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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32화 (232/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32화>

* * *

무심지경이 깨어지지 않는 한, 진유성은 냉정을 잃어버리는 법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울고 있는 유혜연을 보며 가슴 아파하는 동시에 기감을 최대로 확장했다.

DDP 인근 사람들의 목소리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몇 가지 정보들을 얻을 수가 있었다.

그중 가장 중요한 정보는 벽면이 일렁거렸고, 그 안에 몬스터들이 갇혀 있었다는 것이었다.

진유성은 이와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천안의 F급 보스 레이드 게이트.

비엔족의 소드 마스터 엘비온.

-크아아아아아!

-쿠워어어어어어!

-아아아아아아!

-크르르르륵!

일렁거리는 석조 건물의 벽면 속에 수많은 엘비온이 있었다.

진유성은 오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게이트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현상이다.

모든 인위성 안에는 규칙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 규칙성을 찾아야지만 상소윤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을 수 있다.

‘보스 몬스터가 무엇이지?’

보스 몬스터는 마도사들이 영성을 흡수할 수 있도록 쓰이는 필터다.

‘왜 필터를 쓰지?’

영성에는 영혼백육이 묻어 있기 때문에 함부로 흡수하다가는 자아를 침범당할 위험이 있다.

그래서 마도사들이 필터 몬스터를 통해 영혼백육을 걸러 내고, 순수한 영성만 취하는 것이었다.

‘영성은 어디서 오지?’

게이트에 진입한 사람들에게서 온다.

평범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성은 땅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게이트는 지구와 분리된 공간이고, 거기서 죽은 이들의 영성은 보스 몬스터에게로 전달된다.

자문자답을 던지며 생각을 정리하던 진유성은 일렁거림의 정체를 깨닫게 되었다.

‘아마도 연결점.’

의아하게 생각한 적은 있었다.

왜 모든 게이트가 보스 레이드 게이트가 아닐까?

게이트 내에서 죽은 인간들의 영성이 보스 몬스터에게 전달된다면, 모든 게이트에 보스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그동안 마주했던 보스 몬스터들은 흔한 존재가 아니었다.

진유성과 비교했을 때 약할 뿐이지, 한 세상의 패왕이 되기에 충분한 존재들이었다.

마도사들이 심심해서 강한 몬스터들을 필터로 썼을 리가 없다.

필터의 개념을 생각해 보면, 영성을 담는 그릇이 크고 단단해야지만 필터링이 제대로 될 확률이 높다.

즉, 보스 몬스터의 개체는 유한하고, 모든 게이트에는 보스 몬스터가 존재할 수는 없다.

‘그렇다는 것은…….’

게이트란 놈은 하나의 보스 게이트를 중심으로 자잘한 게이트를 연결시켜 놓은 구조일 확률이 높다.

마치 통신망처럼 말이었다.

아마 일렁거림은 게이트가 연결될 때 나오는 특징일 것이었다.

보스의 신전에 패스워드를 입력하자 수많은 게이트와 연결된 엘비온이 하나로 합치되었던 것처럼.

DDP 인근을 게이트와 연결할 때 벽면이 일렁거렸던 것처럼.

현상을 통해 본질에 도달하는 능력을 중원에서는 오성이라고 불렀고, 지구에서는 통찰력이라고 불렀다.

오성이든, 통찰력이든, 용어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진유성이 이 분야에 있어서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는 것이지.

“상소윤은 결코 죽지 않는다.”

결론을 내린 진유성은 상림과 유혜연은 안심시키고는 입멸검을 들어 올렸다.

이제는 알겠다.

자신이 어찌하여 마스터 플레이어의 자격을 증명한 보스 게이트로 이동할 수 있었는지.

패스워드를 입력해 마스터 플레이어의 자격을 증명했다는 것 자체가 영성이 오가는 통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니까.

지금까지는 이것을 장소를 이동하는 데만 썼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것은 상소윤이 들어간 게이트를 찾아내는 것이다.

프스스스.

진유성의 검이 묘한 소리를 내며 공간을 베어 냈다.

주저함 없이 공간 속으로 뛰어든 진유성은 늘 마주했던 푸른색의 무상한 공간 속에 서 있었다.

이 공간에서 ‘서울역에 있었던 인과율’을 만들어 낸다면 그는 서울역의 보스 게이트로 갈 수 있다.

‘멕시코에 있었던 인과율’을 만들어 낸다면 멕시코의 보스 게이트로 갈 수 있다.

인과율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는 것이 아니다.

인과율은 그렇게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는 서울역에도 갔었고, 멕시코에도 갔었다.

그곳에 ‘존재했었던 인과율’에 잠시 끼어드는 것뿐이었다.

물론 인과율에 간섭하는 것조차도 진유성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긴 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자 한다.

꽉 쥐고 있는 검에 세상을 재단하는 힘이 모여들었다.

진유성이 쥐고 있는 것은 복제된 입멸검이었다.

어쩌면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이 힘을 버티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 힘이 역류해서 진유성의 몸을 파괴하고, 할퀼 수도 있었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유성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머뭇거릴 시간에 한 걸음이라도 더 걸어 보는 게 진유성이 가진 최고의 무기니까.

입멸공(入滅功).

최종오의(最終奧義).

생(生).

사(死).

입(入).

멸(滅).

세상을 재단하는 네 가지의 힘을 동시에 사용하는 것.

이것은 진유성도 처음으로 해 보는 일이었다.

드드드드.

입멸검이 진동하며, 온몸을 가득 채운 기운들이 역류하기 시작했다.

이율배반적이며 상이한 네 개의 법칙이 충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힘을 줄이기는커녕, 더욱 내뻗었다.

이것은 진유성이란 사람이 가진 모든 가능성이었다.

살아갈 수 있으며, 죽을 수 있고, 존재할 수 있으며, 소멸할 수 있다.

이것은 운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필멸이라는 수식어를 달기도 한다.

그랬다.

이것이 바로 진유성이란 사람이 품은 영성이었다.

보통의 인간이 품은 영성은 세상에 별다른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

땅으로 돌아가고, 식물로 태어나서, 동물에게 먹히고, 인간에게 전달되는 순환 고리를 윤택하게 만들 뿐이다.

하지만 진유성이란 존재는 세상을 재단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

게이트가 탐내지 아니할 수 없는 영성.

마침내…….

진유성이 원하는 것이 나타났다.

그가 서있는 푸른색의 공간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영성을 포식하는 게이트의 통로와 연결이 된 것이다.

진유성이 들어선 공간 자체가 게이트에서 탄생한 곳이었으니.

진유성은 마지막으로 검을 휘둘렀다.

상소윤의 얼굴을 떠올렸다.

상소윤의 옆에 존재했었던 인과율에 끼어들기 위해서.

만약 상소윤이 이미 죽었다면 진유성이 간섭한 인과율이 칼이 되어서 그를 벨 것이다.

그것은 진유성조차 감당하기 힘든 힘일 것이고.

그러나 진유성은 두려움 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일렁이는 푸른색 공간이 진유성을 삼켰다.

* * *

“엄마, 사랑……!”

상소윤은 유혜연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전부 표현하고 싶었지만, 게이트란 놈은 그녀에게 시간을 허락하지 않았다.

[37구역 선택 완료.]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소윤은 자신의 몸이 어디론가 이동함을 느꼈다.

속이 울렁거리고 메스껍다.

극심한 멀미를 하고 난 이후에 느끼는 탈력감도 들었다.

그러나 이대로 주저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잘한 거야. 이게 맞아.’

상소윤이라고 두려움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얼마 전에 도윤이를 낳았고, 운동 신경도 좋지 않다.

그에 반해 자신은 건강하며, 아빠를 닮아 운동 신경도 좋은 편이다.

엄마가 게이트에 들어오느니, 자신이 들어오는 게 낫다.

게이트에 들어왔다고 무조건 죽는 게 아니고, 각성을 해서 살아나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니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상소윤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기로 쓸 만한 것이 전혀 없다.

양손 가득 들고 있던 동대문에서 구매한 샘플들도 전부 사라져 있었다.

“아!”

그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상소윤이 머리를 더듬었다.

날씨가 더워서 올림머리를 하기 위해 비녀를 끼워 놨었다.

다행히 비녀는 있었다.

비녀를 빼자 고정시켜 놨던 머리카락이 촤르륵 쏟아져 내렸다.

상소윤은 쏟아지는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땋기 시작하면서 의아함을 느꼈다.

‘내가 원래 이렇게 침착했나?’

그동안 언론에서 들었던 게이트와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에 빨려 들어왔고, 알 수 없는 것투성이었다.

그런데도 침착하게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고 있으며, 시야를 가릴까 봐 머리카락을 땋고 있다.

신기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소윤이 상림의 과거를 알았다면 의아함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었다.

상림이 멸마대와 생존대를 거쳐 천마신교의 3인자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가 이것이니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반드시 적을 죽이겠다는 불꽃을 품으면서도, 스스로는 불꽃에 잠식당하지 않는 냉정함.

그게 상림이란 무인이었다.

비록 상림은 상실의 공간에서 불꽃을 잃어버렸지만, 그것이 유전형질에서의 소멸을 의미하진 않았다.

그 불꽃은 고스란히 상소윤에게 전달되었다.

그 사이, 머리를 전부 땋은 상소윤은 오른손으로 비녀를 꽉 쥐었다.

‘이 비녀…….’

생각해보니까 이 비녀는 진유성이 사 준 것이었다.

정확히는 정새롬의 생일 선물을 구입하기 위해 함께 백화점에 갔다가 강제로 뜯어 낸 것이다.

‘각성하면 내가 진유성보다 싸움을 잘하겠지?’

상소윤은 긴장을 풀기 위해 억지로 즐거운 생각을 거듭했다.

그 순간이었다.

[모든 구역의 선택이 완료되었습니다.]

[페이즈 2가 시작됩니다.]

심상이 전달됨과 동시에 그녀밖에 없었던 공간으로 사람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의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망연자실하게 주저앉은 이들도 있었고, 잔뜩 경계하며 주변을 돌아보는 이들도 있었다.

구역 선택 중에 부상을 당했는지 피를 흘리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어딘가 아픈지 끙끙 앓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그때였다.

웬 남자가 박수를 짝 쳐서 이목을 끌더니 입을 열었다.

“저는 KSG 소속의 C급 각성자 장태환입니다.”

각성자란 말에 사람들의 얼굴에 약간의 안도감이 번졌다.

그 사이 장태환이 말을 이었다.

“저는 제 발로 게이트에 들어온 것입니다. 민간인을 원 밖으로 밀어 버릴 수가 없어서.”

장태환은 영리했다.

본래는 민간인이 게이트에 들어오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지 않는다.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게이트는 선별 인원들끼리 힘을 합쳐서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지, 사람들끼리 싸우는 곳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게이트는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는데, 이는 사전 선택 때문이었다.

여기 모인 이들은 대부분이 ‘누군가에게 밀려나서’ 게이트로 들어온 이들이다.

이미 배신이나 폭력에 노출되어 게이트에 들어왔기 때문에 경계심이 극한으로 올라온 상태였다.

그래서 장태환은 자신이 어떻게 게이트에 들어왔는지를 밝히고, 사람들의 경계심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페이즈 2가 무엇인지, 왜 이딴 식으로 게이트가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게이트가 시작되었으니, 그들은 힘을 합쳐야 한다.

함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이것인 장태환의 생각이었다.

그 순간, 관리자가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번 미션을 진행할 관리자입니다.]

[우선, 게이트 인원에 선별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현재 인원은 311명입니다.]

장태환이 관리자의 이름이 없다는 것에 놀라는데, 관리자의 잔인한 심상이 이어졌다.

[페이즈 2에서는 각성자들간의 PVP가 가능해집니다.]

[여러분은 서로를 살해해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으며, 살해에 도움을 주는 경우에도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미션 1 : 끝자리 정렬.]

[제한 시간 내에 11명을 죽여 총원을 300명으로 만드시오.]

[제한 시간은 1시간이며, 미션에 실패할 경우 전원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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