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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52화 (252/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52화>

* * *

오늘 진유성과 상소윤이 방문한 놀이공원은 압구정에서 그리 멀지 않은 송파구에 위치해 있었다.

차만 막히지 않는다면, 택시로 20분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방학의 끝물이라서 그런지 놀이공원에는 가족 단위의 나들이객이 바글바글했다.

배차 경쟁이 치열하다.

“아, 죽어도 안 잡히는데.”

택시를 부르는 어플을 쳐다보고 있던 상소윤이 투덜거렸다.

놀이공원을 빠져나온 지 벌써 15분이 지났는데도, 도저히 택시가 잡히지 않는다.

“그러게 내가 지하철을 타자고 하지 않았더냐.”

“아, 싫어. 지금 잠실역에서 타면 지옥이란 말이야.”

“싫어도 참아야 하는 것이 있느니라. 박색함, 교통 체증.”

“옛날에 새롬이랑 여기 왔다가 지하철 타고 압사당해 죽을 뻔했다니까?”

“안 죽지 않았느냐.”

“아, 싫어! 차라리 걸어가면 걸어갔…….”

거기까지 말을 하던 상소윤이 갑자기 든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사실 상소윤은 그동안 진유성의 능력에 대해서 엄청나게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빠는 무인은 각성자와는 완전히 다른 존재이며, 차라리 무협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에 가깝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소윤의 고정 관념에는 ‘초인 = 각성자’라는 공식이 있었기에, 그녀는 내심 진유성을 엄청나게 강한 각성자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진유성의 속마음을 들으니 진유성이 각성자가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났다.

백 년이 지나도, 이백 년이 지나도.

어쩌면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지나도 죽지 않을 존재.

그녀가 알고 있던 초인이란 존재를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

그러니까…….

“야, 진유성.”

“왜 그러느냐?”

“생각해 보면 하마, 아니 도윤이 태어난 날 너 어떻게 왔냐?”

“뭐?”

“그때 너 파주 해병대 캠프에 있었는데, 한 시간도 안 걸려서 왔잖아. 새벽 3시에 연락받고.”

“뭐가 궁금한 거냐?”

“혹시 순간이동 한 거야?”

“달려왔다.”

“파주에서 서울까지? 몇십 분 만에?”

“CCTV나 사람의 눈을 피해야 해서 그 정도 걸린 거다. 더 빨리 움직일 수도 있지만.”

“그럼 택시를 왜 잡아? 네가 나 집 앞까지 배달해 주면 되잖아. 어떻게? 업힐까?”

뭔가를 상상하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상소윤을 본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이렇게 환한 도심에서 혼자도 아니고, 둘이 은신술을 쓰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둘 중 한 명이 무공을 전혀 모른다면 더더욱 그렇고.

그러나 문득 드는 생각이 있어서 진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진짜?”

“그래. 따라와라.”

“왜? 어디로 가는데?”

“이렇게 환한 곳에서 어떻게 움직이겠느냐? 어두운 곳으로 가야지.”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상소윤을 잠실역으로 이끌기 시작했다.

‘아, 지하철로를 따라서 달리려는 거구나.’

상소윤은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DDP 게이트에서 진유성의 엄청난 힘을 목격했지만, 몸으로 느끼진 못했었다.

지금 기회가 온 것 같았다.

파주에서 서울이 몇 km인지는 모르겠지만, 1시간도 안 걸렸으면 시속 100km는 넘게 달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던 상소윤이 갑자기 진유성의 팔을 붙잡았다.

“멀미약 필요하지 않을까? 약국 들렀다 갈까?”

“말만한 계집아이가 참으로 방정맞구나. 그냥 따라와라.”

“멀미 안 한다는 소리지?”

상소윤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하철역으로 들어가 스크린 도어 앞에 섰다.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다.

‘스크린 도어가 열려야지 선로로 내려갈 수 있긴 한데……. 사람이 너무 많은데?’

여기서 대체 어떻게 사람들의 눈을 피한다는 걸까?

상소윤은 SF나 판타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기분으로 두근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이윽고 마침내 지하철이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상소윤이 진유성에게 바짝 다가가서 속삭였다.

“나 뭐 하면 돼?”

“최대한 자연스럽게 지하철에 올라타라.”

“타라고? 지하철 안으로?”

“그래.”

“지하철 안에서 선로로 내려갈 수 있어?”

“방법이 있다. 다만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 안 되니, 최대한 자연스럽게 올라타라.”

“오케이.”

그사이, 지하철이 도착했다.

-스크린 도어가 열립니다.

문이 열리자 수많은 사람들이 내렸고, 상소윤과 진유성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올라탔다.

순식간에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이 출발하자, 상소윤이 소곤거렸다.

“이제 어떻게 해?”

진유성이 답했다.

“견뎌라.”

“뭘?”

“교대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탈 때까지.”

잠깐 인지부조화가 왔던 상소윤은 뒤늦게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달았다.

“……너!”

“조용해라. 공공장소다.”

“설마, 처음부터?”

잠실역에서부터 설렜던 스스로를 떠올린 상소윤이 배신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진유성은 지하철을 타기 싫어하던 자신을 꾀어내려고 동심을 이용한 것이었다.

화가 난 상소윤이 진유성의 옆구리를 꼬집었다.

아무리 무공의 고수라지만 만원 지하철에서는 피할 공간이 없을 터!

하지만.

“아!”

돌아온 것은 철사라도 꼬집은 것 같은 손톱의 아픔이었다.

“택시에서 말해 주지 않았더냐. 금강불괴라고.”

깐족거리는 진유성을 보며 상소윤은 언젠간 복수를 하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 * *

“야야, 이거 보여?”

“그게 무엇이냐.”

“그때 도매점에서 내가 발굴한 거잖아. 이게 제일 잘 팔린다니까.”

분명 지하철에 올라탈 때만 해도 열받아 있었던 상소윤이건만, 압구정에 도착했을 때는 기분이 좋아졌다.

쇼핑몰의 주간 판매 현황을 보고는 자신이 물건 보는 눈이 있다고 자화자찬을 시작한 것이었다.

진유성은 그런 상소윤을 보며 웃었다.

아무래도 상소윤의 가장 큰 단점은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기억력 같다.

DDP 게이트만 해도 그렇다.

보통 사람이라면 훨씬 오랫동안 두려워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렸을 텐데, 상소윤은 금방 떨쳐 버렸다.

처음에는 악몽을 꽤 꾸는 것 같았지만, 쇼핑몰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뒤부터는 괜찮아졌다.

진유성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상림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교주님, 어디쯤이십니까?

“다 왔다. 방금 압구정역에서 내렸다.”

-아내가 간만에 외식 어떠냐고 물어보라는데요?

“외식?”

유혜연이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할 수 있는 요리도 많아서 그들은 외식을 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외식이란 단어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진유성은 한동안 요리에 푹 빠져 있었고, 꽤 많은 사람에게 요리를 해 줬다.

대정고 친구들은 물론이고, 아놀드 벡부터 문수혁과 차정명, 김정철 회장까지.

한데 막상 유혜연이나 상림에게는 요리를 해 준 적이 없었다.

물론 진유성이 요리에 불타오르던 시기는 유혜연의 입덧이 심하던 때긴 했다.

입덧이 끝났을 때는 더 이상 요리를 안 할 때였고.

그러니 생각난 김에 요리를 한번 해 줘도 좋을 것 같았다.

“상림아. 혹시 명나라 요리들이 그리웠던 적이 없었느냐?”

-있죠. 왜 없겠어요. 여기도 비슷한 요리들이 있긴 한데, 느낌이 다르잖아요.

“참으로 아쉽구나. 그 추억들의 요리를 다시 먹어 볼 수 있으면 억만금도 아깝지 않으련만.”

-그러니까요.

“그러니까요?”

-네?

“그러니까요는 억만금도 아깝지 않다는 뜻이지?”

겸사겸사 상림에게 돈도 좀 뜯고 말이었다.

-뭐, 뭐가요?

불안함을 느꼈는지 상림이 말을 더듬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보내 주는 주소로 와라.”

진유성은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더 길게 말할 것도 없다.

어차피 상림이 반항해 봤자 상림이니까.

진유성은 여전히 핸드폰을 보며 헤실거리는 상소윤을 잡아끌었다.

“뭐해? 1번 출구는 저쪽인데?”

“마트로 가자. 식재료를 좀 사야겠다.”

* * *

상도윤을 품에 안은 유혜연과 상림이 대정고 건너편에 있는 상가 건물로 들어섰다.

두 사람 모두 이곳을 알고 있었다.

유혜연은 딸에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많이 듣기에 알고 있었다.

상소윤과 함께 상가 건물의 가격을 찾아보고는 진유성이 북한에서 돈을 얼마나 가져왔는지 추측하기도 했었으니까.

그에 반해 상림은 진유성의 심부름 때문에 이곳을 알고 있었다.

좀 써야겠으니 이 건물을 사 놓으라는 명에 따라, 건물을 산 게 상림이었다.

‘아, 씨. 그때 요리한다고 했었는데 왜 까먹었지.’

상림은 진유성이 대체 얼마의 바가지를 씌울까 두려워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고, 유혜연은 진유성의 요리 솜씨를 궁금해 하며 들어섰다.

그런 두 사람의 눈에 보인 것은 중식도를 손에 든 채 서 있는 진유성이었다.

“후후.”

진유성은 꽤 신난 상태였다.

드디어 실력을 숨기지 않고 요리를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놀드 벡의 앞에서 전력을 다해 요리를 한 적은 있다.

그러나 아놀드 벡은 자신의 화려한 기술보다는, 그 기술에 담겨있는 무예에 더 집중을 했었다.

그러다보니 재미는 있었지만 좀 아쉬웠다.

게다가 마지막에 입멸공을 이용해 달걀의 내용물을 꺼내다가 아놀드 벡의 검을 부숴 버렸고, 어딘지 만족스럽지 못하게 마무리가 됐었다.

문수혁이나 차정명 앞에서는 한 요리는 유투브에 올려야하니 적당한 솜씨만 발휘해야 했고 말이었다.

그러니 오늘은 일반인 앞에서 하는 첫 요리였다.

“타합!”

기합과 함께 진유성이 중식도와 식재료들을 던졌다.

유혜연이 본능적으로 움찔하며 상도윤을 끌어안는 순간.

허공에서 요리 재료들과 중식도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상림이 그 꼬락서니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친 교주놈.’

이기어검(以氣馭劍), 아니 이 경우에는 이기어도(以氣馭刀)다.

사실 한국의 무협 소설에서는 이기어검이 검술의 끝판왕으로 나오지만, 상림과 진유성이 살던 중원에서는 쓸데없는 과시용 기술이었다.

대체 왜 검을 허공에 둥둥 띄운단 말인가?

그냥 들고 싸우면 되지.

게다가 마음을 나누는 양의심공이라도 배운 게 아니라면, 이기어검을 쓰는 동안 자신의 몸은 무방비가 된다.

그러니 중원에서 유일하게 이기어검을 활용할 수 있는 이가 진유성이었다.

엄청난 기운 구속력을 가지고 있으며, 양의심공을 대성했고, 이기어검을 쓸 수 있는 게 진유성뿐이니까.

그런 그조차도 이기어검에는 ‘백의 힘을 들여 일의 결과를 내는 쓸데없는 짓’이란 평가를 내렸었다.

그런데 지금, 그 쓸데없는 짓을 하고 있다.

내공을 미친 듯이 들여 가면서.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 요리에 들어가는 내공이면 게이트를 몇 개는 클리어할 것이고, 벌모세수를 백 번은 할 것이었다.

저 주접을 떨면서 자신의 벌모세수를 해 줄 때마다 그렇게 생색을 내고 갈군다.

더 문제는…….

“꺄아아!”

도윤이가 좋아 죽는다.

허공에 날아다니는 감자와 당근, 양배추 조각을 보며 천사같이 웃는다.

도윤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면 대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말이라도 잘못해서 거짓말쟁이 취급받는 거 아니야?’

상림의 복잡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혜연과 상소윤은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즐거워하고 있었다.

잠시 뒤, 요리가 완성되었다.

한데, 상림의 표정이 묘해졌다.

진유성 덕분에 다시 내가고수가 된 상림도 후각이 예민한 편이었는데, 요리에서 흘러나오는 냄새가 아주 익숙했다.

천신궁에서 매일 같이 먹었던 그 요리의 냄새.

게다가 거의 다 자신이 가장 좋아했던 요리들인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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