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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21화 (221/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21화>

* * *

“하지만 나에겐 그대들을 죽여야 할 의무가 있다.”

보호막 안으로 들어온 멀더의 온몸에는 묘한 색감의 빛이 묻어 있었다.

빛은 하나가 아니었다.

두 가지였다.

푸른색의 빛은 멀더의 존재를 보호막 밖으로 밀어내려는 듯했고, 진녹색의 빛은 그런 압력에서 멀더의 몸을 지키는 듯했다.

두 가지 빛이 서로를 할퀴면서 무지개처럼 번진다.

그 기묘한 모습에 각성자들이 주춤 뒤로 물러났다.

독도에서 만났던 보스 몬스터는 보호막을 넘어올 생각조차 못했다.

경계 지대에 선 진유성의 검기에 죽음을 맞이할 때도 그러했다.

그렇다면 눈앞에 있는 인간형의 보스 몬스터는 독도의 아낙키나의 이무기보다 강할 확률이 높다.

게다가 아무래도 진유성이 보스 몬스터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 순간, 진유성이 물었다.

“그 의무는 어디에서 기인하지?”

“인간이 태어나서 숨을 쉬고, 음식을 먹고,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의무이다.”

“지키지 않을 수 없는 의무라는 거군.”

“그래. 그러니 말해 봐라, 흑안과 흑발의 소드 마스터여. 그대와 내가 무슨 관계였는지.”

멀더의 말에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중원엔 이런 단어가 없었지만, 이제 보면 멀더는 딱 중2병이다.

오그라들고 유치한 말을 참 좋아한다.

진유성은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진실로 우스워서 새어 나온다기보다는 억지로 웃는 것에 가까웠다.

분노하지 않기 위해서.

멀더를 보스 몬스터로 밀어 넣은 마도사가 원하는 것이 자신의 분노일 테니까.

“내가 너의 주군이었다.”

“이상한 소리를 하는 군. 난 텐베르크…….”

“왕실을 수호하는 텐베르크 가문의 셋째이자, 블루문 마탑의 차기 마탑주이자, 메르더란 이름 아래 평생을 궁극에 바치는 자.”

멀더의 풀네임인 MERDE는 그들이 사용하는 룬어로 ‘궁극의 순교자’라는 뜻이 있었다.

진유성은 저 모든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너의 신이었다.”

멀더는 천마신교에 투신했고, 자신을 섬겼다.

그 순간.

쿠쿵.

거력이 깨어났다.

진유성의 내공이 일주천을 하며 기경팔맥에 잠들어 있는 모든 내공을 통제 하에 두기 시작한 것이었다.

보통의 무인들은 내공을 단전에 모으고, 평생 동안 모아도 단전의 총량을 넘지 못한다.

하지만 진유성은 단전의 총량을 넘어섰다.

그 이후에는 내공이 신체의 모든 혈맥과 기경에 스며들었다.

그때부터 진유성은 반로환동을 했고, 더는 늙지 않았다.

진유성이란 사람을 구성하는 모든 신체의 노화를 내공이 감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쿠쿵.

진유성은 잠들어 있는 내공을 깨우는 법이 거의 없다.

록펠러가 신성의 공간에서 진유성의 모든 내공을 추방시켰을 때가 있지만, 그때도 힘을 깨운 건 아니었다.

공간의 절대적인 법칙이 내공을 배제한 것뿐이었다.

그러니 진유성이 모든 내공을 깨우는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처음에는 게이트를 열 때.

두 번째는 상실의 공간에서 위상의 수호자와 싸울 때.

세 번째는…….

진유성의 온몸에서 흘러나오는 유형화된 기운이 넘실거리며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또한 기운에 대한 구속력이 극대화되면서 게이트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아지랑이조차 위협적이다.

누군가 진유성을 공격하는 순간, 공간을 일그러트리는 기운이 쇄도할 것이 분명하니까.

“이제는 과거의 네가 한 선택이 이해가 가냐?”

멀더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본체가 됐든, 혹은 분체가 됐든.

그의 죽음에는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는 걸.

진유성의 모습을 본 멀더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대는 궁극에 다다랐는가?”

“궁극에 다다른 분이 계신데 어찌 제 몸과 마음이 다른 길을 택하겠나이까!”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그는 여전히 궁극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MERDE란 이름에 담긴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그렇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하다.”

진유성이 뚜벅뚜벅 걸어서 경계 지대를 감싸고 있는 보호막을 빠져나갔다.

멀더가 뒤를 따른다.

두 사람의 발이 중립 지대가 아닌, 열대 우림 지대에 닿았을 때.

[보스 몬스터 : 텐베르크 블루문 메르더]

시스템의 메시지가 떠오름과 동시에 멀더의 몸에 흐르던 진녹색의 빛이 진해졌다.

보스의 신전에서 흘러나오는 막대한 마력이 멀더에게 공급되고 있었다.

충만한 마력을 느끼며 멀더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날 만들어 낸 누군가가 그대와의 결착을 바라는 듯하군. 난 그것을 거부할 수 없는 듯하고.”

그 순간 멀더가 인상을 찌푸리며 양팔을 벌렸다.

“날 죽여라. 궁극에 닿은 자여. 내 비록 호문클루스나 분체에 불과하더라도 선택권 없는 꼭두각시는 되지 않겠다.”

지극히 멀더다운 말에 진유성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지금 벌어지는 싸움은 누군가의 농간이나 농락이 아니다. 그저 약속을 지키는 것뿐이다.”

“약속?”

“네가 잊어버린 시간 속의 약속이 있었지. 아주 불경한.”

진유성이 검을 곧게 들어 멀더를 가리켰다.

“그러니, 멀더.”

허공 아지랑이를 만들어 내던 기운이 멀더를 향해 집약했다.

“약속을 지킬 시간이다.”

진유성의 말이 끝나는 순간.

멀더의 온몸을 맴돌던 진녹색 기운이 진유성을 향해 폭사되었다.

* * *

경계 지대의 보호막 안에 있던 우산도의 멤버들은 눈앞에서 벌어진 싸움에 말을 잃었다.

우산도는 이제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강한 각성자 집단이 되었다.

대부분의 멤버들이 S급 이상이며, SSS급도 두 명이나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이 모두 모인다고 하더라도 저 두 사람의 싸움에 끼어들 수나 있을까?

거력에 휘말려들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죽지나 않을까?

눈앞에서 펼쳐진 싸움은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신화적인 영역의 싸움이었다.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린다.

파지지지직!

거대한 뇌전의 창이 진유성을 향해 날아들자, 진유성의 검극이 창극과 마주했다.

멀더가 만들어낸 뇌전의 창은 길이가 15m도 넘는 거대한 것이었고, 진유성의 검은 2m도 되지 않는 길이었다.

길이의 차이뿐만 아니라, 두께의 차이도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검극과 창극이 맞닿는 순간, 번개가 산산이 흩어졌다.

파지직 거리는 공기를 뚫고 진유성이 검의 나아간다.

그 끝에는 멀더의 심장이 있었다.

푸욱!

진유성의 검이 멀더의 심장을 찌르는 순간,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그러나 그것은 가짜였다.

허공에 비산한 붉은 핏방울이 순식간에 진녹색으로 바뀌며 톱니바퀴와도 같은 모양으로 바뀌었다.

수백 개의 톱니바퀴가 고속으로 회전하더니 진유성을 향해 짓쳐들었다.

그와 동시에 등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멀더의 손에서 거대한 채찍이 소환되더니, 진유성의 등을 노렸다.

쐐애애애액!

각성자들이 보기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건만, 진유성의 대응은 태평했다.

일검으로 톱니바퀴를 쳐내더니, 빙글 돌아 채찍을 낚아챘다.

“불경하도다, 불경해. 감히 본 교주의 등짝에 채찍을 내리쳐?”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채찍을 휙 잡아당겼다.

채찍 소환을 해제하려는 것처럼 보였던 멀더가 깜짝 놀라며 끌려갔다.

진유성의 손에 채찍이 붙잡힌 순간 마력 통제권이 혼재되며 소환 해제가 되지 않은 것이었다.

심지어 채찍을 붙잡고 있는 손을 놓을 수도 없다.

그야말로 엄청난 구속력이었다.

진유성이 끌어들이는 힘을 거부할 수 없었던 멀더는 마음을 바꿨다.

오히려 가속력을 붙여서 주먹을 내질렀다.

멀더의 주먹에서 수십 가지의 빛이 피어오르더니, 주변 공기를 진공 상태로 만들었다.

이는 공기의 밀도보다 마력의 밀도가 높아서 벌어진 일이었다.

소리조차 나지 않는 공간 위로 진유성의 주먹과 멀더의 주먹이 부딪친다.

-----!

보호막 안의 각성자들이 풍압을 느낄 정도의 거대한 충격.

공기 매질이 없는 공간에서 충격파가 번진다는 것은, 이들의 충격파가 마력을 타고 날아왔다는 것을 뜻했다.

“컥!”

몇몇 각성자들이 난데없는 충격에 비명을 질렀다.

보호막이 대부분의 충격파를 상쇄했기에 비명 정도로 그친 것이지, 바로 옆에 있었다면 한 줌의 핏물로 변했을 것이었다.

이처럼 그들의 전투는 치열하고, 격렬했다.

하지만 그 전투를 지켜보던 각성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대체 왜?’

‘두 사람이…….’

즐거워 보일까?

그랬다.

하늘을 흔들고 땅을 놀랠 공격을 퍼부으면서도 두 사람은 즐거워 보였다.

심지어 둘 다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고 있기도 했다.

그 뒤로 긴 시간이 흘렀다.

두 사람은 지치지도 않는지 싸우고, 싸우고, 또 싸웠다.

멀더는 수백 가지의 마도술로 진유성을 공격했고, 진유성은 그 모든 것을 파훼했다.

또다시 긴 시간이 흘렀을 때.

거친 숨을 몰아쉬는 멀더의 안색은 파리했다.

신전에서 공급되던 막대한 마력은 고갈된 지 오래고, 스스로 품고 있는 마력도 바닥을 보였다.

더는 공격할 방법이 없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진유성이 검을 어깨에 얹고는 건들거리며 다가왔다.

“어때? 못 이기겠지?”

“못 이기겠군요.”

“어쭈? 갑자기 존댓말?”

“그대가 정녕 나의 주군이었던 듯하니.”

멀더와 진유성은 아무런 말도 없이 아주 오랫동안 서로를 쳐다보았다.

진유성이 물었다.

“약속이 뭐였는지 안 물어보냐?”

“이미 알아차렸습니다.”

“그래?”

“내가 그대를 섬겼고, 그대가 궁극에 다다랐다면 그런 말을 했을 테니.”

이번엔 멀더가 물었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에서 싸웠습니까?”

“그래. 마도사들은 나를 분노하게 했겠지만, 나는 몹시 즐거웠다.”

진유성과 멀더가 다시 한번 서로를 쳐다보고 웃었다.

이윽고.

푸욱!

진유성의 검이 멀더의 심장을 관통했다.

멀더는 아프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 같았다.

희미하게 웃던 멀더가 뭐라고 말을 했지만, 보호막 안에 있던 각성자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멀더는 사라졌다.

시체도 남기지 않은 채.

웃고 있던 진유성의 입매가 일그러지는 순간.

[게이트 내의 보스 몬스터가 제거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게이트 클리어에 성공하셨습니다.]

그렇게 멀더가 사라지자, 환한 빛이 각성자들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게이트가 클리어된 것이었다.

어느새 다가온 진유성이 각성자들에게 말했다.

“나는 바로 한국으로 간다.”

“……괜찮으십니까?”

이제는 각성자들도 알고 있었다.

멀더가 누구인지.

아무래도 진유성에게 들었던 이야기 속에 짤막하게 등장했던 이 같았다.

“서역에서 온 주접 떠는 마도사 놈한테 언어를 습득하는 마도술을 배웠었거든.”

진유성은 괜찮냐는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검을 휘둘렀다.

쿠쿠쿠쿠쿵!

진유성의 검이 게이트 내의 모든 것을 할퀴기 시작했다.

열대 우림이 부서지고, 화산 지대가 산산조각 난다.

검을 휘두르는 진유성은 분노한 표정도, 슬픈 표정도 아니었다.

그러나 각성자들은 그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공간을 부수는 진유성의 일검이 모든 것을 헤집는 사이.

각성자들은 어느새 게이트 밖에 나와 있었다.

게이트가 끝이 났다.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베를린의 S급 게이트가 클리어된 것이었다.

그러나 문수혁은 옆에서 들리는 동료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클리어야…….”

진유성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완전히 공감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사악한 이들로부터 기인한 게이트란 세상에서 없어져야할 존재라는 걸.

* * *

“교주님! 교주님!”

멀더가 진유성에게 후다닥 달려오자, 진유성이 심드렁하게 손을 들었다.

“왔냐, 첩자.”

“첩자 아니라니까요!”

“주청이가 네 뒤를 낱낱이 캐고 있으니까 조심해라.”

멀더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손을 펼쳤다.

“제가 드디어 중원의 무공과 접목시킨 궁극의 마도술을 만들어 냈습니다.”

“뭔데? 해 봐.”

멀더가 두근거리는 표정으로 정신을 집중하더니 진녹색의 장검을 만들어 냈다.

진유성이 보기에 꽤 재미있는 술법이었다.

서역의 마도사들이 쓰는 룬어를 기반으로 오행의 묘리가 담겨 있다.

하지만…….

파삭!

멀더가 만든 마도검은 진유성이 휘두른 검에 부서졌다.

“궁극의 마도술이라며?”

“…….”

충격받은 표정을 짓던 멀더가 소리를 질렀다.

“아니, 솔직히 이건 그냥 힘의 총량에서 밀린 거 아닙니까!”

“뭐?”

“저한테 교주님이랑 같은 마력의 총량이 있다면, 제가 이길걸요?”

“진짜? 입멸공 맛 좀 볼래?”

“인과율을 다루는 힘은 쓰지 않는다는 가정으로!”

“그럼 나중에 다시 와. 나만큼 내공을 쌓은 다음에 한 판 뜨자.”

“얼마든지요!”

그 순간, 진유성이 뒤를 돌아보았다.

“봤지, 주청아?”

멀더가 느끼지 못했던 공간 틈새에 은신해 있던 신주청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멀더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교주 시해를 준비하는 불순분자다. 감옥에 가둬.”

진유성의 말에 신주청이 멀더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교주님! 교주님!”

어느 봄날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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