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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64화 (264/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64화>

생각해 보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만약 도윤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자신은 허공에 날아 본 적이 있다고 말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주변 친구들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문제는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상식과 사회의 상식에 괴리가 생기면 성장발달에 좋을 리가 없다.

억울하게 왕따 같은 걸 당할 수도 있고.

“야, 너 이리 와 봐.”

생각을 정리한 상소윤이 상도윤을 안고는, 진유성을 키즈 카페의 구석으로 잡아끌었다.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하고 따라오자, 상소윤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설명했다.

“알아들었지?”

“흠. 무슨 말인지는 알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아, 또 이상한 개똥 논리 들먹이려고 그러지?”

“개똥 논리가 아니다. 중요한 이야기다.”

“뭔데?”

진유성도 잠깐 생각을 정리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렇게 생각해 보자. 만약에 상도윤에게 아무 말도 해 주지 않는다고. 나의 정체도, 상림의 정체도.”

“근데?”

“하지만 평생 속일 수는 없겠지?”

“뭐, 그렇겠지.”

“그럼 네가 생각하기에 어느 시점에 그 비밀을 말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으냐?”

“뭐, 대충 열아홉? 나도 열아홉에 알았으니까.”

“그럼 열아홉에 그 말을 들은 상도윤이 믿을 것 같으냐?”

“왜 안 믿어? 나도 믿었는데. 증거도 보여 줄 수 있고.”

지금 하는 것처럼 상도윤의 몸만 살짝 띄워 줘도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신빙성이 생긴다.

그러나 진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너와 외숙모는 DDP 게이트라는 사태를 통해서 사실을 받아들인 거다.”

“음.”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너의 목숨을, 외숙모 입장에서는 딸의 목숨을 구해 줬기 때문에.”

진유성은 중원에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과 ‘끝’까지 가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끝은 인간관계의 마지막을 의미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꼭 친했던 사람끼리 싸우고, 미워하던 이들이 친해지는 것 같은 극단적인 예시만 말하는 게 아니다.

서로가 늘 한결같은 사이라고 생각하는 관계 속에서도 변화는 있다.

사람과 사람 간에 자연스러운 감정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인간관계가 끝난다는 것은 더 이상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뜻하다.”

“그런 관계가 있나?”

“죽어 버린 사람과 죽지 않는 사람.”

죽어 버린 사람은 사망한 사람을 뜻하는 건 아니라,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힌 사람을 뜻하는 것이었다.

죽지 않는 사람은, 진유성을 외롭고 괴롭게 만들었던 신을 뜻한다.

“신?”

“그래. 난 상도윤에게 신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다.”

“야, 무슨 그런 헛소리를…….”

그러나 상소윤은 진유성의 눈빛을 보고는 말을 잇지 못했다.

고작 19년을 살아온 상소윤이 한 번도 접해 보지 못한 무게였다.

그 순간.

상소윤은 환상처럼 진유성의 뒤로 펼쳐지는 장면을 보았다.

수만, 수억의 사람들이 진유성에게 구원을 바라며 조아리고 있는 모습.

믿음으로 무장한 수억 개의 손이 진유성을 옭아매더니, 마침내 완전히 집어삼키는 모습.

그런 모습이 갑자기 떠오른 것이었다.

그러나 상소윤이 놀란 것은 이것이 상상이라기보다는 환상에 가까운 느낌이라는 점이었다.

‘뭐지……?’

상소윤은 저도 모르게 비틀거리다가 품에 안고 있는 상도윤을 떨어트렸다.

물론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진유성이 아주 가벼운 몸놀림으로 상도윤을 받아 냈으니까.

하지만 진유성의 눈빛에는 옅은 놀람이 있었다.

“상소윤.”

“어? 어, 어. 왜?”

“뭘 보고 공감한 것이냐?”

“어, 그냥 광신도 같은 사람들이 널 둘러싼…….”

“환상?”

“비슷했던 거 같은데…….”

사실 진유성은 상소윤과 유혜연이 보통 사람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원은 무공이 있던 세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의 존재는 너무나 아득해서 사람들이 신으로 여겼다.

이는 단지 진유성이 죽지 않고, 늙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무공의 고수라고 해도, 진유성의 진짜 힘을 목격한 사람들은 몸이 기억한다.

아득히 높은 격과 범접할 수 없는 깨달음이 그 사람의 무의식에 영향을 준다.

우산도의 99명이 정말 진유성에 대한 고마움만으로 모든 비밀을 지키고, 그들끼리 화합했을까?

절대 아니다.

인간은 그리 단순한 생물도 아니고, 고마움을 행동 동기로 삼는 생물도 아니다.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진유성을 경배하게 됐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신을 영접하게 된 사도 집단이 된 셈이다.

본인들은 의식하지 못하겠지만.

물론 상림이나 신주청 같은 경우도 있긴 했다.

상림은 가슴 속에 품고 있던 칼이 너무나 뜨겁고 예리해서 진유성을 경배하지 않았다.

존경하긴 했으나, 신격화를 하진 않았다.

신주청은 유일하게 진유성과 엇비슷한 곳을 바라보는 무인이었기에 이런 부분에서 자유로웠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상림과 신주청뿐이었다.

그 수많은 부하들 중에서 단 두 명.

굳이 꼽자면 멀더까지?

멀더는 진유성을 신으로 여기긴 했지만, 그렇다고 진유성에게 완전무결함을 바라진 않았다.

그러니 손쉽게 진유성을 받아들이고, 진심으로 이전처럼 대하는 유혜연과 상소윤은 특별했다.

대정고의 친구들과 달리 그들은 진유성이 ‘진짜 힘’을 쓰는 걸 목격했으니까.

마술 할 때 장난스럽게 써먹는 가짜 힘 말고, 천지를 파멸시킬 수 있는 진짜 힘.

한데…….

지금 상소윤은 자신의 외로움과 괴로움을 분명히 보았다.

“너 왜 그래?”

“미약하지만 인과율이 움직였다.”

“인과율? 그게 뭔데?”

“원인과 결과를 다루는 힘.”

드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진유성은 페이즈 2의 DDP 게이트에 빨려 들어간 상소윤을 찾기 위해 인과율을 조작했다.

입멸공(入滅功), 최종오의(最終奧義) 생(生), 사(死), 입(入), 멸(滅)을 혼재시켜서.

‘상소윤의 옆에 존재했었던 인과율’에 끼어들었다.

왠진 모르겠지만, 지금 그 인과율이 미약하게 움직였던 것 같다.

‘인(因)이 움직인 것인가? 아니면 과(果)가 움직인 것인가?’

인과율은 신의 영역이라서 진유성도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다.

“뭔진 잘 모르겠는데, 안 좋은 거야?”

“좋고 나쁨으로 평가할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저 놀랐을 뿐.”

“음…….”

“아무튼 난 상도윤이 처음부터 나란 존재를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거기서부터 관계를 맺었으면 좋겠고.”

고려에 있을 때는 어머니, 아버지, 형님들이 왕실의 일원이었다.

혈육의 정보다 우선시 되는 왕실의 법도가 있었다.

생존대원들과 가족처럼 지냈지만, 친애의 정보다 생존이 급했다.

그러니 길고 길었던 130여 년 만에 처음이었다.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 들어온 것이.

상소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언어로 명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진유성의 마음을 얼핏 이해한 것이었다.

둘 사이로 한동안 침묵이 흘렀고, 그것이 깨진 건 상도윤이 ‘우부부부’거리는 소리를 내면서였다.

진유성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 상도윤은 절대 따돌림 같은 걸 당하지 않는다.”

“왜?”

“본래 우두머리는 따돌림 당하지 않는 법이다. 수컷 무리에서 우두머리가 무엇이겠느냐?”

“설마 주먹?”

“바로 맞혔다. 무공을 전수할 생각은 없지만, 제 한 몸 건사할 체술은 가르칠 수 있겠지.”

“타고난 힘이 약할 수도 있잖아.”

“체술은 힘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벌모세수로 근골을 만져 줬으니 튼튼하게 자랄 수밖에 없다.”

“아, 맞다. 벌모세수.”

벌써 며칠째 벌모세수를 해 달라는 상소윤의 징징거림이 다시 시작하기 전에, 진유성은 냉큼 상도윤과 함께 키즈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야, 어디가!”

“키즈 카페에 온 본연의 목적을 찾을 때다.”

상소윤의 징징거림을 듣는 것보다는 상도윤과 노는 것이 즐겁다.

그렇게 진유성은 상도윤과 함께 키즈 카페의 시설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오늘 그들이 방문한 곳은 압구정에서 유명한 초대형 키즈 카페였고, 그 안에서도 만 3세 이하만 입장할 수 있는 에어리어였다.

만 3세 이하는 혼자 놀게 두기 불안한 나이였기에 모든 아이들이 보호자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미끄럼틀 같은 경우도 보호자가 아이를 안고 탈 수 있게 큼지막했고.

아이들의 보호자 중에는 부모도 있었고, 키즈 카페에 알바생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모두 똑같은 공통점이 있었는데, 무척이나 피곤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원래 아이들과 놀아 주는 게 보통 일은 아니었다.

처음 잠깐은 즐거울 수 있어도 30분만 넘어가도 피곤하다.

게다가 아이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보호해야 하는데 오죽하겠는가.

그러나 단 한 명.

“오호.”

“뷰아!”

“나쁘지 않군. 하지만 이건 끝이다. 이제 저걸 타 보도록 하자.”

“뷰부부!”

“싫다. 난 저게 타고 싶다.”

“아우어어!”

“싫어도 견뎌라. 어차피 너 혼자서는 탈 수 없는 기구이니라.”

진유성은 아주 신이 나 보였다.

그는 지구의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걸 좋아했는데, 놀이터는 오늘이 처음이었다.

물론 이런 단순한 시설들은 금방 질리겠지만, 일단 지금은 아니다.

꽤 재밌다.

진유성이 어찌나 재밌게 노는지, 키즈 카페에 방문한 고객 중 몇 명이 ‘저 직원한테 아이를 맡길 수는 없나요?’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진유성이 어려 보이니 보호자가 아니라 직원이라고 착각한 것이었다.

그사이, 상소윤은 상도윤 못지않게 신이 난 진유성을 보며 인지 부조화가 찾아왔다.

분명 잠깐 전에 진유성과 아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저딴 모습을 보고 있으니 혼란하다.

그러나 혼란함은 잠시였다.

뭔가를 즐기고 있는 진유성을 보고 있으면 큰 생동감이 느껴졌다.

같은 행위를 즐겨도 진유성이 하면 몇 배는 재밌어 보였다.

어쩌면 그게 아주 긴 삶을 견딘 진유성의 노하우일 수도 있었고.

결국 상소윤은 진유성과 상도윤이 놀고 있는 느릿느릿 돌아가는 유아용 로데오로 뛰어갔다.

“야! 같이 놀아!”

* * *

신나게 놀고 잠이 든 상도윤을 품에 안은 채, 진유성과 상소윤은 집으로 향했다.

오늘 방문한 키즈 카페는 진유성과 상소윤이 아르바이트를 했던 편의점 근처에 있었다.

즉, 집까지 걸어갈 만한 거리라는 것이었다.

“우리 일했던 편의점은 결국 없어졌네?”

“JC 편의점이 JC 해 버렸지. 아, 그러고 보니까 그 얘기를 안 했구나?”

“뭘?”

“JC 편의점의 주인이 나다.”

“음? 네가 저 편의점을 차렸단 말이야?”

“스케일이 작구나. JC란 브랜드 자체가 내 것이란 말이다.”

“……진짜?”

“그러하다.”

믿기 힘든 소리였지만, 상소윤은 진유성이 장난칠 때 빼고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아니, 장난치는 건가?’

상소윤이 고개를 갸웃하다 물었다.

“왜?”

“어…….”

생각해 보니 그 얘기를 하려면 편의점주가 상소윤을 두고 했던 불쾌한 이야기들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냥 차렸다.”

“그냥이 어딨어?”

“돈이 너무 많이 남아서 차린 것이지.”

“야, 그렇게 돈이 많으면 나한테 빌려준 거 가지고 생색 좀 내지 마.”

“웃어라.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

“……?”

진유성은 그렇게 이야기를 얼버무렸고, 상소윤도 더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진유성이 모르는 것이 있었다.

JC 편의점이 진유성의 것이라는 걸 듣는 순간, 상소윤이 전후 사정을 대충 파악했다는 걸.

분명.

“어, 왜.”

-혹 편의점주가 남자로서 마음에 드느냐?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아! 엄마! 아파!”

다짜고짜 날아온 진유성의 전화에 상소윤은 공공장소에서 욕을 했다고 유혜연에게 얻어맞았다.

“너 때문에 맞았잖아!”

-이제 출근할 필요 없다.

그리고 상소윤은 더는 편의점으로 출근하지 않았고, 며칠 뒤에 JC 편의점을 보게 되었다.

그때 정새롬과 지나가면서 이런 대화도 했었다.

“와, 바로 옆에 경쟁 편의점을 차렸네?”

“그러게? 저건 둘 중 하나는 죽자는 건데?”

종합해 보자면 진유성은 편의점주에게 화가 나서 JC 편의점을 차린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화는 자신 때문에 난 것 같고.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던 남자들 중에는 거절을 당하면 뒤에서 욕을 하는 찌질이들도 있었다.

아마 편의점주도 그런 놈들 중 한 명이고, 진유성이 그걸 들은 게 아닐까?

그러나…….

기분이 나쁘지 않다.

편의점주의 행동 같은 건 하나도 신경 쓰이지 않으니까.

“짜식.”

“무엄하구나. 어찌 머리를 쓰다듬는단 말이냐?”

“앙칼지긴.”

“……내 평생 처음 들어보는 표현이다.”

“나도 박색하다는 말 너한테 처음 들었거든?”

“그건 미안하게 됐다. 내가 진심을 잘 숨기지 못하는 편이라.”

“야!”

여름과 가을 사이의 선선한 어느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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