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83화>
Quest 44. 되밟는 천마님
청와대에 외제차들이 모여들었다.
차량 안에는 장관급 인사들이 탑승해 있었는데, 놀라운 점은 대부분의 장관들이 직접 운전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오늘이 일요일이라고 해도 이는 흔치 않은 일이었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인 장관들은 가벼운 눈인사로 서로를 반겼지만, 웃음이나 환담이 새어 나오진 않았다.
그렇게, 그 어느 때보다 살벌한 분위기와 철통 보안 속에서 장관급 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를 주도하는 이는 KSG의 본부장인 한지후였다.
“비문명 지역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 각국에서 위험 신호를 보내 왔습니다. 게이트가 지구에 열렸다는 이들도 있고, 몬스터가 거리를 활보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은 아무런 문제도 없지 않소?”
“아닙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북한에도 약간의 문제가 발생한 것 같습니다.”
북한 사회에서 유독 낙후된 양강도와 함경북도 일대에서 꽤 큰 소란이 일어난 것 같지만, 정확한 정보는 아직 알 수 없다는 게 한지후 본부장의 설명이었다.
“으음.”
“혹 게이트 문제가 아니라, 비문명 지역들에서 각성자들이 반란을 일으킨 건 아니오?”
장관의 질문에 한지후 본부장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 모든 국가의 국민들은 각성자의 희생 아래 삶을 영위하고 있건만, 정치인들은 각성자들을 불순분자로 취급한다.
이해는 한다.
그들은 서류로 인간을 판단하는 이들이니, 서류로 판단할 수 없는 이들이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각성자의 편에 선 한지후 본부장의 저러한 인식들이 불편했다.
“그렇다면 미국 내에 있는 사막 지역들에 문제가 발생하진 않았겠죠.”
한지후 본부장이 이번 문제를 유독 심각하게 보는 것은 ‘악의’가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마도사들이겠지.’
그는 진유성에게 마도사들의 존재에 대해 들었다.
이번 게이트 사태는 ‘비문명 국가’에서 시작된 게 아니다.
‘비문명 지역’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국가들은 넓은 땅덩어리를 가지고, 자연스럽게 낙후되어 인구 밀도가 적은 지역들을 가지고 있다.
거대한 사막이나 숲 같은.
그런 곳에서만 게이트가 발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게이트에 들어간 게 아니라고 했다.
그들이 서있는 곳이 게이트가 됐다고 했지.
이는 비문명에서 시작해 문명까지 침탈하겠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이 느껴지는 일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문명국들이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각성자를 파견해 진위 조사를 하자니 자국에 비슷한 일이 생길까 봐 두렵다.
그렇다고 내버려 두자니 전 세계에 일어나는 일이 심상치 않다.
“첫 시작이 언제랍니까?”
“정확히는 알 수 없습니다만, SG는 어제 15시 이후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때 전 세계의 GEL 수치에 변화가 일어났었다.
모든 GEL 수치가 일순간 최고치로 치솟았다가 최저치로 가라앉은 것이었다.
아마 이러한 변화가 없었다면 사태를 파악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었다.
한동안 회의실에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을 깬 것은 게이트 쇼크 사태 시 군대의 제1 사령관이 되는 이장도 장군이었다.
물론 이 군대 안에 각성자는 빠진다.
“그래서 한 본부장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오?”
“저는…….”
한지후 본부장은 자신의 말이 미친 소리처럼 들릴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들은 마도사의 존재를 모르니까.
하지만 이건 두고 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전쟁 물자를 비축하고 계엄령 준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쳤군!”
“단단히 미쳤어!”
경제와 관련된 장관들이 일제히 반발했다.
입으로 담기도 끔찍한 소리다.
저런 짓을 하는 순간 주가가 폭락할 것이며, 경제 성장률이 날아가게 될 것이다.
장관급 인사들 중 이성이 남아 있는 이들이 점잖게 물었다.
“한지후 본부장, 그렇게 판단하는 근거가 있소?”
“악의가 느껴집니다. 비문명 지역을 말살하고, 문명 지역을 침탈하겠다는.”
“그 말은 곧, 게이트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
“물론입니다. 전 늘 게이트가 자연 현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왔습니다.”
“허, 허허…….”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한지후 본부장은 모두가 이런 반응을 보일 걸 알고 있었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꺼낸 것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계엄령이란 단어를 던졌다.
추후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이 사람들은 ‘계엄령’에 대해서 논의하기 시작할 것이다.
물론 계엄령이 잘못되면 최초 발의자인 자신이 책임을 져야겠지만…….
‘어쨌든 논의는 빨라지겠지.’
그리고 빠른 논의는 한 명의 국민이라도 더 살릴 것이었다.
그것이면 족하다.
그렇게 생각한 한지후 본부장이 회의를 끝내려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진동했다.
한지후 본부장은 게이트 관련 종사자란 특성상 대통령과 면담을 할 때도 업무용 폰을 꺼 놓지 않는다.
발신자는 문수혁이었다.
“죄송합니다. 잠시.”
폭탄 발언을 던지고 전화를 받는 모양새가 우스웠지만, 한지후 본부장은 구석으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한데, 들리는 목소리가 문수혁이 아니었다.
이 목소리는 진유성이었다.
-어디냐.
“청와대입니다.”
-위정자들은 뭐래? 안 믿지?
문수혁에게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 말해 줬었는데, 아무래도 진유성에게 전달한 모양이다.
“그렇습니다.”
-쓸데없는 짓 말고, KSG 본부로 튀어와.
“왜 그러십니까?”
한지후 본부장의 질문에 수화기 너머의 진유성이 놀라운 말을 전해 왔다.
-지금부터 KSG는 내 명령을 따른다.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 * *
누가 뭐래도 KSG의 중심은 독도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한 <팀 우산도> 멤버들이다.
이들은 진유성과 상림의 가르침을 받으며 가파르게 성장했고, 그 결과 수십 명이 단체로 승급하는 경악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냈다.
사실, 팀 우산도의 레포트는 FBI나 CIA 같은 정보 기관들이 헛웃음을 짓게 하는 놈이었다.
-
Name : Woosando(a.k.a Korea island Dokdo, Old name)
Total : 99
AAA Grade ? 22
S Grade ? 70
SS Grade - 5
SSS Grade - 2
-
팀원들의 각성 등급이 정말 말도 안 된다.
솔직히 말하자면 팀 우산도의 99명이 전쟁을 시작하면 중국을 제외한 모든 동아시아 국가를 파괴할 수 있을 것이었다.
고위 각성자 99명이 한 몸처럼 움직이며 게릴라 공격을 퍼부으면 어떻게 버티겠는가?
만약 여기에 언노운 엠페러가 추가된다면?
그들은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를 점령할 수 있다.
전쟁 중에 파괴와 점령의 차이는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어쨌든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고위 각성자들은 대부분 우산도 소속이었다.
하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애초에 우산도의 숫자는 99명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얘는 누군데?”
KSG 본부에 모인 고위 각성자들 중 몇몇이 진유성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은 문수혁과 차정명의 연락을 받고 KSG에 모였는데, 막상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이는 두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지후 본부장도 아니다.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당연하다는 듯 상석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다.
“각성자야? 하이랭커는 아닌데?”
오늘 모인 이들은 모두 하이랭커들이었다.
그리고 하이랭커들은 친분은 없을지언정 서로의 얼굴을 모두 알고 있다.
우산도가 아닌 각성자의 질문에 우산도 멤버들이 어설픈 미소를 지었다.
‘언노운 엠페러라고 말해도 되나?’
‘아니, 근데 우릴 왜 부른 거지? 얼굴까지 대놓고 보이면서?’
그들은 진유성이 품은 인외의 강함을 충분히 목격한 사람들이지만, 그것을 말로 전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며 한지후 본부장이 뛰어 들어왔다.
한지후 본부장은 각성자들을 보며 멈칫하더니, 진유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지내셨습니까?”
“잘 못 지냈다.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이 없어서 직접 사오는 길이다.”
“제가 아이스크림을 별로 안 좋아해서…….”
“미친 게냐?”
어린 진유성과 나이든 한지후의 이상한 대화에 참지 못한 각성자가 끼어들었다.
“본부장님. 얘는 누굽니까?”
“음…….”
한지후가 머뭇거리는 사이, 진유성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질문을 던진 각성자에게 말했다.
“내가 좀 바빠서, 자세한 설명은 다른 이에게 들어라. 오늘은 용건이 있어서 왔으니.”
“야, 너 몇 살이냐? 몇 살인데 초면에 반말을 찍찍 뱉어? 각성 등급이 뭔데 까불어?”
진유성이 아쉬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드디어 나타났다.
자신을 무시해 주는 사람이.
하지만 힘숨찐의 클리셰를 따라가기에는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 진유성은 KSG의 고위 각성자들 위에 서려고 한다.
장난을 칠 때가 아니라, 압도적인 힘을 보여 줘야 한다.
진유성이 삐딱하게 서서 입을 열었다.
“야, 너 등급이랑 이름이 뭐냐?”
“날 몰라?”
“모르니까 묻지.”
“허구완, SS급이다.”
허구완은 본래 S급이었다.
그는 우산도 게이트에 참여하지 않았고, 우산도 멤버들이 영웅 취급받는 걸 내심 아니꼬워하고 있었다.
물론 그걸 티낼 만큼 사회생활을 못하진 않았지만.
그러던 어느 날, 허구완은 우산도 멤버들이 단체로 승급하는 걸 목격했다.
그게 그의 질투심에 불을 지폈다.
질투가 늘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론 질투가 강한 원동력이 되는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허구완은 SS급에 올라섰다.
한국에 유독 많은 SS급이 있을 뿐, SS급 각성자는 전 세계적으로도 희귀하다.
자신감이 없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불쌍하게 됐네.’
상대는 진유성이었다.
그 순간 진유성이 허구완을 쳐다보며 피식 웃었다.
“좀 이상하지?”
“뭐?”
“내가 마음에 안 드는데, 물어보는 건 꼬박꼬박 대답을 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 그치?”
“그거야……!”
생각해보니 그렇다.
이렇게 고분고분 대답할 이유는 없었다.
‘내가 왜……?’
그 순간, 허구완은 숨이 턱 막혔다.
눈앞의 남자가 거대해 보인다.
KSG의 최상층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서, 머리가 태양에 닿는 것만 같다.
그 순간, 거인이 말했다.
“난 언노운 엠페러다.”
고오오오오-
이윽고, 진유성이 오른손을 가볍게 들었고.
스윽.
내렸다.
세상이 절반으로 나눠진다.
건물도, 사람도, 세상도.
그 안에서 허구완은 죽음을 맞이했다.
“……컥!”
심상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허구완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바닥에 주저앉은 허구완의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너희들의 억압하려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부를 탐내는 것도 아니다. 명예를 원치 않으며, 영광을 좇지도 않는다.”
허구완은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이 남자는 정말로 언노운 엠페러다.
한국에 존재한다고 소문이 자자한 격외의 각성자.
그동안은 헛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알겠다.
이자가 우산도와 함께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지후 본부장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진유성이 창문 너머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일반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지만, 불길한 주홍빛을 띤 기류가 하늘을 선회하고 있다.
저것은 비문명 지역에서 게이트에 의해 사망한 이들의 영성이다.
너무 많은 영성이 일순간에 몰리면서 혼탁한 부유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즉, 하루 만에 아주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뜻이었다.
불과 어제, 진유성은 상림에게 어쩌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마도사의 야욕은 반드시 세상에 상처를 남길 것이다.
“마도사가 끝을 보려고 한다. 비문명 지역을 말살하고 있으며, 다음으로는 문명화된 국가들일 거다.”
“정확히 어떤 방식입니까?”
“전 지구가 게이트가 됐다. 게이트는 더 이상 독립된 공간이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이 땅 위에서 시작된다.”
“……!”
한지후 본부장은 곧 놀람을 거둬들였다.
자신은 KSG를 실질적으로 이끄는 사람이다.
놀라기보다는 행동해야한다.
“저희가 뭘 해야 합니까?”
“내가 했던 말 기억하냐?”
“어떤……?”
“부와 명예가 아닌, 질서를 위해 싸우라던 말.”
“…….”
“위정자들의 안위 따위 신경 쓰지 마라. 빈과 부도 차별하지 마라. 그렇다고 모든 인간을 구하려고 하지도 마라.”
한지후는 진유성의 말을 이해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각성자들을 이끌고 저런 행위를 하는 순간 정부는 내란 행위로 자신을 체포하려고 할 것이다.
각성자들을 정부지침과 다르게 사적으로 이용한다는 명분으로.
하지만, 한지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언노운 엠페러가 왜 자신에게 이 일을 맡겼는지 완벽히 납득했기 때문이었다.
“평화가 얼마나 남았습니까?”
“짧으면 하루, 길면 일주일.”
진유성을 신뢰하는 우산도 멤버들이 침음을 흘리고, 다른 각성자들이 당황하는 사이.
진유성이 물었다.
“그리고, CSG의 월성이 어디에 머무는지 알고 있냐? 그놈 얼굴이랑.”
“월성이요?”
“그래. 지금까지 아무도 놈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던데.”
“뉴스 안 보셨습니까?”
“뉴스?”
“월성이 처음으로 자신의 집무실과 관사 내부를 공개했습니다. 얼굴도 함께요.”
“뭐?”
진유성은 스마트폰을 들어서 뉴스를 검색했다.
거기에는…….
멕시코에서 만났던 신주청의 사진이 있었다.
‘날 부르는 거다.’
진유성은 직감했다.
그리고, 초대에 응할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