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45화>
* * *
천신궁의 진유성이 하늘을 쳐다보았다.
대명제국의 민초들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그에게는 하늘 전체를 뒤덮고 있는 뿌옇고 불길한 기운이 보인다.
이는 차원이 닫힌 뒤 생긴 부유물이다.
마도사의 설명에 따르면, 정상적인 차원은 음기와 양기를 타 차원과 교류하며 자동 순환한다고 했다.
음이 부족하고 양의 과하면, 양을 주고 음을 가져오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 과정이 중요한 것은 비단 음양의 균형을 맞출 수 있기 때문은 아니다.
에너지 교환 과정에서 영성의 질이 확장되는 것이 더 중요했다.
하지만 차원이 닫혔다.
더는 타 차원과의 순환이 일어나지 않는다.
모든 것은 행성 안에서 일어난다.
지금이야 차원이 닫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큰 문제는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 부유물이 온 세상을 잠식하는 순간이 올 것이었다.
그렇게 차원이 멸망하는 것이다.
‘지구의 진유성이었다면 죄책감을 느꼈을까?’
천신궁의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백성들이 신음하는 소리가 들린다.
건강했던 이들은 건강을 잃고, 와병 중이었던 이들은 죽어 나간다.
그들이 죽으며 흘리는 영성이 정상적인 순환 고리에 편입되지 못하고, 양적악화를 만들어 낸다.
좁은 연못에서 수백 마리의 잉어가 죽으면, 사체에서 흘러나온 유기물들이 부유물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연못은 썩어 버린다.
지금, 중원의 진유성이 살고 있는 차원이 딱 이런 모습이었다.
물론 천신궁의 진유성이 백성들의 멸망과 죽음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죽어도 상관은 없지만, 굳이 죽일 필요를 느끼진 못한다.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은 지구에 건너가기 위함이었다.
하나의 차원이 멸망하기 전에 뿜어내는 막대한 에너지.
그것은 그를 지구로 보내는 수단이 될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흠.”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천신궁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느껴보는 기운이었다.
하지만 어딘지 익숙하기도 했다.
‘어디서 느껴 봤던 거지?’
천신궁의 진유성은 침착한 눈길로 다가오는 이를 쳐다보았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마도사들의 첫째.
그가 종종 사용하는 호문클루스의 육신.
하지만 오늘은 느낌이 좀 다르다.
“…….”
“…….”
천신궁의 진유성과 마도사들의 첫째의 시선이 부딪쳤다.
잠시 침묵하던 두 사람 중 먼저 입을 연 것은 진유성이었다.
“알현 요청을 들은 바가 없는데, 무례한 방문이군.”
“그러한가?”
“진짜 육신을 얻었군? 그리고, 그 힘은…….”
잠시 생각하던 진유성이 말을 이었다.
“해남의 섬에서 얻은 것이군.”
“그래. 전능의 존재가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힘이지.”
“너 자신의 힘으로는 부족했던 모양이지?”
“지구의 진유성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했다. 난 그와 충돌했고, 패퇴했다.”
“그렇군.”
진유성의 대수로운 반응에 첫째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넌 정말 지구의 진유성보다 강한가?”
“그러하다.”
“하지만 일전에 나와 겨뤘을 때는 압도적이지 못했던 것 같은데?”
“…….”
머뭇거리는 법이 없던 진유성답지 않은 반응이었다.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긍정하는 것도 아니다.
마침내 진유성의 입이 열렸을 때, 예상 밖의 이야기가 나왔다.
“네가 날 찾아왔을 때, 난 알았다. 내 갈증을 풀어 줄 유일한 존재가 찾아왔다는 걸.”
“넌 진유성인가? 아니면 진짜가 남기고 간 일부인가?”
첫째의 질문은 분명 진유성을 분노하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희망하게 했다.
천신궁의 진유성은 늘 끝없는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를 알 수 없다는 갈증.
그러나 이러한 갈증은 오롯이 혼자만의 것이었기 때문에, 천신궁의 진유성은 답답함을 느꼈다.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없는 정신적인 문제를 표현하는 단어.
망상증.
진유성은 자신이 주화입마에 들어 망상에 빠진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있었다.
어쩌면 천신궁 뒤뜰에 열린 게이트는 진짜 게이트가 아니라, 그저 요물일 수도 있었다.
사람을 병들게 해 심마에 빠지게 하는 요물.
또는 누군가의 함정일 가능성도 있었다.
전 중원에 진유성이 죽길 바라는 이들이 수만 명이 넘을 테니까.
하지만 마도사의 등장은 진유성의 이러한 외로움을 달래주었다.
‘--’의 9할을 품은 진유성의 존재를 알고 있는 이니까.
“나는 너를 죽이지 못한 게 아니다. 살려 둔 것이다.”
“……그랬군.”
“마도사여. 그대가 차원을 멸망시켜야만 한다는 거짓을 고한 것을 알고 있다. 하나, 용인하마.”
“…….”
“그대가 날 이용해 지구의 진유성을 죽이려는 걸 알고 있다. 하나, 용인하마.”
“…….”
“그대가 지구의 진유성을 죽인 다음 날 죽이려는 것도 알고 있다. 하나, 용인하마.”
진유성이 눈빛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나를 지구의 진유성 앞에 데려다 놓아라. 그렇다면 나는 네가 원하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할 것이다. 다음의 일은 다음에 생각하여라.”
진유성의 말에 첫째가 답했다.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지구의 사람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온 마(魔)가 되는 것은.”
“천마(天魔)라. 내 오랜 별호로군.”
그렇게 첫째는 자취를 감췄다.
진유성은 여전히 부유물이 낀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한 놈에게 영혼을 빼앗겼군. 마도사.”
* * *
상도윤은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성장이 빨랐다.
보통의 아기라면 이제 막 목을 가누었을 시기인데, 상도윤은 벌써부터 조금씩 기어 다니고 있었다.
이게 다 진유성이 상도윤을 튼튼하게 만든 덕분이었다.
유혜연도 이제는 진유성 덕분에 상도윤이 건강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의 사랑과 욕심은 끝이 없기 마련이었다.
“유성아.”
“네?”
“도윤이 머리는 똑똑하게 안 될까?”
“글쎄요. 오성이 지능에 영향을 주긴 하지만 비례하는 건 아니라서요.”
벌모세수를 통해 상도윤의 오성을 자극해 놓았지만, 똑똑해진다는 보장은 없다.
오성이 뛰어난 이는 지능도 뛰어난 경우가 많았지만 그게 무조건은 아니었다.
물론 유혜연은 진유성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진 못했다.
“그럼 똑똑하게 만들 수는 없어?”
유혜연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던 진유성이 상소윤을 가리켰다.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던 상소윤이 눈살을 찌푸린다.
“건방지구나. 어디 감히 손가락질이란 말이냐?”
“…….”
“손가락을 내리거라.”
갈수록 진유성을 따라하는 게 능숙해지는 상소윤이었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내린 진유성이 유혜연에게 말했다.
“사람을 똑똑하게 만들 수 있었다면 진작 저 물건부터 똑똑하게 만들었겠죠.”
“저 물건?”
상소윤이 눈썹을 꿈틀거렸지만, 유혜연은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긴, 그랬겠네. 공부 가르치다가 포기도 안 했겠고.”
“엄마! 무슨 그랬겠구나야. 이번 내 기말고사 성적 안 봤어?!”
“소윤아. 사람이 살다 보면 세 번의 큰 기회가 찾아오거든?”
“응?”
“넌 그 기회를 한 번 쓴 거야.”
“아니! 무슨 딸이 세 번뿐인 기회를 60등 하는 데 썼대?!”
“솔직히 말해 봐. 찍은 거 다 맞았지?”
“아, 엄마 미워!”
냉철한 엄마의 분석에 상소윤이 토라졌지만, 유혜연은 반응도 없었다.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키를 키운다던가, 잘생기게 만드는 건?”
“키는 벌모세수로 생사현관이 타통됐으니 알아서 클 거고, 얼굴은…….”
안 된다고 말하려던 진유성이 잠시 멈칫했다.
생각해 보니까 꼭 불가능할 것 같진 않다.
성인이 돼서 외모를 바꾸는 건 불가능하지만, 아이 때는 뼈가 굳지 않아서 골격이 무르다.
내공으로 조금씩 매만지다 보면 원하는 이목구비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꾸준히 해야 해서 그렇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물론 이는 진유성 입장에서나 그런 것이었고, 평범한 문파에서 이런 일을 하려면 장로급 무인 수십 명을 몇 년은 갈아 넣어야 할 것이었다.
“얼굴은 바꿀 수 있겠는데요?”
“진짜? 어떻게?”
“별건 아니고…….”
진유성의 설명을 들은 유혜연이 박수를 쳤다.
경락 미용과 비슷한 원리인 듯했다.
본래 부모들의 마음은 비슷한 법이라, 자식이 건강하고, 똑똑하고, 잘생기길 원했다.
당장 상소윤만 봐도 머리가 나빠도 예쁘니까 좀 낫지 않은가?
상소윤이 들었다면 일주일은 삐졌을 생각을 하던 유혜연이 흠칫 놀랐다.
문득 남편의 말이 떠올라서였다.
“중원과 지구는 묘하게 미의 기준이 다르거든. 진짜 내가 중원에서는 호방한 미남이었다니까?”
진유성과 상림의 고향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툭 튀어나온 말이었다.
놀랍게도 진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상림은 중원에서 엄청난 미남이었으니까.
여기서는 조폭 영화에 나올 엑스트라 1의 얼굴이지만, 아무튼 그랬다.
“저, 유성아.”
“네?”
“이중 누가 제일 잘 생겼니?”
유혜연이 인터넷에서 급히 검색한 해외 격투기 선수 세 명을 보여 주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정답은 ‘잘생긴 사람이 없어요.’였다.
외국인들 중에는 이런 마초적인 외모를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는 걸 알지만, 한국인이 보기엔 너무 무섭게 생겼다.
밤에 우연히 마주치면 엄청 무서울 것 같다.
“흠.”
세 사람의 얼굴을 본 진유성이 꽤 난감한 듯 턱을 쓰다듬었다.
유혜연이 기대를 담아 물었다.
“어렵지?”
“네. 어렵네요. 다들 비슷해서.”
“어떻게 비슷한데?”
“뭐가요?”
“아니, 그, 느낌?”
“다들 절세미남들이군요. 색목인이라 낯섦이 느껴짐에도 이 정도 외모라니. 부럽습니다.”
“……평소에 드라마는 어떻게 보니?”
“네? 뭐가요?”
“배우들 보면 막 못생겨 보일 것 아니야?”
“그래서 좋던데. 현실감 있고. 배우가 다 예쁘고 잘생기면 현실감이 떨어지죠.”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진유성의 미추의 기준도 한국에 맞게 조금씩 바뀌고 있긴 했다.
하지만 중원에서는 120년을 넘게 살았고, 한국에서는 이제 고작 1년이다.
아니, 아직 1년도 되지 않았다.
그러니 벌써 기준이 확 바뀌는 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상림도 한국에서 지낸 지 3~4년은 걸렸으니까.
“도윤이는 제가 꾸준히 골격을 다듬어서…….”
“안 돼!”
“네?”
“만지지 마!”
“아, 당연히 한국인의 보편적인 기준에 맞춰서 할 거니까…….”
“거짓말!”
상도윤을 품에 안고 간절하게 소리치는 유혜연이었다.
* * *
“대체 무슨 준비를 그렇게 하는 게냐?”
진유성의 타박에 상소윤이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아, 왜. 오랜만에 밖에 나가는 건데.”
“박색과 뺚썎의 경계선에 있구나.”
“아, 진짜 뒤진다.”
습관처럼 투덜거린 상소윤이 집밖으로 나와서 콜택시를 불렀다.
현관문 앞에서 하릴없이 콜택시를 기다리던 중, 상소윤이 물었다.
“야, 진짜로 박색해?”
“뭐가 말이냐?”
“나.”
“말하지 않았느냐. 박색과 뺚썎의 경계선에 있다고. 단순한 박색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경지이다.”
“아, 열받네.”
“포기하거라.”
“뭘 포기해!”
상소윤이 소리를 버럭 지를 때, 마침 콜택시가 왔다.
삐져서 택시에 올라탄 상소윤은 택시 창문에 비춘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평소보다 훨씬 꾸민 얼굴이고, 꽤 만족스럽다.
역시 진유성은 눈알을 뽑아서 한 번 씻어야 한다.
‘아니, 내가 이걸 왜 신경 쓰고 있어?’
상소윤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녀도 답을 알고 있었다.
“이번엔 시켜 주겠느냐?”
“명예 소방관.”
“아주 잘 버텼다. 훌륭했다.”
“소윤아.”
“꽉 잡고 있어라.”
그날의 기억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