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27화>
* * *
해병대 캠프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대한민국 제1해병사단에서 여름과 겨울에 개최하는 정식 해병대 캠프.
둘은 해병대 전역자들을 고용해 운영하는 사설 해병대 캠프.
이 중 진유성을 비롯한 대정고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캠프는 후자인 사설 캠프였다.
상림은 정식 캠프를 원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
사설 캠프는 사업자들이 운영하는 만큼 업체별로 서비스 수준이 천차만별이었다.
3류 업체들은 해병대 출신이 아닌 군필자를 데려와서 아무렇게나 운영하고, 때문에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 1류 업체들은 제1해병사단에서 해병대 캠프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해병대 출신 조교들을 데려와 운영했다.
대정고 학생들이 입소할 파주의 <극기 해병대 캠프>는 사설 업체 중에서는 톱으로 평가받는 곳이었다.
이런 극기 해병대 캠프의 아침 조회 시간에 주요 화두에 오른 것이 대정고였다.
“오늘 10시에 입소하는 애들이 대정고 학생들이다. 다들 대정고 알지?”
“엄청 부자 학교죠? 압구정에 있는.”
“어, 맞다. 로얄 섹터 학교.”
“와, 금수저들이네.”
“근데 대정고면 전부 부자야? 드라마에서 보면 여주인공은 흙수저인데 부자 학교 가고 그러던데?”
“그건 드라마니까 그런 거고. 대정고는 체고생들 빼고 전부 다이아몬드 수저야.”
캠프가 진행되는 동안은 무표정한 철혈의 조교들이지만, 그들도 결국 20대 청년일 뿐이다.
모두가 대정고에 다니려면 얼마나 돈이 많아야 되는지에 대해 떠들기 시작하자, 회의실은 금세 시장통이 되었다.
그때 캠프를 운영하는 40대 대표가 책상 탕탕 두들겼다.
“자자, 중요한 건 돈이 많고 적고가 아니라 우리 캠프에 입소했다는 거다.”
“부모님들이 밀어 넣은 거죠?”
“어.”
“얼차려 줬다고 고소하는 건 아니겠죠? 나 부자 무서운데.”
“아냐. 미친 듯이 굴려도 좋으니까, 제발 정신 좀 차리게 해 달라더라.”
“말만 그런 거 아니에요?”
어깨를 으쓱한 대표가 서랍에서 종이 4장을 꺼내서 살랑살랑 흔들었다.
네 명의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팩스로 받은 캠프 참여 동의서였다.
“훈련이 끝나면 부모님들한테 태도 평가 보내 주기로 했다. 그걸로 협박하면 먹힐 거라는데?”
“아하, 대충 알겠네요.”
“그러니까 너희들은 안전사고 조심하면서 최대한 성취감 있게 가자.”
3류 업체들은 캠프 참여자를 굴리기만 한다.
흔히 말하는 똥군기를 잡는 건 물론이고, 할 게 없으면 얼차려를 준다.
하지만 1류 업체들은 다르다.
그들은 캠프 참여자가 얻어 가야 할 것이 신체를 극한으로 내몰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성취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최대한 성취감 있게 가자는 말은 최대한 힘들게 가자는 말과도 같았다.
“영현이부터 도준이까지. 너희 네 명이 이놈들 조교다.”
“입소자가 네 명밖에 안 되는데 조교가 넷이나 붙어요?”
“개인 마크해. 숫자가 적은 데다가 문제아들이니까 훈련 분위기 조성하는 데 공 좀 들이라고.”
대표의 말에 조교들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극기 캠프는 보통 조교 두 명이 15인 기준의 분대를 담당한다.
한데, 네 명이서 네 명을 훈련하라는 건…….
“대표님 인센티브 있죠?”
“언제는 없었냐? 당연히 있지.”
“아뇨, 얼마냐고요. 인센티브가.”
씩 웃은 대표가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더 꺼냈다.
그가 내민 것은 상림에게 발주했던 세금 계산서였는데, 거기 적힌 금액은 기업 신입 사원들 캠프 참여비와 맞먹었다.
4명이 참여할 때 내는 돈으로는 과분한 금액이었는데, 이러한 금액을 먼저 제시한 것은 상림이었다.
그만큼 상림은 진유성이 구르기를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대표 입장에서는 ‘아, 이놈들이 엄청난 문제아구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알겠지? 니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냥 훈련을 같이 받겠습니다.”
“그것도 괜찮네. 힘들다는 소리도 못하게 기를 팍 죽여 버려.”
막대한 인센티브 덕분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주간 회의가 종료되었다.
직원들이 빠져 나가고, 서류를 정리하던 대표는 문득 LF 건설의 대표와 했던 통화 내용을 떠올렸다.
-체력으로 조질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괴물 같은 놈이 있거든요. 조교들이 나가떨어질 겁니다.
-복잡한 규율이랑 규칙으로 조져야 해요.
-안 그러면 망신당합니다.
대표가 통화 내용을 상기하며 피식 웃었다.
그는 자신의 캠프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보통의 싸구려 사설 캠프와 다르게 여기 모인 이들은 해병대 출신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이다.
이곳은 프로 선수를 준비하다가 안타깝게 미끄러진 이들을 위한 일자리였다.
대표 본인이 그런 케이스기도 했고.
그러니 LF 건설 대표가 말했던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캠프의 대표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면.
상대는 진유성이었다.
* * *
‘극기 해병대 캠프의 입소를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본 지종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결국 여길 왔네.”
진유성, 지종수, 심도훈, 고인수.
네 사람 중에 자발적으로 캠프에 온 사람은 진유성밖에 없었다.
나머지 셋은 아버지의 강압을 이기지 못하고 참여한 것이었다.
특히 지종수가 제일 그랬다.
지종수는 이번에도 방학이 시작하자마자 영국으로 가서 축구 캠프에 참여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뒷덜미를 잡혀서 강제적으로 캠프로 보내졌고, 도망치면 모든 용돈을 끊어 버린다는 협박을 받았다.
또한 해병대 캠프에서 훈련 종료 이후 보내 온 태도 평가에 따라서 용돈을 끊어 버릴 수도 있다고 했고.
지종수의 아버지는 한 번 입에 담은 말은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자꾸 한숨이 나왔다.
나머지 세 명도 마찬가지였고.
“어휴, 일주일이나 여기서 어떻게 자냐.”
“침대 없겠지?”
“침대가 없다고? 있지 않을까?”
“TV에서 보니까 없던데.”
“말도 안 돼. 그건 그냥 TV니까 그런 거 아니야?”
대정고 학생들이 학교에서는 평범한 것 같지만, 모두 부잣집 도련님들이었다.
바닥에서 모포를 깔고 자 본 적도 없고, 원하는 음식을 먹지 못해 본 적도 없다.
모두의 얼굴에 수심이 어렸지만, 진유성은 아니었다.
‘이런 환경은 오랜만이군.’
진유성은 노예상의 밑에서 1년을 있었고, 그 뒤로는 멸마대에 끌려가서 오랜 시간 훈련했다.
모포는커녕 낙엽 위에서 잔 적이 더 많았고, 낙엽조차 없을 때는 부드러운 흙을 골라 그 위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진유성도 사람인지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음식을 엄청나게 가리진 않았다.
백 년 가까이 된 이야기긴 하지만, 영양분을 얻기 위해 애벌레도 잡아먹던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세 명의 10대 고등학생들과 한 명의 120대 고등학생이 극기 해병대 캠프 안으로 향했다.
지병에 관련된 간단한 설문 조사를 한 뒤에 그들이 받은 것은 요상한 디자인의 훈련복 세트와 전투화였다.
지종수가 코를 킁킁거리며 훈련복의 냄새를 맡았다.
그래도 빨긴 빨았는지 섬유 유연제 향이 나긴 하지만, 누가 입었는지도 모를 옷을 입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 씨. 그냥 내 트레이닝복 입으면 안 되나?”
“그니까.”
그때였다.
빨간 조교 모자를 쓴 남자가 탈의실로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놀러 왔습니까! 빠르게 환복하도록 합니다!”
TV에서만 보던 군대의 조교의 모습에 신기했던 것도 잠시.
조교가 옆에서 태도 점수를 운운하며 윽박을 지르기 시작하자 대정고 학생들이 당황했다.
그동안 그들이 누구한테 윽박을 당하고 협박을 받아 봤겠는가.
지종수, 고인수, 심도훈이 허겁지겁 옷을 입기 시작했다.
그러나 군복과 군화라는 게 그리 간단히 입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난생 처음 보는 고무 링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자, 조교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제 옷도 제대로 못 입는 바보들밖에 없냐고 갈굴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때, 진유성이 태연하게 옷을 입었다.
진유성도 군복을 어떻게 입는지는 몰랐지만 눈앞에 샘플이 있다.
기감을 이용하면 겉옷에 감춰진 안의 모양도 알 수 있고, 그대로 따라 하는 건 별로 어려운 게 아니다.
진유성이 옷을 입자, 나머지 친구들도 허겁지겁 따라 하기 시작했다.
‘어, 이게 아닌데.’
조교가 잠시 당황했지만, 어차피 환복은 그리 중요한 과정이 아니다.
그렇게 그들은 옷을 갖춰 입고는 유격 훈련장으로 향했다.
훈련장에 도착하니 세 명의 조교가 나란히 서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모자에 가려서 눈동자도 보이지도 않는데, 노려보고 있다는 느낌이 여실히 들었다.
조교들의 입장에서 훈련의 시작은 평범했다.
대부분의 입소자들에게 진행하는 것처럼 어리버리한 훈련생들을 갈구고, 제대로 된 차렷 자세부터 알려주었다.
군대에서 FM으로 제시하는 차렷은 그렇게 편안한 자세가 아니다.
5분만 정자세로 있어도 힘들고 불편하다.
그렇기 때문에 제식 동작만으로도 일주일은 갈굴 수 있었다.
한데…….
‘저 자식, 운동을 했나?’
한 명이 거슬린다.
뭘 시켜도 완벽하게 수행하는 훈련생이 있다.
본래 그런 역할을 조교들이 맡아야 하고, 훈련생들이 조교들을 무서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하지만 딱히 반항하는 것도 아니고, 흠잡을 곳도 없었기 때문에 훈련은 계속되었다.
간단한 제식 훈련이 끝나고 드디어 PT 체조 시간이 다가왔다.
유격 훈련에는 다양한 코스들이 있지만, 군필자들이 기억하는 것은 역시 PT 체조였다.
특히 PT 8번.
바닥에 누운 채 머리와 다리를 들어 올려 온몸을 비트는 자세는 워낙 악명이 높아서, 군대를 가지 않은 이들도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수 있었다.
해병대의 경우 육군에서 악명 높은 8번 PT가 13번에 있었다.
PT 시간이 되자, 세 명의 조교가 네 명의 훈련생 앞에 도열했다.
한 명은 교육을 진행하고, 나머지 세 명은 훈련생과 같은 교육을 이수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완벽한 자세와 태도를 보여 줄 표본이자, 훈련생이 불만을 품는 것을 원천 차단하는 존재였다.
“1번, 10회. 마지막 구호는 생략한다.”
조교의 말에 진유성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진유성은 지금까지 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추억에 젖는 시간이었다.
멸마대에서 받았던 훈련과는 좀 다르지만, 그래도 조교들의 행동은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훈련을 받으면서도 ‘맞아, 그때 그랬는데.’하는 식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런 진유성이 눈살을 찌푸린 것은 조교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뱉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구호를 생략한다고?’
이건 말도 안 된다.
오히려 반대여야 한다.
멸마대에서는 어떤 훈련을 받던지 마지막 구호에 내공을 실어야 했다.
좁쌀만 한 단전을 가지고 있을 때는 훈련을 받다가 지니고 있는 내공을 다 써서 탈진으로 쓰러지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불만을 많이 품었다.
왜 어떤 훈련을 받던지 마지막 구호에 내공을 실어야하는지.
그러나 임무에 나가서 깨달았다.
그것이 기세가 된다.
형(形)은 식(式)이 되고, 식(式)은 의(意)가 되며, 의(意)는 염(念)이 되며, 염(念)은 결(結)이 된다.
동작을 반복하면 법이 되고, 법을 반복하면 뜻이 되며, 뜻을 반복하면 무념에 닿으며, 무념의 경지는 완성을 일컫는다.
이것이 무공을 익히는 가장 완벽한 방법이다.
훈련에서 마지막 구호에 모든 내공을 터트리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진유성은 첫 번째 임무에서 죽을 뻔했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 모든 내공을 터트리며 상대의 심장을 꿰뚫었다.
생각하고 한 것이 아니었다.
훈련에서부터 쌓여 온 형식이 의념이 되었고, 무상무념의 순간에 결을 맺은 것이었다.
그러니, 훈련의 마지막 구호를 생략한다는 것은 훈련을 받지 않는 것만 못하다.
120년을 넘게 살아온 꼰대의 ‘나 때는 말이야’ 정신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진유성은 마지막 구호를 누구보다 장렬히 크게 외쳤다.
“열!”
진유성이 실수를 하자, 조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다시! 이번엔 20회. 마지막 구호는 생략한다!”
그리곤 진유성을 쳐다보며 말했다.
“실수할 때마다 무조건 10개씩 늘어납니다.”
물론, 조교는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