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50화 (250/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50화>

‘오늘도 선업을 쌓았군.’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진유성이 적립된 기부금을 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최종 스코어는 61 대 11.

애초에 약속된 5천만 원의 기부금을 훌쩍 넘었다.

진유성은 자신의 자본으로 만든 CMSG를 운영하며?실제로는 상림이 운영한다- 많은 기부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좋은 일에 쓸 돈은 부족하다.

거기에 손을 보탠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진유성이 기뻐하고 있을 때, 아득한 패배감을 느끼고 있는 폼멜 스테인버그가 다가왔다.

폼멜은 눈앞의 동양인이 정말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 세계에서 모인 최고 수준의 선주들이 경합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득점왕까지 차지했던 이였다.

당연히 수많은 선수들을 만나봤고, 그들의 재능에 감탄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진유성이란 이름을 가진 동양인은 좀 다르다.

축구를 잘한다는 느낌보다는 몸을 쓰는 게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국 폼멜은 진유성을 향해 입을 열었다.

“영어 할 수 있나?”

“너보다 더 잘할걸.”

“대체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지?”

“뭘 해?”

“어떻게…….”

이 다음 질문을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지?

아니다.

진유성이란 남자의 움직임에는 엄청난 특별함은 없었다.

상대의 밸런스를 무너트려 바보로 만들거나, 드리블의 강약을 조절해 수비수를 속여 넘기는 것.

이는 폼멜도 컨디션이 아주 좋은 날에 종종 하곤 했던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프리미어 리그 금주의 장면’ 같은 것에 선정되기도 했었고.

그와 진유성의 차이점이라고는 자신은 가끔씩 할 수 있었고, 진유성은 매 순간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폼멜은 마침내 자신이 던져야 할 적절한 질문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떻게 단 한 순간도 신체의 통제권을 잃지 않을 수 있지?”

진유성은 이 색목인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나 싶었다.

그 어떤 외부의 변화에도 오롯이 자신을 지키는 것이 무심지경이고, 무심은 입신(入神)의 경지와도 맞닿아 있다.

천년무림의 역사 속에서도 무심을 달성한 이는 극히 드물었다.

말 몇 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진유성이 해 줄 수 있는 말은 한 가지뿐이었다.

“노력.”

“노력이라고?”

폼멜은 황당했다.

최상위 선수들이 어떤 노력을 하는지 모르는 건가?

‘아니, 그러진 않을 거다. 이 정도로 실력이 있다면.’

어쩌면 진유성만의 노하우가 있는 게 아닐까?

“어떤 노력을 해야 하지?”

그 순간, 진유성은 자신이 알려 준 대로 노력해서 엄청난 성과를 거둔 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놀드 벡.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팔굽혀펴기 100번. 윗몸일으키기 100번. 스쿼트 100번. 그리고 러닝 10km. 이걸 매일 해!”

“고작……?”

“중요한 건 하루도 거르지 않는 거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고?”

운동선수들이 같은 프로그램을 반복하는 건 쉬운 일이다.

하지만 단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들도 사람인 이상 운동 의지가 꺾이는 날이 있고, 몸이 힘든 날이 있다.

게다가 시합날도 있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훈련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그 순간 폼멜은 자신이 경기장에 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다는 것에 화들짝 놀랐다.

사실 폼멜은 보통의 프리미어리그 선수보다 4~5년 정도는 빨리 은퇴한 이였다.

그는 언제나 최고의 자리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지독히 가난하고 보잘 것 없던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남들의 기억 속에 언제나 화려히 빛나고 싶었다.

게다가 그의 플레이 스타일은 엄청난 활동량을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더는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드는 순간 조금 빠르게 은퇴를 한 것이었다.

그 결정에 후회하지 않았고.

하지만 폼멜은 지금 이 순간, 선수로서의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어쩌면 한 차원 위의 플레이를 봐서 그럴 수도 있었다.

진유성의 플레이를 보며 스스로가 가지고 있던 한계와 고정 관념을 부수게 된 것이었다.

“은퇴…… 하지 않겠어.”

그 말을 입으로 내뱉는 순간 폼멜은 스스로 느끼는 기대감에 화들짝 놀라 버렸다.

아직 폼멜 스스로도 몰랐지만, 이 기대감은 실현될 것이었다.

은퇴를 번복하고 필드로 돌아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가 되는, 그런 현실로.

물론 진유성은 이 색목인이 뭐라고 하는지 관심이 없었지만.

그런 진유성의 마음을 모르는 폼멜은 핸드폰을 내밀었다.

“뭔데?”

“연락처를 주면 비행기 표와 개막식 티켓을 보내 주지.”

진유성은 어깨를 으쓱하며 번호를 찍어 주었다.

“대체 왜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건 엔서니에게 맡기지.”

그렇게 폼멜이 자리를 비키자, 그의 에이전트인 엔서니가 다가왔다.

진유성은 진절머리 나게 달라붙는 엔서니에게도 전화번호를 찍어 준 다음에야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연락하도록 하지.”

하지만 폼멜과 엔서니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진유성이 찍어 준 번호는 지종수의 번호였다.

* * *

경기가 끝난 후, 선수, 기업, 재단 관계자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그 안에 진유성은 없었다.

은신술을 쓰고 도망치면 그를 찾을 사람은 없었다.

진유성이 원하는 것은 기부금이 높아지는 것이지 그 다음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내공을 이용해서 자신의 영상 기록물이 담긴 SD 카드를 전부 녹여 버렸다.

귀찮은 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빨리 떠나자.”

그렇게 상소윤의 옆으로 돌아온 진유성은 재빨리 행사장에서 멀어졌다.

그런 진유성을 보던 상소윤이 입을 열었다.

“아빠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아.”

“무슨 말?”

“착한 의도를 가진 나쁜 놈이라고.”

“무슨 소리냐. 난 오늘 나쁜 일을 한 적이 없다.”

“그러니까. 의도한 건 아니겠지.”

상소윤은 진유성이 폼멜이란 선수를 탈탈 털어 버릴 때, 관중, 기업, 재단 관계자들의 얼굴을 목도했었다.

분명 행사가 시작할 때는 다들 웃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지독한 어색함밖에 남지 않았다.

진유성을 직접 섭외하러 왔던 직원의 분위기를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직원은 높아 보이는 사람에게 ‘그래도 한국 축구의 미래가 밝군요.’라고 말했지만.

“자네의 회사 생활 미래는 밝을 것 같나?”

대답은 처참했다.

이게 전부 진유성 때문…….

‘아니, 잠깐만. 골을 많이 넣고 오라고 한 건 나잖아?’

그럼 그 지독이 어색했던 분위기가 나 때문에 생긴 건가?

상소윤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핫도그 집 유리창에 비춘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웃고 있는지도 몰랐는데, 웃고 있었다.

그래, 사실 좀 재밌었다.

세상사람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혼자 알고서 진유성의 행동을 지켜보는 것은.

그사이 진유성은 상림이 자신의 험담을 했다는 것을 되새기고 있었다.

“상소윤.”

“왜?”

“머리를 빡빡 밀면 모발이 더 풍성하게 자란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그거 그냥 미신 아니야?”

“모른다. 하지만 난 그게 사실이라고 믿기로 했다.”

“갑자기 왜?”

“좋은 의도로 나쁜 짓을 하려고 한다.”

진유성은 상림의 모발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겠다는 좋은 의도로 머리를 빡빡 밀어 버릴 생각이었다.

아마 이 사실을 알았다면 상림이 울상을 지었을 것이었다.

지난번 악플 사건 이후 간신히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머리를 길렀는데 말이었다.

“야! 아빠 괴롭히지 마!”

“괴롭히는 게 아니다. 그저 좋은 일을 해 주려는 것뿐이다.”

“그게 그거잖아.”

“조용해라, 채무자. 분명 너도 담보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상림의 머리카락을 거론했었다.”

“…….”

상소윤은 할 말이 없어서 눈만 뒤룩뒤룩 굴리다가 화제를 돌렸다.

“너, 그, 아이스 링크 가 봤냐?”

“당연히 안 가 봤다.”

“가 볼래?”

“흠. 재밌겠군.”

그렇게 그들은 놀이공원 안에 있는 아이스링크로 향했다.

* * *

올해 8살이 되는 채나윤은 피겨 스케이팅 꿈나무였다.

단지 꿈만 꾸는 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 피겨 퀸이 나온 이후로 쏟아진 영재들 사이에서도 단연 압도적인 재능을 가진 소녀였다.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피겨 스케이팅의 환경은 열악해서, 영재들은 보통 상업 링크에 이용료를 지불하거나 후원을 받아서 연습하곤 했다.

일반 이용자들이 아이스링크의 외곽을 크게 사용하고, 선수 지망생들은 라바콘으로 영역을 만들어 놓고 훈련하는 것이었다.

채나윤은 오늘도 선생님들과 함께 훈련을 하고 있었다.

한데, 그녀의 눈에 놀라운 광경이 들어왔다.

“……!”

이용자 라인에서 타고 있던 웬 남자가 쿼드러플 악셀(4바퀴 반)을 가볍게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대회에서도 공식적으로 쿼드러플 악셀을 도는 선수는 없다.

최고 기록이 쿼드러플(4바퀴)일 뿐이었다.

물론 연습 중에는 아주 드물게 쿼드러플 악셀을 성공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실수 한 번이 치명적인 대회에서 등장한 적이 없었다.

‘서, 선수인가?’

채나윤이 놀란 것은 남자가 단지 쿼드러플 악셀을 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도움 동작이 없었다.

본래는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고 높은 점프를 뛰어야 하는데, 저 남자는 제자리에서 가볍게 뛰듯이 돌아 버렸다.

“선생님, 선생님.”

“나윤아, 왜?”

“저 남자가 쿼드러플 악셀을 돌았어요.”

“응?”

피겨 영재들을 지도하던 선수 출신 선생님이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채나윤이 가리키는 남자가 보인다.

하지만 딱 봐도 아마추어였다.

스케이팅은 아마추어 레벨을 넘어서게 잘 타는 것 같지만, 선수라면 절대 가지고 있지 않을 습관들이 보인다.

프로 선수들은 손짓, 발짓의 라인을 잡기 위해서 지대한 공을 들이는 이들이다.

단순히 잘 타는 것과 다르다.

“그럴 리가요. 저 사람은 선수가 아니에요.”

“하지만 돌았어요. 제자리에서 엄청 가뿐히!”

“우리 나윤이가 쿼드러플 악셀이 하고 싶구나? 하지만 그건 아직 남자 선수들도 못했어요.”

결국 채나윤은 선생님의 말마따나 자신이 뭔가 잘못 봤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 아쉬워서 남자를 보고 있는데,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그리고는 약간 속도를 내더니 점프를 뛰었다.

‘퀴, 퀸터플!’

연습에서조차 성공한 적이 없다는 5바퀴 회전!

그러나 끝이 아니었다.

남자는 착지를 하자마자 거의 딜레이 없이 다시 한번 뛰어올랐다.

퀸터플 악셀!

그 어떤 선수도 연습에서조차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5바퀴 반의 경지.

그것이 채나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서, 선생님!”

“응?”

다시 다른 영재 선수들을 지도하던 선생님이 채나윤을 쳐다보았다.

“왜 그래요? 나윤이?”

“저, 저 사람이 퀸터플 악셀을 돌았어요!”

채나윤의 말에 선생님은 웃음을 터트리는 대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자꾸 헛것을 보는 것이, 어디가 아픈 게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나윤아, 선생님이 엄마한테 연락할게요. 오늘 연습은 쉬는 게 좋겠어요.”

결국 피겨 지도자는 채나윤의 어머니에게 전화하기 위해 핸드폰을 가지러 갔다.

그사이 채나윤은 예쁜 언니한테 등짝을 얻어맞고 있는 오빠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물었다.

“오빠는 피겨의 신이에요?”

그러자 남자가 대답했다.

“그러하도다.”

“어떻게 하면 퀸터플 악셀을 할 수 있어요?”

“세상에 한계는 없단다.”

남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등짝을 몇 대 더 얻어맞았고, 채나윤은 후다닥 다가온 선생님의 손에 붙들려 링크 밖으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남자의 말은 채나윤의 마음에 깊게 남았다.

‘한계는 없다.’

전 세계를 뒤집을 또 한 명의 피겨 여신의 재능이 아름답게 피어나고 있었다.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