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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44화 (244/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44화>

진유성은 처음에 관리자란 존재가 이상했었다.

마도사들의 존재를 몰랐을 때는 자연은 무정(無情)한데, 어찌하여 친절한지에 대한 의아함을 느꼈었다.

그러나 마도사들이 게이트를 만들었다는 것을 알고 난 뒤부터는 그러려니 했다.

마도사들의 목표는 아카식 레코드를 오염시키는 것이었고, 아카식 레코드란 인류의 무의식이 모인 서고였다.

마도사들에게는 전 인류가 게이트와 각성자에 익숙해지는 과정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게이트에 대해 생각하고, 대화하고, 꿈을 꾸는 모든 과정이 아카식 레코드를 오염시키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그때는 관리자가 존재해 친절하게 구는 것이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마침내 아카식 레코드가 오염되었다.

그 증거로 DDP에서 몬스터가 게이트 밖의 인간을 죽였다.

분명 일렁거리는 DDP 벽면 속의 몬스터들이 인간들을 죽였다고 했다.

몬스터가 게이트 밖의 인간을 죽였다는 것은, 그들이 현실 세계에 간섭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다.

이는 이종의 힘을 추방하는 아카샤의 절대 의지가 몬스터를 색(色 : 현실 물질)으로 인식했음을 뜻했고, 몬스터가 더는 이종의 것이 아님을 뜻했다.

그러니…….

‘이제 관리자는 필요 없다.’

그는 자유각성지대가 된 캘리포니아 게이트에서 관리자와 싸워 본 적이 있다.

그때 판단하기로, 관리자는 중원 이십대고수보다 살짝 아래였다.

물론 진유성의 입장에서는 백대고수나 십대고수나 비슷비슷했다.

벽을 넘기 전에는 차이를 느낄 수 있었지만, 벽을 넘은 이후에는 고만고만해졌다.

그럼에도 이십대고수라는 것은 결코 약한 것이 아니다.

천마신교의 삼인자였던 전성기의 상림쯤 된다.

한데 세상에 게이트가 몇 개가 있는가?

셀 수 없이 많다.

동시에 생겨나는 게이트만 백 개가 넘고, 기간이 겹치는 걸 생각하면 수백 개가 될 수 있었다.

그러니 모든 게이트에 관리자란 존재를 포함시키는 것은 힘을 엄청나게 낭비하는 셈이 된다.

하는 일이라고는 게이트의 정보를 몇 마디로 던져 주는 게 전부인데 말이었다.

게다가.

‘왜 관리자라고 부르지?’

관리자는 전혀 관리하지 않는다.

내부적으로 게이트 시스템을 관리한다고 보기에는 관리자를 소멸시켜도 게이트는 잘만 돌아갔었다.

“왜 그러십니까?”

진유성이 깊은 생각에 빠져 있자 한지후 본부장이 물었다.

“야, 게이트 사태가 시작된 지 얼마나 됐지?”

“20년 정도 됐습니다.”

“그때 넌 뭐 하고 있었냐? 민간인이었냐?”

“군인이었습니다. 정확히는 군인이 되기 위한 육사생도였습니다.”

“처음부터 게이트에 용어가 있진 않았을 거 아니야? GEL, 스텟 등등.”

“음…….”

한지후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처음엔 전 세계 각국에서 마음대로 불렀던 것 같습니다. 아노미 사태였으니까 용어에 대한 합의도 없었죠.”

“그게 합의된 건 언제고?”

“SG가 출범하면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럼 관리자란 이름은 누가 붙였냐?”

한지후 소장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관리자는 이름을 붙인 게 아닙니다.”

“그럼?”

“처음부터 관리자라고 불렀습니다.”

“왜?”

“당연하지 않습니까? 본인이 스스로를 관리자라고 소개하는데요.”

진유성이 눈을 크게 떴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저는 이번 미션을 진행할 관리자 ‘D-1C’입니다.]

관리자들은 스스로의 이름을 밝혔다.

“그럼 너는 관리자가 무엇을 관리한다고 생각하냐?”

“글쎄요. 미션을 관리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관리자를 죽이면 미션도 끝나겠네?”

“그렇겠죠. 하지만 관리자를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시도를 안 해 본 게 아니에요.”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관리자를 죽여도 미션은 끝나지 않는다. 내가 해 봤어.”

[저는 이번 미션을 진행할 관리자 ‘S-3S’입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차라리 ‘진행자’란 단어가 더 적절하다.

용어가 좀 우습긴 하지만, 스스로가 진행을 한다고 하니까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스스로를 관리자라고 소개했다.

아니, 그들이 맞을까?

관리자는 각자 개성이 다른 존재인가?

아니면 하나의 존재가 분열된 것인가?

무엇보다…….

‘관리자는 무엇을 관리하는 것인가?’

진유성의 미간이 좁아졌다.

* * *

마도사들의 첫째, LRord는 눈을 떴다.

그리곤 화들짝 놀랐다.

눈을 떴다는 것은 자신이 살아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다고? 어떻게?’

그는 분명 진유성에게 패배했고, 집요한 추격 끝에 소멸당했다.

소멸을 피하기 위해서 수백 개의 게이트와 수십 개의 하위차원을 이용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유성이란 존재는 정말로 이상했다.

분명 그는 진유성과의 싸움에 자신이 있었다.

두 사람의 무력 자체는 백중세였다.

하지만 진유성은 영혼백육을 가진 인간이고, 자신은 영과 혼으로 이루어진 존재이다.

백과 육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많다.

그들의 싸움이 백중세로 끝없이 이어진다면 어떨까?

당연히 육신이 없는 첫째가 유리해진다.

절대자의 반열에 오른 진유성은 생리 현상을 컨트롤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영원히 할 수는 없다.

언젠간 허기가 질 것이고, 잠이 올 것이다.

한 번 균열이 생기면 그 균열을 작아지지 않고, 계속 커지기만 한다.

그러니 첫째는 진유성과의 싸움을 질질 끌면 반드시 이긴다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잠깐 백중세로 싸우는 듯했지만, 진유성은 그가 상상하지 못한 경지에 다다랐다.

그리곤 알 수 없는 공격으로 그를 단숨에 궁지에 몰아넣었다.

그 일검은 정말로 이상했다.

그가 두르고 있는 수백 개의 방어 술법과 회피 술법을 모두 무시한 채로 영기의 근원을 타격했으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지금은 패배를 곱씹을 때가 아니었다.

현상을 파악해야 할 때였다.

그런데도 자꾸 진유성에게 패배했을 때가 떠오른다.

이상하다.

이런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자꾸 생각하게 되고, 생각을 떨쳐 내려고 하면 더욱 생각하게 되는 그런 기분.

이런 기분은…….

인간일 때 느꼈었다.

“……!”

그 순간, 첫째가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튕겨지듯 일어났다.

그리곤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너무 오랜만에 숨을 쉬느라 폐부가 아렸다.

지난 수백 년간 그는 숨을 쉬지 않았다.

당연하다.

영혼으로 이루어진 존재였는데 숨을 쉴 이유가 없으니까.

호문클루스나 타인의 육신을 뒤집어써도 마찬가지였다.

신체 기능이 저하되지 않도록 자동 호흡 술법을 걸어놓긴 하지만, 스스로가 숨을 쉰다는 기분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숨을 쉬어야 한다.

왜냐고?

그에게 ‘육신’이 주어졌으니까.

자꾸 떨쳐내려는 생각이 들러붙는 이 기분이 무엇인지 알겠다.

인간일 때 이러했다.

인간의 사고는 백과 육에 영향 받기 때문에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

고통을 느끼면서 행복한 생각을 떠올리는 게 불가능한 이유였다.

첫째는 자신이 혹시 빙의된 것인가 싶어서 육신을 벗어던지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그는 정말로 인간이 된 것이었다.

“어, 어떻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두컴컴한 동굴이었다.

하지만 빛만 없을 뿐이지, 나머지는 모두 쾌적했다.

공기, 습도, 온도.

모두 사람이 살아가기 딱 좋은 수준이다.

그는 이것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환경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본래의 자연 환경 대로라면 좀 더 추워야 하고, 좀 더 습해야 하고, 좀 더 눅눅해야 한다.

첫째가 손을 휘둘러서 마도술을 걷어 내려다가 멈칫했다.

보유 마력이 보잘것없다.

본래 자신이 품고 있던 악의의 영기를 모두 진유성에게 빼앗겼기 때문인지, 첫째가 가지고 있는 마력량은 일반적인 마도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첫째의 마도 역량은 하늘에 닿았기 때문에 그는 이 정도로도 수많은 일들을 벌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진유성 정도의 절대자를 만난다면 순식간에 살해당하리라.

냉정을 되찾은 첫째는 마력을 고속 회전시켜 보유 마력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동굴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눈부신 햇볕이 내리쬐는 풀숲이 보였다.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진유성에게 소멸당했지만, 눈을 뜨니 인간이 되어 있다.

환생을 한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는 진유성에게 모든 영성을 빼앗겼다.

윤회하기 위해서는 영성을 쥐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마도사들은 윤회의 고리를 탈출해 신을 꿈꾼 지 오래였다.

환생은 없다.

밝은 곳으로 나온 첫째는 자신의 팔뚝에 나 있는 오랜 흉터를 보았다.

그는 형제들과 함께 자신을 잉태했던 릴리스를 죽이고 태어났다.

하지만 릴리스는 고강한 마녀라서 쉬이 죽어 주진 않았다.

그녀는 온갖 방어 술법으로 쌍둥이들을 무력화시키려고 했고, 쌍둥이들은 그녀의 자궁 속에서 릴리스를 죽이려고 했다.

그때 첫째는 오른팔에 무수히 많은 상처를 가지게 되었다.

그 상처는 너무나 익숙해서, 수백 년이 지났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흉터가 눈앞에 있었다.

이 말은 곧, 이 육신이 본래 자신의 것임을 뜻했다.

스스로 내던진 육신 속으로 들어왔음을 뜻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나 이상했다.

첫째는 상실의 공간에서 육신을 벗어던졌다.

이는 둘째나 셋째와는 달랐다.

둘째와 셋째는 상실의 공간에서 ‘가장 소중한’ 육신을 빼앗겼다.

하지만 첫째에게 가장 소중했던 것은 둘째와 셋째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

그가 육신을 벗어던진 것은 자의였다.

이 육신을 벗어던진 게 수백 년 전이니, 진작 썩어 버렸어야 맞다.

설령 썩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온전히 보존될 수가 없다.

기록에 따르면 나약한 민초들이 그들이 떠나고 시신에 화풀이를 했다고 했으니.

첫째는 마도술로 거울을 만들어 내서 자신의 외모를 확인했다.

수백 년 전에 벗어던졌던 그 육신이 맞았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짜가 아니라, 정말 자신의 육신이었다.

벗어던질 수는 없다는 것이 이상하지만.

미로 속에 들어온 기분을 느끼며 첫째는 우선 장소를 파악하고자 했다.

지구에 동굴이나 숲이 있는 장소는 많지만, 이처럼 온전히 보존된 자연은 드물다.

게다가 주변에는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프리카 오지에 자신의 육신이 봉인되어 있던 것일까?

누가 봉인해 놓은 것일까?

첫째는 그런 생각을 하며 풀이 누워 있는 방향을 따라 걸었다.

숲속에 길은 없지만, 누군가 이동했던 흔적이 있었다.

날아가면 금방이겠지만, 어차피 마력을 회복해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첫째는 어느 순간 자신이 이곳에 와 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변의 풍경이 익숙했다.

이곳은……..

“마도사여. 묻겠다.”

“네 눈에는 내가 정체도 모를 힘을 계승해서 거들먹거릴 존재로 보이는가?”

“내가 이 섬에서 얻은 것은 입멸검뿐이다. 생사입멸을 관장하는 이 힘은…….”

“내가 빚어 낸 것이다.”

중원의 진유성과 함께 왔었던 해남의 이름 모를 섬.

전능의 존재가 남긴 힘이 잠든 진법이 펼쳐진 섬.

그렇다는 것은, 이곳은 중원이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행성이다.

첫째는 기억에 따라 전능의 힘이 잠들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본능이 말하고 있다.

그곳에 자신의 육신을 봉인해 둔 존재가 있다고.

마침내 진법에 도착했을 때, 첫째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한 여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안녕?”

직접 만난 적은 없으나, 익숙한 얼굴.

첫째는 지구에서 많은 사람들을 조종해서 SG와 각성 사회를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그때 써먹었던 보잘것없는 인간 중 한 명.

이게 첫째가 기억하는 눈앞에 여자였다.

이곳에 나타날 만한 존재가 결코 아니었다.

“너는…… 누구냐.”

“내 이름을 알면서 왜 그래?”

여자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녀는 아멜라 메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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