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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70화 (270/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70화>

* * *

“뭐야? 이 븅신은?”

주말 오전.

평소처럼 아우토반을 즐기기 위해 수직로로 향하던 신준현이 비웃음을 머금었다.

‘도로주행’이라 적힌 큼지막한 표지판을 달고 도로 위를 질주하는 트럭이 웃겼기 때문이었다.

트럭은 제법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었지만, 그래 봐야 운전면허 연습용 트럭.

“아, 찐따 새끼가 왜 길을 처 막고 계세요.”

신준현이 트럭 뒤에 바짝 붙으며 경적을 울리고 깜빡이를 껐다 켜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트럭은 동일한 차선을 동일한 속도로 달릴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신준현의 입꼬리가 더욱 올라갔다.

트럭에 타고 있는 놈은 지금쯤 바짝 겁에 질렸을 것이다.

비싼 스포츠카가 뒤에서 존재감을 뿜어내니 속도를 줄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차선을 변경해서 비켜 주자니 속도가 너무 빠르고.

아마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바짝 얼어 있지 않을까?

‘얼굴이나 볼까?’

창문을 내린 신준현이 담배에 불을 붙이며 도로 표지판을 확인했다.

수직로의 진입로다.

여기서부터 차선이 넓어지고, 수직로에 들어갈 차량과 우회할 차량의 차선이 나눠진다.

어차피 수직로로 들어가려면 트럭을 추월해야 하는데, 심심하니 겁에 질린 얼굴이나 보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준현은 수직로에 진입할 때까지 트럭을 제치지 못했다.

도저히 추월할 만한 각이 안 나온다.

추월 차선에 들어가려니 트럭이 미묘하게 느려져서 차선 변경을 힘들게 만들고, 짬이 났다 싶으니 트럭이 먼저 차선을 변경한다.

트럭이 차선을 변경하자마자 속도를 내려고 했지만, 그 앞에 차 때문에 제칠 수는 없다.

‘이 새끼 봐라?’

차선을 변경하기 전의 속도 변화는 초보 운전자가 겁에 질려 우연히 한 행동인 줄 알았다.

하지만 이제 보니 아니었다.

저 트럭은 자신의 추월을 방해하고 있었다.

물론, 그래 봐야 트럭이었다.

이대로 차선을 따라 달리면 트럭과 그는 수직로에 진입하게 된다.

그러니 트럭의 발악은 우스운 것이었다.

속도에 별다른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아우토반이라는 단어가 자동차 레이싱 트랙이라고 오해한다.

하지만 아우토반은 독일에서 시작해 유럽 전역에 생긴 ‘무제한 도로’를 뜻했다.

여기서 말하는 무제한은 속도의 무제한만 의미하지 않는다.

도로 교통법조차 없다.

단 하나의 규칙이 있다면, 차선이 높아질수록 이동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는 것.

그러니 수직로에 들었다고 모두가 미친 듯이 달리는 것은 아니다.

속도를 즐기지 않는 이들은 평균적인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4차선에서 달리곤 했다.

물론 한국에는 한국의 문화와 사정이 있기 때문에 유럽과 다른 점들이 있긴 했다.

도로 중간 중간 구간 단속이 있다는 것과 출퇴근 시간으로 대변되는 정해진 시간에는 최고 제한 속도가 있다는 것.

사실 신준현은 수직로가 왜 생겼고, 아우토반이 뭐고, 유럽과 한국이 어떻게 다른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가 분명히 아는 사실이 있었다.

지금은 출퇴근 시간이 아니니, 수직로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트럭을 가볍게 추월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이없는 새끼가…….”

신준현이 그렇게 중얼거리는 순간, 스포츠카와 트럭이 수직로에 진입했다.

그 순간, 신준현이 액셀을 즈려밟았다.

부으으으응-!

스포츠카가 굉음을 내며 속도를 올리기 시작한다.

속도를 내서 단숨에 2차선으로 진입하겠다는 생각.

하지만 이어진 광경은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트럭이 스포츠카보다 더 빠른 속도로 2차선에 진입한 것이었다.

여전히 저 거지 같은 도로 주행 트럭의 엉덩이만 봐야하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스포츠카는 속도를 높이기 위해 날렵한 선형의 구조를 가진다.

그에 반해 저 트럭은 어떤가?

그냥 트럭이다.

이 정도 속도를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그런지, 자세히 보면 트럭이 조금씩 진동하고 있는 게 보였다.

속도는 높은데 공기 저항을 효율적으로 흘려 내지 못하니, 차체가 불안정한 것.

그 모습을 본 신준현이 놀람을 가라앉혔다.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계기판을 보니 150km밖에 되지 않았다.

그의 애마가 낼 수 있는 속도는 고작 이 정도가 아니다.

‘트럭이 날 가려 주니까 공기 저항도 덜 받고 있어. 여유가 나면 단숨에 추월한다!’

이 경우에는 전혀 통용되는 말이 아니지만, 꼴에 F-1 레이싱 좀 관람한 신준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부르르르릉-!

부아아아앙-!

한 대의 트럭과 한 대의 스포츠카가 도로를 질주했다.

* * *

일요일 오전이라 도로에는 차가 별로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어휴, 저 미친놈들.”

4차선에서 평균적인 고속도로의 속도로 달리고 있던 중년 남성이 혀를 찼다.

후방에서 들려오는 굉음을 듣자하니, 또 겁 없고 돈 많은 놈들이 폭주족 노름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딸내미. 너는 면허 따도 저런 놈들처럼 과속하면 절대 안 돼. 알았지?”

조수석에 앉은 딸아이에게 그런 말을 한 남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그의 딸은 대답이 없었다.

“왜 대답이 없어?”

“아빠…… 나 면허 안 딸래…….”

“응? 벌써 등록도 했잖아. 다음 주부터 학원 가는 거 아니야?”

“저런 걸 내가 어떻게 해…….”

딸의 시무룩한 목소리를 이해하지 못한 남자가 고개를 갸웃하는 순간.

자신을 지나쳐 달려가는 두 대의 차가 있었다.

한 대는 검은 색의 날렵한 스포츠카.

또 한 대는.

“…….”

도로 주행이라고 적힌 운전면허 학원의 자동차.

정부에서 운전면허 취득을 어렵게 만든다고 떠드는 걸 여러 번 들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어려운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던 중년 남성은 곧 이성을 되찾았다.

저딴 게 시험 코스일 리가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마 운전면허의 강사가 급한 일이 있어서 수직로로 트럭을 모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트럭이 저 속도로 달릴 수가 있나?’

* * *

“하, 학생! 제발!”

운전면허 학원의 강사가 벌벌 떨었지만 그는 섣불리 보조석의 브레이크를 밟지 못했다.

속도가 너무 빠르다.

지금 브레이크를 밟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손잡이를 꽉 움켜잡은 강사는 계기판을 확인했다.

시속 80km.

말도 안 된다.

이 속도는 80km가 절대 아니었다.

아무래도 속도를 표시하는 계기판이 고장 난 모양이었다.

당연했다.

자동차 계기판에 있는 속도계는 바퀴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속도를 측정하는데, 진유성은 강제로 바퀴를 굴리고 있었다.

처음에 진유성은 자동차의 엔진을 내공으로 돌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도로 주행용 트럭이 이 정도의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엔진의 RPM을 높이는 것보다 바퀴를 직접 굴려 버리는 게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들어가는 내공의 양만 따지면 RPM을 높이는 게 낫지만, 실제 반영되는 속도는 바퀴를 굴리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제법이군.”

진유성이 백미러를 응시했다.

뒤를 따라오는 스포츠카는 아직도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어떻게든 추월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승부처가 들어온다.

속도 단속 구간.

최고 속도가 120km로 제한되는 구간 단속이라고 무조건 120km 이하로 달리는 게 아니다.

구간 단속은 구간에 진입하는 속도와 빠져나오는 속도를 체크해 평균 속도를 측정하는 시스템.

순간적으로는 시속 120km 이상을 얼마든지 달릴 수 있다.

진유성이 구간 단속에 맞춰 속도를 늦추기 시작하자, 놈도 속도를 늦추는 게 느껴진다.

암묵적인 약속을 한 것이었다.

구간 단속이라는 규칙 안에서 승부를 보자고.

게다가 수직로의 구간 단속은 아주 철저하다.

구간 단속을 과하게 어기면 수직로를 이용할 수 없게 되고, 무단으로 이용하면 면허가 취소된다.

진유성은 이러한 사실까지는 몰랐지만, 암묵적인 약속을 믿었다.

여기서부터는 머신의 성능보다 드라이버의 실력이 우선된다.

단속 구간에 접어드는 순간, 스포츠카가 왼쪽으로 차선을 변경하는 게 느껴진다.

진유성은 의아함을 느꼈다.

여기서 변경하면 자신을 추월할 방법이 없다.

왼쪽 차선에는 스포츠 SUV가 달리고 있었는데, 자신이 SUV와 동일하게 달리면 추월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은 좌측 차선을 내주었다.

하지만 그건 그의 실수였다.

진유성이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건, 이 앞에 좌측으로 완만한 경사가 진 코너가 있다는 것이었다.

완만하다고는 하나, 인코스가 아웃코스보다 주행 거리가 짧은 것은 당연한 사실.

경사가 끝나는 순간, 따라잡힐 수 있다.

‘노련하다……!’

진유성은 내공으로 속도를 가지고 놀 수 있었지만, 상대는 수직로를 수도 없이 드나든 놈이었다.

물론 사고가 날 것까지 감안하면서 끼어들면 진유성을 추월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런 방식의 우격다짐은 자신의 패배를 의미했다.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은 두 눈을 크게 떴다.

“간다! 제로의 영역……!”

진유성의 감각 인지가 넓어졌다.

만화에서처럼 주변 광경이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 효과는 만화에서 나오는 것과 동일했다.

스포츠 선수들은 종종 플로우 현상에 빠지곤 한다.

플로우 현상이란 집중력이 극에 달해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걸 뜻했다.

그리고 진유성은 그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상단전을 자극해 생사결의 상태로 빠져드는 것이었다.

정보가 들어온다.

도로 위의 수많은 운전자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이 된다.

그 순간, 진유성의 곡예가 시작되었다.

“으아아아!”

운전 강사의 비명소리를 BGM 삼아 진유성의 차가 파고든다.

절묘한 속도 컨트롤이었다.

10으로 달리는 차는 11의 속도로 추월하고, 11로 달리는 차는 12의 속도로 추월한다.

아슬아슬하지만, 안전하다.

진유성은 구간의 평균 속도를 시속 120km 이내로 유지하면서 수많은 차량을 추월했다.

수직로에 들어오고 처음으로 신준현과 진유성이 서로 다른 차선을 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 사이, 신준현은 거지같은 트럭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그가 1차선으로 들어설 때, 트럭은 3차선으로 들어섰다.

그 뒤로는 이런 저런 차들 때문에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자신은 상위 차선의 인코스로 들어왔다.

하위 차선의 평균 속도가 느리다는 걸 생각해 보면, 드디어 따돌린 것이다.

마침내 신준현의 눈앞에 구간 단속의 끝이 다가왔다.

트럭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그렇다는 것은 자신이 이겼다는…….

“……!”

신준현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커다란 독일제 차량 앞을 달리고 있는 도로 주행용 트럭이었다.

그때였다.

운전석의 창문이 열리더니, 길쭉한 손이 튀어나왔다.

검지를 곧추 세운 손가락이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린다.

‘넌 나한테 안 돼.’

그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패배감에 울컥한 신준현이 발작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얼굴이라도 보여 줘! 개새끼야!”

하지만 신준현은 끝끝내 도로 주행 트럭 운전자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뒤꽁무니만 쫓아다닌 패배자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는듯이.

* * *

수직로의 갓길에서 촬영 장비를 세팅하던 VBM 뉴스 취재팀이 촬영 준비를 하며 그런 잡담을 나눴다.

“선배님, 여기 너무 무서운데요.”

“무섭긴 뭐가 무서워. 수직로가 대한민국 도로 중에서 사고율이 제일 낮은데.”

“대신 한 번 사고가 났다 하면 전부 사망 사고 아닐까요?”

“그렇지도 않을걸? 의외로 사망 사고율이 되게 낮아. 원래 사고라는 게 어쩔 수 없이 벌어지는 건 소수고, 대부분 부주의로 일어나니까.”

“아, 수직로에서는 부주의가 없나 보군요.”

“너 같으면 시속 150 넘게 때려 밟는데 딴짓하겠냐?”

하지만 실제로 오늘 그들이 촬영할 내용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수직로의 위험성과 부조리에 대해 토로하는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현 정부와 반대 노선을 타는 방송국의 데스크에서 요구한 것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그렇게 촬영 준비를 끝낸 그들은 지나다니는 자동차의 시속이 가장 빠른 1차선의 갓길에서 촬영을 시작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아우토반인 수직로는 혹시 모를 사고를 대비해서, 차선의 양쪽에 아주 넓은 여유 공간들이 있었다.

이 여유 공간에서 뉴스 보도 자료에 들어갈 내용들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수직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의 속도는 시속 200km를 웃돕니다. 하지만 서민들이 애용하는 차량의 90% 이상은 시속 150km를 초과한 상태에서 테스트를 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부아아앙!

“결국 대한민국 최초의 아우토반, 수직로를 안정적으로 이용하는 이용자들은 수입 스포츠카를 탈 수 있는 고소득 계층입니다.”

부아아앙!

“정부는 도로의 특수성을 이유로 수직로 이용 요금을 대폭 인상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만, 전문가들은 역차별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습니다.”

부아아아앙!

“수직로를 요금에 맞춰 이용할 수 있는 이용 계층은 고소득자로 한정된다는…….”

뉴스 취재팀은 만족할 만한 성과를 가지고 돌아갔고, 다음 날 8시 뉴스에 이 같은 내용을 방송했다.

하지만 그들의 뉴스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반도의 흔한 뉴스 조작.avi]

└시바 존나 웃기네.

└어디 도로에서 외제차들 불러서 대충 촬영하고 배속 돌린 거 아니냐ㅋㅋㅋ 자동차들 존나 쌩쌩 지나가네ㅋㅋㅋ

└님들 왜 웃는 거임? 난 뭐가 웃긴지 모르겠는데??

└영상 보면 도로 주행 연습용 차량 지나가는 거 보임ㅋㅋ

└아, 이제 봤네요ㅋㅋㅋ 이 새끼들 존나 뉴스 날로 찍네ㅋㅋㅋ

└수직로가 아니라 날로인 듯.

└노잼.

└미친놈들. 수직로에 운전학원 차가 왜 지나다녀. 그것도 젤 빠른 4차로에.

└캬, 우리나라 뉴스 CG 기술 많이 발전했네. 차 지나갈 때마다 기자 머리카락 흔들리는 거 보이지?

└수신료를 처먹었으면 CG라도 발전해야지. 고럼고럼.

└이거 중국반응 존나 웃김. 이번에 중국 블록버스터 영화 CG가 발퀄이라 존나 욕먹었는데, 다음부터는 한국의 뉴스 팀에다가 맡기라고ㅋㅋ

└K-CG는 못 참지.

└발암이네. 이딴 게 언론이라고.

└국민의 암 권리.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VBM 뉴스 데스크 일동.

물론 VBM 취재팀은 억울했다.

논란이 발생하고 수십 번이나 원본 영상을 돌려 봤지만, 운전면허 취득용 트럭은 실존했으니까.

심지어 해당 영상은 여론에 분노한 VBM 사장에게까지 전달이 되었고, 사장도 할 말을 잃었다.

방송국은 이 사실을 대중들에게 공개하진 못했지만, 소문은 알음알음 방송가에 떠돌아다녔다.

방송국 N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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