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75화>
Quest 43. 등장한 천마님
진유성에게는 한 가지 비밀이 있다.
사실 비밀이라고 말할 정도로 거창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이니 비밀이라고 말해도 상관없었다.
그것은 진유성이 관심종자라는 것이었다.
특히 자신이 처음 해 보는 일을 두고 사람들이 경악을 하는 걸 즐겼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었다.
진유성은 처음으로 겪어 본 사술의 원리를 깨달아 되갚아 줬으며, 이론만 알고 있던 진법을 즉석에서 파진해냈다.
점창파가 백여 년 동안 꽁꽁 숨겨 둔 사일검법의 차륜검공의 약점을 간파했으며, 화산파 매화검진을 보고 개량시켜서 생존대원들에게 가르쳤다.
그리고 이런 일들을 벌일 때마다 사람들은 늘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어, 어떻게!”
“분명 처음 본 게 아니었나!”
멸마대 시절에는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생존대 시절을 겪으며 확실해졌다.
자신은 천재였다.
물론 드넓은 중원에 천재가 진유성 한 명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천재라고 불리는 이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종류로 나뉘었다.
첫 번째 부류는 감탄을 불러일으키는 이들.
그 재능에 찬사를 보내고, 박수를 치고 싶은 이들.
두 번째 부류는 경악을 불러일으키는 이들.
그 재능을 부정하고 싶으며, 악마가 내려준 재능이라고 폄하하고 싶은 이들.
진유성은 명백히 후자의 사람이었고, 이내 알게 되었다.
진짜 천재는 감탄을 받지 않고, 폄하를 받는다는 걸.
그 뒤로는 이런 반응들을 즐겼다.
관심은 늘 짜릿하고, 경악은 늘 새롭다.
1세대 수하들을 제외하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사실 진유성은 관종이었다.
물론 중원에는 이러한 단어가 없었지만.
문제는 진유성이 너무나 위대해지면서 발생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은 진유성이 뭔가를 잘하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설령 진유성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접해 보는 문물이라도 그랬다.
천마신교주인데 당연히 잘하겠지.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에는 ‘신’이니까 당연히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고.
여전히 진유성은 관심에 배고픈데 말이었다.
그가 한국에서 온갖 분야에 끼어들어서 주접을 떠는 것은 이러한 보상 심리가 깔려 있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후후…….”
진유성은 앞으로 벌어질 일에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MK 엔터테인먼트의 지하로 향했다.
지하 2층, 안무 연습실.
트레이너에게 혼나고 있는 연습생들의 모습이 기감을 통해 느껴진다.
그곳에 자신이 들어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태어나서 처음 춰 보는 춤이 이 정도라는 것에 감탄하고, 모두가 놀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벌써 신이 난다.
진유성은 춤을 춰 본 적이 없지만, 어차피 몸 쓰는 일이다.
체술이 입신의 경지에 닿아 있는 그에게는 쉬운 일이다.
‘춤이라…….’
중원에서도 춤이 있다.
검을 들고 추는 검무도 있었고, 종교적인 이유로 추는 무용도 있었고, 저잣거리에서 흥에 겨워 추는 막춤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문화로 여겨서 발전하고 계승시키진 않았다.
이것은 전지의 존재가 자리 잡은 지구인들과 전능의 존재가 자리 잡은 중원인들의 무의식에 깔린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는 어떠한 것에 대해 알고, 지식을 이어 가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과학도 발전했고, 문화도 발전했다.
그에 반해 중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힘의 논리다.
그 외에는 잡스런 것으로 취급된다.
물론 중원에서도 높은 이들은 다도나 바둑을 고상하게 즐겼지만, 전부 여흥일 뿐이다.
과학과 문화는 소수의 천재들에 의해 발전했을 뿐이고, 인류의 모든 역량이 힘에 쏠려 있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발전된 이런저런 문화를 즐기는 건 늘 즐거웠다.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지하 2층에 도착하자, 웬 남자 직원이 진유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종수가 카메라 테스트를 진행하는 사이, 진유성의 회사 구경을 도와줄 직원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진유성 씨.”
“혼자 구경해도 되는데.”
“그럴 수야 있나요.”
직원은 별로 관심도 없는 MK 엔터테인먼트의 역사에 대해 떠들고, 그들의 트레이닝 시스템을 자랑했다.
“사실 저희가 매출액만 놓고 보면 초대형 기획사는 아니거든요. 보유한 팀이 적어서. 근데, 트레이닝 시스템은 한국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직원의 입에서 각각의 트레이너들이 어떤 경력을 가지고 있고, 어떤 팀을 키워 냈는지 등등, 듣기 좋은 소리들이 줄줄 나왔다.
지겨워진 진유성을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견학. 가능?”
남자 직원은 진유성이 참으로 싸가지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럼요. 마침 보컬 트레이너 선생님이 쉬고 계시네요. 이 분한테 일대일로 배울 기회는 진짜 드물거든요. 제가 지금…….”
“노래 말고, 춤.”
“어, 현재 안무 트레이너님은 단체 수업 중이신데.”
“그냥 새로 들어온 연습생이라고 하고, 들으면 안 되나?”
“음, 되죠. 어려울 것 없죠.”
직원은 박차명이 그에게 회사에 홀딱 반하게 만들라는 명령만 내리지 않았으면, 진유성이란 놈을 한 대 쥐어박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말끝을 일부러 의문형으로 끊으면서 반말 비슷한 걸 툭툭 던진다.
그러나 이건 진유성의 입장에서 당연한 것이었다.
실제 나이는 그가 훨씬 많으니까.
그렇게 진유성과 직원은 단체 안무 연습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 MK 엔터테인먼트의 트레이너 김수철이었다.
“너희 나무토막이야? 그 따위로 춰서 내 이름에 먹칠할 생각이면 차라리…….”
지적을 하다가 인기척을 느낀 김수철이 말을 멈추고는 직원에게 다가왔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실장님?”
“이 친구를 좀 데려다주려고요.”
“누구죠?”
“어, 새로 들어온 연습생?”
“의문형이네요?”
“아직 계약을 안 해서.”
“아하.”
아무래도 회사에서 계약할지 말지 저울질 중인 연예인 지망생 같다.
‘나한테 판단해 보라는 거군.’
사실 스타가 될 수 있는지 없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캐스팅 디렉터들도 일단 뽑아 놓고 뜨길 기도를 하는 거다.
하지만 적어도 스타가 되기 위한 과정을 성실하고 꾸준히 소화할 수 있는지는 트레이너들이 제일 잘 안다.
그래서 종종 회사에서 애매한 연예인 지망생을 트레이너에게 며칠 간 붙여 보는 경우도 있었다.
김수철은 진유성을 그런 부류로 판단했다.
김수철이 진유성을 훑었다.
얼굴은 괜찮은 편인데, 자세가 참으로 좋다.
연기를 할 때, 춤을 출 때, 화보 촬영을 할 때 가장 어려운 자세가 차렷이다.
한데 이 친구는 차렷 자세가 완벽하다.
멈추려면 한없이 멈출 수 있을 것 같고, 움직이려면 곧장 튀어나갈 것 같다.
‘운동을 했나?’
김수철이 그런 생각을 하며 진유성에게 다짜고짜 물었다.
“너, 연습생 경력은?”
“없는데요.”
“완전 처음?”
“완전 처음.”
“춤이나 노래를 배운 적은 없고?”
“없어요.”
“그럼 둘 중 하나겠네. 타고나서 배울 필요가 없어서 가수의 꿈을 꾸거나, 배우지도 않고 헛바람만 들어서 가수의 꿈을 꾸거나.”
김수철이 진유성을 쳐다보며 공격적으로 물었지만, 진유성은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자신의 업에 자부심과 긍지를 갖는다는 건 중요한 것이고, 존중받을 만한 부분이다.
“둘 중 어느 쪽이야? 타고났어? 아니면 헛바람이야?”
“타고났을 것 같은데요.”
“났을 것 같아는 뭐야? 타고났다고 아니고.”
“춤을 춰 본 적이 없으니 확신을 못해서.”
“…….”
김수철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MK 엔터테인먼트에 들어온 지 10년차인데, 이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놈은 처음 본다.
김수철의 뒤에 서 있던 연습생들이 혀를 쯧쯧 찼다.
김수철은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발레단에 들어갔다가, 뒤늦게 스트릿 댄스에 빠져서 비보이 월드 챕피언십에서 우승한 사람이었다.
그는 춤에 대한 재능이 엄청나면서도, 춤을 대하는 자세도 진지하기 그지없다.
한데 저런 태도라니?
그러나 연습생들은 진유성이 전혀 밉지 않고, 오히려 고마웠다.
저 친구가 한동안 김수철의 어그로를 받아 줄 테니, 몇 주는 편해지겠다고 생각하면서.
그사이, 황당함의 감정 이후로 분노를 느낀 김수철이 손가락을 까딱했다.
연습생 한 명이 바짝 군기가 든 채로 뛰어왔다.
“너, 노래 틀고 제일 편한 거 춰 봐.”
“아, 아무 거나요?”
“아무거나 말고. 제일 편한 거. 쟤가 따라 할 만한 거.”
연습생이 당황하다가 노래를 틀고 춤을 췄다.
그가 춘 춤은 전 세계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였다.
그러나 김수철이 인상을 찌푸렸다.
“야, 이 씨. 이걸 초심자가 어떻게 따라해?”
김수철이 바랐던 건 특별한 테크닉이 있는 춤이 아니라, 그냥 리듬을 타는 것이었다.
“다, 다른 거 출까요?”
“아니다. 됐어.”
생각해 보면 진짜 재능 있는 친구들은 대충 봐도 어느 정도는 흉내를 낼 수 있다.
잘 추는 건 불가능해도, 테크닉 원리 정도는 깨우쳐 줘야지 재능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한번 해 봐.”
김수철의 요구에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하다가 몸을 움직였다.
“……!”
김수철은 그 순간 깜짝 놀랐다.
대체 저건 뭐란 말인가?
문워크는 테크닉만 알고 나면 그렇게 어려운 춤은 아니다.
어려운 건 연기력이다.
진짜 앞으로 걷는 것 같은 관절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연기력.
하지만 어찌 됐든 진짜 앞으로 걷는 건 아니기에 그 자연스러움에는 한계가 있는데…….
‘이건 뭐지?’
진짜 앞으로 걷고 있는 것 같다.
몸만 뒤로 가고.
그사이 진유성은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그는 연습생이 어떤 원리로 앞으로 걷는 것처럼 뒤로 갔는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편법은 필요 없다.
그냥 앞으로 걸으면서 내공으로 몸 전체를 뒤로 밀어버리면 그만이니까.
중요한 건 이게 왜 춤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걷는 척 뒤로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너, 진짜 처음 춰?”
“난…… 슬플 때 힙합을 춰.”
“뭐?”
“처음인데요.”
김수철은 진유성의 뚱한 얼굴을 보며 충동을 억눌렀다.
문워크도 처음 세상에 태어났을 때는 어색하고, 어설펐다.
그걸 수많은 천재들이 가다듬으면서 지금의 자연스러운 춤이 나온 거다.
한데 눈앞의 놈이 그걸 한 번 더 진화시켜 버렸다.
어떻게 했는지 포인트를 묻고 싶은데, 앞선 대화의 흐름이 있어서 민망했다.
몸이 달아오른 김수철이 직접 나섰다.
뭔가 신기한 걸 보여 준 다음에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하는 그림이 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잘 봐.”
김수철은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화려한 비보잉을 선보였다.
손바닥 외에는 그 어떤 신체도 땅에 닿지 않는 화려한 기술들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본 진유성의 의문은 더욱 깊어졌다.
이게 왜 춤인 것인가.
이런 건 근육을 단련하는 운동이 아닐까?
“할 수 있겠어?”
비보잉을 끝낸 김수철이 묻자, 진유성은 대답도 안 했다.
그냥 한번 따라했다.
비보잉에서 중요한 건 자세와 속도다.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더 역동적인 자세와 더 빠른 속도가 큰 점수를 받는다.
물론 춤의 종류에 따라 느린 동작이 더 돋보일 때도 있지만, 일단 김수철이 춘 춤은 아니었다.
그런데…….
“……!”
김수철보다 훨씬 빨랐다.
그리고 선이 더 아름답다.
“자, 잘 봐.”
초조해진 김수철이 자신이 비보잉 월드 챔피언십에서 우승할 수 있게 만든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발레의 동장에 비보잉을 접목한 기술들.
그 순간, 진유성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춤은 결국 인간이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기 위한 몸의 움직임일 뿐이다.
하지만 진유성은 심동과 무심동의 깨달음을 얻은 순간부터 움직임으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게 되었다.
감정을 적에게 흘리는 순간, 약점이 노출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심검이란 단어는 역설적이지 않은가.
마음이 담긴 검에 감정이 없다는 게.
감정을 담지 않은 행위에는 마음이 담겨 있는가?
아니면 뇌와 신체가 일으키는 화학 작용에 불과한가?
“아.”
이윽고 진유성은 웃었다.
특정 수준을 넘어 버린 고수가 되면 깨달음은 무공에서 찾아오지 않는다.
일상에서 찾아온다.
또한, 이번 깨달음은 과거의 것과는 달랐다.
진유성은 상실의 공간에서 무의 9할을 잃었지만, 그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여러 번의 깨달음을 얻었지만, 강해지는 느낌을 받지 못한 것이었다.
과거에 밟았던 경지를 회복한 것뿐이니.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 얻은 깨달음은…….
중원에서도 닿지 못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