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86화 (286/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86화>

* * *

진유성은 대정고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인사다.

평소 같은 학년의 학생들뿐만 아니라 후배들도 진유성을 주목했고, 교직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소윤은 진유성의 독특한 언행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절반만 맞는 소리였다.

만약 진유성 못지않게 특이한 행동을 하는 학생이 있을 때, 과연 그 학생은 모든 전교생과 교직원의 주목을 받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이름 정도야 들을 수 있겠지만, 지금의 진유성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주목받진 않는다는 소리였다.

여기에는 간단한 이유가 있었다.

진유성이 품고 있는 힘이 너무나 거대하기 때문이다.

거대함은 감추고, 축소하고, 숨긴다고 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지구에서 보는 태양은 손바닥보다 작지만, 모든 고대인들은 태양을 특별하게 여겼다.

본능적으로 아득한 거대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인간의 동물적 본능은 문명이 발달하며 많이 희미해졌지만, 무의식의 영역에는 분명 남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무의식적으로 진유성을 주목한 것이었다.

그들의 생존 본능과 무의식이 소리를 질렀으니까.

저 남자를 주목하라고.

저 남자는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지금.

그 무의식의 신호가 마침내 현실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 * *

“진유성……?”

“저 형이 왜…….”

창문을 통해 교정의 몬스터를 지켜보던 학생들의 눈동자에 절망 대신 의아함이 어리기 시작했다.

이들 중 몇 명이나 인식하고 있을까?

죽음에 대한 절망조차 잊게 만드는 거대한 존재감이 진유성에게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호기심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그 순간이었다.

검을 곧게 세운 진유성이 몬스터들에게 몸을 날렸다.

진유성의 움직임에 맞춰 흉성만 터트리고 있던 몬스터들이 움직임을 개시했다.

크어엉!

RPG 게임이나 만화 영화에 나오는 라이칸스로프의 형상을 한 몬스터들의 붉은 눈을 빛내며 진유성에게 뛰어들었다.

“꺄아아악!”

깜짝 놀란 학생들이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개중 가장 놀란 이들은 대정고의 3학년 1반 학생들이었고, 특히 진유성과 절친한 이들이었다.

“지, 진유성!”

“야! 돌아와!”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진유성은 각성자였던 것 같다.

난데없이 검을 꺼내들 때, 말로만 듣던 인벤토리를 사용한 것처럼 보이니까.

아니, 그런 것을 떠나서 각성자가 아니라면 저리 용감히 몬스터에게 달려들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괴물들이 너무 많았다.

대정고의 학생들은 일반인과 다르게 각성자의 강함을 정확히 알고 있다.

일반 대중들 중에는 각성자를 범접할 수 없는 존재로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재벌집의 아이들은 아니다.

그들은 각성자를 그저 유단자나 군인이라고 생각한다.

유단자는 육체적으로 재벌들을 압도한다. 하지만 재벌들은 유단자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의 금력이 무력을 압도하기 때문이었다.

재벌집의 자제들이 이러한 교육을 받는 이유는 부모들의 의도 때문이었다.

제 아무리 각성자가 강하더라도 결국 그들이 부려야 할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서다.

그렇기 때문에 대정고 학생들은 알고 있었다.

세상 그 어떤 각성자도 수천 마리의 몬스터와 혼자 싸워서 이길 수는 없다는 걸.

SG에서 허락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SSS급 각성자들조차 단독으로 게이트를 클리어한 적은 없다는 걸.

그러니 그들의 눈에는 곧 진유성이 죽을 것만 같았다.

정새롬이 고개를 돌려 진유성과 가장 친밀한 상소윤을 쳐다보았다.

그리곤 빽 소리를 질렀다.

“상소윤!”

정새롬은 멀뚱히 서 있는 상소윤이 패닉에 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빨리, 빨리 진유성 좀 말려 봐!”

하지만 그 순간, 정새롬은 자신을 쳐다보는 상소윤의 눈동자에서 뚜렷한 이성을 읽었다.

상소윤은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겁에 질리지도 않았고, 패닉에 빠지지도 않았다.

그저 약간의 걱정을 품고 있을 뿐.

정새롬의 머릿속으로 상소윤의 아버지인 상림이 하고 있다는 행동이 떠올랐다.

건물을 사들이고, 식료품을 사들이는 행위는…….

“설마 너희 아버지는 알고 있던 거야? 이런 일이 발생할 걸?”

정새롬의 목소리에 모두가 상소윤을 주목했다.

상소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떻게?”

“진유성이 알려 줬어.”

“지, 진유성은 어떻게 알았는데?”

상소윤은 정새롬의 질문을 받고 생각에 잠겼다.

놀이공원에서 진유성은 말했었다.

대정고의 친구들이 자신을 신으로 여기는 순간을 맞이하고 싶지 않다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평범한 삶을 살아 보고 싶다고.

그러니 여기서 그녀가 할 수 있는 대답은 없었다.

그저, 친구들이 진유성을 여전히 친구로 여기길 바랄 뿐이었다.

대답 대신 상소윤은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이야기로만 전해 들었을 때는 체감이 되지 않았다.

DDP 게이트에서는 아차 하는 순간 모든 일이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

대정고의 교정에서 수천 마리의 몬스터와 싸우는 진유성의 모습은 치열했다.

절망과 두려움이란 어둠에 잠식됐던 대정고가 점차 환해지는 것 같다.

한 명의 인간이 스스로를 불태워서 피워 올린 횃불은 얼마나 밝을 수 있는가.

얼마나 따뜻할 수 있으며, 얼마나 의지가 될 수 있는가.

그리고.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

상소윤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되었다.

진유성은 상소윤에게 말했었다.

냉동실에서 아이스크림을 훔쳐 먹는 진유성도, 어제 본 드라마의 대사를 따라하는 진유성도, DDP 게이트 속의 진유성도,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상소윤의 생각은 달랐다.

그 모든 것은 진유성이지만…….

“멋지지?”

“뭐?”

“저게, 진짜 진유성이야.”

환하게 빛나는 저 모습이 진짜 진유성의 모습이라고.

* * *

크르르릉!

늑대인간을 닮은 몬스터가 침을 질질 흘리며 진유성에게 달려들었다.

이성이 없이 달려들고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하다.

150kg이 거뜬히 넘는 몸통으로 인간을 치고 지나간다면, 대부분이 기절할 거니까.

‘킬로그램이라니.’

어느새 무게를 언급할 때 근보다 킬로그램이 편해졌다.

진유성은 태평한 생각을 하며 사선으로 검을 휘둘렀다.

스각!

진유성의 검이 늑대인간의 가슴팍을 스치고 지나가자, 놈의 몸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나부꼈다.

신체 내부의 모든 근섬유가 일순간 파괴됐기 때문이었다.

‘난이도는 E급 정도 되겠군.’

처음 지구에 도착했을 때.

진유성은 D급 게이트에 들어갔었고, 그걸 손쉽게 클리어해 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지키진 못했었다.

몬스터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부상자와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스스로 잃어버린 무(武)를 자각하지 못했던 순간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진유성은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이 이번 게이트를 클리어할 것이었다.

물론 관리자를 죽이고, 게이트 자체를 무효화시킬 수도 있긴 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잘 모르겠다.

현재 대정고는 지구의 장소이지만, 게이트의 구역으로 유리되어 있다.

빛이 물속으로 들어가면 굴절되는 것과 비슷하다.

게이트 구역 안의 인간들은 지구의 모습이 그대로 투사되어있지만, 미묘하게 불안정한 존재가 된다.

그 불안정 속에서 각성이란 이능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게이트 자체를 부숴 버리는 건, 최후의 수단이었다.

프스스스스!

진유성의 몸에서 시퍼런 검기가 치솟더니 주변 3m에 접근한 늑대인간들을 모조리 베어 버렸다.

진갈색의 피를 흩뿌리며 나동그라진 곳으로 몬스터들이 몰려든다.

하지만 진유성은 뒤로 물러나며 가볍게 손을 휘둘렀고, 그 손짓에 모든 몬스터들이 일순간에 비틀거리더니 주저앉았다.

한 명의 손짓에 수백 마리의 몬스터가 무릎을 꿇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그사이 진유성은 뚜벅뚜벅 걸어 대정고의 본관이 시작되는 교무 건물 앞에 섰다.

어차피 지금은 게이트가 시작되지 않았고, 이 몬스터들을 죽여도 별다른 의미는 없다.

교정을 빠져나오자 몬스터들이 자신을 공격하지 않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몬스터들을 베어 넘긴 것은 주도권을 갖기 위해서였다.

대정고의 모든 이들이 알아야 한다.

자신의 말을 따라야지 살 수 있다는 걸.

전 교생과 모든 교직원들이 창문을 통해 지켜보는 것을 확인한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전원, 강당으로 집합.”

진유성은 분명 나지막하게 말했건만, 목소리는 거리에 구애받는 뚜렷함으로 모든 이들에게 전달되었다.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상소윤이었다.

상소윤이 강당으로 향하자 3학년 1반의 학생들이 쭈뼛쭈뼛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1반이 움직이자 나머지 3학년들이 움직였고, 그걸 본 1, 2학년들도 강당으로 이동했다.

잠시 뒤, 모든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강당으로 모였다.

그때 나이 지긋한 교장이 진유성에게 대표로 다가와 물었다.

“대체 자네는 누군가?”

“진유성.”

“이름을 묻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잖은가? 자네는 SG의 각성자인가? 하지만 분명 각성 신고가 들어왔었는데…….”

교장의 말에 집중하던 이들은 뒤늦게 진유성이 SG에서 각성 검사를 했던 걸 떠올렸다.

그리고 비각성자 판정을 받았던 것도.

그렇다면 진유성은 SG의 사람일 수 없다.

비 각성자 판정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SG가 숨겨 둔 비밀 요원이라면 신고 자체가 접수되지 않았을 거라는 합당한 추측에서였다.

“말해 주게. 자네는 누구인가?”

진유성은 거목처럼 우두커니 서서 고민했다.

그는 인간으로 살고 싶었다.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수명을 누리다, 평범하게 삶을 마감하고 싶었다.

하지만 중원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고, 절벽으로 몰아갔다.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하늘을 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진유성은 신이 되었다.

그리고 그건 지구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운명은 진유성이 똑같은 길을 걷길 요구했다.

진유성은 대정고의 학생들과 교직원들이 가지는 힘을 안다.

이들은 한국의 부를 독점한 이들이고, 정보를 독점한 이들이다.

이들로부터 압구정이 안전하다는 소문이 퍼져나가면, 압구정은 안전하게 여겨진다.

그리고 수많은 이들이 살기 위해 압구정으로 모일 것이다.

그게 진유성이 원하는 바였다.

불가능하겠지만, 가능하다면 한국의 모든 인구가 이곳으로 모이면 좋겠다.

그러면 아무도 죽지 않을 텐데.

그러니…….

진유성은 이들에게 확신을 줘야 한다.

단 한 순간에도 터럭 같은 의심조차 품지 못할 거대한 확신.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무제한적인 확신.

그것은 진유성이란 개인이 원하는 삶은 아니었으나…….

그가 품은 숭고한 사명이었다.

그그그그그그-!

진유성을 중심으로 막대한 기운이 뿜어지기 시작했다.

교복이 펄럭거리고, 머리카락이 나부낀다.

그 바람은 강렬했으나 날카롭지 않았다.

오히려 봄날의 미풍처럼 따뜻했다.

진유성이 손을 들자, 몬스터를 보고 싶지 않았던 누군가가 닫아 놓았던 강당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

그렇게 출수되었다.

진유성의 일검이.

그그그그극-!

공간을 뒤틀고 부숴 버리며 나아가는 일격이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냈고.

그 일검은 결과를 만들어 냈다.

“마, 말도 안 돼!”

“이게 무슨…….”

각성자에 대해 일반인들보다 뚜렷하게 알고 있는 대정고의 학생들은 깨달았다.

진유성은 각성자가 아니다.

그 위의 존재이다.

왜냐하면, 진유성이 휘두른 일검이 강당을 통과해 교정에 서 있는 모든 몬스터를 일격에 쓰러트렸기 때문이었다.

게이트가 시작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몬스터들은 형체를 잃은 뒤, 다시 리젠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유성이 행한 ‘기적’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그 기적 위로 진유성이 덤덤히 말했다.

“나는 신(神)이다.”

그렇게 인간임을 갈구하던 이는 스스로를 신으로 천명하였다.

인간의 목숨을 천지(天地)처럼 무겁게 여겨, 단 하나의 목숨이라도 더 구원하기 위해서.

이것이 진유성이 인간의 몸으로 품은 신성(神性)이었다.

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한 상소윤은 저도 모르게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일전에 보았던 환상을 다시 보았다.

구원을 갈망하는 수천, 수만, 수억 개의 손이 또다시 진유성의 몸을 뒤덮는 걸.

진유성이란 개인은 사라지고, 신이란 허울을 뒤집어 쓴 존재만 남는 걸.

왜 이런 환상을 보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소윤은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진유성에게 다가갔다.

진유성은 눈물을 흘리는 상소윤을 보며 빙긋 웃고는 말했다.

“안 그래도 박색한 얼굴이 몇 배는 박색해졌구나.”

상소윤이 손을 내밀었다.

진유성이 손을 잡았다.

손에서 느껴지는 온기는 분명 인간의 것이었다.

상소윤은 그것을 알려 주고 싶었던 것이었고, 진유성은 위로를 받았다.

“울지 마라. 소윤아.”

상소윤의 손을 잡은 채, 진유성이 400여 명에게 선언했다.

“여기 모인 모든 이들은 하나의 반을 이룬다.”

시스템은 말했다.

[한 반의 구성원이 40명을 초과할 때마다, 몬스터들의 난이도는 2배로 증가합니다.]

[각 반 구성원의 수는 10분 단위로 갱신됩니다.]

12시간, 720분 동안의 생존 미션.

10분 단위의 갱신이 72번 이루어지고, 그때마다 40명을 초과하는 인원이 한 반을 구성한다면…….

클리어 난이도는 최초의 수준에서 144배나 강해진다.

하지만 진유성은 선언했고, 그것에 반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 *

이날, 전 세계에 천 개가 넘는 게이트가 동시에 발생했고, 한국에서는 18개의 게이트가 발생했다.

한국은 정치권의 눈과 귀를 속이면서 한지후 본부장의 명에 따라 각성 인구를 최대한 펼쳐 놓은 상태였다.

덕분에 그들은 다른 국가에 비하면 적은 피해로 아포칼립스의 첫날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게이트에서 최소 5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그래도 한국은 사정이 좋았다.

외국에서는 클리어된 게이트보다 참가 인원이 전원 사망한 게이트가 더 많았으니까.

하지만 단 한 곳.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단 한 명의 사망자도 발생하지 않은 게이트가 있었다.

압구정 대정고 게이트.

기적을 경험한 그곳의 생존자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다.

종말 속에서 신이 강림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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