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85화 (285/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85화>

* * *

주말 동안 상림은 진유성과 자신의 돈을 풀어 압구정 일대의 건물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상가는 물론이고 주택, 빌라, 오피스텔, 빌딩 등등.

매매가 가능한 모든 건물을 사들였다.

정신이 나간 듯한 LF 건설 대표의 행동에 모두가 의아함을 품었고, 누군가는 건물을 팔지 않으려고 했다.

상림이 이토록 절박하게 압구정 상권을 사들이는 것을 보며, 뭔가 큰돈이 될 수도 있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실제로 건물주들끼리 모여서 가격 담합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상림은 그들이 가격을 담합하든 말든 계속해서 건물을 사들였다.

이유는 단 하나.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한국에서 안전한 지역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물론 상림이 사들이는 대부분의 건물에는 세입자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상림은 새롭게 사들인 건물의 세입자들과 한 가지 거래를 했다.

월세나 보증금의 30%를 즉시 할인해 주는 대가로 그들의 계약서에 한 가지 조항을 명시한 것이었다.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본 건축물의 모든 이용 권한과 용도 변경 권한은 건물주인 갑에게 귀속된다.

여기서 말하는 천재지변은 지진, 전쟁, 전염병, 무차별적인 게이트 발생 등, 정부가 계엄령 또는 가급 이상의 경고를 발생하는 경우로 한정한다.]

이때부터 슬슬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게이트 폭주로 자수성가를 이룩한 상림 대표가 게이트 폭주에 대한 망상에 빠졌다는 소문이.

하지만 상림은 소문 따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저 모든 재산을 현금화해서 통조림 같은 유통 기한이 긴 식량을 사들이는데 집중했을 뿐이었다.

그렇게 돌아온 월요일.

상림은 LF 건설의 직원들에게 하나의 공지를 띄웠다.

“이게 무슨…….”

신입 사원들까지 수군거리게 만든 공지에는 간단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지금부터 유급 휴가를 줄 테니 고향으로 내려가 가족들과 함께하거나, 가족을 압구정에 마련한 기숙사로 불러들이라는 것.

여기서 말하는 기숙사는 당연히 주말 내내 사들인 건물들 중 세입자가 없는 곳들이었다.

세간살이조차 없는 곳을 기숙사로 선포한 상림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직원들은 당황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압구정의 건물주들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소문을 입수할 수 있었다.

바로, 상림이 망상에 빠져 건물과 식료품을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거 이사회 소집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대표님에게 정신 병력이 있었던 거야?”

“마약이라도 한 거 아닙니까?”

“혹시 모르죠. 진짜 무슨 일이 발생하는 거 아니에요? 재벌들은 우리가 모르는 정보를 안다잖아요.”

“그럼 다른 재벌들도 움직였겠지. 상 대표님을 보고 수군거리는 게 아니라.”

상림이 벌인 기행이 어찌나 큰 파장을 일으켰던지, 상공 회의소에서 상림에게 엄중한 경고를 내렸다.

불안감을 조성하는 행위를 중단하라고.

하지만 모두가 이러한 상림의 행위를 단지 미친놈처럼 보고 있는 건 아니었다.

“LF 건설이라면 압구정을 재건했던 상 대표의 회사 아닙니까?”

“맞습니다.”

“혹, 그가 어떤 정보를 쥐고 있는 걸까요?”

“상림 대표가 유독 각성자들과 친하게 지낸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바로 어제, 국정 회의에서 한지후 본부장은 ‘계엄령’을 입에 담았었다.

장관급 인사들은 한지후 본부장을 미쳤다고 욕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불안함이 있었다.

적어도 지금까지 한지후 본부장이 게이트와 관련해서 헛소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장관급 인사들은 비서를 보내 은밀히 상림과 접촉하려고 했다.

부동산이 비싼 한국에는 미국과 달리 재난을 대비한 패닉 룸 따위가 없다.

국방부에서 북한과의 전쟁을 대비해 마련한 대피소들이 있긴 하지만, 말 그대로 대피소일 뿐이다.

그에 반해 압구정은 얼마나 편안한 패닉 룸이란 말인가?

장관급 인사들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상림에게 자신들의 자리를 요구하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이런 건방진!”

상림은 대답조차 없었다.

비서를 만나기는커녕 전화조차 무시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상림의 행동들은 장관급 인사들의 불안함을 증폭시켰다.

상림이 미쳤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정치권의 눈치조차 볼 필요가 없는 최악의 사태를 대비하는 걸 수도.’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 *

“아, 씨. 오늘 급식 맛없네.”

상소윤의 투덜거림에 진유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대체 오이냉채를 왜 싫어하는 것이냐? 네 얼굴이 오이처럼 생겨서 그런 것이냐?”

“아, 뒤질래?”

“오이오이, 진정하라구.”

“……와. 미친놈. 그건 또 어디서 배웠냐?”

“인터넷에서 봤다.”

진유성과 상소윤이 교실로 들어서자, 대정고의 학생들이 힐끔거린다.

그들이 힐끔거리는 대상은 진유성이라기보다는 상소윤이었다.

하루 종일 이러했다.

상림이 행동을 개시한지 3일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그들의 가정에서도 입방아를 찧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상소윤은 전혀 신경을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보통의 사춘기 소녀라면 이럴 때 굉장히 남의 눈을 의식할 텐데, 역시 상림의 딸이다.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시퍼런 칼날은 유전 형질 속에는 남아 있는 게 분명했다.

그때 심도훈과 밖에서 밥을 사먹은 지종수가 호들갑을 떨며 둘에게 다가왔다.

“야, 맞다. 진유성. 너 어제 챔스 봤냐? 록갓 쩔지 않냐?”

“몇 번을 말하느냐. 나는 축구 경기를 보지 않는다고.”

“거짓말 하지 마. 극한의 컨셉충 자식아.”

“뭐?”

“내가 너 저번에 양발 드리블하는 거 보고 바로 알아차렸거든? 록갓 영상 보고 따라서 드리블하는 거.”

“록갓이 대체 누구냐?”

진유성의 물음에 지종수가 코웃음을 쳤다.

“이거 그런 컨셉이지? 난 잘 모르겠지만, 내 드리블이 월드 클래스 선수랑 우연히 닮은 게냐? 이거.”

“아니다. 록갓이란 놈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놈이 날 닮았다면 그놈이 대단한 거다. 난 세상 그 어떤 축구선수보다 가장 정답에 가까운 드리블을 하니까.”

“아, 그 컨셉이었어?”

“컨셉이 아니다.”

진유성이 인상을 찌푸리자 지종수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사실 진유성은 지종수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최근의 지종수는 축구보다 연기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축구를 즐기는 건 여전하지만 예전처럼 사력을 다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그런 그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상소윤에게 알려주려는 것이었다.

우린 소문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어느새 다른 친구들도 상소윤과 진유성의 주변에 모여서 헛소리들을 뱉고 있었다.

지종수, 심도훈, 고인수, 정새롬.

네 사람은 아침부터 쉬는 시간마다 계속해서 이러했다.

진유성은 이들의 우정이 참 보기 좋았다.

그때 아놀드 벡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유성은 계단 통로로 향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 드벡아. 어떻게 됐냐?”

삼 일 전.

진유성은 상림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앞으로 발생할 일에 대한 언질을 해 두었다.

그 다음에 바로 연락한 사람이 아놀드 벡이었다.

아놀드 벡은 진유성이 알고 있는 각성자 중에서 가장 강했으며,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진유성은 아놀드 벡이 UN이나 SG를 움직여 전 세계에 경고를 하길 원했다.

하지만 진유성은 내심 알고 있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발표를 며칠 미루자는 게 중론입니다.

“왜?”

-아마…… SG의 운용 자금 때문인 것 같습니다.

아놀드 벡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SG는 전 지구의 방위를 책임지고 있고, 이는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행위이다.

당장 게이트의 발생을 감지하는 GEL 측정 기구를 유지 보수하는 데만 해도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니 말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SG는 전 세계의 국가들에게 돈을 받지만, 그 돈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국가가 돈을 주지 않아도 SG는 건재해야 한다.

그래야 국가와 주도권 싸움을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로 SG는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고 있는데, 욕심이 생긴 것이었다.

만약 아놀드 벡의 예고처럼 게이트가 전 지구에 생겨난다면?

주가는 폭락할 것이며, 사이드카¹와 서킷 브레이커²가 발동할 것이다.

둘 모두 투자자들에게는 재앙에 가까운 일이지만, 이를 미리 알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폭락에 배팅하면 어마어마한 돈을 만질 수 있다.

비유가 아니다.

SG의 10년 치 운용 자금도 벌어들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을 만질 수가 있으니까.

그래서 SG는 자신들이 ‘베팅’을 할 때까지 정보를 제한하길 원하는 것이었다.

한국 같은 SG 독립국들이 많아지고, SG가 힘을 잃어가는 이때.

그들은 금력의 유혹을 견디지 못했다.

아놀드 벡은 분노했지만, 진유성은 분노하지 않았다.

인간의 이기심은 진유성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일이었으니까.

“그래, 그렇게 됐군.”

-죄송합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해서.

“네가 죄송할 건 아니고.”

진유성의 담담한 목소리 뒤로 아놀드 벡의 분연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늘 당장, 한국으로 갈 생각입니다. 어차피 미국에 있으면 정치인들에게 핸들을 내줄 수밖에 없습니다.

“…….”

-내 선장은 당신입니다.

“그래, 와라.”

진유성은 공리주의자이지만, 박애주의자는 아니다.

아놀드 벡이 한국을 지킴으로서 자신이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그것이 곧 마도사를 척살하는 가장 빠른 길이 된다.

미국의 국민들에게는 미안한 일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아멜라 메건과 함께 가겠습니다.

“야, 생각해 보니까 타트바는 언제 오는 거야? 아멜라 메건에게 현신한다며?”

-그 말씀도 드리려고 했습니다. 곧 타트바가 현신한다는 계시가 내려왔습니다.

“지난번에도 곧이라고 했잖아?”

-이번엔 다릅니다. 아마, 게이트 사태에 맞춰서 현신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둘이 오는 거냐?”

-예. 다른 이들은 미국을 지키도록 설득할 생각입니다.

진유성은 그 뒤로 아놀드 벡과 몇 마디를 더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아놀드 벡은 오늘 자정 안으로 한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진유성이 계단 통로에서 나와 교실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까드드드드득!

거대한 소리가 진유성의 귓가에 들려왔다.

거대한 거인이 이를 가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거대한 알이 깨지며 뭔가가 부화하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는 다른 그 어떤 사람도 들을 수가 없는 소리였다.

하지만 진유성은 들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일상’과 ‘비일상’의 경계를 간신히 유지하던 인과율이 마침내 부서지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은 3학년 1반을 향해 달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수업을 위해 교탁에 서 있던 연기훈이 인상을 찌푸렸다.

“진유성, 종소리 못 들었어?”

못 들었다.

아마도 거대한 소리에 묻힌 것 같았다.

이는 순간적이지만 인과율의 영향이 진유성의 오감을 마비시켰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는…….

시작됨을 의미했다.

그 순간이었다.

드드드드드드-!

“무, 뭐야!”

“씨발! 지진이다!”

갑자기 학교 전체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진유성은 냉정한 눈으로 사태를 파악했다.

지진의 진파는 이런 식으로 오는 게 아니다.

이것은 지진이 아니라, 공간이 갇히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책상! 책상 밑으로 머리 집어넣어! 진유성! 야!”

연기훈은 당황한 와중에도 학생들에게 머리를 보호하라고 소리를 질렀고, 모든 학생들이 허겁지겁 책상 밑으로 머리를 넣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건물이 미친 듯이 흔들리는 진동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은 채.

고요하게.

그 고요를 뚫고, 허공에 무언가가 나타났다.

인간과 놀랍도록 닮았지만, 누구나 인간이 아님을 알 수 있는 존재.

관리자.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번 게이트를 관리할 관리자입니다.]

[페이즈-아포칼립스가 시작되었습니다.]

[미션 : 반 대항전.]

[각 반의 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몬스터의 웨이브에서 12시간 동안 살아남으십시오.]

[각 반의 구성원들은 자유롭게 소속을 옮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 반의 구성원이 40명을 초과할 때마다, 몬스터들의 난이도는 2배로 증가합니다.]

[각 반 구성원의 수는 10분 단위로 갱신됩니다.]

[교직원들은 4학년으로 반 편성됩니다.]

[2시간마다 한 번씩 소속을 옮길 수 있는 반 배치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생존에 필요한 물품은 전투 이후 인벤토리에서 제공될 것이며, 전투 전에 취향에 맞는 무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레벨업과 스탯 분배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부디 생존하시길 빕니다.]

관리자의 심상이 끝나는 순간, 진동이 멈췄다.

패닉에 빠진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그들은 곧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대정고의 교정과 시설, 운동장 곳곳에서.

크르르르륵!

수천 마리에 달하는 몬스터들이 흉성을 토해 내며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에 몇몇 학생들이 힘이 풀려서 주저앉기도 했다.

학생들이 알아차렸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잔인한 미션이었다.

한 반의 최대 구성 인원은 39명.

대정고의 전교생은 300명가량.

최대 인원으로 만들 수 있는 반의 개수는 7개고, 구성원은 273명이다.

즉, 27명이 1차 웨이브에서 희생자의 포지션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두 번째 반배치 때도 39명 단위로 떨어지는 이들 외에는 모두 희생자다.

하지만 문제는 반의 이동이 ‘자유롭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

분명 40명을 초과하는 반이 생기고, 몬스터들은 강해진다.

몬스터가 감당할 수없이 강해질 때부터 ‘불순분자 색출’이 시작될 것이다.

결국 39명으로 구성된 반에 40번째 학생이 편입하려고 하면…….

아마 기존의 39명이 그 학생을 죽일 것이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

진유성은 그런 미래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미래는 자신이 대정고에 없었을 때의 이야기다.

“지종수.”

패닉에 빠져 있던 학생들 사이로 진유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상하게도 진유성의 목소리는 소란 속에서도 아주 뚜렷했다.

학생들이 뭔가에 홀린 듯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매점에 다녀와라.”

“뭐, 뭐?”

“약속하지 않았느냐. 게이트가 열려도 매점에 다녀온다고.”

“네가 매점에 다녀오라고 하면, 대정고에서 게이트가 터져도 다녀올게!”

지종수는 미친 소리 하지 말라고 소리를 지르려다 놀라서 멈췄다.

어디선가 거대한 진검을 빼든 진유성이 창문을 열어젖힌 것이었다.

“아이스크림이 녹기 전에 다녀오마.”

이윽고, 진유성이 창문을 박차고 몬스터들의 한 가운데로 뛰어들었다.

¹사이드카 (Side Car : 주식 시장이 급변할 경우 프로그램 매매를 제한하는 것).

²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 : 주가가 일정 수준 이상 급락하는 경우 모든 매매거래를 중단시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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