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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17화 (217/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17화>

* * *

진유성은 게이트에 들어가거나 나올 때마다 희미한 저항감을 느꼈다.

게이트 내부와 외부가 공간을 구성하는 기운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이는 물속으로 다이빙을 할 때 느끼는 저항감과 비슷했다.

하지만 이러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진유성뿐이었다.

다른 각성자들은 저항감을 느낄 새도 없이 오감이 흐트러져서 정신이 없다고 했다.

물론 진유성도 기감이 흐려지긴 한다.

하지만 흐려지는 것은 외부를 관측하는 능력뿐이고, 신체의 통제권을 잃진 않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 열린 S급 게이트에 들어가는 순간, 진유성은 희미한 저항감을 느꼈다.

늘 느끼는 감각이었다.

이 저항감이 끝나면 기감이 돌아오고, 게이트 내부의 풍경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한데…….

뭔가 이상했다.

찰나의 시간을 다시 찰나로 쪼갠 것 같은 극소한 순간.

진유성은 희미한 저항감 뒤로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누군가 자신을 끌어당기는 것 같기도 하고, 밀어내는 것 같기도 하다.

지독한 무기력함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고, 활시위를 잔뜩 당긴 수백의 궁귀(弓鬼)앞에 서있는 긴장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상반되고 모순된 감정이 휘몰아친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익숙한 감각이기도 했다.

그 순간, 진유성은 깨달았다.

이 감각이 무엇인지.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임에도 왜 익숙했는지.

‘이건…….’

인과율을 다루는 힘.

입멸공이다.

진유성이란 존재를 둘러싼 인과율이 요동치고 있었다.

진유성에겐 입멸공이란 아주 익숙한 것이었다.

온 세상에서 진유성만이 익힌 독문무공이자, 가장 열심히 갈고 닦은 무공이니까.

하지만 이 말을 반대로 하자면, 진유성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자신을 향해’ 시전되는 입멸공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세상에서 진유성만이 익히고 있는 무공이니까.

다른 사람들은 따라하는 흉내조차 내지 못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것이었다.

입멸공의 느낌은 너무나 익숙하지만, 자신을 향해 시전되는 것은 처음이니까.

진유성을 향해 시전된 것은 입멸공 최종오의 중 하나인 멸(滅)이었다.

존재했었다는 인과 자체를 베어 내는 것.

아마 상실의 공간에서 적용되는 상실은 최종오의 멸과 비슷한 개념일 것이었다.

생각은 길었고, 시간은 짧았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긴 생각보다 빠르고, 짧은 시간보다 격렬하다.

진유성은 순식간에 마음을 먹었다.

마음을 먹는 순간, 진유성의 오른손에서 푸른색 심검이 치솟아 올랐다.

그와 동시에 진유성은 가짜 입멸검을 꺼냈다.

진유성이 장난삼아 짭멸검이라고 부르는 물건.

진유성이 심검을 뽑아낸 것은 오른손이고, 입멸검을 꺼내든 것도 오른손이었다.

즉, 하나의 손에 두 개의 검이 들려 있다는 것.

하지만 이것이 두 자루의 검을 억지로 움켜쥐고 있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드드드드드-!

심검과 입멸검이 합치된다.

어마어마한 반발력이 일어나며 공기가 진동했지만, 진유성은 능숙하게 반동을 억눌렀다.

이윽고 반동이 잠잠해졌을 때.

검을 휘둘렀다.

----!

소리는 나지 않았다.

일검에 진유성 주변의 대기를 구성하던 산소, 질소, 아르곤, 이산화탄소 등등이 순식간에 밀려났기 때문이었다.

진공의 상태에서는 소리가 전달되지 않는 법이다.

밀려난 것은 공기뿐만이 아니었다.

게이트 내부에 존재하는 마력도 순식간에 밀려났다.

공기도, 마력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에 가까운 공간.

하지만 이것을 무(無)라고 부를 수 없는 것은, 그 안을 진유성의 의지가 가득 채웠기 때문이었다.

공간을 가르며 진유성의 일검이 단호한 선을 그었다.

입멸공, 최종오의.

진유성이 선택한 최종오의는 생, 사, 입, 멸 중 하나인.

프스스스스스-

입(入)이었다.

두 개의 입멸공이 부딪치는 순간.

두 힘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멸’의 인과율과 ‘입’의 인과율이 충돌하며 상쇄된 것이었다.

진유성이 검을 내렸다.

의지가 사라지자, 밀려났던 마력과 대기가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님!”

뒤늦게 공기를 타고 각성자들의 목소리가 전달된다.

각성자들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에 당황한 상태였다.

“무슨 일입니까?”

진유성은 문수혁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해남에서 만났던 타트바의 말을 떠올렸다.

[마도사들이 당신이 남긴 힘을 품어도 이길 수 있습니까?]

“뭔 소리야?”

[저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나, 당신은 상실의 공간에서 힘의 9할을 놓고 온 것 같군요.]

“어, 맞아.”

[중원에 남은 힘을 마도사들이 품는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입멸검의 복제품을 볼 때부터 어느 정도 추측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제 확실해졌다.

마도사들은 중원을 방문했고, 자신이 남긴 무(武)의 9할을 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건, 어떻게 똑같은 입멸공이냐는 것이었다.

진유성은 아주 오랫동안 입멸공을 갈고닦았다.

갈고닦았다는 게 중요하다.

100여 년 전 진유성이 얻었던 입멸공과 지금 진유성이 사용하는 입멸공은 분명 다르다.

입멸공은 초식(招式)과 식의(式意)가 존재하는 무공이 아니다.

무공의 형태로 사용하고 있으나, 엄밀히 따지면 무공이라기보다는 진유성이란 사람의 삶과 의지를 한계까지 집약한 힘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그러니 제3자가 입멸공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은 진유성의 것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삶과 의지는 전부 다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조금 전의 입멸공에서 자신의 것과 같은 냄새를 맡았다.

조금 더 패도적이고, 조금 더 무자비하지만.

진유성을 향해 날아온 입멸공은 분명 스스로의 것이었다.

“네가 서울역의 왕후인가?”

“뭐?”

“찌꺼기인 줄 알았는데……. 상실의 공간을 넘은 본체였군?”

로스차일드와 함께 있었던 신주청은 이런 말을 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었다.

왜 굳이 서울역의 왕후라는 지역 명사와 함께 부르는지.

이러한 표현은 보통의 경우 서로를 구분 짓기 위함이다.

한국의 대통령, 미국의 대통령처럼.

그렇다는 건 서울역의 왕후가 아닌, OOO의 왕후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신주청은 본체라는 단어를 썼었다.

진유성은 그 누구와도 비교하기 힘든 뛰어난 두뇌를 가졌다.

오랜 천마신교주의 생활로 인해 생각하는 걸 귀찮아하긴 하지만, 한 번 답을 추론할 때는 세상 누구보다도 빠르고 정확하다.

그런 진유성이기 때문에, 그는 한 가지 결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 개의 입멸공, 지역 명사, 찌꺼기, 본체.

그리고…….

프라하의 올드 캐슬에서 처음으로 만났던 록펠러의 말.

[네놈! 중원의 절대자구나!]

“중원의 절대자?”

[날 기억하지 못하나?]

“너랑 나랑 만난 적이 있냐?”

아무래도 록펠러가 만났던 중원의 절대자는 자신이 맞는 듯했다.

정확히는 중원에 남은 또 다른 자신.

그가 상실의 공간에서 잃어버린 무의 9할을 품은 진유성.

그놈이 마도사와 손을 잡은 것이었다.

“짭유성, 이 새끼…….”

“네?”

문수혁의 반문에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어, 아냐.”

“무슨 일이 있던 겁니까? 설마 게이트를 넘자마자 공격이 있었던 겁니까?”

각성자들은 게이트를 오갈 때 발생하는 오감의 혼란을 회복하자마자 깜짝 놀랐다.

진유성이 뭔가를 향해 이해하기 힘든 힘을 뿜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뿜어내던 힘은 불가해의 것이었다.

그들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간 우산도 멤버들은 진유성의 강함을 수없이 목도했지만, 그것은 인간의 영역에서의 강함이었다.

하지만 방금 목격했던 것만은 도저히 아니다.

어찌하여 황제라 불리는 아놀드 벡이 이 가벼운 남자를 신처럼 대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문수혁이 모르는 것도 있었다.

문수혁과 우산도 멤버들이 지켜본 것은 진유성의 힘이 아니라, 힘의 찌꺼기였다.

진유성은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우산도 멤버들을 피해서 힘을 뿜었다.

“아무래도 게이트를 만든 게 나 때문인 거 같아서.”

“네?”

“한데, 공격이 너무 가볍네.”

부지불식간에 날아오는 입멸공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면, 그는 죽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상대가 자신과 똑같은 존재라면, 이 정도 공격으로는 자신을 죽일 수 없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었다.

진유성이 심유한 시선을 들어 게이트 내부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투성이다.

하지만 그 중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중원의 자신이 왜 마도사와 손을 잡았냐는 것이었다.

진유성이 품은 자긍심은 마도사 따위와 손을 잡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마도사가 제 아무리 강대한 힘을 품고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이다.

마도사가 품고 있는 의지가 악한 순간, 진유성이란 존재와는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유는 ‘--’일 것이었다.

자신은 9할을 지켰고, 짭유성은 9할을 잃어버린 ‘--’.

진유성이란 존재에게 가장 소중한 무언가.

진유성은 ‘--’이 무언지 알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늦게 다가온 차정명이 입을 열었다.

“교주님.”

“왜?”

“주변 좀 보세요.”

“진작 봤지.”

“여기, 독도 게이트랑 똑같지 않습니까?”

쩍쩍 갈라진 암석 사이로 마그마가 흐르고, 연기가 피어올라 각성자들의 시야를 가린다.

용암과 불꽃의 열기가 각성자들의 살갗을 후끈거리게 만든다.

불길한 붉은 빛이 세상을 가득 채운 화산 지대.

차정명의 말처럼 주변 풍경이 독도의 S급 게이트와 완전히 똑같았다.

그때, 허공에 관리자가 나타났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저는 이번 미션을 진행할 관리자 ‘S-3S’입니다.]

[우선, 게이트 인원에 선별되심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현재 인원은 101명입니다.]

각성자들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우산도 멤버들 99명에 진유성을 더하면 100명뿐인데, 101명이라니?

그러자 관리자가 또 다른 심상을 전했다.

[현재 인원은 99명입니다.]

[현재 인원은 101명입니다.]

[현재 인원은 99명입니다.]

[현재 인원은 101명입니다.]

관리자가 전달하는 심상이 99명과 101명을 오가기 시작했다.

관리자가 오류를 일으키는 모습에 우산도 멤버들이 깜짝 놀랐지만, 진유성은 어느 정도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입멸공 때문이다.

짭유성이 최종오의 멸을 사용했고, 자신은 최종오의 입을 사용했다.

인과율이 엉킨 탓이었다.

[현재 인원은 100명입니다.]

계속 오류를 일으키던 관리자가 한참 뒤, 제대로 된 심상을 보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힘을 합쳐 24시간 안에 보스를 클리어해야 합니다.]

[보스의 신전은 화산 지대와 열대 우림을 통과하면 나오는 신성의 정원에 있습니다.]

[선별 인원의 안전 지대는 30분 뒤 해제됩니다.]

[레벨업과 스탯 분배를 통해 생존에 필요한 조건을 충족할 수 있습니다.]

[부디 생존하시길 빕니다.]

* * *

쿨럭, 하는 기침 소리와 함께 어좌(御座) 위로 붉은 피가 튀었다.

온통 무채색인 천신궁의 어좌 위로 쏟아진 붉은 피는 묘한 색감이었다.

꽤 많은 피를 토해낸 천신궁의 진유성이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옆에 서 있던 마도사들의 첫째가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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