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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53화 (25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53화>

Quest 41. 2학기 천마님

상림은 저도 모르게 콧구멍을 벌렁거렸다.

처음 건물에 들어올 때만 해도 요리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지만, 냄새가 너무 기가 막히다.

단지 맛있는 냄새가 아니다.

추억 속의 그 냄새가 확실하다.

군침이 싹 돈 상림이 빌드업을 시작했다.

“교주님, 대체 요리는 언제 배우신 겁니까?”

일단 놀란 표정으로 질문을 던지고, 대답에 장단 맞춰 호응을 해 준다.

그러면 진유성은 자신한테 뭔가를 요구할 텐데, 최대한 뺏기기 싫은 표정으로 뺏겨 주면 된다.

진유성만 상림을 꿰뚫어보는 게 아니다.

상림도 진유성을 알 만큼 알았다.

상림의 놀란 표정에 진유성이 뽐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장 숙수를 기억하느냐?”

“당연하죠. 그 양반 요리 진짜 최고였는데.”

“내 생각도 그러하다. 가히 대적할 숙수가 없는 세계제일이자, 꿈에서도 그리운 맛이 아니더냐?”

상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장 숙수의 요리가 정말 맛있긴 했으나 저 정도 표현을 쓸 정도였나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요리도 취향의 영역이었으니, 상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진유성에게 장단을 맞춰 줘야 할 시간이었으니까.

“그럼요. 최고였죠.”

“내가 그 양반한테 요리법을 좀 배웠다. 황실 숙수가 바뀔 때마다 알려주려고.”

“아.”

문득문득 잊어버리지만, 교주님은 자신이 떠나고도 100년 가까이 천신궁에서 기거했었다.

황실 숙수가 계속 바뀌었을 터이니, 가장 좋아하던 요리들의 레시피를 외워 놓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장 숙수를 치켜세웠구나. 요리의 가치를 높이려고.’

이럴 줄 알았으면 진유성이 요리를 한다고 했을 때 좀 더 관심을 가질 걸 그랬다.

그저 요리왕 비룡을 따라하는 줄 알았지, 대명제국의 요리를 그대로 가져왔을지는 몰랐다.

그 순간, 상소윤이 테이블에 앉으며 물었다.

“안 먹어? 다 된 거 아냐?”

“아직 아니다. 약불로 5분 정도 더 익혀야 한다.”

“아, 그래? 엄마랑 아빠도 앉아.”

상림과 상도윤을 안은 유혜연이 테이블에 착석하는 순간.

진유성이 상림을 향해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 스물두 번째 교리를 기억하느냐?”

“아뇨? 뭐였죠?”

“천신에게 은혜를 입은 자, 그에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먹는 게 은혜까지는 아니지 않습니까? 제가 굶주린 것도 아니고.”

“허어, 그 무슨 망발이냐. 식구가 괜히 식구가 아니다. 먹을 식, 입 구. 함께 먹으면 가족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식사가 얼마나 소중한 것이더냐?”

“에이, 허기야 뭘로 채우던 채우면 그만이죠.”

“식사를 준비하는 자의 노고는 생각지 않느냐?”

“제가 준비하라고 해서 한 게 아니라, 알아서 하신 거잖아요?”

상림은 그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진유성이 웃고 있다.

그것도 아주 흡족하게 웃고 있다.

상림은 진유성이 저런 웃음을 짓는 순간을 알고 있었다.

모든 계략과 계획이 착착 맞아떨어져 더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울 때.

그럴 때 짓는 표정이다.

‘뭐지? 왜?’

상림은 자신의 언행을 돌아보았다.

진유성이 스스로의 요리에 너무 높은 가치를 두는 것 같아서 좀 깎아내렸다.

그렇지 않으면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부를 것 같아서였다.

물론 너무 비싸면 안 먹으면 그만이지만, 솔직히 고향의 맛이 그립긴 하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진유성의 요리를 깎아내렸고, 나름 논리적으로 말을 했다.

자신이 실수한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 표정은 대체 뭐란 말일까.

그 순간이었다.

시종일관 상림을 쳐다보고 있던 진유성이 난데없이 시선을 돌리더니 유혜연의 손을 잡았다.

“미안합니다.”

“……!”

“아무래도 제가 수하 교육을 잘못시킨 것 같습니다.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니, 그!”

뒤늦게 진유성의 노림수를 깨달은 상림이 화들짝 놀랐지만, 진유성이 더 빨랐다.

진유성이 엄한 눈으로 일갈했다.

“예로부터 안사람을 내권(內眷)이라 하였다. 여기서의 내(內)가 어떤 단어인지는 알지 않느냐!”

“아니……!”

“내(內)는 나라, 대궐, 조정, 궁중을 뜻하는 단어이다. 그렇다면 권(眷)은 무엇이냐? 돌봄이며 보살핌이며 베풂이자, 그리움을 뜻하는 단어인 게다!”

상림은 진유성의 세찬 목소리 뒤로 컨트롤 비트가 들려오는 듯했다.

“그 모든 의미를 포함한 것이 아내를 뜻하는 내권이다! 그런 아내가 지어 주는 따뜻한 밥을 뭐? 허기를 대충 때워? 준비하라고 한 게 아니야?”

“그게 아니라……!”

“내 너에게 극심히 실망했다. 도윤이가 보고 배울까 두렵구나.”

상림은 마지막 희망을 담아서 유혜연을 쳐다보았다.

혜연이라면 진유성의 사악하고 더러운 술수를 알아차릴 것이었다.

그러니 자신의 편을 들어 줄 것이었다.

하지만…….

유혜연의 표정이 어딘지 냉랭하다.

물론 유혜연은 진유성이 남편을 몰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운하긴 하다.

심정적으로 진유성의 말에 공감이 가고, 그것보다 더 서운한 것도 있다.

‘장 숙수란 사람이 최고라고?’

유혜연의 표정을 본 상림은 마지막 희망을 담아 딸을 쳐다보았다.

그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그의 딸은 자신의 편을 들어주지 않을까?

하지만, 상소윤은 유혜연보다 훨씬 단순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거였어?! 아빠, 나빠!”

“…….”

결국 상림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때 악마의 속삭임 같은 진유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하지만 아직 기회는 남아 있다. 넌 눈앞의 한 끼 식사에 얼마까지 내겠느냐?”

“그게 왜 제 기횝니까! 교주님이 돈 벌려는 거지!”

“네가 그러지 않았느냐. 장 숙수의 요리가 최고였다고.”

“……?”

“그렇다면 외숙모의 요리는 그보다 못하다는 소리냐?”

“그, 그럴 리가요. 제가 최고라는 건 중원에서 최고라는 뜻입니다. 지구에서는 아내가 최고죠.”

“그렇다면 중원 최고의 숙수에게 매기는 한 끼의 가격과 지구 최고의 요리사에게 매기는 한 끼의 가격은 비슷하겠구나. 각 세계의 최강자들이니. 웅장해지는구나.”

턱을 쓰다듬은 진유성이 물었다.

“그렇다면 너는 아내가 만든 한 끼 식사에 얼마를 매기겠느냐?”

“…….”

상림은 진유성이 처음부터 여기까지를 그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악하다.

진실로 사악하고 간악하다.

그러나 사악한 계략은 깊고 치밀하다.

하늘은 어찌하여 이 간교한 간장 종지에게 하늘에 닿은 무공과 지략을 내려 주었단 말인가.

“그…….”

“요리가 완성되어 가는구나. 어서 대답을 해야 할 것이다.”

상림은 진유성의 재촉을 들으며 유혜연을 힐끔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유혜연이 삐진 것은 다름이 아니라, 장 숙수가 최고라고 말했던 자신의 방정맞은 입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진유성에게 속아 넘어갔을 뿐이다.

그는 아내가 해 주는 요리에 진실로 감사했으며, 아내의 요리가 그 누가 만든 요리보다 맛있다고 생각했다.

상림은 불현듯 궁금해졌다.

‘난 아내의 요리에 얼마까지 지불할 수 있을까?’

상림은 그 순간 이것이 위기이자 기회라는 걸 깨달았다.

그는 꺄꺄 거리는 상도윤을 쳐다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칼을 뽑아 드는 비장함으로.

“잘 봐, 혜연아. 이게 내 마음이야.”

상림이 핸드폰을 두드리고 몇 초 뒤, 진유성의 핸드폰이 지잉 울었다.

유혜연과 상소윤은 상림이 진유성에게 돈을 송금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연 얼마를 보냈을까?

“얼마야? 빨리 봐 봐.”

상소윤의 재촉에 진유성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세 사람의 고개가 모였고, 세 사람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10,000,000원.

“일, 십, 백……! 천만 원?! 이거 실화야, 아빠?”

유혜연은 상소윤의 호들갑을 들으며 진한 감동을 받았다.

잠깐 삐져 있긴 했지만, 아마 잠깐이었을 것이다.

어차피 문제가 되는 대화는 진유성이 남편의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져서 억지를 쓴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녀의 남편은 진심을 보여 주겠다는 각오로 단숨에 거액을 송금한 것이었다.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그 마음이 너무 예쁘다.

“여보……!”

“내가 말실수를 해서 서운했지? 미안해.”

“으응, 아니야.”

서로를 뜨겁게 바라보던 상림과 유혜연이 와락 끌어안았다.

상소윤이 꺄꺄 거리며 상도윤의 눈을 가렸고, 누나가 눈을 가리자 뭔지도 모르고 신난 상도윤도 덩달아 꺄꺄 거렸다.

그렇게 잠깐의 오해와 서운함이 훈훈한 공기로 바뀌었다.

그 누구도 상림이 진심을 보이기 위해서 진유성에게 송금해야 하는 이상한 구조에 대해 의아함을 느끼지 않은 채.

하지만…….

진유성은 모두가 그만하면 됐다고 하는 순간,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이였다.

진유성이 유혜연과 부둥켜안은 상림의 어깨를 검지로 톡톡 두드렸다.

행복한 시간을 방해받은 상림이 설핏 인상을 쓰며 반문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금액이 부족하다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 내 너의 진심을 보고 심히 감탄하는 중이다.”

“그럼요? 아, 요리가 다 됐나?”

“3인분이다.”

“네?”

“오늘 제공되는 요리는 3인분이다. 물론 영유아인 상도윤을 위한 이유식은 공짜다.”

“…….”

“그러니 아직 계산할 게 남아 있지 않을까?”

“…….”

“설마 너만 입이고, 상소윤과 외숙모는 입이 아니라…….”

“야! 이, 개자식아!”

결국 상림은 폭발했다.

* * *

유혜연의 중재로 결국 진유성은 남은 두 사람 몫의 돈은 받지 않았다.

사실 뭐, 진유성도 무조건 돈을 받으려고 한 건 아니었다.

석가모니가 말했던 사람을 열반(涅槃)에 이르게 하는 네 가지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

상림을 놀리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함이었지.

그래도 진유성은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서 유혜연과 상소윤, 상도윤 앞에서 상림을 직접 타격하진 않았다.

그저 무형지기로 전신을 마사지해 줬을 뿐이었다.

그렇게 잠깐의 소란이 지나고 곧 식사가 시작되었다.

무형지기에 호되게 당했던 상림은 삐져서 툴툴거렸지만, 음식을 먹으며 이내 기분이 풀렸다.

그가 상상했던 맛과 진유성이 해 준 요리가 완전히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상림뿐만 아니라 진유성의 요리를 종종 먹었던 상소윤과 유혜연도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세상에! 유성아, 이건 어떻게 한 거니?”

“아, 이건 버섯을 우려낸 물이 중요해요. 원래는 뽕나무 밭의 음지에서 자라는 상음이라는 버섯으로 해야 제 맛이 나는데…….”

내친김에 유혜연은 진유성에게 레시피를 전수받기도 했다.

그렇게 즐거운 식사 시간이 거의 지나갈 쯤, 상소윤이 입을 열었다.

“근데 숙수가 요리사란 뜻이지?”

“그렇다.”

“그럼 요리사한테 요리를 배운 거지?”

“배웠다기보다는 요리법을 건네받은 셈이지.”

“왜?”

“내 입장에서는 숙수가 자주 바뀌니까.”

“자주?”

“숙수의 근속 기간은 짧으면 3년에서 길면 15년이었으나, 내가 자금성에서 산 세월은 90년이 넘는다.”

상림은 진유성의 말 몇 마디만 듣고 진유성이 왜 레시피를 배웠는지를 알아차렸지만, 상소윤은 아니었다.

사실 진유성의 과거에 대해서 설명할 때, 엄청나게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해 준 건 아니었다.

그저 진유성이 어떤 사람이었으며,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간단히 말해 준 정도였다.

그 정도만 해도 상소윤과 유혜연이 받아들이기 벅찬 이야기였고.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생물이라서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놀라움이 가셨고, 이제는 호기심이 들 정도였다.

“그러면 둘이 중원에서 있을 때 가장 재밌었던 일은 뭐였어?”

상소윤의 질문에 진유성과 상림이 서로를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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