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80화 (280/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80화>

가속 구간에서는 차이를 보이지 않았던 두 대의 머신이 변속 구간에 들어서자, 조금씩 차이를 내기 시작했다.

미세한 차이긴 했지만, 조금씩 워츠 마이빅이 앞서 나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F-1은 1초를 일만 개로 나누어서 랩 타임을 재는 스포츠다.

미세한 차이 역시 유의미한 차이였다.

사실 이러한 흐름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드라이버의 실력이 동일하다고 가정을 했을 때, 랩 타임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소는 경험이다.

여기서 말하는 경험은 드라이버가 가지고 있는 경기 경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머신을 다뤄 본 경험과 해당 서킷을 달려 본 경험이 가장 중요했다.

영월 인터내셔널 서킷은 선수들이 비시즌마다 꼬박꼬박 찾는 곳이기 때문에 워츠 마이빅은 이곳의 특성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잘 따라오는군.’

워츠 마이빅은 이제 진유성이란 한국인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연습 주행 때도 뛰어난 모습을 보였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워츠 마이빅이 가장 놀란 부분은 진유성의 레코드 라인이 엉망이라는 것이었다.

그는 가장 효율적인 동선을 따라 달리지 않는다.

매 코너마다, 매 변속 구간마다 움직임이 미세하게 다르다.

이런 경우는 딱 하나뿐이다.

아직 선수가 자신의 주행론을 정립하지 못한 것이다.

즉, 자신의 주행론을 정립하는 순간, 진유성은 지금보다 좋은 레코드를 가질 수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거리를 벌릴 수 없단 말이지.’

주행론조차 완성시키지 못한 초짜와 압도적인 세계 1위의 경기라고는 믿기지 않는 흐름이었다.

게다가.

진유성의 변속이 점차 능숙해진다.

워츠 마이빅은 무섭게 따라오는 진유성의 머신을 보며 이를 앙다물었다.

그리곤 마인드 컨트롤에 들어갔다.

지금은 비시즌도 아니다.

서킷은 영월이 아니다.

상대는 한국 소년이 아니다.

이곳은 월드 그랑프리의 챔피언십이며, 수십만 명의 관중들이 날 지켜보고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워츠 마이빅이 완전한 몰입을 이룩한 순간, 두 머신이 마침내 S커브 구역에 들어섰다.

경기 직전, 두 사람이 설전을 벌였던 에어리어.

브으으으으으!

브으으아아아!

묘하게 다른 엔진음.

한 사람은 기어를 조작했고, 한 사람은 엑셀을 밟았다.

전자는 워츠 마이빅.

후자는 진유성.

진유성의 머신이 절묘하게 워츠 마이빅의 인코스로 파고들었다.

물론 워츠 마이빅이 진유성을 견제하면 인코스로 파고들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랩 타임에 악영향을 준다.

진유성을 가로막는 행위 그 자체가 전체 기록을 다운그레이드시킬 수 있단 말이었다.

F-1은 함께 달리는 선수를 이기는 상대 평가이면서, 랩 타임으로 승부가 나뉘는 절대 평가이다.

그러니 진유성을 막기 위해 자신의 랩 타임을 줄인다는 건, 세계 1위의 선수가 해서는 안 될 생각이었다.

워츠 마이빅은 완벽한 레코드 라인을 브레이킹하며 고고하게 달릴 뿐이었다.

‘훌륭한 멘탈리티다.’

진지한 눈으로 경기를 지켜보던 감독이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워츠 마이빅은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동양인 소년에게 달렸다.

브으으아아앙!

진유성이 핸들을 미묘하게 틀며 차체의 균형을 뒤틀었다.

카운터 스티어.

코너 공략 중, 선회 방향 반대쪽으로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드라이빙 스킬.

카운터스티어 자체는 다른 선수들도 할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의 선수들과 진유성의 카운터 스티어가 완전히 다른 점은…….

가속 중에 일어나는 행위라는 것이다.

워츠 마이빅은 그 순간, 플로우에 돌입했다.

플로우 현상.

스포츠 선수들이 극한의 집중 상태에서 일순간 엄청난 정보량을 얻게 되는 현상.

이런 현상은 최상위 F-1 드라이버라면 한 번쯤은 겪어 보는 일이었다.

키미 라이코넨은 시속 25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면서도 코너가 천천히 다가오는 것 같다고 말했으며, 아일톤 세나는 의식을 가지지 않고 운전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나카지마 사토루는 서킷 안의 모든 행위를 하늘에서 내려다보듯 인지했다고 말했었다.

워츠 마이빅은 천천히 나아가는 듯한 머신 속에서, 진유성의 머신을 정확히 인지했다.

진유성의 머신이 속도를 높이고, 불균형을 만들어 낸다.

그 불안한 차체 위로 마이빅의 머신이 뿜어내는 더티 에어가 스쳐 지나간다.

그때였다.

앞선 레이스와 다르게 워츠 마이빅은 안전 주행을 할 수 있도록 길을 비켜 주지 않았다.

그렇기에.

텅!

진유성이 탑승한 머신의 왼쪽 바퀴가 범프(라인 안쪽의 불균형한 요철)에 걸려 버렸다.

진유성의 차체가 떠오른다.

“위험해!”

앞서 워츠 마이빅이 말했던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봐, 한국 친구. 내가 안 비켜 줬으면 넌 위험했어. 카운터 스티어를 쓸 거면 범프를 확실히 체크했어야지.”

그 순간, 워츠 마이빅은 진유성의 목소리를 들은 것만 같았다.

[잘 봐. 내가 말한 게 이거니까.]

그 순간, 차체의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여 놨던 진유성이 순식간에 왼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레이서들은 모두가 코너링을 할 때 몸을 사용하지만.

이 세상 그 어떤 레이서도 진유성만큼 완벽한 신체의 무게 중심 이동이 가능하진 않았다.

쉬이이이익!

더티 에어를 뚫고, 진유성의 차체가 불균형을 회복한다.

범프를 밟고 살짝 떠올랐던 차체가 가라앉으면서 더티 에어가 다운 에어(짓누르는 공기압)의 효과를 내고.

그것은 곧.

공기 역학의 슬립 스트림 현상을 만들어 냈다.

이는 진유성이 마찰력을 완벽히 이용하면서도 엑셀에서 발을 떼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 말은 곧.

브아아아아아아아앙!

순간 랩타임을 1초 이상 벌리며 진유성의 머신이 워츠 마이빅을 추월했음을 의미했다.

“Jesus!”

“Fuck!”

지켜보던 볼푸스 PTS1120의 감독과 팀 메이트가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게 만든 엄청난 스킬이었다.

말도 안 된다.

머신을 신체보다 더욱 정교하게 다루는 능력도 말도 안 되고, 노면의 상태를 완벽히 읽어 내는 감각도 말이 안 된다.

더티 에어와 범프를 이용한 활용도 말이 안 되고, 서킷 위에 함께 달리는 상대가 워츠 마이빅이라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말도 안 되는 것은 저 소년의 담대함이다.

요철을 받고 떠오른 차량을 완벽히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 하에 풀 액셀을 당겨 버렸다.

일말의 두려움이라도 있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죽음과 너무나 가까운 기술이다.

당장 워츠 마이빅이 저 기술을 배우려고 하면 감독은 뜯어말릴 생각이었다.

능숙해질 수만 있다면 F-1의 새 역사를 쓰겠지만,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너무나 어렵다.

하지만…….

‘저 소년은 할 수 있다!’

이 말은 곧 워츠 마이빅을 압도하는 F-1 레이서의 탄생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 뒤 워츠 마이빅은 분전했다.

코너와 변속 구간마다 어떻게든 랩 타임을 줄이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고, 유의미한 성과로 이어졌다.

그 결과, 진유성과 랩타임이 1초 미만으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S자 코너에서 기록된 1.43초의 격차는 너무나 거대한 장벽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직선 가속 구간뿐인데, 동일 기종이기에 여기서는 랩 타임 단축을 기대할 수 없었다.

그사이, 워츠 마이빅은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진유성의 실력에도 당황했지만, 그보다는 자꾸…….

[내가 바로 인코스의 황태자다!]

[오른쪽? 왼쪽? 넌 어디에 걸겠느냐!]

[간닷! 제로의 영역!]

[머신 출력 100%]

[한계 돌파아아아앗!]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내가 너무 놀라서 충격을 받은 건가?’

워츠 마이빅도 경기 중 종종 플로우 현상을 겪은 적이 있다.

그리고 그럴 때면 선수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그건 초집중 상태에서 상대의 머신에 온전히 집중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진유성의 말도 안 되는 코너 테크닉에 경악해, 현재 워츠 마이빅의 플로우는 깨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목소리가 들린다.

귀로 들린다기보다는 꼭 가슴 속에서 들리는 기분?

결국 이해할 수 없는 현상 때문에 워츠 마이빅은 마지막 스퍼트 타이밍을 반 박자 늦게 잡아 버렸다.

그렇게 경기가 끝나고, 랩 타임이 공개되었다.

1 ? 06.32.6731

2 ? 06.33.8043

영월 서킷은 한동안 마의 6분 32초로 불려왔다.

그 누구도 6분 32초대의 랩 타임을 기록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처음 깬 사람이 워츠 마이빅이었다.

지난 시즌, 그는 06.32.9965의 랩타임을 기록했었다.

그리고 진유성은 그것보다 무려 0.32초나 빨랐다.

즉, 진유성이 영월 서킷의 레코드를 갈아치웠다는 것이었다.

서킷 개러지에 차를 주차한 워츠 마이빅이 헬멧을 벗고는 진유성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혹시 너도…….”

그러나 워츠 마이빅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레이싱 중에 목소리가 들렸냐는 질문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미친 것도 아니고.

사실 질문을 던져 봤자, 진유성은 시치미를 뗐을 것이었다.

‘쉽지 않았다.’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시속 250km 이상으로 달리면서 머신 안에 탑승한 이에게 전음을 보내는 것은.

생각해 보니까 중원에서도 이 정도 속력으로 달리며 전음을 보내 본 기억이 없었다.

‘또 한 단계 성장했군.’

진유성이 그렇게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을 때, 볼푸스 PTS-1120의 감독이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진유성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자, 자네! 한국인이지?”

“맞아.”

“나이가 어떻게 되나? 라이센스는? 레이싱 출전 경험은 있나? 부친은 뭘 하시나?”

진유성이 대답할 새도 없이 질문을 쏴붙인 감독은 아차 싶었다.

지금 중요한 건 인적 사항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건, 진유성의 레이싱을 카메라에 담아야한다는 것이었다.

본래 F-1 머신 내부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번 경우에는 비시즌 연습용 머신이라서 카메라가 제거되어 있었다.

감독은 안달이 나 있었다.

만약 이 한국인의 주행을 카메라에 담고, 그것을 구단 차원에서 프로모션을 돌린다면?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최고의 테크니션이 탄생하는 것이다.

“잠깐만 기다리면 내가 곧장 엔지니어를 불러서……!”

그때였다.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진유성의 얼굴이, 갑자기 얼음장보다 차가워진 게.

“조용해.”

“어떻게 조용하겠나! 내 평생 감독을 하면서 이처럼 떨리는…….”

“조용하라고!”

진유성이 일갈하자, 감독은 일순간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곤 더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눈앞의 소년에게서…….

‘소년이라고? 이 자가 정말 소년인가?’

눈앞의 ‘존재’에게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득한 위압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어 보는 감각이었다.

감독이 당황하는 사이, 진유성은 서릿발 같은 기세를 뿜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변화하고 있다.

아니, 변질되고 있다.

태양도, 구름도, 날씨도.

모든 것이 그대로다.

하지만 진유성은 느낄 수 있었다.

세상 그 누구도 듣지 못할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끼리리릭-

지구 전체를 지탱하는 인과율의 톱니바퀴가 요란하게 돌아가기 시작하는 소리를.

대기의 기운이 요동친다.

그 속에서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냄새가 난다.

진유성은 이 느낌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게이트……!’

게이트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지구의 대기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었다.

이 말은 곧.

지구 전체가 게이트와 같은 상태로 변화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2023년 9월 30일.

아포칼립스란 이름의 종장(終場)이 막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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