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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49화 (249/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49화>

* * *

“풋살?”

진유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상소윤과 놀이공원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난데없이 정장을 입은 남자가 다가와 풋살에 참여하라는 말을 건넸기 때문이었다.

무슨 자선 사업의 일환이라는데, 다짜고짜 제안을 건네는 게 이상했다.

상소윤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질문을 던졌다.

“얘한테 갑자기 왜요?”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만, 이번 행사의 주최가 되는 폼멜 스테인버그 선수가 직접 요청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폼멜 스테인버그?”

축구에 관심이 없는 상소윤도 몇 번이나 들어 봤던 이름이다.

생각해 보니 지종수가 최고의 공격수라면서 자주 입에 담았던 선수였다.

‘그럼 진유성의 정체랑은 무관한 건가?’

사실 상소윤은 주최 측의 난데없는 제안이 진유성의 정체 때문인 줄 알았다.

누군가 진유성이 언노운 엠페러라는 의심을 품고 있어서 확인하려 한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언노운 엠페러를 의심했다면 고작 축구를 요청하는 것도 이상하다.

“야, 너 영국에서 축구 한 적 있냐?”

“있다. 저번에 지종수를 따라갔던 적이 있지 않느냐.”

“아, 맞다. 그럼 그때 저 선수랑 만났던 거 아니야?”

“아니다. 본 적 없는 사람이다.”

“확실해?”

“확실하다. 나는 어지간해서는 사람의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는다.”

진유성과 상소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주최 측 직원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선수가 요청해서 직접 방문하긴 했는데, 말투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남자가 사극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이상한 말투를 쓰는데, 여자는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여긴다.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아, 혹시 연예인들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두 사람 다 외모가 뛰어난 편인데, 여자는 특히 뛰어나다.

행사를 하다보면 이런저런 연예인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 정도 실물은 흔치 않다.

낯이 익지 않은 걸로 봐서 유명한 이들은 아닌 것 같지만, 대형 기획사에서 푸쉬를 해 주는 이들임은 틀림없다.

그러니 폼멜 선수에게 직접 청탁을 했겠지.

거기까지 생각한 직원이 입을 열었다.

“행사 시작까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요. 일단 옷부터 갈아입으시죠.”

그러나 진유성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한국에서 다양한 취미 생활을 즐겼고, 그중 가장 자주했던 것이 축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축구를 엄청나게 좋아하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가 축구를 할 때면 보통 누군가를 골려 주겠다는 의도를 품고 있다.

영국에서 인종 차별을 하는 이들도 그랬고, 해병대 캠프의 조교들도 그랬고, 지종수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하기 싫은 건 아니지만, 딱히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진유성의 마음을 눈치 챈 상소윤이 물었다.

“안 하게?”

“모르겠다. 딱히 할 이유가 없는 것 같아서.”

“아저씨, 이거 하면 뭐 좋은 거 있어요?”

“참가자들에게는 소정의 상품을 드립니다.”

“그런 거 말고요.”

“어, 한 골당 백만 원씩 소아암 환자들에게 기부됩니다. 어느 팀이 넣든지요.”

“골당? 그럼 100골이 들어가면 일억 기부해요?”

“그럼요. 근데 전후반 15분씩이니까, 100골은 힘들겠죠?”

담당자의 말을 들은 상소윤이 진유성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속삭였다.

“야, 한 오십 골 넣고 와 봐. 좋은 일에 쓰는 돈인데.”

“흠. 그럴까?”

“그래. 너 축구하는 것도 좀 보자.”

상소윤은 진유성이 축구하는 걸 여러 번 봤지만, 자세히 본 적은 없었다.

그냥 달리기가 빠르다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진유성이 무공의 고수라는 걸 알고 있으니,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궁금해졌다.

진유성도 이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부터 민초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던 진유성이었으니, 좋은 취지가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잠시 뒤, 진유성은 주최 측에서 준비한 기업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는 야외 임시 풋살장에 들어섰다.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구경하는 이들이 꽤 많았다.

풋살이 끝나고 폼멜 스테인버그의 사인회가 예정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오늘 풋살에 참여하는 이들은 진유성을 제외하고는 전부 현장에서 지원을 받은 이들이었다.

폼멜이 그들에게 다가오더니 한 명 한 명 악수하며 쉬운 영어로 농담을 건넸다.

그러나 진유성 앞에서는 잠깐 머뭇거렸다.

그는 자신을 처음 발굴한 엔서니를 아버지처럼 따랐다.

폼멜의 친부가 폭력적인 알콜 중독자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런 마음을 느꼈고.

그런 엔서니가 처음으로 천재라고 칭찬한 이를 만나니, 어딘지 질투도 좀 들고 이기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다.

물론 그보다 더 큰 의구심이 들었고.

‘천재라고? 이 어린 동양인이?’

잠시 뒤, 많은 구경꾼과 기자, 카메라 앞에서 풋살 경기가 시작되었다.

* * *

오늘 경기는 이벤트성이고, 골당 기부금이 적립되는 형태였다.

정말 기부만을 추구하면 서로 수비를 하지 않고 골문에 골만 넣으면 될 일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재미도 없고, 보는 맛도 없다.

보는 맛이 있어야 화제도 되고, 기업 브랜드도 홍보가 되는데 말이었다.

그래서 주최 측은 선수들에게 정상적인 경기를 부탁해놓은 상태였다.

어차피 몇 골을 넣어도 주최 측은 ‘뜨거운 열기에 감사하다.’라는 멘트와 함께 5,000만 원을 기부할 예정이라는 귀띔과 함께.

5천만 원 이상의 기부금을 뜯어내려면 50골 이상을 넣어야 하는데, 경기 시간은 30분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참가자들은 골 폭풍보다는 폼멜과의 축구를 즐길 예정이었다.

폼멜의 적 팀은 한 번이라도 폼멜을 막아 볼 생각이었고, 폼멜과 같은 팀은 합을 맞춰 볼 생각에 들떠 있었다.

세계적인 선수와 풋살을 즐길 기회는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것이니 말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30분에 50골 이상을 넣어야 한다.’

진유성은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말해도 일단 도전을 하는 사람이었다.

설령 실패하더라도 모든 도전에는 가치가 있으니까.

그래서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진유성은 지체 없이 공을 몰고 앞으로 나아갔다.

진유성의 앞을 막아서는 것은 폼멜이었다.

폼멜은 엔서니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인지, 아니면 진짜 천재인 것인지가 궁금했다.

‘진유성이라고 했지?’

그래서 아주 진지한 마음으로 자세를 낮추며 수비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진유성의 속임수에 아주 쉽게 뚫려 버렸다.

분명 오른쪽으로 가는 것 같았는데, 어느새 진유성은 왼쪽에 있었다.

골이 들어가자 적립금을 표시하는 전광판에 100만 원이 표기되었고,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관중들의 눈에는 폼멜이 일부러 가볍게 수비를 하며 길을 열어 준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 최고의 공격수가 저리 맥없이 뚫릴 리가 없다.

폼멜 스테인버그는 최전방 공격수이면서도 특이하게 수비 실력이 뛰어난 이였다.

그의 특기는 중원 싸움에 합류해서 상대의 공격을 끊어 내고 역습으로 골을 넣는 것.

역대 프리미어 리그 공격수들 중에서 태클, 패스 차단, 역습 전환의 스탯이 가장 높은 이가 폼멜이었다.

그러니 분명 일부러 열어 준 것이다.

선취골을 먹은 폼멜이 공을 받고는 슬슬 몰고 나왔다.

골을 내줬으니, 이번엔 넣어 줄 차례였다.

그 순간 갑자기 진유성이 달려들었다.

폼멜은 내심 웃었다.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은 이렇게 우격다짐으로 공을 뺏으려 달려들지 않는다.

최고 레벨의 선수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볼을 간수할 수 있다.

공격을 전개하는 와중에는 빼앗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자세를 잡은 채로 볼을 지키는 건 어렵지 않다.

“……!”

라고 생각했던 폼멜이 나동그라지는 데는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상대방이 왼쪽을 푸쉬하는 것 같아서 왼쪽에 힘을 주고 있었는데, 오른쪽, 왼쪽, 다시 오른쪽으로 힘의 압력을 바꾸었다.

그러자 폼멜은 반항도 하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힘을 주던 밸런스가 망가지면서 균형을 잃었다.

반칙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최고 레벨의 선수 한 명을 바보로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그사이 부드럽게 달려간 진유성이 또다시 골을 기록했다.

경기가 시작한지 1분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두 골이 터진 것이었다.

‘내가 다 넣는다.’

이것이 진유성의 계획이었다.

양쪽이 공격을 해서 골을 많이 넣는 것보다, 그 혼자 골을 많이 넣는 게 훨씬 빠르다.

왜냐하면 상대는 실수할 수 있지만, 자신은 실수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주최 측도, 구경꾼도, 폼멜 스테인버그도 생각하지 않았던 진유성의 원맨쇼가 시작되었다.

“쟤 뭐야?”

“몰라. 혼자 되게 열심히 하네.”

“폼멜은 슬슬 하는 거 같은데.”

“뭐 어때, 기부금 많이 적립하려는 거 같은데. 보기 좋네.”

“그래도 우리가 폼멜 보러 왔지, 쟤 보러 왔냐.”

처음에는 구경꾼들도 별 생각이 없었다.

자선 경기라서 폼멜이 슬슬 하는 구나.

골이 많이 들어가면 좋지.

그 정도만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5분이 지날 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이 시뻘게진 폼멜이 이를 악물며 달려들고 있다.

폼멜은 최고 레벨의 선수였던 만큼 선수로서 프라이드도 어마어마했다.

자존심이 박살이 났는데 슬슬 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은 상대를 농락했다.

화려하게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도 화려하다.

‘와, 뭐야.’

구경꾼들 사이에서 진유성을 보고 있던 상소윤도 감탄했다.

무공의 고수라고 해서 기대했는데, 기대 이상이다.

사실 뭘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슬슬 움직이면 상대가 픽 넘어지고, 절대 공을 빼앗기지 않는다.

정식 축구장이었다면 진유성이 이토록 날아다닐 수는 없었다.

내공을 쓰지 않는 이상은 먼 거리에서 패스하는 걸 차단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이곳은 보통의 풋살장보다 조금 더 좁은 임시 풋살장이었다.

전력으로 달려가서 발을 뻗으면 대부분의 패스를 차단할 수가 있다.

그렇게 전반의 15분이 지났을 때, 경기 스코어는 처참했다.

32 대 7.

당연히 진유성 쪽이 32이었다.

약속했던 분당 2골을 지켜 낸 것이었다.

쉬는 시간에 난리가 난 것은 주최 측이었다.

그들이 오늘의 행사를 계획하면서 생각했던 것은 이런 그림이 아니었다.

폼멜의 화려한 발재간과 현란한 개인기에 골이 터지고, 모두가 웃음을 짓는.

그러면서 기자들은 폼멜이 입고 있는 유니폼에 박힌 기업 로고를 예쁘게 찍는.

기부금도 문제다.

그들이 본사에서 컨펌 받아 온 기부금의 한도치는 5천만 원.

이대로라면 5천만 원을 훌쩍 넘기게 된다.

결국 진유성을 데려왔던 담당자가 쉬는 시간에 조심히 다가왔다.

“그, 진유성 씨.”

“왜요?”

“죄송하지만, 후반에는 폼멜 선수 위주로 경기가 진행될 수 있도록…….”

이온 음료를 마시던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담당자가 반색을 하며 돌아갔지만, 진유성은 귀찮아서 고개만 끄덕였을 뿐이었다.

진유성의 플레이는 후반에도 변함이 없었다.

한국의 고등학생 한 명이 프리미어 리그의 공격수를 탈탈 털어 버리는 믿기 힘든 모습이 계속해서 연출되었다.

그러자 장내에는 정말 애매하고 어색한 침묵이 맴돌았다.

혹시 악몽을 꾸는 건가 싶은 폼멜이 침묵했고, 경기에 관여하기는커녕 구경만 하고 있는 풋살 참가자들이 침묵했다.

팬이라서 폼멜의 유니폼을 입고 온 관중들도 침묵했고, 사인회를 준비 중인 스탭들도 침묵했다.

돈을 기부할 기업의 사람들과 기부금을 관리할 협회의 사람들도 침묵했다.

단 한 명.

오직 진유성만이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을 느끼며 열심히 골을 넣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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