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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82화 (282/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82화>

* * *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서울역 입구에 진유성이 나타났다.

분명 진유성은 허공에서 걸어 나왔지만,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대부분 고개를 푹 숙인 채, 스마트폰만 쳐다보기 때문이었다.

물론 몇몇 사람들은 진유성이 벌인 행동을 목격하긴 했다.

하지만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하거나, ‘방금 각성자가 스킬을 쓴 건가?’라며 유심히 쳐다보는 정도였다.

진유성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러한 반응은 현대 사회의 무관심을 보여 주는 장면일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더 이상 이능력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 모습이기도 했다.

진유성은 중원의 민초들도 이같이 살아가기를 원했었다.

무인과 관인의 겁박에 자신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게 아니라,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길 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이 원하는 것은 조용한 전쟁이었다.

그는 마도사를 죽일 것이지만, 사람들이 그걸 몰랐으면 했다.

자신을 영웅이나 신으로 칭송하는 것이 아니라.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사람들이 바빠 오가는 서울역의 풍경을 쳐다보았다.

생각해 보면, 이곳이 그의 시작이었다.

서울역은 별다른 추억이 없는 장소라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데, 새삼 생각해 보니 게이트를 넘어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었다.

또한 유일하게 같은 장소에서 두 번의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않았는가.

서울역에 1차와 2차의 비징후 게이트가 열렸으니 말이었다.

잠시 상념에 빠져 있던 진유성은 정신을 차리고는 몸을 움직여 압구정으로 향했다.

* * *

“도윤아! 이리 와!”

육아에 지친 유혜연이 낮잠을 자는 사이, 상소윤은 정원에서 상도윤과 놀아 주고 있었다.

상도윤은 개월 수를 생각하면 믿기 힘들 만큼 활동적이고, 잘 움직였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는데, 애가 자꾸 날아다니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두 발로 움직이는 게 불편하다 싶으면 두 팔을 귀엽게 팔딱거리는데, 그 몸짓은 진유성이 날게 해 줄 때 하는 것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진유성이 도와주지 않으면 상도윤은 날 수 없다.

하지만 상도윤은 아직 사리 분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이 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계속 팔을 팔딱거렸는데 날지 못하면.

“으아아아앙!”

울음을 터트린다.

울음소리를 들은 상소윤이 후다닥 달려가 상도윤을 품에 안았다.

“아, 진짜. 진유성은 무슨 영월을 가서.”

그리고는 상도윤을 들어서 나는 것처럼 공중에서 흔들어 줬다.

“슈우우웅.”

“꺄아아아!”

좋아 죽는 상도윤을 보며 상소윤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

‘하늘을 나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은가?’

생각해 보니까 자신도 진유성에게 부탁한다면 날 수 있지 않나.

그때, 문소리와 함께 전원주택의 정문이 열리고, 진유성이 걸어 들어왔다.

“어, 뭐야. 빨리 왔다?”

“다른 사람들은 어디 있느냐?”

“아빠는 세차하러 갔고, 엄마는 자고 있는데?”

진유성을 본 상도윤이 두 팔을 허우적거리자, 상도윤의 몸이 둥둥 떠올랐다.

“그아아아아!”

이상한 소리를 지르며 기뻐하는 상도윤을 본 상소윤이 큼큼 헛기침을 했다.

“야, 진유성. 부탁이 있는데.”

“따라 들어와라.”

“아니, 집에선 좀 그렇고…… 나도 한 번만 날아 보면 안 돼?”

상소윤은 이제 진유성의 패턴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분명 ‘비행소녀’ 따위의 말장난을 섞어서 자신을 5분 정도 갈군 다음, 날게 해 줄 것이다.

물론 날게 해 준 다음에도 장난을 칠 게 분명하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하늘을 나는 건 인류의 영원한 꿈이 아니던가?

장난 정도는 참을 수…….

그때였다.

“으, 어, 오아!”

상소윤이 이상한 감탄사를 내뱉었다.

자신의 몸이 갑작스레 허공으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1m 정도 떠오른 상소윤은 저도 모르게 팔을 퍼덕거렸다.

상도윤이 아기라서 퍼덕거리는 게 아니었다.

하늘에 날게 되면 저절로 퍼덕거리게 되는 신체의 반응이 있나 보다.

그 모습을 본 진유성은 어이가 없어서 웃어 버렸다.

“뭐 하는 게냐?”

“야, 이쪽으로. 이쪽으로!”

상소윤이 수영을 하듯이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헤엄쳤지만, 몸의 통제권은 진유성에게 있었다.

진유성은 허공에 둥둥 떠오른 상소윤과 상도윤을 집의 출입문으로 이동시켰다.

“아, 왜!”

“따라와라. 할 말이 있으니까.”

진유성은 그렇게 말하며 상림에게도 문자를 보냈다.

세차게 맞고 싶지 않으면 세차를 그만두고 빨리 집으로 오라고.

진유성은 조급함이 조금은 사라져 있었다.

그는 게이트를 이동하면서 마스터 플레이어와 얽힌 인과율을 보았고, 로스차일드의 의도를 읽게 되었다.

로스차일드는 문명의 외곽에서부터 서서히 지구를 좀 먹어 가고 있었다.

그러니 현 시점의 서울은 안전하다.

물론 문명의 외곽이라고 해서, 그것을 좌시할 생각은 없었다.

문명의 발전 정도와 무관하게 모든 인간의 삶은 소중하니까 막아야 한다.

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가족들에게 위험이 닥쳐 오는 것은 조금 뒤의 일일 것이었다.

그렇게 상소윤과 상도윤을 집안에 넣고, 유혜연을 깨웠다.

잠시 뒤 입이 댓 발 나온 상림이 툴툴거리며 돌아왔다.

“주말에 무슨 일이에요? 레이싱하러 간다면서요.”

“문제가 생겼다.”

“무슨 문제요?”

상소윤과 유혜연이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그녀들도 상림과 같은 궁금함을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그들을 불러 모은 진유성의 분위기가 어딘지 평소와 달랐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유혜연과 상소윤은 마도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른다.

존재에 대해서는 말해 줬지만, 그들이 어떤 존재들이고 어떤 목적을 가졌는지를 설명해 준 적은 없었다.

그저 사악한 존재라서 싸웠을 뿐이라고만 말했지.

그렇기 때문에 꽤 긴 이야기를 해야 했다.

마침내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유혜연과 상소윤은 혼란함을 느꼈다.

진유성의 존재를 이해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진유성이란 존재가 눈앞에 있기도 했고, 그가 가진 특별한 능력을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도사는 좀 다르다.

영화 속에 나올 것 같은 존재라서 현실성이 없다.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 막, 몬스터들이 튀어 나와?”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확실한 건 이제 게이트가 독립적인 공간이 아니라, 지구 내의 공간이 됐다는 거다.”

아마존의 원주민들은 그들의 생활 터전에서 몬스터들과 싸워야 했다.

그 공간 자체는 밖의 공간과 구분된 것 같았지만, 분리된 공간은 아니었다.

그렇다는 것은 도심 한복판에서도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생각해 보면 아마존에서는 원주민과 원숭이들의 싸움에서 원주민이 승리했다.

생존자는 2명뿐이었지만, 어쨌든 그들은 ‘몬스터’를 전부 처리했다.

하지만 만약, 그 싸움에서 몬스터가 승리했다면?

그 몬스터가 현실 세계에 간섭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유혜연과 상소윤이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상림은 보다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는 천신궁의 게이트를 경험한 사람이다.

마도사들은 목격한 바가 없지만, 중원에서도 사특한 목적으로 악행을 일삼는 배후 세력들이 있었다.

크게 보면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크게 보면, 진유성은 그들을 모조리 분쇄해 버린 사람이다.

“전 뭘 하면 됩니까?”

“내 돈, 네가 관리하고 있지?”

“그렇죠.”

“압구정 일대의 건물을 사들여. 얼마든지 웃돈을 얹어 줘도 좋으니, 최대한 많이.”

“건물이요? 갑자기 왜요?”

“최후의 상황에는 모두가 한 곳에 모여 있어야지 안전하니까.”

진유성은 설령 파괴의 신이 강림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주변은 지켜 낼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인간이다.

물리적으로 먼 거리를 지킬 수는 없다.

“그리고 회사의 자산을 최대한 현금화해서 생필품을 사들여라. 시간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겠으니.”

“네.”

“회사 사람들에게도 공지해라. 가족의 옆으로 가도 좋고, 가족을 데리고 압구정으로 와도 좋다고.”

“미쳤다는 소리를 듣겠군요.”

안 봐도 그림이 그려진다.

당장 정재계에 소문이 돌 것이다.

LF 건설의 상림 대표가 이상한 음모론에 빠져서 종말을 준비하는 얼간이가 됐다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다. 어쩌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진유성이 마도사를 찾아서 죽일 수만 있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그러나 상림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해야죠.”

언제나 진유성에게 구박을 받고, 놀림을 받는 상림이지만…….

그 역시 ‘생존대’의 일원이었다.

화전민 모녀의 주검 앞에서 다짐했던 사람이었다.

만약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도맹을 물리치고 살아남아 패권을 거머쥐게 된다면.

그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상림은 상실의 공간에서 가슴 속의 검을 잃어버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신념까지 잃어버린 것은 아니었다.

정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서 정신병자로 조롱받게 된다면, 기쁘게 감내하겠다.

하지만 만약 혼란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면, 적어도 LF 건설의 직원들과 그들의 지인들은 알게 될 것이었다.

이 같은 일을 미리 예측한 사람이 있으며, 그들은 압구정이 안전하다고 말했다고.

인간은 극한의 혼란 상황이더라도 하나의 희망만 있으면 생존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진다.

상림과 진유성의 대화를 듣고 있던 유혜연과 상소윤이 침을 꿀꺽 삼켰다.

회사를 돈으로 바꾼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현실성 없던 대화가 확 와닿기 시작한 것이다.

“야, 진유성. 그럼 이제 우리 학교 안 가고 집에 있어야 해?”

“글쎄. 정부가 상황을 인식하기 전까지는 가야 하겠지.”

“네 말대로라면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수도 있는데 학교에 간다고?”

“그 엄청난 일들이 대정고에서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

“아…….”

진유성의 말이 맞다.

대정고에는 정새롬, 지종수, 심도훈, 고인수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친구들이 있다.

만약 자신만 살아남고 친구들이 전부 죽는다면?

생존의 기쁨을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진유성은 정부가 사태를 파악해 지침을 내리기 전까지 학교에 가려는 생각이었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을 수도 있으니, 사서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일견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서 진유성이 말했다.

“위기 상황이 오면 무조건 압구정으로 와야 한다.”

압구정에는 진유성만 있는 게 아니다.

상림도 있다.

그동안 꾸준히 무공을 갈고닦은 상림은 예전의 경지를 거의 되찾았다.

이 말은 곧, 상림 역시 전 지구에서 손꼽히게 강한 각성자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기운의 자유로운 운용과 위기 상황에 대처를 생각해 보면, 상림이 어지간한 각성자보다 낫다.

물론 상림은 가슴 속의 검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자신보다 강한 존재가 나타나면 속수무책일 것이다.

하지만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는 무자비함을 보여 줄 수 있다.

상림을 잠시 쳐다보던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상림아.”

“네?”

“어떤 상황이 닥친다면, 그리고 그게 버겁다면…….”

진유성은 이 말을 해도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고민했지만, 결국 하기로 했다.

“옥천문의 해검봉을 떠올려라.”

“…….”

이 말이 상림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진유성은 이미 뱉은 말을 후회하지 않는다.

잠깐 머뭇거리던 상림이 화제를 돌렸다.

“그럼 이제 교주님은 뭘 하실 겁니까? 설마 저만 일 시키려는 거 아니죠?”

“우선 KSG를 내 영향력 아래에 둬야겠다.”

진유성은 한국의 각성 단체인 KSG가 기득권의 이해득실에 움직이는 꼴을 볼 생각이 없었다.

아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KSG에는 한지후 본부장이 있고, 우산도가 있으니까.

“그 다음에는 중국에 가야겠지.”

“중국이요?”

진유성은 신주청이 CSG의 월성일 확률이 높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저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신주청을 죽이고 싶지 않아서.

하지만…….

“신주청을 죽여야겠다.”

그는 결심을 세웠다.

그리고 진유성이란 존재는 한 번 세운 결정을 돌이키는 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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