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13화>
* * *
JC 편의점이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했고, 편의점 업계로의 진출을 결정한 JC 그룹에서 유통 라인도 만들었다.
상림의 입장에서는 유통 라인이 만들어진 게 너무나 기뻤다.
그동안 편의점 물건을 채워 넣는 것은 전적으로 자신의 노동이었다.
새벽마다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쓸어 와 편의점 진열대에 올려야 했으니까.
사실 지금까지의 JC 편의점은 물건을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는 형태였다.
물건을 도매가로 공급을 받는 게 아니라, 직접 사 와서 사 온 가격보다 싸게 팔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JC 그룹에서 유통망을 만든 이후로는 그래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다른 편의점에 비교하면 절반 이상은 싸다.
‘뭐, 인건비를 생각하면 손해지만.’
상림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마트에서 쓸어 온 물건들을 진열대 위에 올리기 시작했다.
파바바박!
상림이 우유를 던지자, 우유가 허공을 날며 진열대 위로 안착했다.
상림도 갑자 단위의 내공을 지니고 있는 무공의 고수.
진유성처럼 허공섭물이나 이기어검을 응용할 수는 없지만, 손으로 직접 상품을 던지는 건 가능하다.
그때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진유성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똑바로 집중 안 해? 다 똑같은 방향으로 진열해야 할 거 아니야.”
“……그럼 좀 도와주시던가요.”
“지금 본 교주에게 역심을 품은 것이냐?”
“아니, 역심은 아니고…….”
“내가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너의 수련을 위해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진유성의 말에 상림이 속으로 투덜거렸다.
카운터에 앉은 채로 유투브를 보면서 입만 나불대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얄밉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모든 상품의 진열이 끝이 났다.
오늘이 마지막 노동이었다.
내일부터는 JC 편의점 브랜드 본사에서 탑차를 보내줄 거고, 아르바이트생이 진열을 할 것이었다.
또한 지금은 JC 편의점이 24시간이 아닌데, 내일부터는 야간 알바생이 출근해 24시간으로 전환될 것이었다.
즉, 이제는 더 이상 상림이 편의점에 손을 댈 일이 없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일을 벌려 놓은 건 진유성인데, 귀찮고 복잡한 일은 전부 상림이 했으니까.
“다 했냐?”
“다 했습니다.”
“가자.”
“근데 교주님, 대체 편의점주가 무슨 짓을 했길래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상림도 편의점주가 진유성에게 시비를 걸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걸 상림의 소행이 아니냐고 진유성이 의심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진유성이 이렇게까지 행동할 리는 없었다.
진유성은 의외로 공명정대한 부분이 있다.
단순한 시비에 대한 복수라면 회음혈을 점혈하는 정도로 일이 끝나야 맞다.
하지만 지금의 진유성은 아예 김정권을 박살 내려고 하고 있다.
진유성이 장난처럼 일을 시작해서 그렇지, JC 편의점은 김정권에게 엄청난 위협이다.
김정권은 얼마 전에 임대차 재계약을 했으니, 재계약 기간 동안은 무조건 월세를 내야 한다.
매출이 없고, 수익이 없더라도 월세를 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여기서 도망치는 방법은 임대차 계약을 이어 받을 새로운 임대인을 구하는 건데…….
‘이 자리에는 편의점 말고는 딱히 들어올 게 없는데.’
편의점 이외의 업종으로 들어올 임대인을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었다.
아마 1년은 걸리지 않을까?
김정권은 그동안 압구정 역세권의 1층 상가라는 입지 조건에 맞는 어마어마한 월세를 계속 내야 했고.
김정권이 비트코인인가, 주식인가, 일확천금으로 번 돈으로 편의점을 차렸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끔찍하다.
“일부러 김정권을 완전히 박살 내시는 거죠?”
“그래. 몇 대 때려 주고 말 것이었으면, 이보다 훨씬 쉬웠지.”
“그러니까, 왜요?”
상림의 물음에 진유성이 어깨만 으쓱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앞서 똑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도 이랬다.
“아, 좀 알려주세요. 혹시 그놈이 교주님 물건이라도 훔쳤습니까?”
“그럼 나도 편의점 물건을 몽땅 훔쳐서 날랐겠지.”
“그럼요? 욕했나?”
“너도 날 종종 욕하지만, 내가 이 정도로 복수하진 않잖아?”
“네? 에이, 속하가 언제 교주님의 욕을 했다고 그러십니까.”
“그래? 안 했다고? 정말로?”
“…….”
진유성이 상림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상림아, 난 이미 모든 걸 들어서 알고 있다. 네 입으로 털어놓는다면 용서해 주마.”
“그런 적 없…….”
“네 입으로 말하지 않은 사실을 내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지는 네 상상에 맡기마.”
진유성의 말에 상림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찔리는 게 있다.
요즘 우산도 각성자들만 만나면 진유성의 험담을 했는데, 그게 귀에 들어간 게 아닐까?
“그게요…….”
“솔직히 말하면 너에겐 화를 내지 않으마.”
“정말요?”
“그래.”
“진짜 저 안 때리시는 거죠?”
“그렇다.”
“이미 다 알고 계시는 것도 맞죠?”
“모를 것 같냐?”
상림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사, 사실은…….”
진유성의 귀로 우산도 멤버들과 상림의 불온한 역심을 담은 대화가 들어왔다.
그동안 우산도와 어떻게 그리 빨리 친해지나 했더니, 자신의 욕을 하면서였다.
사실 진유성은 아무 것도 아는 게 없었다.
그냥 상림의 얼굴이 불안해 보이길래 떠본 것뿐이었다.
한데, 이런 배신감이라니…….
“정말 화내시는 거 아니죠?”
눈치를 잔뜩 보는 상림의 물음에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화를 내진 않는다.”
상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진유성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내 주먹은 빙(氷) 속성이다!”
진유성이 심심할 때 배워 두었던 북해빙궁의 무공이 시전되었다.
쩌저저적 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의 공기들이 얼어붙는다.
상림이 기겁을 하면 소리를 빽 질렀다.
“상품! 상품!”
진열된 상품이 망가지니 때리지 말라는 의미가 함축된 외침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의 세밀한 기운 운용법을 생각해 보면 이는 공허한 외침이었다.
쩌저저저적!
주변의 그 어떤 물체에도 피해를 주지 않은 진유성의 주먹이 상림의 가슴팍에 부딪치는 순간.
“엉?”
상림은 그 어떤 충격도 느끼지 않았다.
아프지 않다.
아니, 주먹이 닿은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이었다.
상림이 입고 있던 옷이 얼어붙더니 가루가 되어서 떨어진다.
호피 무늬 팬티를 제외한 모든 옷이 단어 그대로 산산 조각난 것이었다.
“교, 교주님!”
“반성하도록.”
진유성은 당황한 상림을 두고 편의점을 휙 나왔다.
순식간에 미풍양속을 해치는 차림이 된 상림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게 보이지만, 진유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곤 집으로 향했다.
“불경한 놈.”
사실 진유성은 화제를 돌리기 위해서 일부러 상림을 갈군 것이었다.
실제로 벌였던 불경한 짓거리를 포착한 것은 우연이었다.
진유성이 ‘왜 이렇게까지 하냐는’ 상림의 질문을 회피한 이유는 간단했다.
상소윤과 연관된 일이니까.
편의점주가 상소윤을 두고 어떤 말을 했는지를 알면, 상림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어쩌면 진유성보다 훨씬 심한 복수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설령 복수를 하더라도 계속 상림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남아 있을 것이었다.
말이란 그렇게 무서운 것이었다.
육체적인 고통은 시간이 지나면 무뎌지고, 더 오랜 시간이 지나면 추억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는 말은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니 편의점주가 상소윤을 두고 무슨 말을 했고, 어떤 태도를 보였는지는 상림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된다.
김정권을 몰락시킨 진유성이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는 이유도 이것이었다.
김정권에게 찾아가서 조롱을 한다면 재미야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유성은 벽에 몰린 인간의 분노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게 진유성이 벌인 일이라는 걸 알면 김정권이 진유성에게 복수를 할까?
시도는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시도가 무의미하다는 것을 금방 알 것이고, 그렇다면 엉뚱한 상소윤에게 화풀이를 할 수도 있다.
원래 분노는 강자한테 풀기는 어렵고, 약자한테 풀기는 쉬우니까.
그래서 진유성이 김정권의 앞에 나타나지 않는 것이었다.
끝까지 누구한테 분노를 해야 할지도 모르는 채 망해 버리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향하던 진유성은 문득 멈춰 섰다.
‘나도 분노했던 건가?’
자신은 편의점주가 상소윤에게 막말을 하고, 음담패설을 일삼는 것을 징죄했던 걸까?
아니면 분노했던 걸까?
징죄했다면 무엇을 죄로 여긴 것이고, 분노했다면 왜 화가 났던 것일까?
진유성은 잠시 고민했지만, 답을 알진 못했다.
위대한 천마신교주라고 하더라도 삼라만상의 모든 이치를 아는 건 아니었으니까.
* * *
PPP는 한국의 각성 마켓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던 동아시아 국가 대리인들의 모임이었다.
하지만 대리인이란 단어는 언제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누굴 대리하는지에 대한 연결고리를 끊어 버리면, 그들은 끈 떨어진 연이 되기 때문이었다.
즉, 일이 잘못 되면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카드란 소리였다.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PPP는 마음이 급했다.
KPM에서는 계속해서 1.6톤의 마정석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선순위를 정해야합니다.”
“무슨 우선순위 말이오?”
“저희는 그동안 수비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수비적인 공격?”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동안 PPP의 행동 양식은 간단했다.
KPM의 마정석은 전량 구매하고, KPM의 하락에 배팅된 파생 상품에 투자를 한다.
전자의 경우는 KPM을 망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후자의 경우는 KPM을 망하게 하다가 발생하는 손실을 메우기 위함이었다.
“후자를 완벽히 버려야 합니다.”
“손해를 보잔 말이오?”
“우선순위를 생각하자는 겁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저희가 대리하는 분들은 KPM이 망하는 걸 원할 겁니다.”
“하지만 수십조의 손실을 발생시킨다면 우리의 자리는 없는 거요.”
“KPM이 망하지 않는다면 저희의 목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PPP의 총 예산인 40조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필리핀의 1년 예산의 절반에 가까운 금액이다.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지게 부유한 한국, 일본, 중국이 예외일 뿐이었다.
이런 돈을 배정받고도 KPM을 망하게 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목이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럼 어떻게 하자는 거요?”
“파생 상품에 투자한 돈을 최소화하고, 전부 마정석을 사야 합니다.”
“하지만 마켓을 망하게 하는데도 돈이 드는 건?”
마정석 지급 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곧장 마켓이 망하진 않는다.
그 이후에는 마켓의 주요 소비 품목들을 하나씩 매진시켜야 한다.
A~C급의 장비들과 포션이 주요한 공격 대상이었다.
“KPM이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기 전이라면 추가 예산을 편성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건재하다면 추가 예산은 불가능하죠.”
일본의 대리인이 길쭉한 선을 그었다.
“10조는 무조건 마정석을 공격하고, 30조는 주요 각성 상품을 공격해야 합니다.”
이는 손실 비용을 회수할 생각을 완전히 포기하겠다는 것과도 같았다.
배수의 진이다.
그리고 이러한 PPP의 판단은 실제로도 KPM에게 꽤 치명적이기도 했다.
김정철 회장은 PPP가 마정석에 투자할 수 있는 돈을 5조 이내로 보고 있었으니까.
“최대의 최대로 가정해서 KPM의 보유 마정석이 20톤이라고 칩시다.”
“20톤이 가능하겠소?”
“지금까지를 보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KPM은 계속해서 1.6톤씩 공시하고 있으니까요.”
20톤의 마정석을 구매하는 데는 6조 가까이의 돈이 든다.
“사실 30조로 모든 각성 물품의 유동성을 틀어막겠다는 건 힘듭니다. 그러니 무조건 일순위의 목표는 달성해야 합니다.”
KPM의 마정석 지급 불능 사태.
이것만큼은 절대적으로 달성해야 한다.
그래야지만 추가 예산을 편성 받아서 KPM을 망하게 할 수 있다.
그렇게 PPP가 그들의 정책 방향성을 완전히 수정하는 순간이었다.
PPP의 비서이자, 그들이 대리하는 분들의 정보원 중 한 명이 회의실로 뛰어 들어왔다.
“이건 보셔야 할 듯합니다!”
비서가 다짜고짜 TV를 켰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 S급 게이트의 탄생이 예고되었습니다.
-이는 국가의 수도에 열리는 첫 번째 S급 게이트이자, 독도의 S급 게이트 이후 3개월 만의 게이트입니다.
-독일 총리는 S급 게이트를 클리어한 유일한 국가 한국에게 간절한 지원을 호소했으며, 게이트 클리어시 모든 부산물을 한국에 양도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현재까지 한국의 정부는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말 외에는 답변이 없는 상태이며…….
-속보입니다!
-한국의 S급 게이트 클리어팀 우산도의 대변인 한지후 소장이 독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