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16화>
* * *
우산도로 인해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우산도 멤버 99명중 70명이 S급 판정을, 22명이 AAA급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AAA급 22명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대단한 건 S급의 70명이었다.
한국보다 몇 배는 많은 인구를 가진 미국의 S급 각성자 보유량이 107명이다.
한국은 우산도 70명에 기존의 S급을 27명을 합치면 97명.
인구와 땅덩어리의 차이가 어마어마한데, S급 각성자의 숫자가 엇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물론 미국과 비교해 아직 우위에 선 건 아니다.
하지만 미국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각성 강국이었고, 미국과 비슷하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본래 이쯤 되면 국민들 중 우산도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는 이들이 출현할 법하다.
그들이 가진 건 일개 팀이 가졌다고 보기엔 너무나 강대한 무력이다.
당장 정부를 전복시키고, 우산도란 나라를 세울 수도 있다.
실제로 이런 위험론을 입에 담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우산도는 팀의 이름 자체가 꽤 큰 신뢰를 준다.
우산도(于山島).
독도를 수호한 99명의 영웅들.
오랜 시간이 흘러 이들의 업적이 희미해진 시점이라면 모를까, 독도 게이트가 클리어된 지 아직 100일밖에 지나지 않았다.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아직 고마움이 남아 있었다.
그렇게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들은 우산도의 약진에 순수하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하지만 우산도의 약진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팀 우산도의 총원은 99명입니다. AAA급 22명, S급 70명이라면 나머지 7명의 등급은 어떻게 되죠?”
실시간 속보로 우산도의 단체 승급 소식을 다루는 앵커의 질문에 준비된 답처럼.
정말 중요한 건 나머지 7명의 각성 등급이었다.
7명 중 5명은 SS급 판정을 받았다.
개중에는 진유성이 독도 게이트에서 ‘지닌 바 재능이 문수혁과 차정명 못지않다’라고 평가했던 김우영과 동료에게 배신당한 트라우마가 있던 스킬술사 이종학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로써 전 세계의 40명뿐인 SS급 각성자 중 5명이 한국의 각성자인 셈이었다.
그리고 남은 두 명.
문수혁과 차정명.
이들은 진유성의 말처럼 SSS급이 되었다.
사실 앞선 모든 소식을 뒤엎는 게 문수혁과 차정명의 승급 소식이었다.
SS급이 된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SSS급에 도달했다.
SSS급은 SS급과 완전히 다르다.
SSS급은 인류 역사상 3명밖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도달하는 순간 인간을 초월했다고 일컬어지는 경지이다.
지금껏 등장한 SSS급 각성자의 위상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놀드 벡은 전 세계의 각성자와 SG를 대표하며 인류의 황제라고 불린다.
지금은 죽은 엔리케 카를로는 수사적인 의미가 아닌 멕시코 황제였다.
월성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진 않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다.
중국의 국가 주석조차 월성과 그의 세력을 두려워한다는 것.
월성이 정치에 별 관심이 없어서 그렇지,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중국을 고스란히 삼킬 수 있었다.
이런 위상을 지닌 게 SSS급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각성자가 두 명이나 탄생한 것이었다.
동시에, 같은 국가에서.
“저희는 이제 막 SSS급의 경지에 올랐습니다. 수년간 정상을 지켰던 아놀드 벡과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승급 심사를 끝낸 문수혁과 차정명은 말은 사실이었다.
실제로 둘은 아놀드 벡과 비교하면 아직 많이 부족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구체적인 무력 수치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두 명의 새로운 SSS급이 탄생했음에 기뻐하거나 질투할 뿐이었다.
또한 대체 우산도 전원이 각성 등급을 올렸는지 궁금해할 뿐이었고.
하지만…….
“축하한다, 교도들아.”
세상 사람들의 경외를 받기 시작한 두 사람은 자신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주는 진유성을 보며 온도 차이를 느끼고 있었다.
아마 문수혁과 차정명이 죽는 순간까지 자만하거나 우쭐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진유성 때문에.
* * *
금요일에 학교가 끝나자마자 진유성은 멕시코로 이동했다.
거기서 아놀드 벡이 준비해 준 비행기를 타고 독일에 도착하니, 현지 시간으로 토요일 새벽 1시였다.
한국이 독일보다 7시간이 빠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진유성이 도착한 도시는 베를린이 아니었다.
현재 베를린 공항은 이용이 불가한 상태라서 진유성이 도착한 곳은 하노버였다.
베를린으로 들어가는 교통편은 모든 게 중단된 상태였기 때문에 진유성은 경공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노버와 베를린 간의 직선거리는 300km 정도.
보통 사람들은 뛰어서 갈 수 없는 거리지만, 진유성에게는 아니었다.
모든 곳이 밝은 한국과 달리, 독일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이동하는 게 수월했다.
그 결과, 진유성은 채 1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베를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베를린은 프라하와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른 느낌을 주는 도시였다.
프라하가 여행자들을 위한 도시 같았다면, 베를린은 독일인들이 살아가는 도시 같았다.
‘프라하와 서울을 섞은 것 같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었으나, 진유성은 자신의 표현이 꽤 적절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현재는 베를린이 텅 비어 있었다.
게이트 오픈이 10시간 밖에 남지 않은 지금, 베를린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독일은 베를린 S급 게이트가 클리어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그렇다고 시민을 대피시키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새벽 2시에 텅 빈 베를린은 꼭 좀비 영화에 나오는 도시 같았다.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인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베를린 밤거리를 지났다.
그의 목적지는 우산도 멤버들이 사용하고 있는 호텔.
하노버에서 이틀간 묶으며 시차에 적응한 우산도 멤버들은 진유성보다 빠르게 베를린에 들어온 상태였다.
당연하지만, 호텔에 직원은 없었다.
직원도 없고, CCTV도 없고, 음성 녹음기기도 없다.
이 모든 것이 우산도가 베를린 게이트 클리어를 약속하며 요구한 것들이었고, 독일은 그 어떤 불만도 품지 않고 요구 사항을 이행했다.
한지후 소장의 말에 따르면, 독일도 ‘언노운 엠페러’를 예상하고 있는 듯했다.
대중들은 모르지만, SG의 비공식 정보를 구할 수 있는 고위층은 언노운 엠페러를 알고 있다.
다만 언노운 엠페러가 한국의 비밀 병기라고 오해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든 독일은 언노운 엠페러의 존재 때문에 한국이 철저한 극비를 요구하는 것을 납득하고 있었다.
진유성은 이 같은 배경 아래 별다른 문제없이 호텔에 입성했다.
기감을 확장시켜 봤지만 그 어떤 녹화, 녹음 장비도 작동 중인 게 없었다.
진유성이 호텔로 들어가자, 호텔 로비에서 서성거리던 몇 명의 각성자들이 그를 반겼다.
개중에는 문수혁과 차정명도 있었다.
“오셨습니까?”
“그래. 축하한다, 교도들아.”
문수혁과 차정명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어 준 진유성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왜 안 자고 이러고 있냐?”
예고된 독일 게이트의 오픈 시간은 오전 12시.
게이트 진입까지 10시간도 남지 않은 상태니, 다들 컨디션을 조절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기감을 확장해보면 잠들어 있는 이들보다, 깨어 있는 이들이 많았다.
“긴장해서 그런지, 잠이 잘 안 오네요.”
“긴장된다고? 뭐가?”
“안 될 리가 없죠. S급 게이트에 들어가는 건데.”
우산도 멤버들은 게이트를 클리어하지 못할까 봐 긴장하는 게 아니었다.
진유성이 있는 이상 클리어는 무조건 가능하다.
그들의 걱정은 동료들의 부상이나 죽음이었다.
아직도 독도 S급 게이트의 풍경이 선하다.
진유성이 지켜주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은 거기서 몇 명쯤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순간,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너희는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는데?”
“그냥 등급만 높아진 거 아닙니까? 언젠간 각성 등급과 강함은 별 연관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차정명의 말처럼 진유성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각성 등급이 올라간다고 그만큼 강해지는 게 아니라고.
사실 우산도 멤버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승급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편법이었다.
각성 승급은 다각도로 심사되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마력의 농도’와 ‘마력의 구속력’이다.
중원의 말로 바꿔보자면 이는 내공의 정순함과 진기 수발 능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우산도 멤버들은 상림과 진유성에게 기운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당연히 내공의 정순함과 진기 수발 능력이 향상될 수밖에 없었고, 이것이 각성자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계에 반영된 것이었다.
“그건 맞는 말인데, 너희가 강해진 건 등급이랑은 무관해.”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그러니까, 아, 설명하기 귀찮은데.”
잠깐 고민하던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내일 들어가 봐. 그럼 알게 될 거니까.”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로비에 있던 각성자의 주머니를 뒤져서 독일 지폐를 꺼냈다.
그리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먹었다.
난데없이 삥을 뜯긴 각성자가 투덜거렸다.
“볼, 교주님.”
“볼 교주?”
“잠깐 말이 헛 나왔습니다. 아무튼 교주님. 이거 갈취 아닙니까?”
“천마신교 교리에 따르면 전혀 아니다.”
“네? 교리가 뭔데요?”
“교주가 목이 마르면 마실 걸 대령한다.”
“……그런 게 있을 리가요.”
“있어, 인마. 네가 교리에 대해서 나보다 잘 알아?”
진유성이 억지를 부린다고 생각한 각성자가 입을 삐죽거렸지만, 놀랍게도 실제로 존재하는 교리였다.
정확한 문장은 이것이었다.
천신이 허기져 거동하지 못한다면 살을 떼어 바칠 것이고, 천신이 갈증이나 입을 열지 못한다면 피를 모아 바칠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살과 피는 실제적인 단어라기보다는 비유였다.
그러나 배가 고프면 밥을 사 줘야 하고, 목이 마르면 음료수를 사 줘야 하는 건 사실이었다.
차정명과 문수혁은 진유성이 각성자들을 갈구는 걸 보면서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해짐을 느꼈다.
진유성의 태평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긴장하고 있던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졌다.
그리곤 괜히 졸리기 시작했다.
“들어가서 자야겠다.”
“나도.”
그렇게 문수혁과 차정명이 사라지자, 각성자들도 하나둘씩 로비를 떠나기 시작했다.
잠시 뒤, 로비에 홀로 남은 진유성은 보던 유튜브를 중지하고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S급 게이트라.’
진유성에겐 게이트의 등급이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S급 게이트나 F급 게이트나 비슷하다.
복싱 세계 챔피언이 초등학생이랑 싸우는 것과 고등학생과 싸우는 게 별반 차이 없듯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S급 게이트는 F급 게이트와 비교하자면 막대한 에너지를 품고 있다.
그래서 진유성은 궁금했다.
독도의 S급 게이트는 세쌍둥이 마도사들의 셋째가 만든 함정이었다.
그렇다면 베를린의 S급 게이트는 무엇일까?
게이트 시스템이 만들어 낸 우연의 산물일까?
첫째, 혹은 둘째의 초대일까?
겪어보기 전에 답을 알 수 있는 질문은 아니었다.
진유성은 상념을 털어냈다.
‘뭐, 상관없지.’
이제 진유성은 알고 있었다.
록펠러와 싸울 때는 그의 심검이 온전치 않았다는 것을.
생의 의지가 희미했던 이에게 제대로 된 심검이 발현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진유성은 한국에 온 이후 가슴 깊이 살고 싶어졌고…….
심검은 완벽해졌다.
그래, 그는 이제 살고 싶었다.
길고 길었던 중원에서의 삶 이후로 그 어떤 때보다 충실한 삶을.
그러니 마도사들이 나타나 준다면 오히려 반가울 것 같다.
그 순간, 진유성의 핸드폰에 인스타그램 알림이 떴다.
알림을 클릭한 그가 피식 웃고는 댓글을 달았다.
[외부에 공개하기에는 지나치게 박색한 사진이구나.]
* * *
잠에서 깬 우산도 멤버들과 진유성은 독일 정부가 호텔에 비치해 놓은 최고급 한식으로 아침을 때웠다.
그 뒤로는 한가롭게 커피를 마시며 텅 빈 베를린을 구경했다.
진중한 기색을 보이는 이들은 있었지만, 크게 긴장하는 이들은 없었다.
11시 반이 됐을 때.
그들은 게이트가 예정된 독일의 명물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 있었다.
12시가 됐을 때.
우산도의 아흔아홉 각성자들은 독일 수도의 명운을 건 게이트 안에 있었다.
진유성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