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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68화 (268/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68화>

Quest 42. 달리는 천마님

상소윤처럼 게이트 발발 이후에 태어난 세대에게 게이트는 당연한 것이며, 불필요한 것이었다.

당연하다고 표현하는 건, 태어날 때부터 세상에 게이트가 존재했으니까.

불필요하다고 표현하는 건, 그런 게이트가 백해무익하니까.

사실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 게이트란 존재는 득 될 것이 하나도 없는 놈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좀 있어서 게이트 사태 이전의 사회를 기억하는 이들은 게이트가 완전히 무가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게이트는 오염된 자연 환경을 꽤 많이 복구시켜 으며, 가속도가 붙던 환경 파괴를 막았다.

대한민국에 뚜렷한 사계절이 돌아온 이유도 게이트 덕분이고, 석유와 석탄의 소모량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도 게이트 덕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이트는 도시의 형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서울처럼 인구 밀도가 높고, 급격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도시들은 보통 그 형태가 개판이었다.

하지만 게이트 사태 이후 한국 정부는 도시 재건에 많은 공을 들였다.

복구 사업이란 게 파괴된 지역만 손보는 게 아니다.

필연적으로 연결된 지역들도 손을 댈 수밖에 없는데, 한국은 국가 차원에서 계획도시에 공을 들였다.

그 시작이 초기 게이트 폭주 지역이었던 강남을 성공적으로 재건한 상림의 LF 건설이었고.

아무튼 이런 이유로 서울의 도로는 과거와 비교하면 운전하기 편한 환경이 되었다.

정부는 내친김에 운전면허 획득 과정을 어렵게 만들어서 교통사고 발생률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고.

그리고 지금.

이 같은 변화를 겪은 서울의 도로에 출사표를 던진 이가 있었다.

고려의 왕자 시절부터 따지면 승마 경력은 120년이 넘지만, 운전 경력은 전무한.

진유성이었다.

* * *

지종수에게 천벌을 내렸던 생일 다음 날, 진유성은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다.

드디어 다가온 오늘이 운전면허를 획득하는 첫 번째 과정인 필기시험 날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원래는 이렇게 생일이 지나자마자 운전면허 시험을 볼 수는 없었다.

시험 신청하고 날짜를 기다릴 수는 있겠지만.

하지만 진유성에게는 든든한 뒷배가 네 명이나 있었다.

첫 번째 뒷배는 상림이었다.

“필기시험이요? 도로교통공단에 힘 좀 써 볼까요?”

“친한 이가 있느냐?”

“당연하죠. 제가 일하는 분야가 건설 쪽인데.”

“하거라.”

두 번째 뒷배는 JC 그룹의 김정철 회장.

“내일 시험을 보게 해 주면 된다는 건가?”

“네.”

“그럼 ‘JC하세요’라는 편의점 카피라이팅 좀 내려 주면 안 될까?”

“놉.”

세 번째 뒷배는 KSG의 한지후 본부장.

“그런 쪽으로는 힘을 발휘해 본 적이 없는데…… 한번 해 보겠습니다.”

마지막 뒷배는 아놀드 벡.

“What?”

“한국말로 안 해?”

“제가 한국의 운전면허 시험 과정에 어떻게 개입합니까?”

“못해?”

“하려면 할 수야 있겠지만……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요? 저를 통해 마스터를 역추적한다던가.”

“그리핀놀드에 10점 감점.”

“What?!”

이런 과정을 통해 진유성은 당당하게 운전면허 시험을 보게 된 것이었다.

물론 진유성은 불법을 싫어하기 때문에 시험 결과 자체는 공정하게 진행해 달라고 했다.

자신이 들어간다고 누군가의 시험 일정이 뒤로 밀리는 것도 아니다.

그저.

‘뭐야, 왜 홀수 인원이지? 누가 실수했나?’

고개를 갸웃한 감독관이 마지막 순번의 두 남자를 쳐다보며 말했다.

“진유성 씨랑 이정후 씨는 컴퓨터 모니터랑 의자를 틀어서 서로의 화면이 안 보이도록 해 주시겠어요?”

원래 필기시험을 보는 인원에 한 명을 더 집어넣은 것뿐이었다.

이어서 진유성은 감독관의 지시에 따라 시험 응시에 활용될 컴퓨터의 마우스와 키보드가 잘 입력되는지를 확인했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지잉 하고 울었다.

지종수의 메시지였다.

-야 이 미친놈아! 우리 아빠 번호 어떻게 알았냐고!

상림의 핸드폰에서 찾았다.

대정고의 학부들끼리는 교류가 잦으니까.

-욕해서 미안해. 혹시 우리 아빠 좀 같이 만나 줄래?

싫다.

-아니면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가 너한테 있는지만 알려 줄래?

안 알려 준다.

-너한테 있잖아! 이 또라이 자식아!

자신한테 있긴 했다.

줄 생각은 없지만.

연신 울리는 지종수의 메시지를 씹은 진유성이 핸드폰을 껐다.

이제 시험이 시작할 시간이었다.

상림의 말에 따르면 운전면허 필기는 상식으로만 풀어도 합격한다고 했다.

어려운 문제들이 좀 있지만, 어차피 커트라인인 70점만 넘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진유성에게는 보통 사람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뛰어난 오성과 공간 인지 능력이 있었다.

타인이 운전해주는 차를 많이 타 봤기 때문에 도로 위에 있는 지형과 지물들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쉽군.’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문제를 풀었고, 시험장에서 가장 빠르게 밖으로 나온 사람이 되었다.

굳이 내공을 쓰지 않아도 정보를 인지하는 시간이 보통 사람보다 수십 배는 빠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진유성은 상림에게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교주님. 도로교통공단 쪽 친구한테 연락이 왔는데요.”

“오, 그래. 벌써 다음 일정을 잡아 준다더냐?”

“그게 아니라. 그, 시험에 낙방하셨다고…….”

“뭐?”

“실제 운전에 필요한 문제는 다 맞히셨는데, 보복 운전 같은 운전 태도와 소양 쪽이 미달이라서 정말 아깝게…….”

상림은 진유성의 비위를 건들지 않기 위해 조심했지만, 이미 늦었다.

“태도? 소양? 미달?”

“아니, 그건 제가 쓴 단어가 아닙니다. 친구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긴…….”

“천마신교 백오십 번째 교리! 천신을 모욕하는 말을 들었을지언정, 그 말을 천신에게 옮기지 않는다!”

상림은 저도 모르게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상림이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세 번째 교리까지였다.

나머지 교리들은 주씨 황가를 억누르기 위해, 중원을 통치하기 위해 그때그때 필요에 의해 만든 것이다.

게다가 진유성이 언급하는 교리의 대부분은 상림이 중원을 떠난 이후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니 백오십 번째 교리를 알게 뭐냔 말이다.

게다가 이번 교리는 진짜 말도 안 된다.

중원에 진유성을 욕하는 사람이 왜 없겠냐만, 그 말을 진유성에게 직접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상림이 떠나고, 멀더와 신주청이 죽은 이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니 저런 교리는 실존할 리가 없었고, 진유성이 방금 지어낸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진유성의 포악한 눈동자와 공간을 가득 채운 기운을 마주하고 있으니 차마 그런 말을 꺼낼 수가 없다.

게다가 진유성이 천천히 다가온다.

그때 구원자가 등장했다.

“뭐해? 둘 다 내려와. 엄마가 과일 먹으래.”

상소윤이 진유성의 방에 나타난 것이었다.

진유성의 기운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어서 기감도 읽지 못했던 상림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간 경험을 통해 진유성이 상소윤이나 유혜연의 앞에서는 직접적인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이고, 과일이 식으면 안 되지. 빨리 가자.”

“과일이 식기도 해?”

“그럼.”

나오는 대로 뱉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순간.

상림은 알 수 없는 어떤 기운이 자신의 몸을 스쳐 지나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기운이 쭉 빠진다.

진유성과 비하면 하잘것없다지만 상림도 절정의 고수였다.

당연히 신체란 소우주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고, 소우주의 균형이 흐트러지면 이상함을 발견한다.

상림이 재빨리 기운을 소주천했다.

한데…….

회음혈로 근처에서 내공의 흐름이 급격히 느려진다.

‘서, 설마!’

회음혈은 사타구니 아래에 있는 혈도이자, 급소인 사혈이다.

본래 사혈은 점혈할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진유성은 일전에 편의점주의 회음혈을 점혈한 적이 있었다.

바로 지금처럼.

“교……!”

벌컥 소리를 지르려던 상림이 멈칫했다.

차마 소윤이 앞에서 회음혈 어쩌구를 말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자 진유성의 전음이 날아왔다.

[내일, 다시 필기시험을 볼 터이다. 그때까지 내가 준 것을 거둬들이마. 대머리 고자.]

* * *

다행스럽게 상림은 능력이 있었다.

진유성의 첫 번째 필기시험 응시 기록을 없애 버리고, 새롭게 필기시험에 응시하는 것을 성공한 것이었다.

사실 이런 행위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진유성 앞에서는 맨날 구박만 받고 있지만, 상림의 LF 건설은 건설업계에서 입지전적인 회사다.

모두가 절망과 비탄에 빠져 있을 때 홀로 일어난 창업주.

게이트 폭주로 폐허가 된 강남 일대의 재건 사업을 따낼 때, 상림이 정부 부처의 장관들 앞에서 한 말은 아직도 전설로 남아 있었다.

“3년 안에 강남에 게이트가 생긴다면 공사 대금을 100% 반환하겠습니다.”

“돈을 들고 해외로 도피하지도 않을 겁니다.”

“출국 정지를 걸어 놓고, 3년 동안 국정원이 절 감시하십시오.”

상림은 게이트란 기물을 알지 못했지만, 기운의 흥망성쇠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다.

막대한 폭주가 일어났다면, 기운의 양은 쇠(衰)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은 성(盛)해야 자연스럽다.

그렇게 상림은 절망의 시대에 나아가는 횃불이 되었고, 그 결과 전설로 남았다.

실제로 국내외 건설 컨퍼런스에서 LF 건설의 시작에 대해서 다루는 곳이 많다.

위기 속의 기회를 완벽히 실천한 인물이니까.

상림이 바뀐 정권에 로비를 하고, 아부를 했다면, LF 건설은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건설사가 될 수도 있었다.

이처럼 상림에게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를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어찌됐든 상림이 그의 하반신을 위해 모든 역량을 동원한 결과.

진유성은 다음 날인 일요일에 다시 필기시험을 보게 되었다.

그날 아침.

시험을 보러 떠나는 진유성을 상림이 간절히 붙잡았다.

“왜 그냥 가십니까? 점혈은 풀어 주고 가아죠.”

“붙으면 풀어 주겠다.”

“아니, 그런 게 어딨어요?!”

“여기 있다.”

“교주님, 그러지 마시고 커닝을 하시죠.”

“어허! 어찌 그런 일을 한단 말이냐.”

“상대 평가라서 순위가 매겨지는 시험이면 커닝을 하면 안 되죠. 누군가가 피해를 보니까. 하지만 이건 그냥 70점만 넘으면 되잖아요?”

“…….”

“실제 운전에 관련된 문제는 교주님이 푸시고, 운전자의 태도에 대한 문제만 참고하시면 어떨까요?”

“허흠.”

상림은 헛기침을 하는 진유성을 보며 자신의 유혹이 먹혀들었다고 생각했다.

진유성은 본인 입으로 불법을 저지르는 걸 싫어한다고 하지만, 상림이 보기에는 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누군가 피해를 입는 걸 싫어하는 것이었다.

중원에 있을 때 법을 지키지 않는 이들로 인해서 민초들이 피해를 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피해를 보는 이가 없다.

아마 진유성은 유혹에 넘어갈 것이었다.

그때 좋은 생각이 든 상림이 쐐기를 박았다.

“교주님, 그 뭐야. 나뭇잎 마을 닌자들 나오는 만화 보셨죠?”

“당연히 봤다. 그래서 내가 도윤이의 이름을 상타치로 하고 싶었던 것 아니냐.”

“혹시 교주님도 백안 쓸 수 있습니까?”

나루토란 만화에는 백안으로 시험을 커닝하는 장면이 나온다.

상림은 면죄부를 준 것이다.

네가 하는 것은 컨닝이 아니라 코스프레라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커흠, 다녀오마.”

진유성이 뒷짐을 지고 집을 떠났다.

상림은 진유성이 시험에 합격해서 돌아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날, 진유성은 고사장에서 쫓겨났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진유성을 본 감독관이 화들짝 놀라서 119에 전화를 한 것이었다.

아차 싶어서 눈동자를 원래대로 돌렸지만, 자신이 감독 중인 응시자에게 문제가 생기는 걸 원하지 않는 감독관 때문에 귀가를 해야만 했다.

“아니, 그게 말이 백안이지. 진짜로 눈을 뒤집으면 어쩝니까!”

“보인다……!”

“뭐, 뭐가요?”

“네가 평생 고자로 사는 게……!”

“아, 교주님!”

결국 상림의 하반신이 제 기능을 찾은 것은, 진유성이 세 번째 시험 만에 필기를 합격한 뒤였다.

질릴 대로 질린 상림은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진유성이 실기 시험은 한 번에 붙게 해 달라고.

하지만 상림은 자신의 실수를 깨닫지 못했다.

천마신교는 모시는 신이 없고, 신도들은 교주인 진유성에게 기도를 올린다.

즉, 상림은 진유성이 정신 차리기를 진유성에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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