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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26화 (226/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26화>

상소윤의 계획은 간단했다.

본인이 옷을 잘 입으니까, 한번 팔아 보겠다.

자본금을 빌려주면, 3년 내에 갚겠다.

가능하면 무이자로.

요약은 간단했지만, 설명은 훨씬 길었다.

상소윤은 자신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사업을 성공시킬 것이며, 얼마나 성공 가능성이 높은지에 대한 장황설을 늘어놓았다.

“엄마, 나는 아빠의 사업 DNA를 물려받았다고. 무슨 말인지 알지?”

유혜연은 딸의 설명을 들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사실 상림과 유혜연은 그들의 딸에 대한 걱정을 가지고 있었다.

부모가 자식을 걱정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딸에 대해 가지고 있는 걱정은 보통의 부모들이 가지고 있는 것과 살짝 달랐다.

보통의 부모들은 자식의 진로를 걱정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한다.

하지만 상림과 유혜연은 돈이 많은 이들이다.

상소윤이 정말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으면 카페라도 하나 차려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상림과 유혜연은 상소윤이 먹고 사는 일 자체를 걱정하진 않았다.

그들이 걱정하는 것은 상소윤이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었다.

유혜연은 재벌 사회에 들어온 이후, 돈이 너무 많아 인생을 낭비하는 이들을 여럿 봐 왔다.

특히 재벌 2세들이 그랬다.

돈이 적당히 많은 집안의 자제는 인생이 윤택하지만, 너무 많은 집안의 자제는 행동 동기를 잃어버리곤 한다.

그뿐인가?

그들의 딸은 너무 예쁘다.

예쁜데다가 돈까지 많은 상소윤한테 이상한 놈들이 달라붙을까 봐 걱정이 많이 됐다.

아직은 고등학생이고 대정고에서 생활해서 괜찮은 것 같지만, 사회로 나가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유혜연이 일찌감치 진유성을 사위로 낙점한 것에는 이러한 배경도 있었다.

진유성은 외모도 훌륭하고, 북한 출신이라 싸움도 잘한다.

돈도 많고, 공부도 잘하며, 상소윤을 박색하게 여겨서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도 있다.

여러모로 완벽하다.

그녀의 딸에게는 이만한 남자가 없는 것이었다.

유혜연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원점으로 돌아왔다.

‘쇼핑몰이라…….’

만약 상소윤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기 전이었다면, 거절을 했을 확률이 컸다.

상소윤은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으니까.

하지만 최근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깨달은 바가 좀 있는 것 같았다.

‘해 보다가 적성에 맞으면 패션 유학을 보낼 수도 있겠지? 어차피 공부도 드럽게 못하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유혜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 진짜?”

“응. 근데 무이자는 안 돼. 전국에서 가장 낮은 대출 금리가 얼마인지 알아와. 딱 맞춰서 해 줄게.”

엄마가 이토록 호쾌하게 허락할 줄 몰랐던 상소윤이 눈을 반짝였다.

“그럼 나 이번 방학 때 시작해도 돼?”

“일단 아빠한테 말해 봐야겠지만, 아마 허락하실 거야.”

“오, 예!”

상소윤이 기뻐서 팔짝 팔짝 뛰자, 이번에는 유혜연이 진유성에게 말을 걸었다.

“유성아, 너는 뭐 원하는 거 있어?”

상소윤이 60등 안에 들면 진유성에게도 원하는 것을 한 가지 들어준다는 것이 약속이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딱히 없어요.”

“그래? 그럼 생각나면 말해. 알겠지?”

“네.”

“그래서 딸, 처음에 얼마나 빌릴 거야?”

“많이 빌리면 갚기 힘드니까, 10억만 빌릴게.”

“……얼마?”

“10억. 왜? 좀 적은가?”

“…….”

저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쉰 유혜연이 혀를 쯧쯧 차고 있는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진유성과 유혜연의 시선이 교차했다.

두 사람의 눈빛 속에는 ‘이렇게 세상 물정을 모를 수가 있나?’라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었다.

유혜연과 진유성의 한심한 눈빛을 읽은 상소윤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 뭐! 그렇게 보지 마!”

“상소윤, 너는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른다.”

“그러는 너는 잘 아냐?”

“너보다야 잘 알지.”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다시 한번 혀를 차며 말했다.

“그 어떤 완벽한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변수는 늘 존재한다.”

“변수?”

“막말로 네가 팔 옷을 보관하는 물류 창고에 화재가 날 수도 있는 게 아니냐?”

“어, 그치. 보험을 들어야 하나?”

“보험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계획에 변수까지 포함시키는 것이다.”

진유성이 오른손을 내밀어 다섯 손가락을 쭉 펴며 말했다.

“50억으로 시작해라.”

“50억?”

“그 정도면 변수가 발생해도 문제없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오…….”

진유성의 말에 크게 감화된 상소윤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유혜연은 치밀어 오르는 두통을 참지 못하고 이마를 짚었다.

참으로 세상 물정을 모르는 멍청이들이었다.

‘하마야, 이놈들을 어쩌면 좋니?’

유혜연이 만삭의 배를 쓰다듬으며 뱃속의 아기에게 투덜거렸다.

* * *

기말고사가 끝나고 이틀 뒤, 방학이 시작되었다.

수능을 준비하는 이들은 앞으로 다가올 타이트한 일정에 두려워했고,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은 비행기에 올랐다.

이도저도 아닌 이들은 부모님의 눈치를 살살 보며 즐거운 방학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고.

그 와중에 잠깐 동안 바빴던 이가 있으니, 진유성이었다.

진유성은 정말 의외의 이유로 바빴다.

바로, 무수한 학부모들의 러브콜 때문이었다.

상소윤은 대정고에서 유명한 인사였고, 이러한 유명세는 학부모들에게도 적용이 되었다.

대정고는 학생 숫자가 그리 많지 않고, 학부모들끼리 연결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당장 상림의 LF 건설만 하더라도 두 개의 시멘트 회사와 계약을 맺고 있었는데, 두 시멘트 회사의 자식들도 대정고 학생이었다.

그러다보니 학부모들은 상소윤이 예쁘지만,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한데, 상소윤이 엄청난 반전을 이루어냈다.

기말고사에서 무려 57등을 기록한 것이었다.

물론 그동안 말아먹은 성적이 있기 때문에 내신 등위가 눈에 띠게 상승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흥미를 가질 만한 소식임은 분명했다.

자식이 공부를 할 필요가 없더라도, 일단 공부를 잘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까.

그렇게 학부모들은 상소윤이 어떤 방식으로 성적을 올렸는지를 탐문했고, 진유성이란 이름을 들었다.

현 대정고 1등인 진유성이 상소윤을 일주일간 과외 시켰다는 것이었다.

고작 일주일 만에 꼴등이 57등이 되었다는 소식에 학부모들은 눈이 돌아갔다.

그리곤 진유성에게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자식의 공부를 도와주면 막대한 과외비를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내용으로.

심지어 1등 상승당 얼마씩으로, 구체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한 학부모도 있었다.

그리고 그 금액은 절대 무시할 액수가 아니었다.

대정고에 다닌다는 것 자체가 어지간한 재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진유성을 포섭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더 큰 돈을 지불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자신을 향한 모든 러브콜을 가볍게 뿌리쳤다.

학부모들이 제시한 과외비는 절대적으로는 큰 금액이지만, 상대적으로는 작은 금액이다.

진유성은 몇 시간만 투자하면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고,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었다.

게다가 현금 보유량만 따지면 진유성은 대정고의 모든 학부모들을 압도할 것이었다.

진유성의 단호한 거절에 학부모들은 애가 탔다.

본래 갖지 못하는 보석이 더욱 빛나 보이는 법이고, 부자들은 그런 습성이 큰 이들이었다.

진유성을 포기할 수 없었던 학부모 중에는 방학식까지 찾아와 더욱 업그레이드된 인센티브 조건을 내거는 이도 있었다.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주면 안 될까? 우리 집안에서 공부를 못하면 정말 큰 차별과 편견을 받거든.”

“무슨 집안인데요?”

“검찰 집안인데 정훈이가 공부를 못해서……. 친구 인생 하나 살린다는 마음으로 함께 싸워 주면 내가 정말 섭섭지 않게 해 줄게. 정훈이 본인도 간절히 원하고…….”

물론, 거절했지만.

그렇게 러브콜을 거절하고 화장실로 향하는데, 갑자기 상소윤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야, 진유성.”

“왜 그러느냐?”

“저분, 정훈이 어머니 아니야?”

“맞다. 3반 이정훈.”

“정훈이 어머니가 무슨 말씀을 저리 하신 거야? 손까지 붙잡고.”

상소윤은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이정훈의 어머니가 진유성의 손을 꼭 붙잡고 이야기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반가워서 인사를 한다기엔 진유성과 이정훈이 아무 접점이 없었고, 무엇보다 이정훈 어머니의 태도가 꽤 절실해 보였다.

그때 진유성이 대답했다.

“도저히 날 포기할 수 없다더군. 한 번만 다시 생각해달라고.”

“무슨 포기? 뭘 다시 생각해?”

“아들의 인생을 책임질 사람으로.”

“이정훈 인생을 네가 왜 책임져?”

“본인이 간절히 원한다더군.”

“……!”

“편견과 차별에 맞서 함께 싸워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고.”

“그, 그래서? 너는 뭐라고 했는데?”

“꽤 큰돈을 제시했지만.”

“돈까지……!”

“거절했다.”

상소윤이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왜 거절했는데?”

“뭘 당연한 건 물어보느냐?”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상소윤을 지나쳐 화장실로 향했다.

복도에 우두커니 서서 경악하고 있던 상소윤의 눈에 문득 우울한 표정의 이정훈이 들어왔다.

3반에서 나와서 이쪽으로 향한다는 건 매점 아니면 화장실인데, 지금은 매점을 갈 시간은 아니다.

그렇다는 건 화장실이고, 지금 화장실로 가면 진유성과 만난다.

“저, 정훈아! 안녕?”

난데없이 상소윤이 인사를 건네자, 방학식까지 찾아온 엄마 때문에 우울해 있던 이정훈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상소윤과 1학년 때 같은 반이긴 했지만, 큰 친분이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 소윤아. 안녕.”

“그, 어, 방학 계획은 세웠어?”

“계획이랄 게 있나. 그냥 공부해야지.”

“아, 공부. 힘들겠다.”

실연(?)을 당한 이정훈을 진유성과 마주하지 않게 하려는 상소윤의 노력은 결실을 거두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화장실에서 나온 진유성이 1반으로 들어가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난 가 볼게. 방학 잘 보내!”

상소윤이 웃으며 복도를 떠나자, 이정훈의 얼굴에 설렘이 어렸다.

‘설마 소윤이가 날……?’

엄마 때문에 우울했던 것을 잊어버린 이정훈이 설렘 가득한 표정으로 화장실로 향했다.

그사이, 상소윤의 오해를 불러일으킨 이정훈의 어머니는 아쉬움에 투덜거리고 있었다.

“좀 더 간절하게 말했어야 하나?”

* * *

방학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난 날.

진유성은 이른 아침에 일어나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이 해병대 캠프에 입소하는 날이기 때문이었다.

‘아, 좀 귀찮네.’

입소를 결정할 때만해도 새로이 경험하는 일이라서 흥미가 있었는데, 이른 아침부터 움직이려니 귀찮다.

하지만 진유성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진 않았다.

그는 지금의 삶이 지구에서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정상적인 삶’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10년이 흐르고, 다시 20년이 흐르면 진유성은 또다시 이방인이 된다.

늙지 않기 때문에.

상소윤을 비롯한 친구들이 40대가 되고, 50대가 되어도 진유성은 계속 이 모습일 것이었다.

점점 그들의 삶에 개입할 수 없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게 긴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지구에는 진유성이란 사람을 아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삶은 소중하다.

유일하게 고등학교에 다닐 수 있고, 수능을 볼 수 있으며, 성인이 될 수 있는 순간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스포츠 가방을 들고 내려오니, 유혜연이 아침부터 차려 놓은 식사가 보인다.

“기어코 차리셨어요?”

“그럼, 오늘 우리 유성이 군대 가는 날인데.”

“진짜 군대는 아닌데요.”

“그래도 일주일이나 가는데.”

모두들 배가 만삭인 유혜연이 일을 하지 않으면 좋겠는데, 유혜연은 기어코 아침을 차렸다.

그게 좋다면서.

진유성은 유혜연이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밥을 먹었다.

밥을 다 먹으니 잠에서 깬 상소윤이 방문을 열고 나온다.

“아, 오늘이냐? 가서 철 좀 들고 와라.”

“시끄럽다.”

“교관들 때리지 말고.”

“난 지성인이기 때문에 함부로 폭력을 쓰지 않는다.”

“웃기고 있네.”

잠시 뒤, 유혜연의 배웅을 받으며 집에서 나오자 외제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나타났다.

“야, 타!”

함께 캠프에 입소할 심도훈, 고인수를 태워 온 지종수였다.

진유성은 운전대를 잡은 지종수의 모습을 부럽게 쳐다보다가 차에 올라탔다.

그렇게 네 사람은 이른 아침부터 파주의 사설 해병대 캠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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