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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43화 (24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43화>

* * *

촤아아아-

진유성은 파도 소리를 들으며 기감을 확장했다.

“여전히 아무도 없군.”

본래는 7명이 살고 있었으나, 정치적인 이유로 게이트 폭주가 예정되어 텅 비어 버린 섬.

그러나 진유성이 클리어를 해서 살아남은 섬.

그리고, 멀더의 죽음을 기린 섬.

양도였다.

진유성이 양도에 온 것에 큰 이유는 없었다.

생각을 정리할 것도 좀 있고, 무공과 관련해 실험해 볼 것도 있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은 우선 입멸검을 빼 들었다.

현재 진유성이 사용하는 입멸검은 진짜 입멸검은 아니었다.

엔리케 카를로가 상품으로 내걸었던 입멸검을 복제한 가품일 뿐이다.

그러니 냉정히 생각해 본다면 이상한 점이 많았다.

입멸검의 복제품은 아놀드 벡에게 빌렸던 검과 비슷하다.

복제품이 조금 더 좋은 검이긴 하나, 인과율을 다루는 힘을 견디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란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멸검의 복제품은 수십 번의 입멸공을 버텨 주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진유성이 검에 구애받지 않는 수준까지 입멸공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

잃어버린 9할의 무(武).

그 때문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새로운 최종오의 연을 만들어 낸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래. 맞아.’

생각해 보면 이상한 점이 많다.

처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들어갔던 서울역 게이트는 E등급이었다.

아무리 진유성이 내공의 대부분을 상실한 상태였어도 숨 쉬는 것만큼 쉽게 클리어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사망자가 발생했었다.

수가 너무 많아서 모두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변명일 뿐이다.

지금의 진유성은 S급 게이트에서도 사람들을 지켜 내니까.

이제는 확실했다.

진유성은 당시에 무공의 상당 부분을 소실한 상태였다.

다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은 진유성이 필요한 만큼 매 순간 경지를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

입멸공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입멸공을 쓸 수 있는 수준까지 경지를 끌어올렸다.

최종오의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최종오의를 쓸 수 있게끔 깨달았다.

상소윤을 찾아야 할 때가 오자 새로운 최종오의를 만들었다.

만약 진유성이 적당히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면 자신의 무공이 소실됐다는 것을 인지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전무후무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한 번 가 본 길을 다시 걷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무의 1할을 지킨 덕분에 그릇은 잃지 않았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깨닫지 못했다.

‘암시가 제대로 걸리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군.’

오경태를 괴롭히던 이들에게 암시를 걸 때도, 진유성은 의념은 완벽하지 않았다.

기억과 경지가 왜곡되어 있으니, 심기체가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음도 당연하다.

‘아마 심검의 다음 경지도…….’

본래 다다랐던 곳일 것이었다.

진유성이 슬쩍 웃었다.

대체 중원에서의 자신은 얼마나 강했단 말인가.

사람들이 신으로 떠받들 법하다.

그리고 중원의 짭유성은 그 힘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걱정하지 않았다.

몰랐다면 모를까, 안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면, 지금부터 경지를 되찾으면 되니까.

진유성은 자신이 품은 재능의 끝을 볼 생각이었다.

마음을 정한 진유성이 입멸검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이제 그는 빈손이다.

중원의 무인들은 흔히 검의 끝에는 무검이 있다고 했다.

무검(無劍).

검이 없다.

무검의 의미는 다양했다.

검이 없어도 상대를 이기는 수준이라고도 했고, 검에 구애받지 않고 벗어나는 수준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무검의 경지를 정확히 설명하진 못했다.

닿아 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진유성은 심검의 끝에서 무검을 보았다.

무검은 정말로 검이 없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검이란 사물이 지닌 존재의 의미를 지움을 뜻한다.

좀 더 정확히는 검이 없이도 검이 내포한 인과만 남김을 뜻했다.

검.

이것은 존재이다.

찌른다.

이것은 원인이다.

죽는다.

이것은 결과이다.

하지만 무검의 경지에 이르면 검이 없이도 원인과 결과를 획득할 수 있었다.

그러니 마도사는 진유성의 공격을 막을 수가 없었다.

방어 술법들이 진유성의 공격을 공격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의 텅 빈 손에서 세상을 재단할 만한 기운들이 치솟아 올랐다.

본래 입멸공을 끌어올리면 온 세상이 요동을 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니었다.

진유성은 간섭 효과까지 완벽히 제어하며 최종오의를 펼칠 수 있었다.

방금 도달한 경지였다.

그 순간, 진유성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다.

‘온 마음이 충족한가? 이 정도로 만족할 수 있는가?’

대답은 아니었다.

자신의 재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분명 더 높은 고지가 있을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원인과 결과를 동시에 획득해야 하지?

원인은 없이 결과만 획득하는 것이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원인은 얼마든지 차단당할 수 있다.

재능으로 세포를 구성한 인간이 있다면 그것이 아마 진유성일 것이었다.

진유성은 오성을 끊임없이 자극하며 스스로를 시험했다.

여기서 만족하는가?

그렇지 않다.

여기가 끝인가?

그렇지 않다.

그때 아스라이 하나의 문장이 떠올랐다.

심검(心劍)이 무심(無心)을 얻으면 과(果)와 인(因)이 뒤바뀔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다.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진유성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검은 없다.

내지르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내질렀다.

꾸르르릉-!

그 순간, 거대한 무엇인가가 섬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직 베지 않았다.

하지만 벤 것일 수도 있다.

진유성이 원하는 순간 이 섬은 위성 지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진유성은 긍정했다.

여기서 만족하는가?

그러하다.

마침내 진유성이 스스로의 끝을 보는 순간이었다.

* * *

“야, 아이스크림 좀 사 놓으라고 했지?”

“……다음에는 사 놓겠습니다.”

“그럼 오늘은 없는 거잖아.”

진유성이 투덜거리며 한지후 본부장 집의 소파에 앉았다.

진유성이 한지후 본부장을 찾아온 것은 정보를 주기 위해서였다.

상림이 말하길, 한지후 본부장이 DDP 게이트 때 그들을 위해 애를 많이 썼다고 했다.

또한 게이트가 끝난 뒤, 진유성의 얼굴을 본 이들을 철저히 관리했다고 했고.

그러니 진유성도 호의를 발휘해서 DDP와 워싱턴 D.C에서 있었던 일을 한지후 본부장에게 공유해 줄 생각이었다.

우산도 놈들이 지휘관으로 모시고 있으니, 알려주는 게 맞기도 하고.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첫째와 있었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니까 페이즈 2는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

“만약 언노운 엠페러께서 첫째를 소멸시키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것 같습니까?”

“인류의 멸망이 찾아왔겠지. 아포칼립스.”

이는 허언이 아니었다.

게이트에 들어가면 서로를 죽여야 한다는 건, 사회적 광기를 불러일으킬 문제이다.

모든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게이트 안에서 죽일 수도 있는 잠재적인 적이 된다.

사회가 무너지고, 살육이 시작됐을 것이었다.

게이트 안에서의 살육을 말하는 게 아니다.

밖에서의 살육을 말하는 것이다.

진유성의 말 속에 숨은 의미를 짐작한 한지후 본부장은 한숨처럼 내뱉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두렵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첫째는 소멸했으니까, 너무 걱정 마라. 앞으로의 삶도 평소와 같을 거니까.”

“그럼 남은 건 둘째뿐입니까?”

“그래. 둘째도……. 놈의 조력자도 내 적이 되진 못할 거다.”

오만이 아니었다.

둘째와 신주청이 최선을 다해 도망친다면 꽤 긴 싸움이 될 수도 있겠으나,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지금 시점에 진유성과 검을 부딪칠 수 있는 건 중원에 남은 진유성뿐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의문이 든다.

둘째의 조력자가 신주청이었다면, 첫째의 조력자가 짭유성 같다.

합리적인 추측이었다.

‘진유성’이란 존재에 대한 증오를 품고 있는 신주청과 짭유성이 동시에 한 명의 마도사와 공존하진 않았을 것 같으니.

그렇다면 첫째가 죽은 지금, 짭유성은 지구에 간섭할 수 없는 게 아닌가?

진유성이 아무리 강력한 존재라고 하더라도 무력과 능력은 다른 문제이다.

진유성은 차원을 멸망시킬 수도 있지만, 그 차원으로 건너갈 수가 없다.

그걸 도와주던 게 첫째였던 것 같고.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중요한 건 둘째였다.

“이야기 끝났지? 간다. 다음에 왔을 때 아이스크림 없으면 진짜 혼날 줄 알고.”

“꼭 사 놓겠습니다.”

“오냐.”

그렇게 진유성이 떠나려던 순간이었다.

한지후 본부장이 뒤늦게 생각난 듯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진유성은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라 여겨 대답하려다가 침묵했다.

아주 쉬운 질문 같았는데, 답을 하려는 순간 깨달았다.

자신이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알지 못한다는 걸.

질문은 평범했다.

마도사의 존재를 알게 된 이가 있다면 열에 아홉은 던질 법한 질문.

“그럼 둘째가 죽으면 게이트 사태가 끝이 나는 겁니까? 더는 게이트가 발생하지 않습니까?”

진유성은 자신과 한지후 사이에 관점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현재의 사태에서 진유성의 관점은 온통 ‘마도사’에게 쏠려 있었다.

마도사들은 지구상의 모든 영성을 착취해서 신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이는 곧 60억 인구를 모조리 죽이겠다는 말과 같았다.

결코 타협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었다.

그러니 진유성은 마도사들의 야욕을 분쇄하고, 그들을 소멸시킬 생각이었다.

경찰이 살인범의 흉기를 찾는 것은 살인범을 잡기 전까지이다.

살인범이 잡혀서 감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흉기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러니 범인을 죽이고 흉기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진유성에게 게이트는 마도사들이 사용하는 흉기일 뿐이니까.

그에 반해 한지후 본부장에게 게이트는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래서 한지후 본부장은 마도사와 게이트를 별개로 보고 있는 것이었다.

마도사가 죽으면 게이트가 없어지느냐.

이는 게이트란 현상 자체가 마도사들에게 종속된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이었다.

한지후 본부장이 질문을 던지기 전만해도, 진유성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정말 게이트란 것이 전부 세쌍둥이의 손에 의해 창조된 게 맞나?

마도사들은 인외의 존재이며, 신에서 근원한 존재이긴 하다.

[신성을 품을 그릇은 사라지고, 막대한 힘만 남았다는 거죠. 그리고 그 힘은 릴리스란 마녀에 의해 괴물을 빚어내게 됩니다.]

그들은 자아를 잃은 전능의 존재다.

그것이 사악한 마도술의 의해 빚어져 태어난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그토록 신이 되고 싶은 이유는, 그들의 뿌리가 반쪽짜리 신이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다.

그들이 정말 게이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관장할까?

어쩌면 시작만 한 게 아닐까?

사람이 인위적으로 나무와 꽃을 심어서 생태계를 조성할 순 있다.

하지만 그 생태계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명체의 모든 것을 관장하진 않는다.

불을 지른다던가, 나무와 꽃을 모조리 없애 버리는 방식으로 끝을 낼 수는 있다.

이 말은 곧, 시작하고 끝낼 수만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게이트의 생태계는 어떨까?

마도사들이 죽는 순간 모조리 사라질까?

게이트 안에는 어떤 생태계가 있지?

각성자, 몬스터…….

‘스탯도 포함해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 진유성은 자신이 한 가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진유성의 오성은 너무나 뛰어나서 실마리가 있으면 반드시 정답에 근접하고, 실마리가 없더라도 본능적으로 정답에 근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그의 본능이 꿈틀거린다.

게이트에서 몇 번이나 마주쳤던 존재.

록펠러의 지식을 흡수했음에도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했던 존재.

게이트의 생태계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또한 부각되지 않는 존재.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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