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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14화 (214/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14화>

Quest 37. 화난 천마님

현재까지 인류 앞에 나타난 S급 게이트의 숫자는 7개였고, 그중 클리어에 실패해 폭주한 게이트는 6개였다.

즉, 지금까지 클리어에 성공한 S급 게이트가 독도 게이트뿐이란 소리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SG가 클리어에 도전한 S급 게이트가 독도뿐인 건 아니었다.

9년 전.

인류는 세 번째 S급 게이트였던 알프스 게이트에 도전한 적이 있었다.

AAA급 게이트를 클리어한 이후 각성 인류의 역량이 충분히 올라왔다는 자신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S급 게이트는 선별 인원의 구분 없이 주변의 모든 인원을 선별한다.

즉, 이론상으로는 천 명이고 만 명이고 게이트에 들어갈 수가 있다는 것이었다.

어쩌면 선별 인원수가 제한되는 A~AAA급의 게이트보다 클리어가 쉬울 수도 있었다.

이게 당시 각성 사회의 인식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알프스 S급 게이트에 참전했던 하이랭커 271명은 전원 사망했다.

대부분이 S급이었던 271명의 목숨이 남긴 거라고는 게이트 폭주의 폭발 반경을 줄였다는 성과뿐이었다.

본래는 사망자 명단에 아놀드 벡도 있어야 했다.

당시 막 S급의 고지에 올라섰던 아놀드 벡이 알프스 게이트에 지원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는 독감에 걸리는 바람에 게이트에 들어가지 못했고, 감기가 그의 목숨을 구한 셈이 되었다.

알프스의 게이트가 인류에게 가져다준 경험은 너무나 가혹했고, 교훈은 너무나도 뚜렷했다.

S급 게이트를 넘봐서는 안 된다.

인류에겐 그 정도 역량이 없다.

아마도, 영원히.

알프스의 충격이라고 불리는 일련의 사건 이후로 인류는 S급 게이트를 완전히 포기했다.

S급 게이트가 아르헨티나의 해안을 박살내고, 이집트의 사막 생태계를 바꾸고, 수만의 아프리카 난민들을 만들어 내도.

다행히 지금까지의 S급 게이트는 ‘충분히 포기할 만한 곳’에만 등장했으니까.

게다가 게이트 폭주는 폭발의 여파를 남기지도 않는다.

본래는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 반경뿐만 아니라, 주변도 영향을 끼쳐야 한다.

에너지파가 주변으로 뻗어 나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게이트 폭주는 다르다.

게이트 폭주는 정확히 폭주 반경에서만 폭발하고, 그 외의 지역에는 아무런 피해도 남기지 않는다.

때문에 S급 게이트가 폭주해 엄청난 폭발을 해도, 군부대가 나서서 시민들을 대피시키면 인명 피해 자체는 방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SG와 인류는 S급 게이트를 외면해 오고 있었다.

그때 독도 게이트가 생겨났다.

SG는 독도 게이트를 외면했고, 일본은 내부의 불만을 외부로 삼았다.

이러한 행위의 기저에는 ‘독도 S급 게이트는 방치된다.’라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

아니, 확신도 아니었다.

그냥 당연한 일이었다.

전 인류의 역량을 모았던 알프스 게이트가 가져다준 9년 전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니까.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국이 독도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해 낸 것이었다!

이것은 이론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각성자들의 개인 역량이 9년 전과 비교하면 상향되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9년 전 S급들의 전투능력이 현재의 AAA급과 비슷할 거라고는 하지만.

고작 99명이다.

271명과 비교하자면 숫자 차이가 너무 많이 났다.

게다가 단 한 명의 사망자도 없었다.

이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하나는 독도의 게이트가 S급이 아니었을 경우.

둘은 참여자가 99명이 아니었을 경우.

전자는 의심하기 힘들다.

독도의 게이트가 S급이라는 걸 가장 먼저 공표한 것은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일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후자를 의심했고, 한국도 어느 정도 인정했다.

SG의 공식 문건에는 존재하지 않는 ‘언노운 엠페러’의 존재를 비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었다.

사실 한국 정부조차 언노운 엠페러가 누군지 모르고 있었지만, 모른다는 걸 밝힐 필요는 없었다.

수도 베를린에 S급 게이트가 열린 독일이 한국에 간절한 지원을 부탁한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있었다.

한국은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해본 각성 국가이며, SSS급 이상으로 추측되는 언노운 엠페러를 보유하고 있으니까.

그러니 한국이 도와만 주면 우리가 모든 것을 양보하고, 모든 부탁을 들어주겠다.

이게 독일의 요구였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꽤 난감했다.

“거절해야 합니다. 언노운 엠페러 없이 각성자들만 보내서는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없습니다.”

“언노운 엠페러는 정녕 찾을 수 없는 겁니까?”

“국정원 라인을 총동원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각성자들이 정녕 그의 정체를 모르는 것 같습니까?”

“독도 게이트 클리어 이후 우산도의 모든 각성자들의 과거를 역학 조사를 했습니다. 우산도의 멤버들 중 그 누구도 언노운 엠페러로 추정되는 이와 만났던 적이 없습니다.”

“한지후 소장도?”

“물론입니다. 저희는 한지후 소장을 우산도 멤버로 보고 있습니다.”

“허어…….”

한국 정부는 끝까지 언노운 엠페러의 정체를 알아내지 못했다.

김정철 회장이 진유성의 흔적을 전부 세탁했기 때문이었다.

단서라도 있으면 모를까, 언노운 엠페러에 대한 아무 단서도 없다.

우산도 멤버들은 진유성이란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입에 담은 적이 없었다.

독도의 S급 게이트에서 목숨을 구원받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이런 이유로 정부는 언노운 엠페러를 찾지 못했고, 독일의 요청에 퍽 난감해하는 입장이었다.

공식적으로, 비공식적으로 계속 문의가 들어오고 있는데 답변이 궁했다.

“언노운 엠페러 없이 파견하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모두 사망합니다. 각성자들의 클리어 보고서에도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언노운 엠페러가 없었다면 그들은 모두 사망했을 거라고.”

“난감하군요.”

이제 와서 언노운 엠페러의 신원을 모른다고 말해 봤자, 믿지 않을 것이다.

핑계를 댄다고 생각하겠지.

그렇다고 계속 답변을 미룰 수도 없었다.

베를린의 게이트가 폭주하는 순간, 한국과 독일의 외교 관계는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또한 국제 정세에서도 불리하다.

사망자 한 명 없이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할 힘이 있는데, 타국의 위험은 외면했다는 도덕적 질타를 받을 수도 있고.

하지만 도덕적 질타를 피하기 위해서 각성자들을 전부 사지에 내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차라리 각성자들에게 결정권을 넘기는 건 어떻습니까?”

“어떻게요?”

“그들에게 사태를 설명하고 답변을 하라고 하는 겁니다. 저희는 그 답변을 발표만 하는 것이고.”

“흐음, 그들이 클리어에 도전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럴 리 없습니다. 독도는 한국의 영토였지만, 베를린은 아닙니다.”

“좋은 방안인 듯하나…… 각성자들 입장에서는 정부가 책임을 넘기는 형태로 보이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각성자들은 엄밀히 따지면 한국 소속이 아니라 SG 소속입니다. 원칙상 저희가 결정할 일은 아닙니다.”

정치인들이 한참 책임을 떠넘기는 방법에 대해 토론하고 있을 때였다.

SG 서울 지부의 한지후 소장이 장관급 회담을 요청한다는 핫라인이 들어왔다.

“마침 잘 됐네요. 한지후 소장은 우산도의 대변인이기도 하니.”

잠시 뒤, 회의실에 도착한 한지후 소장이 폭탄을 던졌다.

“베를린 게이트를 클리어하겠습니다. 우산도 전원이.”

“제정신입니까!”

“지금 각성자들을 전부 사지로 보내겠다는 겁니까?”

“우산도의 결정입니까? 한지후 소장의 결정입니까?”

예상했던 반응에 한지후 소장이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오해가 있으신 듯한데, 저는 전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전원.

몇몇 정치인들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한지후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노운 엠페러가 접촉해 왔습니다.”

“저, 정말이요?”

“사실입니다. 그는 베를린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싶어 하지만, 신분이 노출되는 걸 원하진 않습니다.”

“대체 왜 그렇게 신분 노출을 경계하는 겁니까?”

“정확히는 필요해지면 알아서 신분을 밝힐 테니, 그 전까지는 찾지 말랍니다. 찾을 시에는…….”

한지후 소장이 진유성의 말을 원문 그대로 전할까 말까를 고민하며 머뭇거렸다.

그러자 각성관리부 장관이 답답하다는 듯 재촉했다.

“찾을 시에는, 뭐요?”

“장관 이상 급 모든 관료들의 집을 알아내 대머리 고자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대, 대 뭐요?”

“대머리 고자…….”

“허, 참!”

상상도 못한 말에 침묵이 맴돌았다.

그때 한지후 소장이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덧붙였다.

“여성 장관님들도 예외는 없답니다. 다만 대통령은 일국의 얼굴이니 예외로 둔다고 합니다.”

“한 소장, 지금 장난치는 건 아니지요?”

“아닙니다. 저는 그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는 것뿐입니다.”

몇몇이 불편한 듯 헛기침을 터트렸지만, 한지후 소장은 내심 통쾌함을 느꼈다.

그는 정치인들의 습성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들은 결국 각성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을 것이다.

비난하고 싶진 않다.

공리주의적인 관점에서는 한국의 외교 평판이 바닥을 치는 것보다 각성자들이 욕을 먹는 것이 나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이들이 각성자들에게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을 거라는 점에 있었다.

희생양으로 낙점이 된 각성자들에게 진심으로 양해를 구하고, 도움을 부탁하는 과정을 생략한다.

그게 쉬우니까.

국가를 위한다는 대의명분 아래.

이미 많은 걸 희생하고 있는 각성자들에게 말이었다.

그래서 한지후 소장은 본래 각성자들에게 쏟아질 비난을 자신이 받아 낼 생각이었다.

한국의 각성자들은 독일에 가고 싶어 하지만, 자신이 말리는 형태로 외부에 공표하면서.

그때, 문수혁과 언노운 엠페러가 자신을 찾아왔다.

* * *

“베를린 게이트 속보 보고 찾아온 거죠? 근데 이 친구는?”

한지후 소장이 고개를 갸웃하며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꽤 잘생긴 얼굴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네가 한지후냐? 나에 대해 이상한 추측을 많이 했다고?”

다짜고짜 나온 반말에 당황한 한지후가 문수혁을 쳐다보자, 문수혁이 충격 발언을 했다.

“이분이 언노운 엠페러입니다. 참고로 보기보다 나이가 많으십니다.”

“그게 무슨……?”

문수혁의 말을 들어 보니, 언노운 엠페러가 우산도와 접촉한 지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고 했다.

문수혁은 사실을 숨긴 것을 미안해했지만, 한지후 소장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한지후 소장은 정치권에 적이 많은 만큼 많은 감시를 받고 있으니까.

“아이스크림 없느냐?”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본인의 집인 것처럼 냉장고를 뒤적거리던 언노운 엠페러가 한지후 소장에게 말했다.

“난 베를린에 갈 것이다. 우산도 애들 중 지원자도 함께 갈 생각이고.”

한지후 소장은 일단 호기심을 접었다.

언노운 엠페러에 대한 궁금증이 사무쳤지만, 지금 중요한 건 속보로 뜬 베를린 게이트였다.

자칫 잘못하면 현 사태의 희생양이 우산도 멤버들이 될 수도 있다.

호기심을 접은 한지후 소장이 현안에 집중해 입을 열었다.

“지원자라는 말은, 없어도 무방하다는 말입니까?”

“어. 솔직히 혼자 가는 게 편하지. 누구 안 죽게 봐주는 것도 힘드니까.”

“한데 왜……?”

“얘들도 경험치 좀 얻어야 하지 않냐? 나도 얼굴 좀 숨겨야 하고.”

우산도 멤버들 사이에 얼굴을 숨기고 가겠다는 것.

“원하는 바가 있습니까?”

“딱히? 아, 독일에서 마정석 좀 받아 보던가. KPM에 팔게. 판매 대금은 우산도 애들 나눠주고.”

“그런 거 말고, 본인을 위해 원하는 바는 없습니까?”

“없는데?”

“한데 왜 베를린의 게이트를 클리어하려고 합니까?”

한지후 소장의 물음에 언노운 엠페러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애들한테 듣자 하니, 너 기부 많이 한다며?”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기부는 왜 하냐?”

“조금이라도 세상이 나아지기를 원하니까요.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고요.”

“나도 마찬가지야.”

S급 게이트를 두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남자를 보며 한지후 소장이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이성은 멍청한 질문이라고 소리치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당신은 신입니까?”

* * *

잠시 언노운 엠페러와의 대화를 회상했던 한지후 소장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구체적인 요구 사항은 있었습니다.”

“그게 뭡니까?”

“군대를 빼 달랍니다.”

“네?”

“나중에 정체를 밝힐 때가 되면 면제 처리 좀 해 달라고…….”

“설마 미필입니까?”

“타국에서 군역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한국인 신분을 사용하고 있고.”

“그럼 외국인입니까?”

“태어나긴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대체 그 자의 인적 사항이 뭡니까!”

“각성관리부 장관님.”

“뭐요?”

“그는 홀로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라면 그런 각성자와 척을 지지 않겠습니다.”

“내가 언제 척을 진다고…….”

“언노운 엠페러가 장관님을 대머리 고자로 만들어도 원한을 품지 않을 자신이 있으십니까?”

“…….”

장관이 입을 다물었다.

문득 실감이 난 것이었다.

그들에게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존재에게 대적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인적 사항을 알고 있는 각성자는 제지할 수단이 많다.

가족을 이용할 수도 있고, 돈줄을 완전히 틀어막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노운 엠페러는 아니다.

그는 모든 것들의 위에 서 있다.

법도, 공권력도, 무력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언노운 엠페러가 선하기를 기대하는 것뿐이었다.

수십 년 동안 정치를 해 온 이들이 처음으로 느끼는 무력감이자 두려움이었다.

한지후 소장이 말했다.

“베를린 게이트. 우산도가 클리어하는 것으로 발표하겠습니다.”

30분 뒤, 전 세계에 우산도의 출사표가 던져졌다.

이는 우산도가 전 세계에 던지는 메시지와도 같았다.

우리는 더 이상 S급 게이트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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