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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66화 (266/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66화>

* * *

“야, 진유성. 담임한테 늦는다고 말했냐? 내가 해 줘?”

상소윤의 말에 아들을 품에 안은 유혜연이 씁, 하는 소리를 내며 눈을 부라렸다.

“상소윤. 선생님한테 담임이 뭐야?”

“아, 맞다. 담임 선생님.”

“쯧쯧, 군사부일체란 말도 모르느냐? 어찌 스승님을 그리 함부로 부른단 말이냐?”

“아, 뭐래. 너도 맨날 담임이라고 부르면서.”

“난 그래도 된다. 담임은 내 인생의 절반도 살지 않았으니.”

“아, 그래서 뭐. 말해줘?”

“시간 봐서 문자를 보낼 것이니 신경 쓰지 마라.”

그때 택시가 도착했고, 상도윤을 품에 안은 유혜연이 뒷좌석에 타고, 진유성이 조수석에 올라탔다.

택시가 떠나고, 상소윤은 시계를 확인했다.

7시 45분.

평소 8시 40분까지 등교하던 걸 생각하면 되게 애매한 시간이다.

집에 들어가서 쉬다가 등교하자니 다시 나오기가 귀찮을 것 같다.

결국 상소윤은 이왕 씻은 김에 일찍 등교하자며,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서 대정고로 향했다.

이처럼 진유성과 상소윤이 따로 움직이는 이유는, 간밤에 상도윤의 몸에 열이 심하게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체온을 잰 유혜연이 깜짝 놀랄 정도의 고온이었는데, 막상 상도윤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신을 걱정스럽게 보고 있는 엄마의 표정이 재밌는지 방긋방긋 웃기까지 했다.

놀란 유혜연이 인체에 해박한 진유성을 불렀고, 진유성은 깜짝 놀라더니 알아듣기 힘든 소리를 했다.

상도윤이 자신의 내공에 영향을 받은 것 같다며.

‘삼화, 삼화 뭐랬는데?’

상소윤이 잠시 기억을 더듬어봤지만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아무튼 나쁜 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아주 좋은 일이라고 했지.

그래도 지속적으로 열이 오르는 건 좋지 않으니, 날이 밝으면 병원에 가자고 했다.

내공에 대해 모르는 의사가 잘못 판단할 수도 있으니 함께 가자고.

그래서 유혜연과 진유성이 이른 아침부터 병원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상소윤은 기억하지 못했지만, 진유성은 상도윤이 삼화취정을 이룩했다고 말했다.

삼화취정(三花聚?).

운기조식 중 머리 위에 3개의 꽃봉오리가 피어오르는 드높은 경지.

실제로 꽃이 피어나는 건 아니었다.

중원의 호사가들이 그 정도로 신비로운 경지라고 빗대어 부르다가, 비유가 실제처럼 와전된 것뿐이었다.

삼화취정에서 말하는 세 개의 꽃은 심, 기, 체다.

흔히 절정 무인이 심기체를 일치시켰다고 하지만, 이는 완벽한 일치는 아니다.

중원의 길고 긴 역사 속에서 완벽히 심기체를 조화시킨 사람은 백 명이 채 넘지 않을 것이니.

그러나 태아 때부터 진유성 내공의 영향을 받은 상도윤은 자연스럽게 심기체를 일치시켰다.

사람은 사회화가 되면 마음(心)이 오롯이 자신의 것이 아니게 된다.

사회적인 관습과 규범에 영향을 받는데, 이것은 심기체의 균형을 방해한다.

그러나 상도윤은 본능으로만 움직이는 아기였기에 삼화취정의 경지에 닿은 것이었다.

솔직히 진유성도 좀 놀랐다.

열이 난다고 해서 가 봤는데, 열을 보듬고 있다.

아마 상도윤은 잠깐 추웠던 것 같고, 춥다고 느낀 순간부터 신체가 열을 배출하지 않은 것 같다.

문제는 아직 아기라서 열을 내려서 신체를 적정 온도로 만들어야 한다는 이성이 없다.

“열이 내리라고 가볍게 입히면 안 되겠는데요?”

“그럼?”

“평소보다 조금 따뜻하게 입혀 놓으세요.”

진유성이 손을 쓸 수는 있지만, 그렇게 되면 상도윤의 심기체를 억지로 깨트려야 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해열제를 먹이고, 신체가 스스로 열을 내리도록 유도하는 게 낫다.

해열제 효과를 거부하지 않도록 유혜연이 옆에서 계속 말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일이 발생할 수도 있군.’

갓난아기가 삼화취정의 경지에 올랐다니?

길고 긴 중원 역사 속에서도 이런 일이 기록된 적은 없었다.

엄밀히 따지자면, 상도윤이 특별하다기보다는 진유성이 특별한 것이었다.

어지간한 문파의 장로들도 벌모세수를 한 번 시전하면 최소 20년 치의 내공을 잃는다.

진기수발이 완벽하지 않으며, 기운에 대한 구속력이 약하니까.

그러나 진유성은 거의 내공을 잃지 않는다.

이런 엄청난 내공 구속력과 기운에 대한 통제력으로 돌봐진 게 상도윤이었다.

“그럼 도윤이도 무공의 고수가 되는 거야?”

진유성은 상소윤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지구는 자연스러운 축기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모든 마도사를 소멸시키고 게이트 사태를 끝내면, 결국 내공도 아카샤에 의해 삿된 힘이 된다.

굳이 배울 필요가 없다.

게다가 상도윤은 나이가 들어가며 심기체의 조화를 잃어갈 것이었다.

이것은 일시적인 경지다.

그렇다고 아무런 효과가 없냐면, 그건 절대 아니었다.

무엇을 배워도 남들보다 배움이 빠를 것이며, 그 어떤 몸 쓰는 일에도 남들보다 수월할 것이었다.

어지간한 일에는 의지가 꺾이지 않으며, 타고난 그릇이 넓어져 편협함과 멀어진다.

우연히 도달했다고 하나, 삼화취정은 그 정도로 대단한 경지였다.

상소윤은 진유성의 말을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동생에게 찾아온 일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다행이다. 도윤이는 머리가 박색하지 않아서.’

내심 상도윤도 자신처럼 공부를 못하면 어쩌지 걱정했던 상소윤이었다.

이렇게 되면 상도윤이 아빠의 회사를 물려받고, 자신은…….

“악!”

난데없이 상소윤이 소리를 지르자, 운전을 하던 택시기사가 깜짝 놀라서 클랙슨을 빵 하고 울렸다.

“학생! 무슨 일이에요?”

“너, 너무 자연스럽게…….”

“뭘?”

“박색을…….”

“엉?”

“옮았어…….”

정말 무의식적으로 생각했다.

도윤이의 머리가 박색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상소윤의 절망을 이해 못한 택시 기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운전을 계속했다.

* * *

대정고 정문에 도착한 상소윤이 택시에서 내리며 상쾌하게 기지개를 켰다.

등교할 때는 이르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일찍 오니 기분이 좋다.

그 순간, 낯익은 차가 대정고 정문을 통과했다.

면허를 딴 이후 본인의 자동차로 등하교를 하고 있는 지종수의 차였다.

어딘지 퀭한 얼굴의 지종수가 차에서 내린다.

왼손에 커다란 상자를 들고 있었는데, 딱 봐도 케이크처럼 보였다.

‘진유성 낚으려고 사온 건가?’

생각해보니까 지금까지의 상소윤은 늘 진유성에게 당하는 입장이었다.

당연했다.

상소윤도 연합군에 포함되어 있었는데, 연합군은 늘 패배했으니까.

유일한 승리라고는 볼링장에서 거뒀던 단체 사기 볼링뿐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좀 다르다.

참여자가 아니라 관전자가 된 기분이다.

연합군은 진유성을 공격하려고 하고, 진유성은 사전에 정보를 입수했다.

한데, 진유성이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겠다.

흥미진진하다.

“종수야.”

“어? 소윤아?”

“평소보다 일찍 왔네?”

“그, 어제 잠을 별로 못자서 잠들 것 같아서 바로 왔어.”

상소윤의 등장에 피곤해 보였던 지종수의 얼굴이 환해졌다.

소윤이랑 단 둘이 이야기할 수 있는 찬스는 거의 없으니까!

“그건 뭐야?”

“아, 이거 케이크. 트렁크에 아이스박스 있어서 놔두려고.”

지종수가 자신의 케이크 상자를 보여 주자, 별 생각 없이 쳐다본 상소윤이 감탄했다.

“우와. 이거 뭐야?”

“응?”

“왜 이렇게 예뻐?”

상자의 투명 비닐 뒤로 보이는 케이크가 굉장히 멋지다.

그냥 케이크가 아니다.

요리는 못하지만,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 상소윤은 초콜릿이나 케이크, 쿠키 따위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

이런 건 실패하지 않으니까.

그래서 딱 보니 알겠다.

이 케이크는 어마어마한 정성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거다.

데코레이션도 장난이 아니다.

“진짜 너무 너무 예쁜데?”

상소윤의 감탄에 지종수는 순간 몽롱한 기분이 들었다.

소윤이가 작은 머리를 기울여 케이크 상자를 쳐다보고 있는데, 꿈이 아닌가 싶었다.

“열어봐도 돼?”

“당연하지.”

상소윤이 케이크 상자를 살살 열어 보고는 또 한 번 감탄했다.

퀄리티가 저세상 퀄리티다.

한데, 문득 상소윤의 표정이 묘해졌다.

‘이거 파는 게 아닌데?’

라고 쓰여 있는 글자 라인도 묘하게 좌우가 안 맞고, 데코레이션이 기울어진 부분도 있다.

파는 제품이라면 이런 실수가 있을 리가 없다.

이토록 공을 들인 케이크에 그토록 쉬운 실수가 있다고?

이건 산 게 아니라, 아마추어가 온갖 정성으로 빚어 낸 것이었다.

상소윤은 잠을 못 잤다는 이유로 퀭한 지종수의 눈을 보며 물었다.

“이거 네가 만든 거야?”

“응. 그렇지.”

지종수는 반사적으로 대답하고는 아차 싶었다.

상소윤의 반응이 너무나 좋아서 자신도 모르게 거짓말이 나와 버렸다.

거짓말을 정정하려 했으나.

“그럼 밤새 이거 만든 거야? 잠 못 잔 이유도?”

“그렇지.”

아직 이성보다 감성이 앞서는 사춘기 고등학생이었다.

거짓말을 한 게 찔린 지종수가 화제를 돌리려는데, 정새롬과 심도훈이 나타났다.

“뭐야? 둘 다 일찍 왔네?”

“그러는 너희는? 왜 같이 와?”

“우리는 원래 이 시간에 오는 사람들이니까. 차타고 오는데 심도훈이 걸어오는 게 보여서 태워왔고.”

“근데 그 케이크는 뭐야? 배고픈데 먹어도 되냐?”

심도훈의 말에 지종수가 인상을 썼다.

“당연히 안 되지. 진유성을 위한 건데.”

“아, 오늘이었지. 선물 가져왔냐?”

대정고의 친구들은 진유성에게 줄 진짜 선물을 이미 준비했다.

그러나 지종수에게는 한 가지 미션이 더 있었는데, 진유성을 혼내 줄 때 써먹을 선물을 하나 가져오는 것이었다.

원래는 집에서 아무거나 가져오려고 했다.

어차피 내용물이 중요한 게 아니니까.

한데, 마침 적절한 게 생겼다.

지혜수가 남자친구를 주려고 준비한 선물을 버린 걸 주워 왔다.

누나 성격상 이걸 환불할 리가 없다.

빡쳐서 버렸으니까, 진짜 버린 거다.

“종수야.”

“응? 소윤아. 왜?”

“포장도 네가 한 거야? 엄청 예쁜데.”

원래 거짓말은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그럼.”

“내용물이 뭐야?”

“그, 보석.”

“보석?”

“응.”

사실 지종수도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몰랐다.

누나가 술 먹고 울면서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남성 주얼리인 것 같긴 했다.

“케이크도 만들고, 보석도 준비하고, 힘들었겠다.”

“힘들긴 뭘.”

“포장도 엄청 잘했네.”

“포장이 중요하니까.”

“잠을 못 자서 눈이 퀭해 보여.”

“사실, 밤 샜거든.”

“중요한 날이니까?”

“엄청 중요한 날이니까.”

지종수가 상소윤 앞에서 허세를 부리려 연신 거짓말 퍼레이드를 이어 가는 사이, 세 사람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들이 생각했던 장난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선다.

차라리 어디서 꽃다발을 사왔으면 장난에 진심이겠거니 하겠는데.

손수 만든 케이크와 보석?

도를 지나쳤다.

엄청 수상해 보였다.

‘서, 설마.’

정새롬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서 보면 ‘가질 수 없으면 부숴 버리겠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진유성은 부술 수 없다.

그러니.

‘부술 수 없으면 가져 버리겠다는 건가……!’

세 사람이 자신을 어떤 마음으로 쳐다보는지도 모르는 채.

상소윤의 관심을 받은 지종수의 얼굴에는 마냥 웃음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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