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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35화 (235/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35화>

진유성이 눈을 가늘게 떴다.

현재 게이트에 들어와 있는 인원은 자신을 포함하면 312명이다.

하지만 시스템 메시지는 311명이 사망한다고 전하고 있었다.

이는 둘 중 하나였다.

하나는 자신이 게이트로 들어왔다는 걸 시스템이 인지하지 못했을 경우.

또 하나는…….

스스스스스.

그 순간이었다.

묘한 소리와 함께 허공에 검은색 영기 덩어리가 나타났다.

밤안개처럼 보이기도 하고, 유독성 스모그처럼 보이기도 하는 부유하는 무언가.

그것이 수챗구멍에 천천히 빨려 들어가는 물처럼 허공을 빙글빙글 돌며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악!”

“꺄아아아악!”

천천히 가라앉는 무언가를 보며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진유성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사이한 냄새가 풀풀 풍기긴 하지만, 겉모습은 그저 검은색의 수증기일 뿐이다.

이런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진유성은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상소윤이 덜덜 떨고 있는 것을 보고는 뭔가를 깨달았다.

‘마도술이로군.’

저 연기는 바라보는 것만으로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정신 방벽이 워낙 두터운 진유성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하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아니다.

아니, 일반인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장태환이란 각성자도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그 순간, 진유성이 검을 빼들었다.

“이곳은 나의 영역이다.”

그리곤 허공을 베어 올렸다.

진유성의 일검이 허공의 무언가를 베어 내자.

화아아아아-

떠오르는 햇빛에 밤안개가 물러나는 것처럼 악의의 영기가 일순간 뒤로 물러난다.

그 순간, 진유성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르메크 대륙의 운명은…….]

[예언자시여…….]

[악마다! 악마가……!]

[영웅이 우리를 구원……!]

진유성이 베어 낸 영기 속에서 온갖 심상이 튀어나온다.

심상들은 하나의 차원을 구성했었던 구성원들이 남기고 간 것이었다.

진유성은 록펠러의 지식을 얻었기 때문에 게이트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 알고 있었다.

쌍둥이 마도사들은 멸망한 차원의 잔존 에너지로 게이트를 만들어 낸다.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몬스터를 만들어 내는데도 소모값이 있고, 각성자들을 레벨업 시키는데도 소모값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소모값을 마도사들이 감당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진다.

10의 영성을 흡수하기 위해 100의 마력을 쓰는 아이러니한 결과물이 나온다.

아무리 마력보다 영성이 더 상위 개념의 에너지라지만,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하위 차원을 멸망시켜 그 에너지로 게이트를 만들고, 잔존 사념으로 몬스터들을 복사하고, 헌팅한 각성자들에게 스탯을 제공했다.

즉, 각성자들이 얻는 힘의 근원은 마도사들이 가공한 멸망한 세계의 잔존 에너지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의문이 들 수 있었다.

왜 마도사들은 그 에너지를 직접 흡수하지 않는지.

이것은 두 번째 이유와 관련이 있었다.

마도사들은 상실의 공간에서 백과 육을 잃고, 영과 혼만 남았다.

이로 인해 그들은 인간의 제약을 벗어나 강해졌지만, 그만큼 불안정한 존재가 되었다.

그들에게 ‘하위 차원의 에너지’는 영혼의 격을 낮출 수도 있는 독이었다.

영과 혼은 백과 육처럼 고정값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끝없는 수련과 연단을 통해 영혼의 격을 상승시킬 수도 있고, 실수로 격을 떨어트릴 수도 있다.

하위 차원의 에너지를 흡수한다는 것은 그들의 영과 혼에 하위 개념이 깃든다는 것과도 같다.

이는 마도사들도 어찌할 수가 없는 인과율의 범주였기 때문에 그들은 하위 차원의 에너지를 흡수하지 않았다

그 대신 지구의 인간들에게 먹이고, 아카샤를 속여 영성의 일부로 재탄생시키는 것이었다.

즉, 마도사들에게 지구의 인간들은 가축이고, 하위차원의 에너지는 가축을 살찌우는 사료였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가축이 충분히 자라나면 모두 잡아먹는 것이었고.

이처럼 지금까지의 마도사들은 하위 차원의 에너지를 각성자들을 살찌우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진유성은 검은색 스모그가 마도술이라고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저것은 멸망한 차원 그 자체이다.

하나의 차원이 멸망하는 시점에 기록한 사념(思念)이 게이트에 내려앉는다.

공포, 두려움, 절망, 혐오, 증오, 살의, 착란.

그리고 죽음.

그 모든 것들이 켜켜이 내려앉으며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하나의 차원이 멸망하며 기록한 압도적인 절망 앞에 모두가 겁에 질린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마도사들은 내가 나타난 것을 모르고 있는 건가?’

이처럼 집중되지 않은 힘은 진유성 정도의 절대자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설령 하나의 차원이 무너진 멸망의 잔해라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힘의 총량은 특정 수준을 넘어서는 순간 비슷한 효율을 낸다.

중요한 것은 힘을 쓰는 방식이고, 힘을 집중시키는 효율이다.

진유성이 록펠러와의 싸움에서 제법 고전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록펠러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서 진유성을 죽이려고 했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태였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당시 진유성의 심검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지만.

어쨌든 진유성을 죽이려면 산발된 힘으로는 불가능하고, 마도사들도 그것을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마도사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그때였다.

[끝자리 정렬에 실패하셨습니다.]

[참가자 311명, 전원 사망합니다.]

앞서와 똑같은 시스템 메시지가 다시 한번 전달되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메시지가 좀 더 이어진다.

[멸망을 품을 그릇을 선별합니다.]

스스스스스-

진유성의 힘에 밀려나 있던 멸망한 차원의 잔영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수챗구멍에 빨려 들어가는 물처럼 빙글빙글 돌며 내려앉는다.

아까와 다른 점이라면,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한 사람이 놓인다는 것이었다.

진유성에게 제압당해 기절해 있던 남자.

[선별 인원 오경태.]

오경태란 이름을 가진 남자의 몸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진유성에게 제압당하기 전, 오경태의 신체는 인위적으로 거대화되어 있었다.

키도 2m까지 자라났고, 온몸의 근육들도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지금의 변화는 반대였다.

마도사들의 영향으로 변했던 신체가 왜소해지기 시작했다.

키가 170cm 정도로 줄어들더니, 온몸을 구성하던 근육이 사라지고 앙상한 팔뚝이 드러냈다.

아마 이것이 오경태란 남자의 본 모습일 듯했다.

몸이 거대해졌을 때는 나이를 짐작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영락없는 10대와 20대 사이의 청년이다.

“끄으으으윽!”

거대한 힘이 신체를 헤집기 시작하자 오경태가 고통에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잃지 않았다.

구부정한 자세였지만, 두 발로 선 채 진유성을 쳐다보고 있었다.

진유성은 그 순간, 자신이 오경태란 남자와 만난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만났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그의 삶에 영향도 줬었다.

“야, 나 오경태 그 새끼 만났다.”

“뭐? 진짜? 어디서?”

“연합 동아리 같은 데서. 그 새끼 학교 자퇴하더니 대학교는 갔더라?”

“오경태 불러 볼까? 이 새끼 오줌 지리겠지?”

그들이 입에 담던 이름.

그랬다.

진유성이 한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만났던 학교 폭력의 피해자.

“떨지 마라.”

“강자가 되어라.”

그가 상소윤을 죽이려고 했던 눈앞의 남자였다.

진유성이 놀라는 사이, 허공을 맴돌던 모든 스모그가 오경태의 몸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증오를 품은 멸망의 대리자.]

그 순간, 진유성은 오경태에게서 넘실거리는 심상을 읽을 수가 있었다.

강대한 힘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생각을 유형화하는 심상과 의념이 흘러넘친다.

심상과 의념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건 주화입마에 빠져들었다는 것과 같다.

진유성은 폭주하는 오경태의 심상을 읽고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오경태는 살인죄로 수배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는데, 그가 죽인 이는 고등학교 시절 그를 괴롭힌 이들 중 한 명이었다.

오경태가 어떤 사건으로 마도사들과 접촉했는지는 모르겠다.

심상은 모든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아니니까.

하지만 그는 마도사들의 영향을 받아서 복수를 감행했고, 지금은 마도사들의 하수인이었다.

사실 진유성은 오경태의 복수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명제국을 경영하며 법치와 도덕을 중시했지만, 그것이 늘 정답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진유성이 오경태라고 하더라도 복수를 했을 것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과 미래를 앗아간 이는 자신의 인생과 미래도 빼앗길 수 있다는 걸 알아야한다.

하지만 진유성이 아쉬운 건 그것이 오경태가 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차라리 자신의 힘과 자신의 손으로 복수의 철퇴를 휘둘렀다면.

그렇다면 그것이 설령 법에 저촉되는 일일지언정, 진유성은 오경태를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것은 문명사회의 한국인이 아닌, 약육강식 사회의 중원인으로서의 생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오경태는 마도사들에게 그의 증오를 농락당했다.

마도사들의 힘을 빌린 복수는 복수가 아니며, 증오는 마도사들이 인격을 농락하는 약점으로 변질되었다.

이것이 진유성이 느끼는 안타까움이었다.

그때였다.

오경태가 진유성을 노려보더니 흉폭한 심상을 쏘아 보냈다.

[네가 강자가 되라고 했었지.]

놀랍게도 오경태는 그날의 아이언맨 가면을 쓴 진유성을 알아본 듯했다.

“그래, 강자가 되라고 했었지.”

진유성이 검을 들었다.

“하지만 묻겠다. 지금의 넌 강함을 느끼고 있느냐?”

오경태는 큰 힘을 품고 있지만, 굳세진 않다.

강(强)은 오롯이 굳건함이다.

진유성은 오경태가 멸망한 차원의 힘을 거부하길 바랐다.

그렇다면 진유성이 원래대로 돌아오게 도와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닥쳐!]

오경태의 온몸에서 넘실거리는 기운이 쏘아진다.

한데, 그가 노리는 것은 진유성이 아니었다.

진유성의 등 뒤에 있는 상소윤과 겁에 질린 채 떨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약자가 선하다는 건 착각이다.

선과 악은 강함과 약함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이 씁쓸함을 느끼는 것은, 그는 아직도 인간의 선함을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타인을 위해 목숨을 던진 화전민 모녀처럼.

자신을 위해 벽을 넘으려다가 소천한 신주청처럼.

유혜연을 위해 두려움 없이 원 밖으로 뛰어나갔던 상소윤처럼.

그 순간, 진유성은 거대한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어쩌면 선함이란 거창한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창하게 느껴지는 것은 선함에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한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고, 한 사람의 가치관을 바꿀 수 있고, 마침내 인생까지 바꿀 수 있는.

진유성은 뭔가에 홀린 것처럼 검을 들었다.

진유성은 해남에서 입멸공을 계승했다.

그리고 입멸공은 전능의 존재가 남긴, 인과율을 조작해 이적을 선사하는 힘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입멸공이되, 입멸공이 아니다.

여기에 담긴 깨달음은 오롯이 진유성의 것이며, 이로 인해 어루만지는 인과율 역시 진유성의 삶에서 기인한다.

화전민 모녀와 해남파의 장문인부터 여황제 주혜미와 멀더, 신주청, 상림, 유혜연, 상소윤까지.

그가 오롯이 담아낸 것이다.

진유성은 홀린 듯이 들어 올린 검을 부드럽게 내밀었다.

입멸공(入滅功).

최종오의(最終奧義).

연(緣).

입멸검에서 흘러나온 실타래가 공간을 수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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