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1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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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선전 방식은 언제나 대중들에게 잘 먹히는 콘텐츠다.
물론 과한 연출이 티가 나면 국뽕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설령 비난을 받더라도 그것 나름대로 쓸모가 있다.
이번 베를린 게이트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베를린 S급 게이트 사태에는 연출이 없긴 하다.
독일에 S급 게이트가 탄생했고, 한국에 지원 요청을 보냈고, 우산도가 출동한다.
이 모든 것이 팩트였다.
당연히 국민들이 느끼는 자부심도 조작된 것이 아니었다.
이제 한국의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지극히 안전하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팀 우산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S급을 두려워하지 않는 각성자들이다.
한국에는 이제 S급 게이트가 열려도 안전하다.
독도에서도 한 번 증명했듯이.
모두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현 정부를 비판할 수밖에 없는 야당에서는 ‘한국의 고위 각성자들이 빠져나갔을 때, 위험한 게이트가 발생할 수 있다.’는 위기론을 쏟아냈지만…….
[독일 정부, 한국에 하이랭커와 랭커로 섞인 고위 각성자 200명 파견 확정.]
[팀 우산도의 공백, 독일 각성자들이 채운다.]
[연일 뜨거워지는 한-독 관계. 사상 초유의 우호 협정으로 이어지나?]
위기론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독일이 많은 수의 각성자 파견을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독일의 각성자들은 필요치 않았다.
한동안 한국에는 E급 이상의 게이트가 예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건 그저 정치적인 쇼였다.
[우산도, 99명으로 베를린 S급 게이트에 도전한다.]
[완벽한 팀워크를 위해 독일의 각성자와 협업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클리어할 예정.]
[독일 총리, 먼 나라에서 찾아올 영웅들을 간절히 기다린다.]
[독일, 99명의 각성자들에게 S급 게이트의 모든 부산물은 물론, 명예 시민권과 막대한 양의 마정석을 선물할 예정.]
[팀 우산도와 그들의 가족은 독일에 기간 제한 없는 무비자 입국 가능하며, 독일 국민과 동등한 취급.]
[독일 총리, 모든 한국인이 독일에 무비자 90일 입국 가능.]
[독일의 전 항공사, 향후 100년간 우산도에게 무료로 항공 서비스 제공.]
[독일의 전 맥주 회사, 향후 100년간 우산도에게 무료로 맥주 제공.]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이는 대부분이 우산도가 이룰 업적을 찬양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은 아주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
바로, 각성자들에게 ‘막대한 양의 마정석’을 선물한다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인 마정석의 양은 나와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정치적이다.
현재 KPM을 망하게 하려는 PPP가 동아시아 국가의 연합이라는 걸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다만 정확히 어떤 국가가 모였으며, 어떤 국가가 얼마를 배팅했는지를 모를 뿐이었다.
또한 증거가 없을 뿐이었다.
이때, 독일이 ‘막대한 양’이라는 애매한 수사로 KPM에 마정석을 제공할 것을 암시한 것이었다.
KPM에 마정석을 공급한다는 이야기는 없었지만, 한국의 각성자들에게 마정석을 선물하면 어디에 판매를 위탁할지는 정해진 것이니까.
PPP 입장에서는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차라리 10톤이면 10톤, 20톤이면 20톤을 밝히면 공격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막대한 양이라니.
짐작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독일이 막대하다고 표현할 정도면 정말 많을 수도 있다.
독일은 민간 보유 마정석 양의 전 세계 톱3에 꼽히는 국가였다.
이유는 간단했다.
자동차 제조국이라서.
벤츠, BMW, 폭스바겐, 포르쉐, 아우디 등등의 수많은 자동차 제조 회사는 현재도 하나의 연구 과제에 매진하고 있다.
마정석을 동력으로 하는 자동차의 품위를 고급유를 쓰는 브랜드 라인까지 끌어 올리는 것.
그러다보니 매년 엄청난 양의 마정석을 연구에 소비하고, 소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꾸준히 사들인다.
만약 독일 정부에서 나서서 자동차 회사의 예비 마정석을 싹 구매한다면?
그리고는 우산도에게 선물한다면? 아니면 KPM에게 싼 값에 판매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100톤도 가능할 것이었다.
PPP 입장에서는 일이 안 되도 이렇게 안 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필 독일에 S급 게이트가 열리고, 그걸 한국이 클리어하다니.
“……방법은 하나뿐이군요.”
“클리어가 실패해야 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비행기에 테러라도 하고 싶군요.”
물론 독일이 이 악물고 지키는 베를린 수호신들에게 테러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팀 우산도가 언제 한국을 떠나는지, 어떻게 독일로 이동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대한민국 정부도 모르는 극비다.
그러니, 유일한 방법은 그들이 믿는 신에게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제발 한국이 베를린 S급 게이트의 클리어에 실패해 달라고.
하지만 그들의 기도는 통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지만, 무수한 사람들에게 신이라 불려 온 이가 우산도와 함께하니까.
* * *
외부에서 관측하길, 베를린 S급 게이트는 보스 레이드 게이트였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각성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지금껏 모든 S급 게이트는 외부에서 관측하기에 보스 레이드 미션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한 우산도 멤버들은 보스가 없었다고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보스의 신전은 있었지만 신전에 들어가지도 않고 클리어가 됐다고 했다.
보스 몬스터라고 소개된 것은 신전을 지키고 있던 거대한 뱀, 아낙키나의 이무기.
게다가 본래 보스 레이드 미션은 보스 몬스터 단일 개체만 잡으면 클리어였다.
하지만 독도 S급 게이트에서는 무수히 많은 몬스터들이 달려들었다.
각성 학자들은 S급 게이트가 품고 있는 에너지가 워낙 거대해서 기존의 관측 기구로는 무조건 ‘보스 레이드’로 보일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일각에서는 본래 S급 게이트가 신전을 지키는 보스 몬스터와 그 부하들로 이루어졌다는 말을 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 모든 건 가설일 뿐이었다.
과학자들은 우산도 멤버들이 어서 빨리 베를린 게이트를 클리어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야 독도 게이트와 비교해 S급 게이트에 대한 비교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으니까.
사람들은 우산도가 클리어에 실패할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일단, 우산도가 너무나 자신만만했다.
인터뷰도 그렇고, 게이트를 준비하는 태도도 그렇고, 도무지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 같지 않았다.
물론 만용으로 보거나, 의심을 하는 이들도 있긴 했다.
무려 S급 게이트니까.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클리어 가능성을 높게 점치는 분위기였다.
일각에서는 한국 각성자들이 지금껏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말도 나오고 있었다.
또는 독도 S급 게이트에서 엄청난 기연을 얻었다는 소리도 있었고.
사실 그들이 믿고 있는 건 진유성이었지만,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독도 게이트에서 경험한 극한의 상황과 집중력.
진유성이 해 준 조언들.
그것을 듣고 절치부심한 시간들.
거기에 최근에는 진유성과 상림이 마력을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실력이 안 오를 수가 없었다.
독도 게이트를 클리어했던 100일 전쯤과 지금을 비교해 보면, 모든 각성자들의 등급이 한 단계 이상씩 올랐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러니 실력을 감추고 있었다는 말과 기연을 얻었다는 말도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뭐, 우리가 만난 기연은 볼드모트보다는 상림 형님이지?”
“그쵸. 사실 배우기는 상림 형님한테 다 배웠죠. 옆에서 갈구기나 하고.”
“그 형님은 안 오시나?”
“어차피 볼드모트가 오잖아.”
우산도 멤버들은 어느 순간부터 진유성을 볼드모트라고 불렀다.
외부에서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되니까 ‘그’라고 부르다가, 어느 순간 누군가 ‘이름 불러서는 안 될 자’라고 불렀다.
이게 결국은 볼드모트로 바뀌었고.
사실 진유성이 워낙 괴팍하고 마음대로 살기에 볼드모트라고 부르는 경향도 있었다.
“그나저나 신기하네. 볼드모트는 멕시코에서 온다고 했지?”
“네.”
진유성은 멕시코에서 엔리케 카를로를 죽이고, 그의 현물을 가져왔다.
그러면서도 중간에 가까운 게이트를 클리어 하기도 했다.
한국이야 정체불명의 각성자가 게이트를 클리어하면 난리가 나지만, 엔리케 카를로의 사망이 발표되고 혼란한 멕시코에서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은 멕시코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것이었다.
멕시코 국경 지대에서 진유성을 이동시켜 주는 것은 아놀드 벡이 맡기로 했고.
한동안 잡담을 떨던 이들이 시계를 힐끔 쳐다보았다.
쇼타임의 오픈 시간이 다가왔다.
밖에서 안을 쳐다볼 수 없도록 짙은 선팅이 쳐진 12인승의 벤, 10대에서 각성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난데없이 워싱턴 D.C의 거리로 99명의 동양인이 나타나자 시민들의 시선이 쏠렸다.
미국이야 동양인 이민자가 넘쳐나는 나라지만, 새까만 벤 10대에서 99명이 내린 것은 꼭 마피아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불안한 눈빛으로 힐끔힐끔 각성자를 쳐다보는 순간.
이슈에 민감한 사람인지, 사람을 알아보는 눈이 밝은 사람인지.
누군가 유튜브에서 본 각성자들의 얼굴을 알아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산도다!”
“한국의 어벤져스!”
베를린의 수호자, 한국의 어벤져스 등등의 호칭이 쏟아질 때쯤, 각성자들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실 이 모든 게 쇼였다.
그들을 알아본 미국인도 연기자였고, 호응한 이들도 연기자였다.
잠시 뒤에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하면 등장할 인물도 연기자였고, 그들을 찍을 카메라맨들도 대기된 상태였다.
베를린 S급 게이트가 3일밖에 남지 않은 지금, 사람들은 우산도가 독일에 있는 줄 알고 있었다.
미리 독일에 도착해 시차에 적응하고, 최고의 몸 상태를 만들어야 하니까.
그러나 그들은 베를린에서 비행기를 타고 10시간도 넘게 걸리는 워싱턴 D.C에 나타났다.
그리고 워싱턴 D.C에는 전 세계적으로 아주 중요한 장소가 있다.
SG 세계 본부.
일전에 문수혁과 차정명이 아놀드 벡에게 SS급으로의 승급 심사를 받은 그곳.
잠시 뒤, 마침 본부에 있던 아놀드 벡이 튀어나왔다.
또한 마침 아놀드 벡을 취재하던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특종을 향해 달려왔다.
마침 만나게 된 미국 대표 각성자와 한국을 대표하는 각성 집단이 악수를 나누었다.
짧은 인사 뒤.
유학파라 네이티브 수준으로 영어를 하는 차정명이 기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저희는 독도 S급 게이트에서 죽음의 위기에 당면했었습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초인적인 힘을 낸다죠? 저희도 그랬습니다.”
기자들이 차정명의 목소리에 한껏 집중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습니다. 아직 우리에겐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걸. 신의 가호로 살아남은 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차정명이 SG 세계본부를 가리켰다.
“그리고, 증명하고 싶습니다. 인류가 가진 가능성이 얼마나 거대한지,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는지.”
차정명이 선언했다.
“우산도의 각성자 전원, 승급 심사를 요청드립니다.”
짜여진 각본이었지만, 짜여지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깜짝 놀란 기자 중 한 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 말은 미스터 문과 미스터 차 역시 승급에 도전한다는 겁니까?”
문수혁과 차정명이 34번째와 35번째로 SS급의 고지에 올라선 것은 얼마 전의 일이다.
그들이 승급 심사를 한다면…….
SSS급이다.
엔리케 카를로가 사망하고 단 둘밖에 남지 않은 인외의 경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SG 세계본부는 S급 이상의 승급 심사를 받는 곳입니다.”
AAA급까지는 각국의 본부에서 승급 심사를 받는다.
S급부터 세계본부(UN본부)에서 승급 여부를 판단한다.
그 순간, 차정명이 고개를 저었다.
“전원이 S 이상 급은 아닙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다 함께 승급 심사를 받는다는 의미 때문에 동행한 이들도 있습니다.”
모두가 S급은 아니라는 소리에 각국의 기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차정명의 입에서 믿기 힘든 소리가 튀어나왔다.
“AAA급 승급 심사를 요청할 22명을 제외한 77명만이 S 이상 급입니다.”
베를린 게이트가 3일 남은 시점.
우산도 전원이 승급 심사를 요청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고…….
놀랍게도 전원이 승급하는 불가해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 말은 곧, 인류가 두 명의 SS급을 잃고, 새로이 두 명의 SSS급을 얻었다는 소리였다.
문수혁과 차정명이라는.
“……볼드모트 말이 진짜였네?”
“진짜 내가 S급이라고? 이렇게 쉽게?”
물론, 각성자들도 얼떨떨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등급이 오를 건 예상했지만 S급이라니.
심지어 A급이었던 이들이 단번에 S급으로 치솟은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이 마냥 밝지는 않았다.
“이러면 우리는 꼼짝 없이 천마신교도네……?”
“어우, 그 이름 입에 담지 마. 오그라들어.”
“전원이 승급하면 천마신교 교리를 따르기로 내기했잖아.”
“근데 천마신교 교리가 뭐야?”
“몰라. 막 매일 기도해야 하는 거 아니야?”
“나 법명도 있는 신실한 불교 신자인데…….”
“개인 종교의 자유는 있다더라.”
순진한 99명의 어린양이 사악한 교주의 손아귀에 놓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