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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23화 (22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23화>

* * *

봄과 여름이 섞였던 6월이 끝이 나고, 완연한 여름 날씨의 7월이 다가왔다.

에어컨이 없으면 땀이 줄줄 흘러서 찝찝해지는 계절이었다.

“야, 진유성.”

“왜 그러느냐?”

“너는 왜 땀을 안 흘리냐? 안 덥냐?”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 번만 울어야 한다.”

“그건 눈물이지 땀이 아니잖아?”

“땀은 나약한 자들이 피부에서 흘리는 눈물일 뿐.”

“오늘도 여전히 미쳤네.”

쯧쯧 혀를 찬 상소윤이 학교에 등교하느라 아침부터 흘린 땀에 투덜거렸다.

진유성이 미친 건 틀림없지만, 간첩 특성은 확실히 부럽다.

겨울에도 추위를 잘 안 타고, 여름에도 더위를 안 탄다.

무시무시한 극한 훈련을 받아야 저렇게 될 수 있겠지만, 어쨌든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아, 학교가 너무 넓어.”

대정고 학생들은 100%가 타인이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등교하지만, 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주차장까지였다.

3학년 본관이 주차장에서 가장 가까운 건물이라고는 해도 5분 정도는 걸어야 한다.

그리고 한 여름에 5분이면 결코 짧지 않다.

“상소윤. 내가 체온을 조절하는 법을 알려 줄까?”

“진짜? 뭔데?”

“혀를 내밀고 빠르게 헥헥거리면 된다. 괜히 개들이 두꺼운 털을 가지고도 여름에 견디는 게 아니다.”

“야이, 내가 개냐?”

“개도 사람도 동물일 뿐이다. 한번 해 봐라. 사람에 따라 체감은 다르지만, 정말로 효과가 있다. 특히 극한의 더위 상황에서 말이다.”

진유성의 말투가 워낙 진지했기 때문에 상소윤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녀는 바보가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저 말을 믿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하겠냐?”

“흠, 믿지 않는군. 고작 10초만 투자하면 알 수 있을 텐데.”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여상하게 고개를 돌리더니 핸드폰을 보기 시작했다.

그걸 끝으로 진유성은 더는 해 보라고 조르지도 않았고, 장난치려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진짜? 에이, 말도 안 돼.’

상소윤은 여전히 믿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진유성의 말이 맞다.

10초면 된다.

진유성을 힐끔 본 상소윤이 고개를 슬쩍 돌리고는 시골 강아지처럼 혀를 날름날름 내밀어 보았다.

차마 소리는 낼 수 없었고.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정말로 더위가 가시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마, 말도 안 돼. 플라 뭐지, 플라스틱 효과 같은 거 아니야?’

플라시보 효과를 자기 멋대로 변형한 상소윤이 다시 한 번 혀를 낼름낼름 내밀어 보았다.

그러자 정말로 약간의 청량감이 느껴진다.

더위가 완전히 가신 건 아니지만, 분명히 체감 온도가 내려간 기분이다.

깜짝 놀란 상소윤이 진유성을 획 돌아보았다.

“야! 진짜네?!”

“뭐가 말이냐?”

“아니, 방금 해 봤는데 진짜 시원해.”

“약간의 플라시보 효과도 있었을 것이나, 분명 효과가 있다. 앞으로 더울 때는 그리 하도록 해라.”

“어……. 남들 보기 민망한데.”

“어차피 박색한 거 신경 쓰지 마라.”

진유성은 그렇게 말하고는 어느새 다가온 3학년 본관으로 쏙 들어갔다.

간신히 웃음을 참으며.

당연한 말이지만, 상소윤의 체온이 내려간 것은 진유성의 내공이 한 일이었다.

‘또 속냐, 상소윤.’

오늘도 바보 한 명을 낚은 진유성이 기분 좋게 본관 건물로 들어서는데 정새롬이 보인다.

“어, 왔냐.”

정새롬이 손을 들어 인사하는데 상소윤이 후다닥 달려가더니, 방금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설명을 들은 정새롬이 인상을 팍 쓰며 진유성과 상소윤을 쳐다보았다.

“야, 그걸 믿냐?”

“아니, 나도 안 믿었는데. 진짜로 10초만 투자해 보라니까?”

“10초?”

“어어, 10초 안에 효과 없었으면 나도 안 믿었지.”

다단계 회원들 같은 대화를 나눈 두 사람이 본관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정새롬이 더워할 때쯤, 상소윤이 혀를 날름거리도록 시켰다.

그러자…….

“마, 말도 안 돼.”

“진짜지?”

“내 상식이 부정당하는 느낌이야……?”

상소윤과 달리 공부를 잘하는 정새롬은 개가 혓바닥으로 체온을 조절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사람한테 적용이 된다는 소리는 금시초문이다.

“플라시보 효과 같은 건가? 아니, 난 안 믿었는데?”

진유성 효과였다.

진유성은 두 사람의 체온을 미묘하게 조절했으니까.

상소윤은 대충해도 되지만, 정새롬은 아니다.

정새롬은 상소윤보다 훨씬 똑똑하기 때문에 아주 미묘하게 조절해야 한다.

분명 체감이 되지만, 그게 엄청나진 않은 정도.

그래야지 뒤탈은 없고, 정새롬은 바보가 되는 것이다.

‘후후. 빚은 반드시 갚는다.’

드디어 정새롬에게 장기자랑 1등을 빼앗겼던 빚을 갚은 진유성이었다.

여전히 진유성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3등 안에도 들지 못했던 건 지워져 있었고.

* * *

대정 고등학교는 7월 중순에 여름 방학을 시작해, 9월 1일에 2학기가 시작된다.

이는 대학교와 거의 비슷한 스케줄이었는데, 당연히 부모님들의 입김이 들어간 것이었다.

물론 학부모들이 자식이 놀길 원해서 이런 스케줄을 잡는 게 아니다.

수능을 준비하는 이들은 학교에 등교하는 시간조차 아깝다.

그들은 7월 중순부터 9월 1일까지 대기업 임원의 몇 달치 월급을 들여서 과외를 한다.

전국 최고의 족집게 강사들이 동원되는 것은 당연했다.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은 이 시기에 맞춰서 학교를 알아보기 시작한다.

입학 인터뷰도 진행하고, 집도 구하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마지막 그룹은 마지막 10대를 불태우는 이들이었다.

부모님의 회사를 물려받을 것 같긴 한데 공부에 재능이 없거나, 회사는 형제자매가 물려받는 이들.

공교롭게도 진유성과 친한 이들은 전부 이 그룹이었다.

정새롬과 고인수는 공부를 해야 하는 포지션에 있긴 하지만, 그들도 절박하진 않다.

지금 성적 정도만 유지하면 기부 입학 전형으로 원하는 대학을 들어갈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카페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여행 계획을.

“어디로 가지?”

“난 외국은 좀 그래. 아빠 눈치 보인단 말이야.”

지종수의 말에 심도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은 방법이 있지.”

“뭐?”

“널 빼고 가는 되지 않을까?”

잠시 서운함이 극에 달했던 지종수였지만, 심도훈이 농담이라며 화제를 돌렸다.

“무전여행 어때?”

“현금 없이 카드만 들고?”

“응.”

“무전의 의미를 알긴 하는 거지?”

그들이 한참 방학 때 갈 여행 계획을 짜고 있는데,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한데, 여행보다 방학이 먼저가 아니느냐?”

“뭔 당연한 소리야? 당연히 방학이 먼저지.”

“그런 방학보다는 기말고사가 먼저고?”

진유성의 말은 사실이었다.

방학은 7월 중순이지만, 기말고사는 7월 초였다.

그러나 친구들은 진유성의 말을 들었음에도 못 들은 척 화제를 돌렸다.

어차피 그들이 어떤 태도로 공부를 대하는지는 모두가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입에 담진 않았다.

아직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10대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의 말에 반응한 사람이 있었다.

가장 의외의 인물.

“맞아! 기말고사!”

상소윤이었다.

상소윤이 갑자기 테이블을 탕 하고 내리치자, 정새롬이 어이없는 표정으로 물었다.

“설마 너 기말고사 보는 거 잊고 있었어?”

“어?”

“야, 아무리 공부를 안해도 그래도 시험 일정은…….”

오죽하면 옆에 앉아 있던 지종수가 고개를 돌릴 정도였다.

하지만 상소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녀도 결과에 관심이 없을 뿐 시험 일정을 알고는 있었다.

상소윤이 갑자기 기말고사를 외친 것은 과거의 어느 날 엄마와 했던 약속 때문이었다.

“60등 하면 뭐 해 줄 거야?”

“칭찬해 줄게.”

“아, 엄마!”

“알았어. 원하는 거 무조건 하나 들어줄게.”

그렇게 진유성에게 공부를 배웠고, 진유성이 GG를 쳤다.

하지만 상소윤은 변명거리가 있었다.

목표가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공부를 하면 인생에 도움이 되고, 한 번쯤 해 봐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상소윤은 원하는 것이 생겼다.

저 약속을 할 당시에도 뭔가를 생각했던 것 같은데, 기억에 남아 있진 않다.

하지만 지금은 좀 간절하다.

“야, 진유성!”

“왜 그러느냐.”

“나 공부 좀 알려 줘.”

“했노라. 보았노라. 포기했노라.”

“아, 그때는 내가 뇌의 100%를 발휘하지 않았어. 이번에는 진짜 열심히 할게.”

상소윤이 시큰둥한 진유성에게 미친 듯이 매달리자, 냅다 끼어든 것은 지종수였다.

“소윤아, 그럼 내가…….”

“너도 꼴등했었잖아.”

“아니 그건 내가 진짜로 답을 잘못 쓴 거고, 나 그렇게 못하지 않는데…….”

지종수의 말은 사실이었다.

지종수도 하위권을 맴도는 건 사실이나, 상소윤보다는 월등히 위에 있었다.

그러나 상소윤은 단호했다.

“1등을 두고?”

그 단호함에 큰 상처를 받은 지종수였다.

‘내가 반드시 진유성한테 소개팅해 주고 만다.’

그사이 심드렁했던 진유성은 상소윤에게서 변화의 의지를 보았다.

아무래도 저번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뭐 해 줄 건데?”

“엄마가 너한테도 한 가지 들어준다고 했었잖아.”

“아.”

진유성은 뒤늦게 유혜연과 했던 약속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상소윤이 원하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결국 진유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기말고사는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으니.

그 뒤로 대정고 학생들은 한참 동안 수다를 떨었고, 자리가 파한 것은 1시간이 흘러서였다.

그렇게 상소윤과 카페에서 나와 집으로 가던 중 진유성은 상림의 문자를 받았다.

문자에는 4개의 주소만 찍혀 있었다.

주소를 쳐다보던 진유성이 고개를 들었다.

“상소윤. 먼저 가라.”

“왜? 너 어디 가냐?”

“약속을 지켜야 할 것 같다.”

“약속? 너 약속 없다며?”

“생겼다.”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훌쩍 상소윤을 떠났다.

그리곤 곧장 상림이 찍어 준 주소 중 하나로 향했다.

* * *

각성관리부 장관은 여의도 근처의 오피스텔에 있었다.

집은 아니지만 캠프와 가까워 집보다 더 많이 애용하는 곳이었다.

“흐음…….”

주말임에도 뭔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던 각성관리부 장관이 허리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허리를 두드리며 오피스텔의 거실로 향했다.

거실에는 그가 애용하는 안마 의자가 있었다.

안마의자에 몸을 누이고 리모컨을 조작한 각성관리부 장관이 눈을 감았다.

‘언노운 엠페러……. 흔적이 없을 수가 없는데.’

우산도 멤버들이 베를린 S급 게이트에서 벌어들인 마정석은 어마어마하다.

무려 S급 게이트니까.

하지만 그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마정석을 벌어들인 것은 언노운 엠페러이다.

그 마정석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는가?

당연히 현금화할 것이다.

KPM, 혹은 블랙마켓으로.

각성 관리부장관은 그것을 추적하고 있었다.

언노운 엠페러는 자신을 추적하지 말라고 했지만, 그는 대한민국의 모든 각성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

“으음?”

장관이 눈을 깜빡였다.

분명 상념에 잠겨 있었는데, 깜빡 잠에 빠진 듯했다.

“이상하군. 피곤하진 않았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안마 의자에서 일어나려는데…….

뭔가 이상하다.

한데,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장관은 자신이 피곤했다고 생각하면서 화장실로 향했다.

소변을 본 다음에 다시 언노운 엠페러를 추적한 보고서를 읽어볼 생각이었다.

그렇게 도착한 화장실에서, 장관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목격했다.

거울 속의 자신.

“뭐, 뭐야!”

머리카락이 한 톨도 없다.

거뭇거뭇한 숱이 보이는 것도 아니고, 완벽한 살색의 대머리다.

“서, 설마?”

문득 떠오르는 한지후 소장의 경고.

“장관 이상 급 모든 관료들의 집을 알아내 대머리 고자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장관이 후다닥 거실로 뛰쳐나갔다.

그제야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피스텔의 마룻바닥에 써진 글자였다.

[오늘, 당신의 머리카락을 훔쳐 간다.

-괴도천마]

어처구니없게도 글자는 유성 매직이나 사인펜으로 쓴 것이 아니었다.

머리카락.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머리에 달려 있던 머리카락으로 글자를 쓴 것이었다.

그렇게 그날.

진유성의 경고를 무시하고 언노운 엠페러의 뒤를 쫓던 4명의 정치인이 대머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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