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60화 (260/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60화>

* * *

마도사들의 둘째, 로스차일드는 칠흑보다 어두운 어둠 속에 있었다.

본래 마도사들이 품은 어둠은 깊이 침잠되어 아득히 고요하나, 동시에 모든 걸 집어삼킬 정도로 흉포했다.

보통의 인간이 그 어둠 속으로 들어오면 정신 착란을 일으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지금.

로스차일드가 품은 어둠은 평소와 달랐다.

이는 로스차일드가 혼란에 빠져 있기 때문이었다.

‘뭔가 이상하다.’

본래 마도사들은 세쌍둥이가 아니다.

태아 상태의 첫째는 너무 강대한 힘을 가졌기에 신체가 성장하기 전에는 힘을 쓸 수가 없었다.

그래서 둘째와 셋째를 만들어 냈다.

스스로를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선택한 분화.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둘째는 언제나 불안함이 있었다.

첫째가 그의 마도 코어를 걷어 가는 순간, 존재가 소멸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그래서 신주청과 격을 섞는 도박수를 통해 첫째에게서 독립을 꿈꾼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차일드는 자신이 첫째에게서 완전히 독립했다는 확신을 갖지 못했다.

별개의 존재로 재탄생한 것은 맞다.

하지만 첫째가 자신의 마도 코어에 약간의 영향력만 끼칠 수 있어도, 그는 절대 첫째를 이길 수 없다.

그게 두려운 것이었다.

한데…….

첫째가 사라졌다!

아포칼립스의 시작이자 페이즈 2의 시작이었던 DDP 게이트 이후, 첫째의 행적이 묘연했다.

수백 개의 하위 차원을 통과한 흔적은 있지만, 존재의 흔적은 없다.

하지만 다른 흔적이 있다.

중원의 절대자 진유성과 충돌한 흔적.

‘설마…….’

진유성이 첫째를 소멸시켰을까?

진유성이 셋째를 소멸시키긴 했으나, 셋째와 첫째는 그 격이 달랐다.

그러니 로스차일드는 첫째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소멸당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혹시 아카샤가 첫째를 추방한 것일까?

아니면 새로운 존재가 그들이 만든 판에 등장했을까?

첫째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모습을 감춘 건 아닐까?

로스차일드는 진실을 알 수 없었기에 불안해하고 있었다.

첫째가 모습을 감춘 지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는데도 말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누군가 걸어 들어왔다.

로스차일드는 일순간 깜짝 놀랐지만, 이내 진정했다.

지구에서는 월성이란 이름을 쓰고 있는 신주청이기 때문이었다.

훅-

신주청이 등장하자 어둠이 밀려났다.

이는 로스차일드가 신주청을 해할 의도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둠이 신주청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지?]

“네 격이 떨어졌다.”

[뭐?]

“너와 나는 격을 섞었다. 네 격이 떨어지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다.”

[내 격이 떨어졌다고……?]

“설마 몰랐나? 몹시 인간스럽군.”

로스차일드는 신주청의 말을 듣고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꼈다.

신주청의 ‘인간 같다’는 말에 담긴 뜻을 알기 때문이었다.

신은 방황하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다. 미래를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고뇌하지도 않는다.

평소 인간들을 비웃고 신이 되려고 했던 마도사들이다.

그러나 지금 로스차일드의 모습은 인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육신을 잃었다는 점에서는 인간보다 못할 수도 있었고.

고오오오오오-

어둠이 불길처럼 공간을 집어삼켰다.

신주청의 말에 분노한 로스차일드의 감정에 반응하며.

“정곡을 찔리니 화를 내는군?”

[그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다.]

“왜? 조심은 네가 해야지?”

신주청이 검을 뽑아 들었다.

“로스차일드. 내가 약화된 너를 흡수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신주청과 로스차일드는 격을 섞었고, 한 쪽의 격이 약해지면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한쪽이 완전히 집어삼키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검을 든 신주청에게서 태산보다 거대하고, 바늘보다 예리한 기운이 치솟았다.

이것이 ‘벽’을 넘은 무인이었다.

길고 긴 중원의 역사상 벽을 넘은 이는 진유성뿐이었다.

하지만 신주청은 영혼체의 상태로 벽을 넘었고, 환생했다.

진유성이 더 이상 유아독존이라는 수식어를 쓸 수 없게 된다면, 그것은 신주청 때문이리라.

프스스스스스-

신주청의 기운과 로스차일드의 어둠이 부딪혔다.

한동안 기세 싸움을 이어 가던 중, 로스차일드가 먼저 힘을 거둬들였다.

신주청이 다른 마음을 품는다면 위험해질 행위였으나, 로스차일드는 개의치 않았다.

정말 신주청이 싸움을 원했다면 한 마디 말도 없이 다짜고짜 공격을 했을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힘을 거두는 로스차일드에 맞춰서 신주청도 힘을 거뒀다.

[그만하지.]

“뒤로 빼는 걸 보니, 내가 두려운 건가?”

[신주청.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이냐?]

로스차일드는 신주청의 진짜 목적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진유성을 죽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고 보기에는 이상한 점이 많았다.

정말 그게 목적이라면 한국에 핵미사일을 날리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그들은 아카샤의 가호 때문에 진유성의 주변 인물들을 찾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죽일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당장 무력으로 중국을 지배한 다음에 핵미사일 수십 발을 날려 한반도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진유성은 그 정도 공격에 죽지 않겠지만, 지인들의 죽음에 분노한 그를 습격하면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신주청이 이걸 모를 리가 없건만, 그는 행하지 않는다.

신주청이 진유성에게 품고 있는 살의는 의심할 여지가 없으나, 그게 끝이 아닌 것 같다.

진유성을 죽이는 것이 최종 목적이 아니라, 목적으로 가는 길 위의 여정 같다.

그때 신주청이 답했다.

“알 필요 없다.”

[어째서?]

“어차피 우리는 방향이 같은 곳까지만 갈 터이니. 그 이후에는 내가 널 찌를 수도, 네가 날 찌를 수도 있지. 아닌가?”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니 형을 잃은 동생처럼 징징거리지 말고, 네가 할 일을 해라.”

신주청이 공간을 떠나고, 로스차일드는 결정을 내렸다.

신주청의 말이 맞았다.

첫째가 소멸되었든, 의도를 가지고 모습을 감췄든, 그가 결정할 것은 한 가지였다.

행동할 것인가.

행동하지 않을 것인가.

그리고 로스차일드는 행동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 가지 의문이 치솟는 건 막을 수가 없었다.

진유성이 정녕 홀로 첫째를 소멸시켰다면…….

‘현 시점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단일 존재가 없다는 뜻이 아닌가?’

* * *

진유성이 신촌의 길거리에서 피아니스트 강윤섭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을 때.

정새롬과 지종수를 비롯한 대정고 친구들이 신촌에 당도했다.

신촌에 도착한 그들의 얼굴에는 묘한 기대가 있었다.

‘진유성이 과연 뭘 할까?’

‘거리 공연이라…….’

이미 모두가 진유성의 주접에 중독되어 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들의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 새롬아.”

진유성 옆에 서 있던 상소윤이 친구들을 발견하자, 진유성은 상소윤을 그들에게 맡기고는 떠나 버렸다.

피아노를 배워야겠다며.

그렇게 상소윤을 비롯한 정새롬, 지종수, 고인수, 심도훈은 신촌의 카페로 들어갔다.

커피를 시키고 자리에 앉은 상소윤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야, 너희 표정이 왜 그래?”

“우리 표정이 뭐?”

“아니, 뭔가에 엄청 실망한 표정인데?”

그 말대로였다.

상소윤을 보고 금세 기분이 좋아진 단순한 지종수를 제외하고는 다들 실망한 표정이었다.

“실망은 무슨. 근데 피아노는 뭐야? 갑자기 왜 배워?”

“아, 그게 진유성이…….”

진유성이 거리에서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는 상소윤의 설명을 들은 정새롬이 눈을 반짝였다.

“그럼 그거 캠코더로 찍었겠네?”

“어.”

“봐도 돼?”

“왜?”

“아니, 그냥. 심심해서.”

심심해서 원하는 것 치고는 눈빛이 너무나 간절하다.

상소윤이 캠코더를 내밀자, 네 개의 얼굴이 모여들었다.

직접 경험을 할 수 없다면 간접 경험도 괜찮다.

어디 진유성의 주접이 보통 주접인가? 캠코더 화면을 뚫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그러나 화면 속 진유성은 멋있었다.

상소윤이 제법 구도를 잘 잡아서 그런지, 신촌 거리를 배경으로 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제법 멋졌다.

캠코더에 녹화된 소리라서 정확한 판단은 안 되지만, 연주 실력도 수준급인 것 같았다.

그러나.

“재미없어…….”

“이거 아니야…….”

주접!

주접이 보고 싶다!

영상을 끝까지 봤지만 결국 그들이 원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

가슴 깊이 상심한 그들은 이제는 부인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들이 진유성의 주접이 없으면 살 수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을.

‘얘들, 왜 이래?’

친구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상소윤만 당황했을 뿐이고.

그러나 상소윤은 끝까지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진유성과 같은 집에 사느라, 눈을 떴다가 감을 때까지 진유성의 주접과 함께하니 말이었다.

원래 부르주아들은 서민들의 갈망을 이해하지 못하는 법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실망 뒤에 그들은 평소처럼 돌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포문은 이상한 방학 숙제를 내준 담임에 대한 험담이었고, 마침내 개학까지 주제가 닿았다.

“와, 개학 며칠 안 남았네.”

“그러니까. 이제 2학기만 끝나면 고등학교도 끝인 거잖아.”

“대학교는 다들 찢어지겠지?”

“우리 중에 유학 갈 사람 있어?”

“나 가야할 수도 있어. 아직 정해진 건 아니지만.”

“나도 반반.”

영원할 것 같던 학창 시절의 끝이 다가와서 그런지, 다들 갑자기 감성적으로 변했다.

사실 재벌 2세나 3세의 세계에서 대정고는 아주 큰 의미를 가졌다.

그들은 일반적인 아이들과 다르다.

사회생활에 뛰쳐나가는 순간부터 편이 갈리고, 친구가 없어진다.

그걸 알고 있는 부모들이기 때문에 기를 쓰고 대정고에 보내고, 학창 시절이라는 것을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적어도 대정고 안에서는 대법원장의 손자와 대형 로펌의 아들이 친구가 될 수 있으니까.

상소윤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유성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진유성은 정체를 밝힌 이후 몇 번이나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아마 지금이 그가 지구에서 평범하게 보내는 마지막 시간일 것이라고.

“뭐, 그러니까 재미있게 보내야지.”

“부모님들은 고3이 할 말은 아니라고 할걸?”

“언제부터 부모님 말씀을 그리 잘 들었다고?”

“근데 곧 소윤이 생일 아니야? 9월 14일이잖아.”

정새롬의 말에 심도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진유성이 맨날 소윤이한테 오라버니라고 부르라고 하잖아?”

“그게 왜?”

“그럼 진유성 생일이 소윤이보다 빠른 거 아냐?”

“그러네. 진유성 생일은 언제야?”

“9월 4일.”

상소윤의 대답에 친구들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생일빵으로 뭐 하지? 뭐 엄청난 골탕을 먹이고 싶은데.”

“몰래카메라 할까?”

“진유성한테 통할까? 저거 은근히 눈치 빠른데.”

“우리가 하면 걸려도, 엑스트라를 고용하면 되지 않을까?”

“아, 오늘처럼 알바 불러서?”

“그치, 그치.”

그동안 반 진유성 연합군은 무수한 패배를 맛봤기 때문에 신중히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상소윤은 회의적이었다.

9월 4일은 아빠가 만들어 준 호적상의 생일일 뿐, 실제 진유성의 생일은 아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진유성의 생일도 모르고 있었다.

‘집 가서 물어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심도훈이 몰래카메라에 어울릴 좋은 아이디어를 냈다.

“아, 싫어!”

지종수가 거세게 반발했다.

그러나 지종수만 반발했을 뿐이었다.

“야, 이 방법밖에 없어. 진유성을 혼내 줄 수 있는 방법은 이게 최고야.”

“아이디어 좋았다. 심도훈.”

“아, 싫다고!”

“지종수. 생각해 봐. 한 번이라도 진유성을 이기고 싶지 않아?”

“…….”

“이건 기회야.”

“……그런가?”

“그래. 진유성이 속았을 때 비웃어 주면 되잖아.”

“한번 해 볼게.”

그렇게 연합군은 새로운 작전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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