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39화 (239/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39화>

Quest 40. 털어 낸 천마님

한국은 더 이상 SG 소속 국가가 아니다.

SG와 동맹 관계를 구축하고 있을 뿐, KSG란 독립 게이트 방위 시스템을 가진 국가였다.

SG에 보고를 하고 대응을 기다리는 절차가 생략됐기 때문에 KSG는 보다 신속하게 에 대응했다.

우선 1차 선별 인원과 2차 선별 인원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1, 2차 선별 인원이라는 단어가 필요한 게이트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게이트는 한 번 인원을 선별하면 끝이었다.

그러나 DDP 비징후 게이트는 1차로 622명의 인원을 선별하고, 그중 절반을 다시 선별했다.

게다가 2차 선별은 게이트의 의지로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2인 1조로 나뉜 1차 선별 인원들의 행동으로 결정된 것이었다.

여러모로 많은 점이 달랐다.

하지만 가장 다른 점은 게이트의 형태가 없다는 것이었다.

본래 게이트가 열리면 타원형의 광구가 나타나고, 마지막 날까지 형태를 유지한다.

미션이 클리어되면 게이트는 사라진다.

미션이 실패하면 게이트가 폭주했다.

그러나 DDP에는 그 어떤 게이트의 흔적도 볼 수 없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미션 클리어에 실패해도 게이트가 폭주하지 않는다는 것일까?

아니면 게이트가 보이진 않지만 다른 게이트처럼 폭주할까?

KSG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변수를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우선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동대문 일대의 교통을 통제하고, 1차 선별 인원 중 게이트에 진입하지 않은 311명의 신원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또한 선별 과정 직전에 사망한 9구의 시신을 수습하기도 해야 했고.

“DDP 벽면에 몬스터가 있었고, 거기 닿은 이들 중 일부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몬스터가 사람들을 죽였다고? 게이트도 아닌데?”

“네. 이 부분의 증언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현재까지 1차 선별 인원에서 신원을 확보한 이들은 몇 명이지?”

“180명 정도입니다.”

1차 선별 인원의 대다수는 누군가를 게이트에 밀어 놓고 살아남은 이들이다.

그 때문인지 평소보다 자진 신고율이 낮았다.

하지만 DDP 인근 CCTV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결국은 전부 확인할 수 있을 것이었다.

‘진유성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말이지.’

KSG의 한지후 본부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통제를 시작한 현장을 둘러보았다.

교통 상황 때문에 군경이 출동하는 데 시간이 조금 걸렸다.

한국은 그 어떤 국가보다 촘촘한 주민 등록 시스템과 군경 출동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만, 교통 정체가 문제다.

문제 발생을 아는 건 엄청 빨라도 가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뭐, 미국은 도로가 뻥 뚫려도 거리가 멀어서 몇 시간 걸린다니까.’

그때 한지후 본부장이 눈을 크게 떴다.

익숙한 얼굴이 보였기 때문이다.

언노운 엠페러 진유성과 함께 큰 비밀을 품고 있는 상림이었다.

그는 아내처럼 보이는 여인과 함께 있었는데, 두 사람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동대문 인근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런 모습을 보이는 이들은 정해져 있다.

가족이 게이트에 들어간 것이다.

한지후 본부장은 잠시 고민하다가 상림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주변을 의식하며 입을 열었다.

“가족이 게이트에 들어가셨습니까?”

상림은 한지후 본부장의 의도를 눈치 챘다.

그들 사이에는 진유성이란 비밀이 끼어 있기 때문에 주변의 시선을 신경 쓸 수밖에 없었다.

현재 동대문에는 군대와 경찰뿐만 아니라, KSG의 직원들도 많았으니까.

잠시 뒤, 상림과 유혜연은 한지후 본부장의 차에 올라탔다.

“어떻게 된 겁니까?”

한지후 본부장의 물음에 상림이 간단하게 현재 상황을 설명했다.

비극적인 일이었다.

모녀가 함께 1차 선별이 되었다가 딸의 희생으로 어머니는 빠져나왔다는 게.

그러나 한지후는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진유성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언노운 엠페러가 DDP 게이트로 들어갔다는 희소식 때문이었다.

“선별됐다는 소립니까?”

“아뇨. 게이트를 찢고 들어간 것 같습니다.”

“게이트의 형태가 보이지 않는데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교주님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습니다.”

분명 진유성은 상소윤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상림은 진유성을 믿었다.

장난기 많고 가벼운 진유성이지만, 누군가의 목숨을 입에 담을 때는 허언을 하지 않는다.

진유성이 죽이겠다고 선언하면 죽는 것이고, 진유성이 살리겠다고 선언하면 사는 것이다.

그것이 천마신교주다.

덕분에 상림은 불안할 뿐 절망하진 않고 있었다.

옆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유혜연의 얼굴에 혼란스러운 기색이 어렸다.

자신을 대신해 상소윤이 게이트에 들어갔다는 슬픔 때문에 유혜연은 냉정을 되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이 진유성이 보여 준 기행을 이해할 의지조차 없었다.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딸이니까.

그러나 TV에도 자주 나오는 KSG의 본부장과 남편의 대화가 심상치 않다.

두 사람은 분명 희망을 담고 있었다.

그 희망이 전염되자, 유혜연은 이성을 조금이나마 되찾을 수 있었다.

“여보. 대체 유성이의 정체가 뭐예요? 대체 왜 이상한 호칭으로 부르는 거예요?”

유혜연의 질문을 받고 잠시 고민하던 상림이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소윤이가 돌아오면 그때 다 함께.”

“정말……. 소윤이가 돌아올 수 있을까요?”

“응.”

상림이 믿음과 희망을 동시에 담아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이었다.

쩌저저저적-!

난데없는 소리가 DDP 상공에서 울려 펴지기 시작했다.

세 사람이 깜짝 놀라 차에서 내렸지만, 그들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분명 유리에 금이 가는 듯한 거대한 소리가 들리는데도, 세상은 평온했다.

그 순간이었다.

콰직!

뭔가가 깨어지는 소리와 함께 빛이 번쩍였다.

이윽고 세상이 소란스러워졌다.

2차 선별 인원들이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지, 진짜 돌아왔어.”

“살았어……! 살았다고!”

선별 인원들은 익숙한 DDP의 전경을 보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가 해낸 것 같군요.”

한지후 본부장은 상림과 유혜연을 보며 그렇게 말했지만, 두 사람은 한지후의 말을 듣지 않았다.

듣는 대신 달려갔을 뿐이었다.

300명이 넘는 군중 속에서 있어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모습.

그들의 딸, 상소윤을 향해.

“소, 소윤아!”

“상소윤!”

* * *

그리운 목소리가 들린다.

상소윤은 자신을 발견하고 헐레벌떡 달려오는 엄마와 아빠를 보며 눈을 감았다.

세상이 깜깜해진다.

게이트에 선별되기 전, 엄마와 했던 선택이 떠오른다.

원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게이트에 들어가고, 원 안의 사람은 일상으로 돌아가는 선택.

사람들은 서로를 원 밖으로 밀어내려고 했지만, 상소윤과 유혜연은 달랐다.

그들은 서로 원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서로가 서로를 일상으로 돌려보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상소윤은 진유성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게이트 안에서 죽었겠지만, 그래도 원 밖으로 딛었던 걸음을 후회하진 않았을 것이었다.

눈을 떴다.

세상이 환해진다.

멀리서 달려오던 엄마와 아빠가 훨씬 가까워져 있다.

상소윤은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

이번엔 진유성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네가 질색했었지. 하지만 오늘은 다를 것 같구나.”

“명예 소방관.”

“그 모든 것이 너이듯, 네가 본 모든 것도 나다.”

“가자, 집으로.”

아직도 잘 모르겠다.

진유성이 어떤 사람인지.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이 바라보았던 진유성이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상소윤은 그런 생각을 하며 눈을 떴고, 코앞까지 다가온 엄마와 아빠를 보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옆을 돌아보며 말했다.

“진짜 밖으로…….”

그리곤 깨달았다.

진유성이 없다는 걸.

분명 함께 게이트에서 나오려고 했는데, 남은 것은 조금 전까지 마주 잡고 있던 손의 감촉뿐이었다.

“소윤아!”

그때 엄마, 아빠의 따뜻한 체온이 상소윤을 덮었다.

상소윤은 일단은 복잡한 생각을 던져 버리기로 했다.

그저 엄마, 아빠의 품속에서 일상으로 돌아왔다는 걸 만끽하고 싶었다.

* * *

한국에 세 번째 비징후 게이트가 열렸다는 소식이 전 세계를 강타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게이트 형식에 대한 내용도 속보로 다뤄졌다.

게이트가 아님에도 몬스터들이 시민을 죽였고, 선별 과정에서 물리적인 다툼이 있었다는 건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사망자는 총 10명이었다.

선별 직전 몬스터들에게 살해당한 이들이 9명과 힘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지 못하고 사망한 오경태.

충격적인 사태에 비해서 사망자의 수는 적었지만, 어쨌든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전 세계 언론과 포털 사이트에 한국과 관련된 기사들이 메인을 채웠다.

하지만 그 시간은 딱 1시간이었다.

DDP 비징후 게이트의 선별 인원들이 생환한 지 1시간 만에 새로운 소식이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었다.

바로, 워싱턴 D.C의 SG 본부에서 벌어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지진이 발생해 사람들이 대피하는 와중에 각성자들의 소행이라고 판단한 NISS가 SG 본부에 진입.

무어 소령이 동양인 각성자의 얼굴을 확인했지만, 라인 아웃.

이윽고 거대한 폭발이 워싱턴 D.C 다운타운 일대에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 냈다.

SG 본부와 백악관을 전부 소멸시켜 버리는.

상림은 본능적으로 미국에서 벌어진 일이 진유성의 소행이라는 걸 깨달았다.

상소윤을 집으로 돌려보낸 진유성이 귀환하지 않은 이유도 저것 때문인 것 같았다.

‘마도사를 쫓아가신 건가? 끝을 보려고?’

상림은 그렇게 생각하며 진유성을 기다렸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진유성의 정체가 유혜연과 상소윤에게 드러났다.

더는 숨길 수 없었고, 숨길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 진유성이 귀환하면 가족들끼리 모여서 진유성과 자신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진유성은 돌아오지 않았다.

* * *

상소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본래 게이트에 들어간 사람들은 인생이 바뀌기 마련이다.

죽거나, 각성하니까.

그러나 상소윤을 비롯해 DDP에 들어갔던 이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도 각성하지 않았다.

KSG의 모든 설비로 검사를 했음에도 털끝만큼의 신체적 변화가 없었다.

모두가 일반인이었다.

또한 KSG는 DDP 비징후 게이트에 들어갔던 모든 이들의 신분을 철저한 비밀로 유지했다.

본인 스스로가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문제 삼지는 않았지만, ‘누가 게이트에 함께 들어갔었다.’라고 말하는 것은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기도 했다.

이 같은 노력 덕분에 상소윤은 완벽하게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아무도 상소윤이 게이트에 들어갔던 것을 몰랐다.

상소윤도 말할 생각이 없었다.

그러니 상소윤은 평소처럼 방학을 즐기며 친구들과 카페를 놀러 다니고, 쇼핑몰을 준비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진유성이 돌아오지 않으니까.

벌써 열흘이 지났다.

상림, 유혜연, 상소윤.

세 명은 요즘 정원을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문소리가 조금만 나도 혹시라도 진유성이 돌아왔을까 돌아보는 것이었다.

상소윤은 오늘도 하염없이 정원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정새롬 때문에 간만에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니냐며 걱정하는 새롬이의 마음 때문이었다.

그러나 편하게 커피를 마시는 게 어딘지 불편해서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방관은 신고하면 와야 하는 건데…….”

중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온 상소윤은 대문을 열었다.

이윽고 그녀는 정원 한가운데 우두커니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왔느냐?”

지친 얼굴의 진유성이 묻는다.

상소윤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멈칫했다가 평소처럼 대답했다.

“왔도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지?”

“열흘.”

“생각보다 오래는 아니군.”

진유성이 정원을 돌아보더니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는 괴롭거나 힘들 때마다 궁을 떠올렸었다. 어마마마와 아바마마가 있던 고려의 궁. 친우들과 웃고 떠들던 자금성의 천신궁.”

“…….”

“그러나 이번에는 이 정원이 떠오르더구나.”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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