다고…….”
차마 ‘신’이라는 단어를 쓸 순 없었던지 덴마크의 총리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한지후 본부장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압구정은 사회적인 약자들을 우선 수용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을 모실 관사는 대구입니다.”
말이 좋아 관사지, 대구의 국회의원들이 이용하던 곳으로 지금은 텅 빈 건물이었다.
“대통령님이라도 압구정으로 갈 수는 없습니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여러분들끼리 뭉쳐 있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KSG는 지역을 수호하지, 사람을 수호하지 않습니다. 타국의 대통령과 노숙자가 저희에겐 동일합니다.”
한지후 본부장의 말에 덴마크 총리는 갑자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난데없는 웃음에 한지후 본부장이 고개를 갸웃했다.
웃을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왜 웃으십니까?”
“기뻐서 그럽니다. 아직 지구에 상식이 남아 있다는 것이.”
지역을 수호할 뿐, 사람을 수호하진 않는다.
각성자는 게이트를 상대하는 것이다.
빈부와 귀천을 가려 사람을 호위하는 게 아니라.
이는 게이트란 놈에게서 사람을 지키는 SG의 수칙이자 상식이었다.
하지만 현재 지구상에서 이러한 상식이 지켜지는 곳은 한국뿐이었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보고 받았을 때는 절반도 믿지 않았는데…….”
외국의 지도자들이 보기에 한국은 특별했다.
아포칼립스의 시대에 각성자들은 끊임없는 유혹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바로 ‘의무를 저버려라’라는 유혹이었다.
각성자가 의무를 저버리는 순간, 그들은 강자가 된다.
야만의 시대에 강자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당장 독일에서는 몇몇 각성자들이 집단을 이뤄서 국가가 비축해 놓은 석유를 몽땅 훔쳐갔다고 했다.
그들이 석유를 훔친 다음 행동이 뭐였을까?
스포츠카 매장에 가서 수십 대의 차를 가져가 버린 것이었다.
이게 작금의 시대였다.
단 한 곳, 한국을 제외하고 말이었다.
“대체 한국은 각성자들을 어떻게 어르고 달래는 겁니까?”
한지후 본부장이 담배를 물고는 깊은 연기를 들이켰다.
그리고는 잠깐 주저하다가 말했다.
“신이 있으니까요.”
“신…….”
“그가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다면 한국의 각성자들은 의무를 저버릴 수 없습니다.”
“신이 두려워서입니까?”
“그것도 있지만……. 그가 이 사태를 끝낼 거라고 믿으니까요.”
한국의 모든 각성자들이 타국에 비해 착한 것이 아니다.
반대로 타국의 각성자들이 한국에 비해 성격이 나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안전핀의 문제였다.
진유성은 한국 각성자의 안전핀이었다.
만약 마음 내키는 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살다가 아포칼립스가 끝나 버리면?
사회가 정상으로 돌아온다면?
앞으로 평생 범죄자로 살아야 한다.
각성 범죄는 어지간해서는 처벌하지 않지만, 한 번 처벌을 하면 유효 기간이 없다.
평생 동안 범죄자의 낙인이 찍힌 채 살아야 한다.
그래서 한국의 각성자들의 의무를 지키는 것이었다.
설명을 들은 덴마크 총리가 침음을 흘리다가 물었다.
“그는…… 정말로 신입니까?”
“신이 무엇입니까?”
“…….”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존재? 인간의 믿음에 보답하는 존재? 인간을 위하는 존재? 그렇다면 그는 신입니다.”
“그런 걸 묻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지 않소.”
“총리님께서는 믿고 계신 신이 있습니까?”
“……있었소.”
“과거형이군요.”
“내 조국을 지켜 달라는 기도에 답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신을 믿을 때는 신이 존재했고, 믿지 않을 때는 사라진 겁니까?”
총리는 한지후 본부장의 말을 이해했다.
언노운 엠페러가 어떤 존재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모두가 신으로 믿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저 강한 각성자였다면 이토록 막대한 영향력으로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그는 진짜 신의 대리인이 아닐까?
총리는 그것이 궁금했다.
* * *
압구정의 수용 인원이 어느덧 한계치에 이르렀다.
하지만 진유성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받으라고 상림에게 명했다.
다리를 제대로 뻗을 수 없이 비좁게 지낸다고 해도.
공용 공간을 이용하느라 사람들끼리 싸움이 난다고 해도.
그 싸움이 폭력 사태로 변질된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를 바랐다.
압구정에 있으면 살릴 수 있으니까.
진유성을 슬프게 하는 것은 각성자들이 점차 죽어 나간다는 것이었다.
“김우영이…… 죽었다는군요.”
오랜 만에 압구정으로 돌아온 문수혁과 차정명은 진유성을 찾아왔다.
세 사람은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이야기의 끝에는 죽음이 언급되었다.
진유성은 김우영 각성자를 잘 모른다.
하지만 그와 대화를 나눈 적은 있다.
* * *
“야. 그, 뭐야. 왼쪽에 있는 갈색 창 쓰는 놈.”
“저 말입니까?”
“너 말고, 임마. 니 왼쪽에 턱수염 기른 놈.”
“아, 넵!”
“너 이름 뭐야.”
“김우영입니다!”
“너 창 휘두를 때 새끼손가락에서 힘 빼라.”
“어, 하지만…….”
“창의 파지법이 새끼손가락에서 시작하는 건 맞는데, 넌 너무 힘이 들어갔어.”
“너 약지 다친 적 있지?”
“어, 네!”
“잘릴 뻔했냐?”
“……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약지에 힘을 덜 주고 새끼로 힘을 주고 있어. 그러니까 창에 회전이 덜 먹지.”
* * *
진유성은 김우영과의 대화를 회상했다.
그는 분명 김우영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지닌바 재능이 문수혁이나 차정명과 거의 비슷하다고.
한데, 놈이 죽은 것이었다.
“왜 죽었어?”
“이유가 있겠습니까? 강한 몬스터를 만났고, 약한 동료와 함께였겠죠.”
“그렇군.”
진유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문수혁과 차정명이 자신에게 뭘 바라는지 알 것 같았다.
“동료를 보내는 법이 궁금한 거냐? 어떻게 잊어버리는지?”
“예.”
“나도 몰라. 백 년을 넘게 살아왔는데도 누군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는 못 깨우쳤어.”
“…….”
“그냥, 슬프니까 슬퍼했지. 혹은 슬프지 않을 때는 슬프지 않았지.”
진유성의 솔직한 답변이 도움이 됐는지 문수혁과 차정명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어쩌면 그들은 생각보다 너무나 덤덤하게 동료의 죽음을 받아들였는지도 몰랐다.
그게 죄책감이 됐을 수도 있고.
“마스터.”
“왜?”
“이 상황은…… 언제쯤 끝날 것 같습니까?”
아포칼립스가 시작되고 열흘밖에 되지 않았는데 너무나 힘들다.
더 힘든 건 기약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진유성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창문을 향해 다가갔다.
한참 창밖을 쳐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어쩌면 오늘, 아니면 내일 끝날 수도 있겠군.”
“예?”
“잉여 영성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게 무슨…….”
“마도사 놈이 마침내 시작하는 모양이다.”
진유성은 마도사들의 목적을 알고 있었다.
영성을 흡수해 신이 되는 것.
마침내 신주청과 함께 있던 로스차일드란 놈이 부유하는 영성들을 흡수하려는 모양이었다.
그으아아아아아-
파도 소리 같기도 하고, 고동 소리 같기도 한 소리와 함께 영성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으니까.
‘북쪽.’
진유성은 문수혁과 차정명에게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설명할 시간이 없었다.
대신 진유성은 자리를 박차고 튀어 나가서 공간을 찢으려다가 멈칫했다.
진유성은 머뭇거리지 않는다.
결정을 내렸다면 그 결정의 끝에 죽음이 있더라도 내달린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유성에게 두려움이 없는 건 아니었다.
매번 두려움을 극복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진유성은 한 가지 생소한 두려움을 느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 보는 두려움이었다.
만약 자신이 오늘, 마도사에게 패배한다면.
여기서 자신의 생이 끝이 난다면.
그렇다면…….
‘이렇게 작별하는 건가?’
대정고 친구들이 졸업장을 받는 것도 보지 못하고, 상도윤이 자라는 것도 더는 보지 못하는 것인가?
유혜연이 장난치는 것도 보지 못하고, 상림이 투덜거리는 것도 보지 못하는 것인가?
그리고.
상소윤이 자신을 보고 웃어 주는 것도 더는 보지 못하는 것인가?
그러나 진유성은 곧 두려움을 극복했다.
두려움은 당연한 것이지만, 거기에 잠식되기에는 스스로 쌓은 무에 대한 신념이 너무나 확고했다.
진유성은 검을 들어 공간을 찢었다.
프스스스스.
푸른색의 공간이 입을 쩍 벌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진유성은 그 안으로 들어가기 전, 모두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보냈다.
[조금만 견뎌라. 곧 끝을 내 줄 터이니.]
아직 스마트폰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사회의 패닉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해 유지한다고는 했는데, 요 며칠간 바빠서 써 보질 못했다.
또한 대정고 친구들이 여전히 자신을 친구로 여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진유성은 이 모든 번민을 등 뒤에 남겨 놓았다.
무인이 무(武)를 꺼내들 때는 무(武)를 제외한 모든 것이 무(無)여야 하니까.
공간의 틈새로 들어온 진유성은 정신을 집중했다.
이제 잉여 영성이 모이는 곳으로 향해야 하니까.
아마 거기에는 로스차일드와 신주청이 있을 것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찢어진 공간 속에서.
진유성은 거대한 존재감을 지닌 ‘무언가’가 자신의 앞에 나타났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