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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29화 (229/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29화>

* * *

유혜연의 출산 예정일은 9월이었지만, 유혜연과 상림은 얼마 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산부인과에서 하마의 성장이 남다르다며 조기 출산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위험한 건가요?”

“아뇨. 그렇진 않아요. 조산이 위험한 건 아이가 충분히 크지 못했기 때문인데……. 하마는 벌써 다 컸어요.”

“그럴 수가 있나요? 아직 예정일이 두 달이나 남았는데…….”

“저희도 이런 경우는 처음 봐요. 혹시 산모님 가족 중에 각성자가 있나요?”

“아뇨, 없어요.”

산부인과에서는 하마가 모태 각성자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상림은 진짜 이유를 알고 있었다.

진유성 때문이다.

진유성이 내공으로 유혜연과 하마를 돌봐 준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렇게 정기 검진 이후 며칠이 흘렀다.

진통이 찾아온 것은 진유성이 해병대 캠프로 떠난 다음날 새벽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상림의 대처는 빨랐다.

유혜연과 상소윤을 태워 곧장 병원으로 향하면서 캠프에 간 진유성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병원도 도착하자마자 유혜연은 분만실로 들어가고, 상림은 상소윤과 대기실에 남았다.

초조하고, 불안하다.

의사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했지만, 머리로만 이해할 뿐 가슴은 불안하다.

혹시 무슨 문제가 생기면 어떨지 걱정이 됐고, 빨리 진유성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진유성은 무공이 입신의 경지에 도달해 신체란 소우주를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수백 미터 밖의 사람의 신체를 내공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원한다면 물리력도 행사할 수 있다.

유혜연에게 문제가 생기면 즉각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왜 그랬지. 상림, 이 멍청한 놈. 멍청이, 멍청이.’

상림은 진유성을 해병대 캠프에 보냈던 며칠 전의 자신을 욕하며 초조하게 대기실을 돌아다녔다.

초조한 건 상소윤도 마찬가지였다.

무섭고, 불안하다.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자꾸 불길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아빠가 초조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고 있으니까 더 그런 것 같다.

‘진유성, 이 자식은 하필 이럴 때 없는 거야!’

태평한 진유성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말이었다.

“근데 아빠, 진유성이 지금 올 수 있나?”

“올 수 있지. 왜 못 와.”

“이 새벽에 파주에서 서울로 오는 택시가 있을까?”

“있을 거야. 있어, 무조건.”

진유성은 택시가 아니라, 경공으로 뛰어올 것이니까.

그 순간이었다.

거칠게 문이 열리며 가족 대기실로 진유성이 뛰어 들어왔다.

그 모습에 상소윤은 반가운 와중에도 고개를 갸웃했다.

아빠가 전화를 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어떻게 벌써 왔어?”

“총알택시를 탔다.”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초조한 기색으로 대기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상림과 상소윤의 생각은 틀렸다.

진유성이 오면 불안한 마음이 좀 가실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그들보다 더욱 초조해하는 진유성을 보니까, 오히려 불안함이 가중되는 것 같다.

“아, 좀 가만히 있어!”

“어떻게 가만히 있겠느냐. 마음이 불안한데.”

“유성아, 정신 사납다.”

“삼촌은 얼굴이 사나우니까 조용해요.”

진유성이 대기실을 빙글빙글 하염없이 돌기 시작하자, 상소윤이 그 뒤를 따랐다.

“괜찮겠지?”

“괜찮을 것이다.”

“진짜?”

“진짜일 것이다.”

“어떻게 알아?”

“어떻게든 알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 아무 말이나 떠들어 댔다.

그 멍청한 행동에 상림도 참여했다.

세 사람은 대기실을 빙글빙글 돌며 두서도 없고 내용도 없는 대화를 나눴다.

사이사이 전음이 끼어들기도 했다.

[교주님, 내공으로 뭐 할 수 있는 거 없어요?]

[아이가 나오는 것을 도우려면 도울 수 있겠지만, 해도 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니, 왜 몰라요? 무공이 입신에 다다랐으면서?]

[나도 출산은 경험해 본 바가 없다. 산모에게 도움을 줘도 되는지 모르겠다.]

[아니, 뭐 이렇게 무능해?]

[그러니까 말이다.]

[아, 어떻게 좀 해 봐요.]

[허공섭물이 아이한테 악영향을 끼치면 어떡하지?]

[그, 그러면 하지 마요. 그냥 가만히 있어.]

평소 같았으면 뒤통수를 열 대를 얻어맞았을 상림의 태도였지만, 진유성도 상림도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진유성은 기감을 최대한 확장시켜서 별다른 문제가 없는지를 느끼고 있었고, 상림은 진유성이 어떤 문제라도 느낄까 싶어 진유성만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세 사람은 똑같은 표정을 지으며 대기실만 돌아다녔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진유성의 기감에 의사의 목소리와 하마의 움직임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온다.

아이가 어미의 뱃속에서 나오기 시작하며, 의사가 유혜연을 독려하기 시작한다.

진유성은 그 움직임에 최대한 집중하다가 문득 옛날 생각을 떠올렸다.

처음의 천신궁은 진유성의 무력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황제가 기거하는 건천궁보다 더욱 크고, 화려할 수 있었던 이유가 진유성의 무력 때문이었으니까.

다음으로 천신궁은 진유성의 영향력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건청궁에 들락거리는 이들보다 천신궁에 들락거리는 이들이 더 많았으니까.

중원을 경영하는 모든 일들이 천신궁에서 벌어졌으니까.

그 다음의 천신궁은 권위를 상징하는 곳이 되었다.

천마신교를 함께 일군 수하들이 모두 죽고, 그들의 자식과 손자가 그의 옆을 채웠다.

그들에게 진유성은 동료가 아니라, 교주였다.

천신궁은 더욱 화려해졌고, 건천궁을 멀리 밀어냈으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천신궁은 진유성의 고독을 상징하는 곳이 되었다.

천신궁 안의 천신이 인간이라고 여길 수 있는 부분은 고독이란 감정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진유성은 늘 궁금했다.

그가 무력의 세월을 지나 영향력을 뻗치고, 권위를 내세우고 고독함을 느끼는 사이.

대명천지에 수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어 간다.

천수를 누리는 이가 있는가 하면, 비참하게 죽어 가는 이들도 있다.

그 모든 것의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고, 죽는 것일까.

모두가 진유성을 신으로 추종했지만, 진유성은 그 답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어쩌면 조금은 알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언어로 필설하기 힘든 어떤 감정이 세 사람을 동시에 휘감고 있었으니까.

이 감정이 영구한 세월 동안 이어진 결과물이 인류일 것이니까.

필설하기 힘든 이 감정을 굳이 단어로 표현해 보자면…….

신성한 것이었고, 사랑스러운 것이었고, 감동스러운 것이었고, 기쁜 것이었다.

“축하드려요! 건강한 아드님이에요!”

그러나 굳이 말로 표현할 필요는 없었다.

세 사람의 얼굴에는 똑같은 감정이 맺혀 있었으니까.

그들은 어느새 진짜 가족이 되어 있었다.

* * *

“쭈굴쭈굴해.”

“작구나.”

“절 닮은 것 같지 않습니까?”

“아빠, 누구한테 존댓말을 해?”

“아, 그, 신한테 한 거야.”

“아빠 종교 있어?”

“있지. 혜연교.”

“으, 닭살.”

유혜연은 조용조용 떠드는 세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상하다.

분명 소윤이를 낳았을 때는 며칠 동안 엄청 힘들었던 거 같은데, 하마는 다르다.

아이를 낳을 때도 수월했고, 낳고 나서도 온몸에 활기가 넘친다.

또한 병원에서는 하마가 조산으로 태어났다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건강하다고 했다.

유혜연은 몰랐지만, 이는 전부 진유성의 노력이었다.

진유성은 일부러 VIP 병동에 마련해 준 가족 숙소에 이틀간 지내며 유혜연의 모든 혈도의 노폐물을 씻어 내고, 기력을 보강했다.

사실 이러한 행위는 본래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랜 만에 만난 상림의 혈도를 씻기 위해 추궁과혈을 한 것처럼,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일반인의 혈도를 씻어 내릴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러나 인체는 정말로 신비하다.

산모의 몸은 아이를 낳기 위해 일순간 온몸의 혈도가 활짝 열린다.

그렇게 가지고 태어난 모든 힘을 집중시켜야지만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것 같았다.

긴 인생을 살아온 진유성도 출산 과정을 지켜본 것은 처음이기에 조금 놀랐다.

아무튼 진유성은 활짝 열린 혈도가 닫히기 전에 유혜연에게 벌모세수를 해 주었다.

덕분에 유혜연은 출산을 끝냈음에도 더욱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것이었다.

간만에 상림의 마음속에 진유성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이유기도 했고.

진유성이 신경을 쓴 것은 유혜연뿐만이 아니었다.

하마의 경우는 더 쉬웠다.

사람은 먹고, 자고, 마시며 자연스럽게 온몸에 탁기와 화기가 쌓인다.

그래서 명문세가에서는 후계자가 태어나면 세가 내의 최고수가 나서서 아이의 근맥과 혈도를 강화해 주었다.

탁기와 화기가 쌓이기 전에 해야지 큰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하마는 고금제일인의 손에 의해 근맥과 혈도가 강화된 최초의 인물이 되었다.

하마는 무공을 익히지 않아도 살아가면서 평생 잔병치레를 할 일은 없을 것이었다.

그때였다.

유혜연의 품속에서 자고 있던 하마가 꼬물거리며 눈을 떴다.

본래 신생아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법이지만, 하마는 어느새 눈을 뜨고 주변을 뒤룩뒤룩 쳐다보고 있었다.

하마의 시선이 자신을 사랑스럽게 쳐다보고 있는 유혜연에게 닿았다.

그리고는 방긋 웃었다.

하마의 웃음에 유혜연은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만큼 사랑스러웠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하마의 시선이 닿은 사람은 상소윤이었다.

본인의 누나라는 것을 알기라도 하는 것인지, 하마는 이번에도 빙긋 웃었다.

진유성을 보고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하마의 시선이 닿은 것은 상림이었다.

“하, 하마야!”

상림은 자신의 아들이 지어 줄 미소를 기대하며 감격스러운 표정을 짓는데…….

“으아아아앙!”

상림을 본 하마가 울음을 터트렸다.

“…….”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가 상림을 위로했다.

“눈부셔서 그럴 거예요. 아이들이 시신경이 굉장히 약하거든요. 지금 눈을 뜬 것도 되게 신기한 거예요.”

“눈이 왜 부실까요?”

“그야 대표님 머리가…….”

간호사의 시선이 상림의 머리에 닿았다가 후다닥 도망갔다.

거뭇거뭇한 모발이 제법 올라오긴 했으나, 상림은 여전히 대머리였다.

유혜연과 상소윤에게는 건설 현장에서 좋지 않은 원료가 묻어서 밀어 버렸다고는 했지만…….

그를 대머리로 만든 것은 진유성이다.

상림의 표독스러운 시선이 진유성을 향했지만, 진유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악플러에게 그 정도 벌은 합당하다.]

사실 할 말이 없긴 했다.

진유성이 쓴 소설에 댓글을 남긴 것은 상림이었으니까.

잠시 뒤, 울던 하마가 잠들고 네 사람은 신생아실을 빠져나왔다.

일주일 정도는 아이는 신생아실에 있고, 부모들이 왔다 갔다 해야 했다.

“그나저나, 이제 이름을 지어야 할 것 같은데?”

“아직도 안정했어, 엄마?”

“응. 시간이 좀 남은 줄 알고 후보 몇 개 두고 고민하고 있었지.”

유혜연의 말에 진유성은 여전히 최고의 이름이라고 생각하는 ‘상타치’를 내밀었지만, 곧장 등짝을 얻어맞아야 했다.

혈도의 노폐술을 씻어 줘서 그런지 손이 더 매워진 것 같다.

하지만 진유성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어떤 순간에도 한 걸음 더 내뻗는 게 진유성이란 사람이었다.

“상소윤과 같은 소자 돌림으로 상소문을 추천합니다.”

물론 진유성은 다시 한번 얻어맞았다.

결국 하마의 이름은 상도윤으로 결정되었다.

이미 작명소에서 몇 가지 한자들을 받아 놓고 고민하고 있던 터라, 결정은 금방이었다.

진유성은 이럴 거면 자신은 왜 얻어맞았는지 억울했지만, 사실은 억울하지 않았다.

길고 긴 진유성이란 사람의 인생에서 빛나는 순간은 많았다.

입멸공을 얻고 중원으로 돌아와 정도맹을 격파하던 순간.

정파와 사파를 모두 무릎 꿇리고 중원 무림을 접수하던 순간.

그들을 탄압하려던 황실을 무너트리고, 대명제국의 일인자가 되던 순간.

그 모든 시간이 영광의 순간이었고, 빛나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이 그의 긴 인생 속에서 유독 기쁜 순간으로 기억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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