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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56화 (256/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56화>

토미 데이먼은 초조해졌다.

한국인 남자의 얼굴을 보건데 자신의 말을 믿는 눈치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에이전시랑 통화를 시켜 줄까? 설마 이미 사기꾼으로 낙인찍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토미 데이먼의 생각은 오해였다.

진유성은 세상 그 누구보다 유투브와 인터넷 세계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이름을 듣고 나니 토미 데이먼을 유튜브에서 봤던 기억이 났다.

이 색목인은 아주 유명한 마술사였다.

그럼에도 진유성이 뚱한 표정을 짓는 것은…….

그의 간장 종지만 한 그릇이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상소윤이 진유성의 어깨를 두드렸다.

“뭐야? 뭔데? 인스타그램 보여 주는 것 같던데?”

“아무 것도 아니다.”

“뭐야? 너 삐졌냐? 표정이 왜 그래.”

“무슨 소리냐. 본 교주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삐져 본 적이 없다.”

“아닌데? 딱 봐도 삐진 얼굴인데? 왜? 저 아저씨가 뭐래?”

“안 삐졌다니까.”

“에이, 삐졌네.”

“어허! 아니래도!”

상소윤은 진유성의 격렬한 부정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에 삐졌을 때 짓는 표정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매점에 가는 자신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했는데, 깜빡하고 사 오지 않았을 때의 표정이랄까?

그리고 상소윤의 추측은 정확했다.

진유성은 기분이 상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조롱당했다.’

중원 식으로 생각하면 이런 것이었다.

무사 한 명이 저잣거리에서 무공을 시연하고 있었는데, 웬 행인이 그를 과하게 칭찬했다.

무사가 칭찬에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행인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 천마신교주인데, 같이 무공에 대한 이야기 좀 해 볼까?”

무사 입장에서는 얼마나 수치스럽고 당황스럽겠는가.

칭찬이 아니라 조롱처럼 느껴질 것이고.

실제로 진유성은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해남에서 입멸공을 얻고 생존대와 함께 중원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이 멸마대 변절자도 소탕하고, 마교의 잔당들도 소탕했다고 잘난 척하고 있는 정도맹의 무사들에게.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은 토미 데이먼의 언행이 어딘지 아니꼽고 열받았다.

‘지가 더 잘한다, 이거지?’

진유성이 곱지 않은 눈으로 쳐다보는 사이, 토미 데이먼은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한국인은 자신을 사기꾼으로 낙인찍은 것 같은데, 이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아!’

그 순간, 토미 데이먼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정말 간단한 방법인데 왜 이제야 떠올렸는지 모르겠다.

그냥 실력을 보여 주면 된다.

“당신의 비디오에 제가 출연해도 될까요?”

“이미 출연했잖아?”

“아뇨. 관객으로가 아닌 선배 마술사로서.”

자신이 사기꾼이 아니라는 시그널로 ‘선배’라는 단어를 강조했지만, 그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 단어는 진유성의 간장 종지를 완전히 채워 버렸고, 흘러넘치게 만들었다.

결국 진유성이 못된 마음을 품게 만들었다.

“그래, 한번 해 봐.”

진유성의 말에 토미 데이먼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인스타그램에 글을 하나 올렸다.

현재 자신의 위치와 함께 짧은 마술 공연을 한다는 글이었다.

팔로워가 4천만 명이 넘는 그의 SNS의 화력은 국경을 뛰어넘었다.

채 5분이 지나기도 전에 몇몇 사람들이 토미 데이먼을 발견했고, 모여들었다.

본래 거리 공연은 시작이 어려운 법이지, 한 번 사람이 모이면 들불처럼 번지기 마련이었다.

어느새 토미 데이먼의 주변으로 백 명이 넘는 관객이 모여들었다.

“Hi, Korea.”

토미 데이먼은 순식간에 가득 채운 수백의 관객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가방에서 마술용 카드를 꺼냈다.

카드 마술은 모든 마술사가 할 수 있고, 꾸준히 행하는 기초 마술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카드 마술은 곧 마술사의 실력을 재는 척도가 된다.

모두가 하는 것을 유일한 것으로 만들 수 있어야지 0.1%가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것은 토미 데이먼의 장기였다.

카드를 화려하게 셔플하던 그가 가장 가까운 여대생에게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제일 좋아하는 카드가 뭐예요?”

“어…… 다이아몬드 퀸.”

“다이아몬드 퀸? 당신과 잘 어울리는 카드군요.”

그렇게 말한 토미 데이먼이 셔플 중이던 카드 뭉치를 쳐다보지도 않더니 카드 한 장을 꺼냈다.

안 봐도 손끝의 감각으로 알 수 있다.

이건 다이아몬드 퀸이다.

토미 데이먼이 화려한 포즈를 취하며 여왕에게 진상하는 것처럼 카드를 건넸다.

여대생이 어머, 어머 하면서 카드를 받았다.

“자, 가장 좋아하는 카드를 드렸습니다. 이번엔 당신이 가장 싫어하는 카드는 뭐죠?”

그 순간, 여대생과 여대생 뒤에 있던 관객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어, 이건 다이아몬드 퀸이 아닌데…….”

“그럴 리가? 한 번 보여 주시겠어요?”

여대생이 내민 카드는 정말로 다이아몬드 퀸이 아니라, 하트 8이었다.

실수였다.

하지만 프로 마술사들은 실수조차 퍼포먼스로 만드는 이였다.

실수를 의도한 것처럼 느끼게.

토미 데이먼이 평온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오, 이런. 당신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카드가 하트 8이었군요.”

“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카드는 이미 당신의 주머니에 있으니까요.”

“주머니……?”

여대생이 자신의 바지 주머니를 뒤적이다가 깜짝 놀랐다.

정말로 거기에 카드가 한 장 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카드를 뒤집어 본 여대생의 표정이 다시 한번 묘해졌다.

클로버 6.

다이아몬드 퀸이 전혀 아니다.

토미 데이먼은 당황했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아직 만회할 기회는 있다.

“다이아몬드 퀸 맞잖아요?”

“이건 클로버 6인데.”

“아, 이런. 이건 착한 사람 눈에는 다이아몬드 퀸으로 보이는 카드에요.”

그렇게 말한 토미 데이먼이 자연스럽게 카드를 쥔 여대생의 손을 슥 감쌌다.

그리곤 그사이 백 명을 훌쩍 넘어 버린 관객들에게 외쳤다.

“다 같이 착한 생각을 합시다. 평화, 사랑, 자연, 그리고 당신의 전화번호?”

잘 생긴 외모로 느끼한 멘트를 날리는 사이, 토미 데이먼은 카드를 바꿔치기했다.

이번엔 정말 다이아몬드 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자, 모두가 착한 생각을 했나요?”

곳곳에서 Yes가 들린다.

“자, 그럼 카드를 볼까요?”

여대생의 손에 들린 카드는.

“…….”

“…….”

스페이스 3이었다.

지독히 어색한 침묵이 신촌 길거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 * *

상소윤이 눈을 가늘게 떴다.

마술사의 실패와 실패와 실패가 이어진다.

그녀도 이제 인스타그램을 봐서 안다.

저 남자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마술사라는 걸.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미친 듯한 실패의 향연에 땀을 뻘뻘 흘리며 이 사태를 어떻게든 수습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수습하려고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모습이다.

계속 실패했으니까.

‘이거 아무래도…….’

상소윤이 진유성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진유성이 실패를 유도하고 있는 것 같다.

“야, 너지.”

“뭐가 말이냐?”

“네가 방해하고 있는 거지?”

“…….”

“어딜 봐?”

그러나 진유성은 대답 대신 고개만 슥 돌렸다.

상소윤의 경험상 진유성이 대답을 회피하거나, 주제를 돌릴 때는 있어도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거짓말을 할 때는 어차피 곧 알게 되는 사실을 가지고 장난을 칠 때밖에 없다.

그러니 이 반응은 진유성이 자신이 벌인 짓이라고 인정하는 것과도 같았다.

“…….”

상소윤의 한심한 눈초리를 본 진유성이 버럭 했다.

“저놈이 날 조롱했다!”

“아까 영어로?”

“그렇다.”

“정확히 뭐라고 했는데?”

진유성이 대화를 전달해 주자 상소윤은 어이가 없어졌다.

대체 그 말을 어떻게 그렇게 들을 수가 있단 말인가?

아빠를 통해 진유성의 과거 행적을 전해 들었을 때도 느꼈지만, 진짜 이놈은 옹졸하기 그지없다.

속이 너무 좁다.

“쑊이 좁구나.”

“뭐?”

“두 배로 속이 좁다는 뜻이었다.”

“……!”

“용쫄하다는 어때? 두 번 옹졸하다는 뜻인데.”

뺚썎처럼 모음까지 완벽히 두 개는 아니지만 뭐 어떤가.

진유성이 수치심에 부르르 떨고 있는데.

상소윤은 드디어 박색에 대항할 단어를 찾고는 흡족해했다.

그 순간, 토미 데이먼이 시뻘건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상소윤이 진유성의 어깨를 밀었다.

“빨리 튀자.”

“내가 왜 튄단 말이냐?”

“네가 잘못을 했으니까.”

“난 잘못한 게 없다!”

“아, 몰라. 일단 좀 가자.”

“잠깐 기다려라.”

상소윤을 뿌리친 진유성은 토미 데이먼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

“당신의 마술에, 치얼스.”

들고 있던 물병을 찰랑찰랑 흔들면서.

그렇게 상소윤과 진유성이 자리를 떠나고, 토미 데이먼은 마술 실력을 되찾았다.

‘메, 멘탈적인 문제였나?’

그는 지금까지의 지독한 실패가 모두 장난이었다는 듯이 엄청난 마술들을 연이어 선보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부터 토미 데이먼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마술 실력이 일정 경지에 오르고 나서는 ‘마술이 제발 성공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마술의 성공은 당연한 것이고, 중요한 건 쇼의 성공이었다.

그러나 지금.

무수한 실패를 겪다가 마술이 성공하기 시작하자, 그는 희열을 느끼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처음 마술을 할 때는 매번 이런 기분이었다.

친구나 가족이 자신의 마술을 보고 놀랄 때면 큰 희열과 성취감을 느꼈다.

그리고 지금.

초심으로 돌아온 토미 데이먼은 자신이 왜 마술사가 됐는지, 어느 순간부터 무엇을 놓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근본적인 즐거움.

그것을 되찾게 된 것이었다.

결국 토미 데이먼은 그날 신촌에서 카드와 동전만 가지고 5시간 동안 마술 공연을 벌였다.

그리곤 다음날 바로 휴가를 끝내고 뉴욕으로 돌아갔다.

새로운 마술들을 공부하고 싶었다.

세계 최고의 마술사라고 불리던 토미 데이먼이 역대 최고의 마술사라고 불리게 되는 시발점이었다.

* * *

“아니, 뭘 또 찍어. 아까 마술 하는 거 찍었잖아.”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다. 마술은 아무래도 불길한 행위 같다. 이름부터 음침하지 않느냐.”

“거지같은 방학 숙제에 뭘 이렇게 열심…….”

거기까지 말을 하던 상소윤이 멈칫했다.

이제는 그녀도 진유성이 왜 이렇게 매사에 열심인지 알고 있다.

처음으로 살아보는 남들과 다름없는 삶.

앞으로 이어질 길고 외로워질 지구에서의 첫 번째 삶.

중원에는 추억이 낙엽처럼 쌓인다는 말이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진유성은 그 낙엽이 발목을 덮고, 종아리를 덮고, 무릎을 덮었을 때의 괴로움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결국 상소윤은 캠코더를 고쳐 잡았다.

“그래서 뭘 하겠다고?”

“저게 어떨까 싶다.”

“엥? 진짜?”

“그래.”

“쳐 본 적 있어?”

“없다. 하지만 그리 어려울 것 같진 않구나. 말했다시피 난 음공을 배운 사람이다.”

순간 상소윤은 진유성이 저걸 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피아노를 치는 남자는 좀 멋있으니까.

그랬다.

진유성이 가리킨 것은 신촌의 차 없는 거리에 오랫동안 비치되어 있던 피아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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