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73화>
* * *
등교 준비를 하기 위해 교복을 입은 상소윤은 문득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역시 뽀얘졌단 말이지.’
손을 들어 볼을 슥슥 매만지니, 그녀가 기억하던 원래의 피부보다 훨씬 부드럽다.
사실 처음에는 벌모세수가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얼굴의 붉은 기가 짙어진 것 같아서 절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틀째부터 피부 상태가 급격히 좋아지더니, 날이 갈수록 좋다.
오늘이 9월 24일.
무려 열흘째다.
‘이 정도 효과라면……?’
떼돈을 벌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을 찾은 것 같다.
상소윤은 부잣집에서 자랐고, 주변 친구들도 대부분 부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습성을 잘 알고 있었다.
부잣집 사모님들은 미용에 어마어마한 돈을 쏟는다.
그러니까 진유성이랑 압구정에 최고급 피부 관리샵을 차리면 돈을 갈퀴로 쓸어 담을 수 있다.
아니, 어쩌면 한국을 넘어 할리우드의 배우들이 찾아올 수도 있다.
이 세상에 진유성의 벌모세수보다 효과 좋은 피부 관리는 없으니까.
그런 생각을 한 상소윤이 후다닥 거실로 뛰쳐나갔다.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있던 진유성이 질렸다는 듯한 시선을 보냈다.
“대체 교복 한 벌 입는 데 15분이나 걸리는 이유는 무엇이냐?”
“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럼 뭐가 중요하느냐?”
“벌모세수가 외국인들한테도 먹혀?”
“당연하지. 그들도 사람이니까.”
“해 본 적 있어?”
“있다.”
과거에 멀더가 무공을 배우고 싶다고 징징거려서 벌모세수를 해 준 기억이 있었다.
“오, 대박.”
상소윤이 신이 나서 자신의 계획을 떠들기 시작했다.
상소윤의 계획은 간단했다.
일단 쇼핑몰을 운영하면서 돈을 벌고, 대학을 졸업할 때쯤 두 사람이 5 대 5로 투자를 해서 피부 관리샵을 차린다.
그 뒤로는 상소윤의 인맥으로 부잣집 사모님들(친구 엄마들)을 고객으로 유치하고, 마침내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그런 계획이었다.
진유성은 열과 성을 다해 떠들고 있는 상소윤을 보며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아침부터 무슨 거울을 저렇게 열심히 보나 싶었는데, 참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다.
“안 된다.”
“왜!”
“너와 외숙모에게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난 것은 노폐물이 빠져나갔기 때문이 아니다.”
“엥? 그럼?”
“기경팔맥의 탁기와 화기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그게 뭔데.”
“사람이 살다 보면 몸에 자연스럽게 쌓이는 좋지 않은 기운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럼 다른 사람들한테도 그거 해 주면 되잖아. 돈 좀 더 받으면 되지.”
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평생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의 탁기와 화기를 제거하려면 꽤 큰 고통이 뒤따를 수 있다.
무공을 익혔었던 상림도 진유성에게 고통스러운 추궁과혈을 받은 다음에야 벌모세수가 가능했으니까.
아무런 고통을 느끼지 않았던 상소윤과 유혜연이 이유를 알 수 없는 특별한 케이스였을 뿐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다라…….’
지금까지 내공에 관련하여 진유성이 모르는 현상은 없었다.
설령 그런 것이 있다면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상소윤과 유혜연과 관련된 현상은 깊이 고심했음에도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은 안 되니까,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라.”
“아, 뭐야. 왜 안 되는데.”
“할 수야 있겠지만 몹시 어려운 일이다. 네가 특별해서 가능했을 뿐이다.”
“내가 특별해서……?”
“그래.”
“그럼 다른 사람도 해 줄 수는 있지만 안 해 준다는 거지? 그렇게 막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니까?”
“뭐라는 것이냐?”
“아니, 뭐. 그럼 어쩔 수 없네. 음, 어쩔 수 없지.”
“콧구멍은 왜 벌렁거리는 것이냐. 모닝 박색인 게냐?”
“야!”
상소윤이 코를 움켜쥐며 빽 소리를 지르자, 안방 문이 벌컥 열렸다.
“너희 아직도 학교 안 갔어?”
아침을 차려주고 상도윤과 깜빡 잠이 들었던 유혜연이 시계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서 나온 것이었다.
상소윤도 뒤늦게 시계를 보고는 놀랐다.
이대로라면 지각 확정이다.
그 순간, 진유성이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차키가 허공을 유영하며 날아오더니, 손아귀에 착 소리를 내며 안착했다.
차키를 잡은 진유성이 거만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이, 꼬맹이.”
“……?”
“속도의 한계를 경험하고 싶나?”
* * *
“아저씨, 수고하세요!”
택시에서 내린 지종수가 헐레벌떡 대정고 정문을 향해 달렸다.
본인이 운전을 했다가는 늦을 것 같아서 택시를 탔는데, 간신히 지각을 면한 것 같다.
5분 남았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사실 대정고 학생들은 지각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기부 점수가 조금 깎인다고 해도 대학에 가는데 문제가 없으며, 담임 선생님한테 혼날 일도 없는 학생들이었으니까.
그러나 3학년 1반은 예외였다.
그들의 담임인 연기훈은 지각을 극도로 싫어한다.
차라리 지각을 할 바에는 시원하게 결석을 하라는 말을 여러 번 하기도 했고, 30분 지각하는 것보다 1분 지각하는 걸 더 뭐라고 한다.
앞으로 계속 1분 때문에 인생을 말아먹을 거냐며.
그래서 지종수가 헐레벌떡 뛰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아, 왜 택시는 학교 안으로 못 들어가는데!’
지종수가 헉헉거리며 투덜거리는 순간이었다.
부아아아앙!
어디선가 스포츠카의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평일 오전에 들린다고 생각하기에는 과한 굉음.
소리에 반응한 지종수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저 차는……?’
페라리의 창업주 엔초 안셀모 페라리(Enzo Anselmo Ferrari)를 기리는 특별 한정판 모델이자.
창립 80주년을 기리며 전 세계에 딱 299대만 발매된 슈퍼카들의 슈퍼카 엔초 페라리Ⅱ.
출고가가 무려 50억이었으며, 지금은 엄청난 프리미엄이 붙어서 100억을 주고도 사려는 이들이 많은 차였다.
그리고 지종수는 얼마 전에 진유성이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진유성, 너 면허 발급되면 자차로 등교한다고 했지?”
“당연하다.”
“차종이 뭔데.”
“엔초 페라리다.”
“원? 투?”
“뭐가 더 최신 기종이냐?”
“당연히 투지.”
“그럼 투로 골랐었다.”
“네 차인데 버전도 모르냐?”
“내 돈 주고 산 게 아니라서.”
“아, 예. 그러시구나.”
거기에 있던 모든 친구들은 진유성의 말을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진유성이 돈이 없다는 게 아니라, 엔초 페라리 투 정도면 돈이 있어도 못 사기 때문이었다.
지종수가 알기로도 엔초 페라리 투는 한국에 8대밖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 중 한 대가 면허도 없었던 진유성의 것이라니?
믿는 게 더 바보 같은 소리였다.
심지어 상소윤도 진유성이 무슨 스포츠카를 하나 가지고 있긴 한데, 기종은 모른다고 했었고.
그런데 지금.
엔초 페라리가 대정고 정문을 향해 돌진하고 있었다.
‘설마?’
지종수의 머리는 믿지 않았지만, 그동안의 경험은 정직했다.
진유성과 관련해, 말도 안 될 것 같은 일들은 대부분 진실이었으니까.
게다가 진유성은 어제 학교가 끝나면 집에 면허가 와있을 거라며 좋아하지 않았던가?
한데, 아무래도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닌 것 같았다.
부아아아앙-!
대정고 정문을 지나치는 곧게 뻗어진 직선 도로.
그 위를 달리는 페라리가 전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가속하는 것 같다.
게이트 폭주 이후, LF 건설이 재건한 압구정 일대는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기에 시내 치고는 차들이 달리기 좋다.
게다가 출근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도로 위에 차도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속도가 빠르다.
‘이 녀석, 앞길을 모르나?’
대정고 정문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급격한 우회전을 해야 했다.
‘이 직선 뒤에는 급격한 오른쪽 코너! 감속하지 않으면 정문을 지나쳐 버려!’
어쩌면 최고급 스포츠카답게 정문 근처에서 급격히 감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스피드를 너무 냈어. 자세를 세워 감속할 공간이 없어!’
설마 진유성의 차가 아닌가?
그냥 지나치나?
그때 지종수는 대정고 정문 가까이에 근접한 페라리의 조수석을 볼 수 있었다.
얼굴을 제대로 본 건 아니지만, 조수석에 앉아 있는 단아하고 아름다운 여인은 상소윤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운전자는 그의 연적인 진유성이다.
한데 왜 속도를 줄이지 않…….
지종수가 깜짝 놀라 두 눈을 부릅떴다.
진유성의 페라리가 난데없이 차체를 왼쪽으로 틀었다.
왼쪽으로 가면 중앙선 침범이다.
한데, 차체가 미끄러지듯 왼쪽으로 살짝 기우는 순간.
엄청난 속도로 핸들을 돌리더니, 관성을 이용한 우회전으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대정고 정문을 통과해 버렸다.
“-!”
차량 전후의 무게 중심 이동의 딜레이를 이용한 코너링 기술.
영어권에서 스칸디나비안 플릭 혹은 펜듈럼 턴(Pendulum Turn)이라고 부르지만 한국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과, 관성 드리프트!”
만화에서 보던 기술을 목격한 지종수가 깜짝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지종수가 놀라건 말건, 진유성의 차는 지종수를 한참 지나쳐서 주차장에 주차되었다.
차에서 튀어나온 두 사람이 황급히 3학년 본관으로 향한다.
지종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아, 난 지각이구나.’
지종수가 고개를 돌려 대정고 정문에 아름답게 배치된 가로수와 화단을 바라보았다.
“꽃이 참 예쁘네.”
흐드러지게 핀 꽃이 참 예쁘다.
그렇게 지종수는 1분 늦어서 욕먹을 바에는 30분 늦겠다는 마음으로 꽃구경을 시작했다.
* * *
“야, 진유성.”
쉬는 시간 내내 교무실에 불려 가서 연기훈에게 혼났던 지종수는 점심시간이 되자 진유성에게 다가왔다.
“오, 그래. 지종수로군.”
진유성이 드물게 기꺼운 태도로 지종수를 맞이했다.
진유성이 지종수를 반갑게 맞이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지종수가 자신의 운전 실력에 경악해 굳어 버리느라 지각을 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 지종수가 다가온 것도 자신의 주행 기술에 대한 감탄을 털어놓기 위함일 것이었다.
“바쁘냐?”
“이제 점심시간인데 바쁠 게 무에 있겠느냐. 얼마든지 편하게 말해도 좋다.”
“어, 그러면 잠깐 와 봐.”
지종수가 진유성을 구석으로 데려갔다.
“야, 니네 뭐해? 밥 안 먹어?”
“먼저 먹어.”
친구들이 교실의 구석에 모인 진유성과 지종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저 두 사람이 쓸데없는 주접을 떠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친구들이 식당으로 향하자,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그래, 남들 앞에서는 부끄럽겠지. 편하게 말하도록 해라.”
“너…… 뭐 알아?”
“그럼. 난 모르는 게 없지.”
진유성을 잠시 쳐다보던 지종수가 입을 열었다.
“너 그때, 퍼스널 컬러 왔을 때 받은 명함 있지?”
“뭐?”
지종수의 입에서 흘러나올 칭찬을 기다리던 진유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아니, 기획사에서 명함 주고 갔었잖아. 축구 하던 날, 뮤직비디오 찍는다고 와서.”
“아마 사물함에 있을 것이다. 왜 그러느냐?”
“너, 그…….”
지종수가 민망한 기색을 보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진유성의 생일 날, 지종수는 ‘고백해서 혼내 주자’를 시전했다가 진유성에게 호되게 혼이 났었다.
진유성이 메모리 카드를 돌려주기 전까지는 아빠의 눈치를 보느라 밥이 입에 들어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러나 해프닝이 일단락된 이후부터 지종수는 몇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자신한테 연기의 재능이 있다는 확신.
연기를 해 보고 싶다는 충동.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든 것이었다.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혔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오늘 지각한 것도 밤새 영화를 봤기 때문이었고.
“왜, 그. 연예인들보면 친구 따라 갔다가 캐스팅이 된다고 하잖아? 너 그 명함에 전화해서 기획사 한 번 가면 안 되냐? 미팅하고 싶다고 거짓말해서.”
물론 지종수의 아버지 인맥이라면 수많은 기획사와 접촉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좋아할 리도 없고, 허락할 리도 없다.
그래서 든 생각이 진유성이었다.
상소윤과 함께 가면 괜히 잘 보이고 싶다는 부담감 때문에 일을 망칠 것 같기도 하고.
“그, 안 되냐?”
어딘지 부끄러워하는 것 같은 지종수의 모습에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된다. 오늘 전화를 해 보마.”
“뭐? 진짜?”
“그래.”
“어, 아니. 왜?”
“뭐가 왜라는 것이냐?”
“왜 이렇게 화끈하게…….”
젊음은 짧기 때문에 뜨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진유성에게 허락된 젊음은 중원을 일통하던 짧은 순간뿐.
이후에도 젊은 모습으로 살아왔지만, 모습만 그러할 뿐 뜨겁고 아름다운 젊음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서 진유성은 꿈을 꾸는 이들을 부러워했다.
지종수의 저 눈에서 일렁이는 충동은 거짓이 아닌 것 같다.
실제로 지종수가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나 진유성은 이러한 자신의 마음을 설명하진 않았다.
“싫으면 됐다.”
“아니, 아닙니다요. 소인이 큰 말실수를 했습니다요. 니예, 니예.”
“고추가 없는 연기는 잘할 수 있겠구나.”
“…….”
“매점에 가서 먹을 것을 사오도록 하여라. 그사이에 전화를 해 주지.”
진유성의 말에 지종수가 냉큼 지갑을 꺼내 들었다.
“내가 저번에 말했지? 네가 매점에 다녀오라고 하면, 대정고에서 게이트가 터져도 다녀온다고.”
메모리 카드를 받을 때 했던 말을 반복한 지종수가 후다닥 매점으로 향했다.
진유성은 어딘지 조금 부러운 눈길로 지종수의 뒷모습을 쳐다보다가 핸드폰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