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71화>
* * *
수직로에서 빠져나온 도로 주행용 트럭이 털털거리며 멈춰 섰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트럭은 털털, 털털, 하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마 차량이 낼 수 있는 성능을 아득히 뛰어넘은 속도로 움직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망가진 건 아니군.’
내공으로 차량을 훑어본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했지만, 강사는 아니었다.
속도가 줄자 정신을 차린 강사는 트럭이 고장 난 게 아니냐며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말한 사내놈이 참으로 시끄럽기 그지없다.
망아지만한 상소윤이 방정맞게 굴면 놀리는 맛이라도 있는데, 이 강사 놈은 그저 시끄러울 뿐이었다.
결국 진유성은 명함을 하나 빼들었다.
“여기다가 전화하면 트럭 하나 사 줍니다.”
“트럭을 사 준다고요?”
강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진유성이 건넨 명함을 받았다.
거기에는 LF 건설사 대표인 상림의 이름이 박혀 있었다.
‘아들인가? 성씨가 다른데?’
어쩌면 상림 대표 아내 쪽의 혈연관계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가 재직 중인 운전면허 학원은 최고급 프리미엄으로 운영되는 곳이라, 트럭 한 대 정도는 아무렇지 않은 이들도 많았다.
말만한 강사가 고분고분해지자, 진유성은 운전석의 문을 열었다.
“어디 가요?”
“집.”
“집을 간다고? 차 안 타고요?”
“택시.”
실제로는 경공을 써서 돌아갈 생각이지만.
“그럼 트럭은?”
“알아서 운전해서 학원으로 가져가야겠죠?”
진유성의 말에 강사는 두려워졌다.
운전면허 학원에 취직을 할 만큼 운전을 좋아했던 그였지만, 오늘부터 운전이 두려워질 것 같다.
시속 몇 km인지도 모를 속도로 수직로를 돌파할 때 오금이 저려 왔으니까.
강사가 부르르 떠는 걸 본 진유성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소량이라서 본인은 모를 수도 있다.
땀을 흘렸다고 오해하는 걸 수도 있고.
하지만 진유성은 엄청나게 예민한 기감을 가지고 있기에 알 수 있었다.
‘벌써 두 번째군.’
진유성이 강사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하고는 속삭였다.
“지렸누.”
* * *
진유성은 우여곡절 끝에 운전면허 시험을 통과했다.
그러나 시험에 통과했다고 곧장 면허증이 나오는 건 아니었기에, 아직은 본인의 차를 몰고 학교에 등교할 수는 없었다.
진유성의 애마는 여전히 LF 건설의 지하 주차장에 잠들어 있었다.
“야, 그럼 너 면허 나오면 앞으로 네 차 타고 등하교하는 거야?”
“인터넷에서 보니 카풀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상소윤, 넌 걸어와라.”
“아, 뭔 소리야. 카풀이 뭐가 문젠데.”
“호의가 반복되면 권리인 줄 안다고 했다.”
“호의가 아니라고 생각할게. 의무 어때, 의무.”
“더 건방지구나.”
“야! 그 차 아빠가 사 준 거라며!”
“내가 네 아빠의 목숨을 열 번 정도는 구했다. 즉, 내가 없었으면 넌 태어날 수 없었다는 거지.”
“아빠는 아빠고, 난 나야.”
“불효녀로구나.”
“불속성 효녀라고?”
진유성은 인상을 팍 썼지만, 실제로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지금은 잃어버렸지만, 본래 상림의 가슴 속에는 시퍼렇게 타오르는 불이 있었다.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렸다고, 유전 형질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니, 불속성 효녀라는 말도 틀린 건 아니다.
그야말로 완벽한 개그 포인트다.
‘제법이군, 상소윤.’
진유성은 상소윤의 재치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저 박색한 계집아이가 재치를 가질 수 있게 된 것은 자신의 가르침 덕분이 아닐까?
“뭔데? 왜 이렇게 변태 같은 표정이야?”
“마음을 정했다. 차에 태워 주마.”
“아, 싫어. 표정이 너무 더러워.”
진유성과 상소윤은 그런 잡담을 나누며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9월 13일.
상소윤의 생일 하루 전날이었다.
그리고 진유성은 상소윤의 생일에 벌모세수를 해 주기로 했었다.
다만, 완벽한 벌모세수를 해 주기 위해서는 혈도를 자극해야 하는데, 그 과정은 뺄 생각이었다.
어차피 상소윤이 원하는 것은 노폐물의 제거이지, 진기의 원활한 소통이 아니다.
미리 약속이 되어 있기 때문에 상소윤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세안을 하고, 거실로 나왔다.
쇼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진유성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되었느냐?”
“준비는 됐는데…… 아프진 않겠지?”
“글쎄, 모르겠다. 한 번도 미용을 목적으로 벌모세수를 해 본 적이 없으니.”
“아니, 모르면 안 되죠. 선생님.”
“불법 시술이니 그러려니 해라.”
잠시 갈등하던 상소윤이 마음을 정하고 요가 매트 위에 눕자, 상도윤을 품에 안은 유혜연이 다가왔다.
유혜연도 노폐물 제거 시술에 관심이 있었다.
“눕지 말고 앉아라. 눈을 감고.”
“앉으라고?”
“명문혈과 장심이 맞닿는 게 편하니까.”
“명문혈이랑 장심이 어딘데?”
“명문혈은 등허리에 있고, 장심은 손바닥이다. 공부 좀 해라.”
“한의사 할 것도 아닌데 뭘 그런 걸 공부해?”
상소윤이 툴툴거리며 요가 매트 위에 앉았다.
사실 진유성의 수준에는 허공을 격하는 격체진력이나, 장심을 직접 통하는 방식에 큰 차이가 없긴 하다.
하지만 상소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후자가 더 안정적이었다.
만에 하나 내공이 역류라도 한다면, 신체가 닿아 있을 때는 즉각 반응할 수 있었다.
“뜨거워도 가만히 있어라.”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내공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상소윤의 온몸을 구성하는 기경팔맥을 더듬었다.
상소윤의 신체는 특별할 것 없는 일반인의 그것이었다.
한데, 정말 이상한 점이 있었다.
본래 타인의 내공이 침범하면 신체가 반응하기 마련이다.
이는 내가기공을 익히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통용되는 말이었고, 사람을 넘어서 모든 생명체에게 통용되는 말이었다.
당장 길에 있는 고양이에게 내공을 주입해도 반응을 할 거니까.
그런데…….
‘이상하군.’
상소윤의 신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런 경우가 가능한 것은 두 가지뿐이다.
하나는 본인의 내공으로 일주천을 할 때.
또 하나는 두 사람이 완벽히 같은 신체성질을 가지고, 완벽히 같은 무공을 배웠을 때.
하지만 둘 다 불가능하다.
완벽히 같은 신체 성질이라는 건 이론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며, 상소윤은 내공을 배우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이상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상할 뿐이지 나쁜 일은 아니었다.
“뜨겁지 않느냐?”
“말해도 돼?”
“된다.”
“어, 그냥 좀 따뜻한데? 전기장판 같아.”
상소윤의 대답을 들은 진유성이 조금 더 과감하게 내공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본래는 노폐물만 제거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이렇게 반발력이 없다면 더 많은 일을 해 줄 수가 있었다.
진유성은 우선 혈도에 쌓인 탁기와 화기를 제거하고는 기가 막힘없이 흐르도록 도왔다.
내친김에 생사현관을 타통해 볼까 하다가 그건 참았다.
아무리 반발력이 없다지만,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의 임독양맥을 타통시키는 것은 해 본 적이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상소윤이 원하는 노폐물을 제거했다.
츠츠츠츠-
상소윤의 피부에서 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더, 더워.”
“참아라.”
체온을 올리는 것이 보다 자연스러울 것 같기 때문에 덥게 만든 것이었다.
이윽고 상소윤의 온몸에서 검은색 땀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약 5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 진유성이 명문혈에서 손을 뗐다.
“끝났다.”
“벌써?”
“그래.”
상소윤이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검은색 땀으로 젖은 요가 매트였다.
땀은 단지 검은 것뿐만이 아니었다.
“윽. 뭐야.”
“뭐긴 뭐냐. 네가 품고 있던 노폐물이지.”
“내, 내가 이렇게 더럽다고?”
“사람이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노폐물이 쌓이는 법이다.”
상소윤이 진유성의 눈치를 보며 팔을 들어 킁킁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악취가 나는 건 아니지만, 어딘지 퀴퀴한 냄새가 난다.
그 모습을 본 유혜연이 상도윤의 통통한 볼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렸다.
“누나 완전 더럽다. 그치?”
“으부부부.”
“엄마!”
빽 소리를 지른 상소윤이 헐레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방으로 들어가려다가 멈칫하고는 요가 매트를 챙겼다.
아무래도 방에서 샤워를 하려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본 유혜연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진유성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딸을 보니 흡족하다.
역시 그녀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틀리지 않았다.
“유성아.”
“네?”
“나도 해 줘.”
“노폐물이요?”
“응. 몸에 좋은 거 아니야?”
“뭐, 그렇긴 하죠.”
노폐물을 제거한다고 해도 다시 쌓이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미가 없는 건 아니다.
사실 노폐물보다는 화기와 탁기를 제거한 것이 더 의미가 크다.
아마 상소윤은 1, 2년 동안은 감기에 걸린다던가 잔병치레를 하는 일이 없을 것이었다.
진유성은 유혜연의 말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해 보고 싶은 게 있었다.
유혜연이 새롭게 요가 매트를 하나 가져오고 앉자, 진유성은 다시 한번 명문혈에 손을 올렸다.
장심을 통해 명문혈에 내공이 불어넣어진다.
‘없다.’
이번에도 반발력이 없었다.
‘이해하기 어렵군.’
상소윤 한 명도 이해하기 힘든데, 모녀가 둘 다 반발력이 없다는 것은 정말 이상했다.
진유성은 유혜연에게 상소윤과 마찬가지의 행위를 해 주었다.
유혜연은 노폐물이 거의 나오지 않았는데, 이는 유혜연이 상소윤보다 깨끗해서는 아니었다.
유혜연이 상도윤을 출산할 때 진유성이 손을 쓴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로부터 시간이 얼마 흐르지 않았으니, 아직 노폐물이 많이 쌓일 시간은 아니다.
생각해 보면 그랬다.
당시에도 유혜연의 몸에서 느껴지는 반발력은 없었다.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은 유혜연이 출산 직후였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은 출산의 순간에 유혜연의 혈도가 활짝 개방되고, 상도윤의 기경팔맥과 함께 호흡하는 것을 느꼈었다.
인체가 정말 신비하다고 생각했었다.
산모는 태아를 그저 10개월 동안 품다가 세상에 내보내는 게 아니다.
한 사람의 인간이 가진 소우주의 맥락까지 만들어 주는 것이다.
상도윤은 어머니와 함께 호흡하며 기경팔맥을 안정시켰고, 이는 필연적으로 모자의 소우주가 닮게 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그때는 반발력이 없는 걸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뭔가 이유가 있는 듯했다.
“다 됐습니다.”
“난 좀 오래 걸렸네?”
“뭘 좀 확인하느라.”
유혜연이 조심스럽게 눈을 떠서 몸을 보니, 상소윤의 몸에서 흐른 것보다 확연히 적은 노폐물이 보였다.
그때 후다닥 샤워를 끝내고 나온 상소윤이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꾀죄죄하지도 않고, 깨끗했다.
“야, 진유성! 너 장난 친 거지!”
“무슨 장난말이냐?”
“나만 왜 이렇게 더럽냐고!”
“그것은 네가 더럽기 때문이다.”
“아니라고!”
상소윤이 거친 목소리로 현실을 부정하고 있을 때, 진유성은 실험체 1호가 전원주택의 정문을 통과하는 걸 느꼈다.
“아빠 왔다.”
상림이 들어오자, 진유성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번개처럼 움직여 상림을 제압한 다음에 요가 매트도 아닌 바닥에 내리꽂았다.
“읍읍!”
어느새 아혈이 제압당한 상림이 버둥거리는 사이, 진유성은 상림의 명문혈에 손을 올렸다.
그 모습을 보고도 유혜연과 상소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진유성이 상림의 노폐물도 씻어 준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태연한 유혜연과 상소윤의 반응에 억울한 상림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너무해!’
아무리 아내와 딸이 그들의 과거를 알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건 너무한 게 아닌가.
열심히 일을 하고 퇴근을 하자마자 진유성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데, 저 태연한 눈동자들이라니!
그 사이, 상림의 오해에 관심이 없는 진유성이 명문혈로 내공을 보냈다.
“아! 아파요!”
어느새 아혈이 풀린 상림이 소리를 지른다.
“아파도 참아라. 벌모세수 중이다.”
“아프다고!”
이상했다.
역시 상림의 신체에 내공이 들어가는 순간 반발력이 느껴졌다.
평소에 벌모세수 해 줄 때는 아프지 않도록 상림이 타고난 선천진기에 자신의 내공을 숨겼다.
그래야지 반발력이 최소화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과정 없이 내공을 움직이고 있으니, 상림이 아픔을 느끼는 것이었다.
사실 아프기만 하면 다행이었다.
상대의 혈도에 내공을 침투시키는 것을 내가중수법이라 하여, 아주 강력한 무공으로 분류했으니까.
진유성의 진기수발 능력은 하늘에 닿아 있으니, 신체에 악영향 없이 진기를 운용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파!”
상림의 비명에 유혜연과 상소윤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무래도 아빠가 엄살이 좀 심한 거 같아.”
“그러니까. 하나도 안 아플 텐데.”
유혜연과 상소윤의 평화로운 대화에 상림은 결국 억울함에 눈물을 흘렸다.
그사이, 상림의 벌모세수를 끝낸 진유성은 풀지 못한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왜 유혜연과 상소윤에게서 아무런 반발력이 없었는지.
더 나아가자면, 지난날 상소윤과 연결된 인과율이 왜 움직였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