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38화>
* * *
2000년대 초반에 난데없이 등장한 게이트와 각성자는 전 세계의 묘한 냉전을 불러왔다.
국가 간의 무력 충돌이 극히 줄어든 것이었다.
이는 게이트 사태로 인해 자국이 혼란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각성자란 존재는 핵미사일과 비슷하지만 훨씬 구체적인 긴장감을 준다.
핵미사일은 범위를 초토화시킨다.
뉴욕에 떨어지면 뉴욕을, 워싱턴에 떨어지면 워싱턴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정교하진 않다.
이에 반해 각성자는 정교하다.
아프가니스탄의 각성자가 미대통령을 암살하려 한다면 어떤 시나리오가 벌어질 것인가.
이것이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 중에 게이트 사태가 시작된 미국의 가장 큰 연구 과제였던 때가 있었다.
다행히 각성자들은 무적이 아니다.
그들의 신체 능력은 과학으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강인하지만, 게임처럼 HP 개념이 주어진 건 아니다.
머리에 총을 맞으면 죽는다.
고위 각성자들은 시야각 안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총구의 방향을 보고 피할 수 있지만, 화망을 구성해 범위 사격을 하면 움직임을 저지할 수 있다.
저지 사격을 베이스로 움직임을 제한하고 저격 사격을 날린다.
이것이 미국군이 구상한 대 각성자 전투의 기본 골자였다.
무어 소령은 각성자 전에서의 프로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전투에서 수많은 각성자들을 사살했고, 엘리트 특수부대인 네이비 씰의 대 각성자 전투의 훈련 교관을 역임하기도 했으니까.
미국과 대척점에 선 국가의 각성자들에게 무어 소령은 원수이자 두려운 존재였다.
이런 무어 소령이 이끄는 부대가 워싱턴 D.C의 SG 본부 옆에 주둔하고 있다는 것은 현대 사회의 아이러니였다.
무어 소령은 명목상으로는 타국 각성자들로부터 SG 본부를 지키고 있지만, 실제로는 아니었다.
정치인들은 여전히 각성자를 두려워하며, 그들로부터 국가의 개념이 재정립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헛된 두려움이 아니다.
당장 멕시코가 엔리케 카를로란 각성자에 의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절대 왕정 국가로 탈바꿈했으니까.
그래서 무어 소령이 이끄는 부대, 통칭 NISS는 SG 본부를 늘 주시했다.
각성자들의 폭동이 벌어진다면 그 시작 포인트가 SG 본부일 거라는 편집증적인 확신으로.
그러니 NISS가 SG 본부의 이상 현상을 가장 빨리 알아차린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소령님!”
관측병의 비명에 무어 소령이 팔짱을 꼈다.
“보고 있다.”
“지진으로 관측하기엔 GEL 수치가 너무 높습니다!”
“지진이 아니라 스킬이다. 지진으로 보기엔 여진 범위가 너무 좁아.”
“그렇다면 최소 SS급입니다. 어쩌면 SSS급일 수도 있습니다!”
“아놀드 벡인가? 그가 야욕을 드러낸 것인가?”
각성자에 대한 편집증을 가지고 있는 무어 소령이 대뜸 그렇게 말하고는 부하들을 무장시키기 시작했다.
NISS.
대외적으로 그들의 부대명은 Navy intersection SEAL SG의 줄임말이었다.
하지만 몇몇 간부들이 알고 있는 뜻은 달랐다.
Not in safety SG.
SG는 안전하지 않다.
그들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오늘에야 말로 NISS의 뜻을 만천하에 알릴 시간이었다.
그동안 무어 소령이 사살한 각성자 중에 S급은 없었다.
오늘 S급을 잡아 그들이 신인류가 아니라 돌연변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었다.
쿠르르릉-!
SG 본부가 다시 한번 진동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치는 와중에 무어 소령이 이끄는 NISS 특수 부대는 완전 무장을 끝내고 본부로 접근했다.
1층부터 클리어 한 대원들이 12층에 도착하는 순간.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명의 동양인이었다.
기류의 중심에 서있는 동양인 주변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나는 검은 무언가가 흩뿌려져 있었다.
“제압 사격!”
무어 소령의 외침에 NISS 대원들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졌다.
제압이란 단어는 속임수.
사살을 위한 총격이다.
그 순간, 세상이 번쩍하며 거대한 충격파가 NISS 대원들을 밀어냈다.
* * *
“눈치가 빠르네.”
검을 빼든 진유성이 첫째의 본체를 겨냥하며 입을 열었다.
진유성은 선한 인물이지만, 일의 우선순위를 잘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진유성은 군인들의 목숨을 구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만약 첫째가 군인들을 죽이려 한다면 오히려 그 틈을 노려 심검을 박아 넣었을 것이었다.
진유성과 첫째 정도의 절대자들에게 찰나의 시간은 영원과도 같다.
첫째의 초수가 군인들을 향하면, 이 싸움은 진유성이 초수를 점한 채로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첫째와 진유성은 무언의 합의를 했다.
싸움의 변수가 되는 군인들을 밀어내고 본격적인 싸움을 시작하자는 합의.
덕분에 군인들을 살아남을 수 있었고.
첫째는 진유성의 이러한 행동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대단하군.]
“뭐가?”
[그대는 정녕 군인들을 미끼로 날 죽이려고 했다.]
“그게 뭐.”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저들을 살릴 수 있었군.]
만약 진유성이 군인들을 살리려고 했다면, 첫째는 군인들을 공격했을 것이었다.
그럼 진유성은 공격을 막아야 하고, 군인들을 지켜야한다.
진유성에게 불리한 채로 싸움이 시작되며, 군인들의 목숨 역시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살리겠다는 마음을 버림으로써 살려 냈다.
연기가 아니었다.
정말로 진유성은 군인들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군인들의 목숨을 도외시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첫째에게 놀라운 광경이었다.
선의는 인간을 나약하게 만들고, 마음은 인간의 행동을 제약시킨다.
첫째는 수백 년간 이 명제에서 벗어난 인간을 목도한 바가 없었다.
눈앞의 남자를 제외하면 말이었다.
피식 웃더니 진유성이 입멸검을 슬쩍 돌렸다.
“너 같은 놈들이 정중동과 무심의 깨달음에 대해서 알 턱이 없지.”
[무공은 인간의 영혼과 마음을 연단하는 마도술이군. 이제 확실히 알겠다.]
“말이 많다.”
프스스스스!
진유성의 오른손에서 입멸검이 빛을 발하고, 왼손에서 심검이 피어오른다.
중원의 역사상 쌍검의 고수는 많았지만, 쌍검을 사용하는 이가 중원제일검이 된 적은 없었다.
이는 인간의 신체가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할 때 관습적으로 생기는 반응성 때문이었다.
그 반응성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최고 수준에 이른 이들에게 쌍검은 강점이 없는 무기였다.
하지만 진유성은 달랐다.
그는 무당의 양의심공을 완벽히 익힌 첫 번째 인물이었다.
무당의 개파조사조차 양의심공을 대성하지는 못했다고 전해지니 말이었다.
그러니 세상을 재다한 오른손의 입멸검과 신을 죽일 왼손의 심검은 각기 다른 무공을 펼치며 첫째를 압박했다.
[부질없다!]
벌컥 소리를 지른 첫째는 처음부터 수를 아끼지 않았다.
진유성이란 존재는 저력을 알 수 없는 이다.
싸움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모를까, 시작되는 순간부터 전력을 다해야 한다.
드드드드드-!
공간이 진동하며 최상층 전체가 미증유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록펠러가 독도 게이트에서 사용했던 술법, 신성의 공간.
그것이 펼쳐진 것이었다.
지진과도 같은 울림이 울려 퍼지는 순간, SG 본부의 사람들은 모두 대피했다.
그렇기 때문에 신성의 공간에 들어온 이는 진유성과 첫째뿐이었다.
[네 몸에 담긴 내공을 모두 추방하느니라!]
첫째가 선언했다.
첫째가 품은 신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신성의 공간이 법칙을 재구성한다.
첫째의 선언은 진유성이 품은 내공을 삿된 기운으로 천명하며, 신성의 법칙에 위배됨을 명시한다.
이제 남은 것은 추방뿐이다.
그러나 그 순간.
“거부한다!”
진유성이 입멸검을 든 오른손과 심검을 든 왼손을 합치시켰다.
밝은 빛이 입멸검을 덮으며 거검을 만들어 낸다.
그와 동시에 다섯 개의 입멸공 최종오의가 오행의 묘리에 따라 순환한다.
신살검(神殺劍).
신을 베어 넘기는 검.
그 힘이 첫째의 선언을 무효로 만들었다.
[말도 안 돼!]
첫째는 깜짝 놀랐다.
신성의 공간이 완벽한 공격은 아니다.
피공격자가 신성을 품고 있다면, 분명 이에 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진유성은 신성을 품지 않았다.
알 수 없는 다섯 가지의 힘으로 신성의 선언을 베어 넘긴 것이었다.
저 도도하게 흐르는 검은 무엇이란 말인가?
법칙을 재단하고 신성을 해체하는 힘이지만, 저것은 신성이 아니다.
무공이다.
그 순간,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언젠간 아카샤의 화신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지.”
“신이 인간을 시험하고 재단할 수 있는 이유는 신이라서가 아니다. 그저, 신이 인간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진유성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너희들이 어째서 신의 힘에 집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그것을 대단히 여기지 않는다.”
진유성의 존재감이 커진다.
“난 신의 힘보다 강한 인간의 힘을 품을 것이다.”
꽈앙!
진유성이 바닥을 박차는 순간, 그 힘을 견디지 못한 최상층의 바닥이 무너져 내렸다.
집기와 사무용품들이 12층에서 11층으로 쏟아지는 사이, 진유성의 몸이 쏜살처럼 쏘아졌다.
첫째는 불가해한 기분을 느꼈다.
분명 싸움을 시작하는 순간까지만 해도 그는 진유성과의 승률을 반반으로 점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싸움이 시작되자 일방적인 전개로 이어졌다.
진유성의 모욕이 떠올랐다.
“네놈들은 하나 같이 거창한 계획이 있는 척하지만, 결국 두려운 것이다. 수백 년간 평화에 찌들어 있었을 뿐이니.”
첫째는 그 모욕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는 수백 년을 지구에서 암약했으며, 신성을 이룩했다.
LRORD.
이것의 그의 이름이다.
[웃기지 마라!]
첫째의 온몸에서 새까만 기운이 폭사되며 진유성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끄드드드득!
내벽 전체에 금이 가며 11층의 바닥도 무너졌다.
10층, 9층, 8층.
진유성과 첫째의 싸움이 격렬해질수록 건물 모든 층의 바닥이 하나씩 무너진다.
각층을 채우던 집기와 사무용품들이 박살이 나 널려 있고, 기밀로 취급되어야할 문서들이 팔락거리며 날아다닌다.
바닥이 무너지며 생긴 흙먼지와 쓰레기들이 묘한 기류를 타고 나선형으로 회전한다.
하지만 건물 자체가 무너지진 않았다.
이는 그들의 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었다.
‘강하다.’
진유성은 첫째의 강함을 여실히 느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율배반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약하다.’
진유성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대상은 첫째가 아니라, 본인 스스로였다.
그는 분명 더 강해질 수 있다.
아니, 더 강했었다.
그동안은 몰랐지만, 전력을 다해 싸워 보니 알겠다.
‘내가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것은 단순한 내공이 아니었다.’
보다 높은 차원의 무언가를 잃어버렸다.
무(武) 그 자체.
그렇기 때문에 그동안 의아함을 느꼈던 것이었다.
“상림아, 내가 좀 강해진 것 같냐?”
계속해서 깨달음을 얻고 경지가 오름을 느꼈지만, 이상하게 강해진 기분이 들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진유성은 첫째와 싸우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한계를 설정하지 마라.
무의 9할을 잃어버리기 전의 자신이 얼마나 강했는지 설정하지 마라.
그저 끝없이 상상해라.
어쩌면 그는 하늘을 벨 수도 있었고, 달을 부술 수도 있었다.
태양을 꿰뚫을 수도 있었고, 별들을 떨어트릴 수도 있었다.
실현 불가능한 상상일지라도 멈추지 마라.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그 순간이었다.
입멸검과 심검이 합치된 거검.
첫째를 몰아붙이던 거대한 힘이 난데없이 사라졌다.
진유성은 아무런 기운도 품지 않은 입멸검을 들어 올리며 선언했다.
“일수(一手)에 일점(一占)이 깃드니, 일력(一力)과 일세(一勢)가 널 베어 넘기니라.”
[무슨 헛소리냐!]
“어쩌면 내가 심검의 다음 단계를 본 듯하군.”
진유성이 검을 가볍게 질렀다.
그것이 첫째의 몸에 닿는 순간.
푸른색의 빛이 세상을 뒤덮었다.
* * *
기절했던 무어 소령이 정신을 차렸을 때, 그들은 워싱턴 D.C의 외곽에 있었다.
무어 소령이 화들짝 놀라서 시간을 확인했다.
47분이 흘러 있다.
이를 악문 무어 소령이 근방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뛰어 올라갔다.
건물 옥상에서 본 워싱턴 D.C 다운타운의 풍경은…….
“마, 말도 안 돼.”
지반이 붕괴된 거대한 크레이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