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28화 (228/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28화>

* * *

극기 해병대 캠프의 4년차 조교인 강도준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기도했다.

제발 저 미친놈이 지쳤기를.

제발 저 미친놈이 자존심을 꺾기를.

제발 저 미친놈이 죽어 가는 친구들의 얼굴을 보기를.

그러니…….

‘제발 이번에는 마지막 구호를 생략하기를!’

염원을 담은 99번째 동작이 끝나고, 100번째 동작이 펼쳐졌다.

하지만 이번에도 통렬한 외침은 울려 펴졌다.

“백!”

진유성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두 명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심도훈과 고인수였다.

운동을 즐기는 지종수와 달리 두 사람은 딱히 운동을 하는 타입이 아니다.

오히려 체력이 부족한 그들이 지금까지 버틴 게 용한 일이었다.

10개에서 시작해 100개까지 왔으니, 벌써 550개를 했다.

PT 1번 체조가 비교적 쉬운 자세이고, 요령을 피운다면 더 쉽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리에 경련이 온 심도훈과 고인수가 열외되고, 남은 건 진유성과 지종수.

그리고 네 명의 조교들.

정확히 말하자면 한 명의 조교는 앞에 서서 구령을 붙이고 있으니, 죽을 맛인 건 세 명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진유성이 손을 들었다.

구령을 붙였던 조교가 물고 있던 호루라기를 내려놓으며 진유성을 지목했다.

“진유성 훈련생. 할 말 있나?”

라이벌에게 질 수 없다며 억지로 버티고 있던 지종수와 조교들의 이목이 진유성에게 쏠렸다.

그들은 제발 진유성의 입에서 더는 못하겠단 소리가 나오길 바라고 있었다.

그렇다면 못 이기는 척 넘어가 줄 의사도 있었다.

‘제발, 제발. 너도 힘들잖아.’

모두 간절한 마음을 담아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진유성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정반대의 이야기였다.

“자세가 너무 엉망인 것 같습니다.”

“……뭐?”

“앞에서 시범을 보이는 조교들 자세가 눈뜨고 볼 수 없는 수준입니다. 이게 정말 시범입니까?”

진유성의 말에 심도훈과 고인수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진유성이 미친놈이라는 걸 진작 알고 있었는데, 지치지 않는 미친놈이라는 건 오늘 처음 알았다.

단순히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를 잘했던 게 아니었다.

그냥 운동을 위해 태어난 놈이다.

진유성이 부잣집에서 태어나지만 않았다면 한국 체육계는 역사를 새로 썼을 것이었다.

게다가 심도훈이 보기에 진유성은 거의 지치지 않았다.

땀을 조금 흘리고 있긴 했는데, 지쳐서 흘린다기보다는 상쾌하게 흘리는 것 같다.

진유성의 지적에 일순간 침묵이 맴돌았지만 조교들은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PT 체조 1번은 높이뛰기.

팔을 내린 기마 자세에서 팔을 들어 올리며 높이 뛰는 동작.

조교들도 사람인지라 갈수록 기마 자세는 무뎌졌고, 뛰는 높이는 낮아졌다.

진유성은 그것을 지적하고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진유성의 시선이 호루라기를 불던 조교에게 향했다.

“호루라기 소리가 너무 힘이 없어서 흥이 안 납니다. 배에 힘을 딱 주고, 숨을 담아서 힘차게. 오케이?”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다시 준비 자세로 돌아갔다.

심도훈의 생각처럼 진유성은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삼화취정, 오기조원을 뛰어넘어 등봉조극의 경지에 도달했고, 환골탈태와 반로환동을 거쳤다.

그러니 내공이 바닥나기 전에는 지치는 법이 없으며, 같은 행위를 반복해도 집중력을 잃지도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운동을 하지 않아도 근육을 키울 수 있다.

운동을 하는 심상을 통해서 운동을 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잇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그동안 근력 운동을 할 이유가 없었다.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는 전신 운동이기 때문에 특정 근력을 자극하는 것도 아니고.

한데, 오랜만에 동일한 자세를 반복하며 근육을 자극하다 보니 꽤 상쾌했다.

비유하자면, 얼마 전에 본 판타지 소설과 비슷하다.

직장 생활 수십 년을 해 온 이가 회귀해서 첫 출근하는 기분.

다 해 본 일이고, 누구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이기에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기분.

진유성이 만면에 미소를 띠며 자세를 취하자, 조교들이 입술을 깨물었다.

첫날 훈련부터 얕보이면 끝장이다.

설령 온몸에 쥐가 나는 일이 있어도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다시! 이번엔 150회. 마지막 구호는 생략한다!”

호루라기를 움켜쥔 조교가 진유성을 노려보며 승부수를 던졌다.

“지금부터 실수하면 50개씩 늘어납니다.”

조교들이 눈빛을 교환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들은 전부 국가대표였거나,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 노력했던 이들이다.

일국을 대표하는 체육인이 되기 위해서 견뎌야 하는 훈련은 혹독하기 그지없다.

매순간 한계를 돌파하지 않고는 인내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들 모두는 그런 시간을 겪어 왔다.

그러니 체력 좀 좋은 고등학생에게 밀릴 수는 없다!

힘찬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또다시 PT 1번 체조가 시작되었다.

150개를 끝내고 지종수가 쥐가 나서 열외되었다.

다시 200개가 시작되었다.

250개……. 300개…….

마침내 350개를 도전하게 됐을 때.

더 이상 서 있는 사람은 없었다.

진유성을 제외하고는.

다들 다리에 경련이 올 때까지 버텼지만, 더는 불가능했다.

오만한 태도로 쓰러진 조교들을 내려다보는 진유성에게 기가 질린 심도훈이 물었다.

“너, 넌 진짜 안 힘드냐?”

진유성이 답했다.

“Easy.”

* * *

점심 식사 시간, 조교들의 얼굴은 침울했다.

입으로는 밥을 삼키고 있지만, 머릿속에는 하나의 영어 단어밖에 맴돌지 않는다.

Easy.

그들을 오연하게 내려다보며 뱉은 훈련생의 단어에, 그들은 비참해졌다.

“어떡하죠…….”

“그니까…….”

“얼굴 보기도 민망한데…….”

사실, 그들이 함께 훈련에 참여하지만 않았다면 진유성이란 놈이 아무리 괴물 같은 체력을 가지고 있어도 상관없었다.

문제는 그들이 첫 단추를 잘못 채웠다는 것에 있었다.

대표님의 말에 신이 나서 훈련을 함께 참여해 버렸다.

입소 총원이 적은 그룹이 오면 훈련 분위기를 형성하기 위해서 이러는 경우가 있지만…….

진유성 같은 경우는 처음이다.

다음 훈련 때 갑자기 조교들이 빠져 버린다면 훈련생들이 무슨 생각을 할까?

“도망갔다고 생각하겠지…….”

그래서 조교들의 얼굴이 침울한 것이었다.

그러나 또 다른 훈련을 진행해도 체력으로 이길 자신이 없다.

“4일차 훈련을 당겨오는 건 어떨까요?”

“풋살?”

“네. 그냥 테크닉으로 조져 버리죠.”

“음…….”

4일차 훈련은 조금 쉽다.

힘든 것처럼 보이는 장애물 통과 훈련이지만, 실제로는 집중만 하고 있으면 손쉽게 통과할 수 있다.

그래서 4일차에는 오전 훈련을 끝내고 이런 말을 한다.

“여러분은 그동안 갈고 닦은 극기로 난코스를 해결했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코스였는데 모두 훌륭합니다.”

“오후 훈련은 취소하고, 간단한 풋살과 휴식으로 대체합니다.”

이는 훈련생들에게 노력하니 된다는 성취감을 심어 줌과 동시에 의욕을 심어 주는 것과도 같았다.

다음 날에도 성공적으로 훈련을 끝내면 보상이 있을 거라는 기대.

그것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물론 풋살은 조교들이 압도를 해야 한다.

어차피 국가대표급의 운동선수들은 일반인과 몸을 쓰는 방법 자체가 다르다.

조교들의 얼굴에 희망이 어리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은 계획인 것 같다.

“그놈, 좀 호리호리한 편이었지?”

“네. 그냥 몸싸움을 걸죠. 그냥 나가떨어질걸요?”

“좋다. 야, 다들 밥 빨리 먹고 30분이라도 자자.”

“오케이.”

조교들이 허겁지겁 밥을 먹으며 식당의 끝에 앉아 있는 훈련생들을 쳐다보았다.

진유성이 태평한 표정으로 밥을 먹고 있었다.

“들리진 않았겠죠?”

“들리겠냐. 거리가 얼만데.”

그렇게 점심시간이 끝나고, 조교들은 30분 정도 회복 수면을 취했다.

컨디션을 회복한 조교들은 훈련생들을 데리고 풋살장으로 향했다.

4 대 4로 진행되는 풋살 시합.

한 명은 골키퍼를 맡으니, 필드에서는 3 대 3이었다.

“어우, 뛸 수 있으려나.”

축구를 좋아하는 지종수지만, 오전 훈련 때문에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진유성이 말했다.

“대충 나한테 주면 된다.”

“하긴, 네가 알아서 해 주겠지.”

그렇게 시작된 풋살은…….

대정고 학생들에게는 당연한 결과를 만들었고, 조교들에게는 당황스러운 결과를 만들었다.

“막아!”

조교 중 한 명이 어깨를 들이밀며 진유성을 제지하려 했지만, 진유성은 귀신같은 몸놀림으로 몸싸움을 피했다.

‘풋살은 축구와는 다른 재미가 있군.’

축구는 넓은 운동장에서 하기 때문에 속도만 나오면 쉽다.

빠른 속도로 수비수를 제치기 때문에 필요한 발재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풋살은 공을 터치하는 횟수가 축구보다 훨씬 많고, 공간도 훨씬 좁다.

보법을 훈련하는 기분이 든다.

‘캠프에 오길 잘했군.’

조교들이 들었으면 복장이 터졌을 생각을 하며, 진유성은 다시 한번 싱그럽게 웃었다.

그리고는 현란한 터치로 수비수를 제치고, 페이크 모션으로 상대의 균형을 흐트러트렸다.

이후, 골키퍼의 시야가 가리는 각도를 찾아서 가볍게 공을 차 넣었다.

12 : 2.

10분이 지난 시점의 스코어였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조교들에게 진유성이 다가갔다.

그리곤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일 더하기 일은?”

“뭐?”

“일 더하기 일은?”

“…….”

조교들은 ‘귀요미’라는 단어를 떠올렸지만, 결코 입에 담진 않았다.

설마 지금 자신들이 귀엽다고 놀리는 건가?

그러나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열었다.

“이지.”

조교들이 진유성의 말의 뜻을 이해한 것은 몇 초 뒤였다.

Easy.

* * *

그날 밤.

숙소에 모인 조교들이 맥주 한 캔을 들고는 작당을 모의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돼.”

“복수해야 합니다.”

“처참히 짓밟아야 합니다.”

하루 종일 완패를 경험한 조교들의 눈에는 독기가 가득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조교가 훈련생한테 탈탈 털리다니?

이는 극기 캠프가 출범한 이래로 벌어져서는 안 되는 처참한 일이었다.

“PT 12번으로 조져 보죠.”

“안 돼. 체력으로 가는 건 우리가 질 거야. 엄청 힘들지만 노하우로 때울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해.”

“PRI 어때요.”

“그건 그냥 힘들잖아.”

“그럼 IBS 어때요. 대표님한테 고무 보트 빌려서.”

“그건 좀 괜찮네.”

독기와 독기가 만나니 더욱 진한 독기로 재탄생한다.

그들은 잠도 잊은 채, 몇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진유성을 무릎 꿇릴지에 대해 토론했다.

역시 사람은 집단 지성의 생물이었다.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자 노하우가 없으면 힘들어 죽는 훈련들이 줄줄 쏟아졌다.

체육고 시절 경험, 군대 시절 경험, 상비군 시절 경험.

이 모든 것이 집약된 완벽한 계획이었다.

“바로 이거야.”

“완벽합니다.”

독기를 품은 여덟 개의 눈동자에 흡족함이 어렸다.

“늦었다. 빨리 자고 일어나서 명예를 되찾자.”

“빨리 잡시다.”

“다들 핸드폰 보지 말고 숙면, 또 숙면.”

그날 밤, 조교들은 진유성이 무릎 꿇는 꿈을 꾸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다음 날, 아침.

고무보트부터 시작해 로프, 레펠 등등의 만반의 준비를 끝낸 4인의 결사대가 모여들었다.

그들은 마지막으로 계획을 점검하고는 훈련장으로 향했는데…….

훈련장에는 3명의 훈련생밖에 보이지 않았다.

진유성이 없었다.

‘그래, 사실 이놈도 피곤했던 거야.’

‘감히 늦잠을 자?’

‘갈궈. 미친 듯이 갈궈.’

수면 아래로 잠시 가라앉았던 독기가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조교들의 큰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인원도 다 모이지 않았는데, 누가 가만히 서 있으라고 했습니까! 동료를 버리고 나 혼자 오면 됩니까!”

그러자 지종수가 입을 열었다.

“세 명이 전부인데요.”

“진유성 훈련생은 귀신입니까!”

“그, 새벽에 어머니한테 진통이 온다는 연락이 와서 급히 병원으로 갔어요…….”

“진통……?”

“네. 출산 예정일이 아닌데, 갑자기.”

“…….”

조교들의 말문이 막혔다.

어머니가 출산하면 아들은 당연히 병원에 가야 하니까.

물론 유혜연이 진유성의 친어머니는 아니었지만, 조교들이 거기까지 알 순 없었다.

조교들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리의 뜨거웠던 밤은…….’

‘우리의 집단 지성은…….’

‘우리의 완벽한 계획은…….’

전부 물거품이 되었다.

진유성은 끝까지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이기고, 튀었다.

그리고 독기는 해소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

방향을 잃은 독기가 세 명의 어린양에게 향했다.

지종수, 심도훈, 고인수는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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