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12화>
편의점주 김정권은 황당한 표정으로 JC 편의점을 몇 번이나 훑어보았다.
같은 건물에 떡 하니 다른 편의점이 들어온 것도 어이가 없고, 기습 공격하듯 하루 만에 지어진 것도 어이가 없다.
정신을 차린 김정권이 편의점으로 뛰어 들어가 야간 알바생을 향해 입을 열었다.
“야, 저거 뭐야?”
“그니까요. 새벽에 좀 시끄럽고 뭔가 나르는 것 같았는데, 아침에 청소하려고 나가니 물건 넣고 있더라고요.”
“…….”
야간 알바생은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경쟁업체의 출연에 심장이 떨리는 건 주인이나 그렇지, 아르바이트생은 관계없는 일이었다.
“아, 근데 사장님. 좀 이상한 건 있었어요.”
“뭐가?”
“보통 재고 채울 때 본사 탑차가 오잖아요? 근데 저긴 아니던데.”
“그럼?”
“비싼 외제차. 그, 벤츠 지바겐인가? 그게 물건을 여러 번 실어 나르더라고요.”
“지바겐이 물건을 실어 날랐다고? 그게 말이 되는 소리냐?”
“저도 보고 어이없긴 했어요.”
김정권은 알 수 없었지만, JC 편의점에 들어있는 물건은 본사에서 공급받은 게 아니었다.
상림과 진유성이 대형 마트에서 적당히 쓸어 온 것이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모르겠던 김정권은 일단 JC 편의점에 들어가 보기로 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보는 순간 흠칫 놀랄 인상의 소유자가 카운터를 보고 있었다.
LF 건설과 관계된 인력 사무소의 노동자이자, 최근엔 CMSG의 외주 일을 도맡고 있는 상림의 지인이었다.
김정권은 편의점 내부를 둘러보고는 두 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상품 진열이 뒤죽박죽이라는 것.
동종 제품군과 연결 소비가 되는 제품군을 나란히 배치해 놓아야 하는데, 마음대로 물건을 가져다 놓은 것 같다.
본사의 지침을 이행하지 않았거나, 본사의 지침이 없는 게 분명했다.
둘은 담배가 없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처음 JC 편의점을 봤을 때는 당황했지만, 생각해 보면 이건 미친 짓이다.
담배 판매권을 받기 위해서는 일정 거리에 담배를 파는 다른 업체가 없어야 한다.
즉, JC라는 편의점은 담배를 팔지 못하는 편의점이다.
담배 자체는 마진이 거의 남지 않지만, 아주 중요한 미끼 상품이다.
즉, JC라는 편의점은 망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괜히 긴장했네.’
김정권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JC 편의점을 나갔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진열된 상품들의 가격을 보지 않은 것이었다.
자신의 편의점으로 돌아온 김정권은 곧장 건물주인 상림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표님. 혹시 1층에 다른 편의점 들어온 거 알고 계시나요?”
-아,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상가로 쓴다고 해서 계약을 했는데, 편의점일 줄은…….
상림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미안함이 담겨 있었지만, 그게 크진 않았다.
어차피 건물주 입장에서는 월세만 받으면 그만이니까.
그래도 세입자 입장에서 상림과 LF 건설은 꽤 괜찮은 건물주였다.
건물주라고 해도 계약 기간 내 월세를 마음대로 올릴 수 있는 게 아니고, 쫓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상가건물 임대차 보호법에 따라 1년에 5%의 인상만 가능하며, 이것도 합당한 이유가 있어야 했다.
그래서 건물주들은 보통 계약 기간이 끝나면 보증금이나 월세를 인상하기 마련이었다.
김정권의 편의점처럼 장사가 잘되는 가게는 무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림 대표는 그러지 않았다.
얼마 전에 기존 임대차 계약이 끝나서 재계약을 맺었는데, 보증금 동결에 월세만 소폭 인상했을 뿐이었다.
그런 생각이 든 김정권은 괜히 상림에게 투정을 부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새로 들어온 JC 편의점은 밟아 버릴 수 있다.
본사 정책의 한계선까지 가격 할인율을 적용하면 된다.
본사는 가격을 정하지만, 편의점주의 재량으로 진행하는 ‘상식선의 할인’을 막진 않았다.
편의점의 특성상 경쟁이 분명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까.
‘여름이니까 아이스크림이랑 음료로…….’
김정권이 이런저런 고민을 시작했지만, 그의 고민은 쓸데없는 것이었다.
상대는 상식이 먹히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 * *
압구정에는 수많은 연예 기획사들이 있고, 그곳에는 수많은 연예인 지망생들이 있었다.
연예인 지망생 중에는 집이 부유한 이들도 있겠지만, 대체로는 아니었다.
특히 타지에서 숙소 생활을 하는 이들은 늘 배가 고팠고, 주머니가 가벼웠다.
그런 그들 중 한 명이 발견한 JC 편의점은 놀라운 곳이었다.
“진짜? 이게 천 원이라고?”
“와, 미친. 여기 뭐야?”
“이거 막 유통 기한 지난 거 날짜 바꾸고 그런 거 아니야?”
“그게 말이 되냐. 앞에 각성자들로 광고해 놨잖아.”
“혹시 가격표를 잘못 써 놨나?”
모든 물건의 가격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쌌다.
보통의 편의점에서 2만 원은 내야 했을 상품들의 가격이 여기선 6천 원이었다.
JC 편의점이 이름이 퍼지기 시작한 것은 연예인 지망생들로부터였다.
그 소문은 소속사 직원들에게 퍼져 나갔고, 소속사 직원으로부터 압구정의 회사원에게 전달되었다.
“담배를 안 판다고?”
“담배는 바로 옆에 편의점에서 사면 되요.”
압구정이 부자 동네라고 해서 직장인들까지 부자인 것은 아니었다.
아니, 설령 부자더라도 더 싼 가격을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이게 이렇게 쌀 수가 있나?”
의심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의 의심을 불식시켜 주는 건 JC란 이름이었다.
“JC 이름 도용한 거 아니야?”
“그런가?”
매사에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프로 불편러들은 JC 본사에 편의점의 존재에 대해 문의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본사의 답변은 불편을 종식시켰다.
-한국 각성 마켓의 성공적인 오픈을 축하하며, 국민 여러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 준비한 마켓입니다.
실제로 국민들 중 일부는 애국 투자라며 PPP의 공격을 받는 KPM의 주가를 받쳐 주기도 했으니까.
그러나 이러한 답변은 김정철 회장의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흥미롭게 언노운 엠페러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 것이었다.
‘진짜 편의점 브랜드를 열어서 안 될 건 없잖아?’
최근 한국 각성 마켓으로 인지도를 끌어 올렸는데, 그 인지도를 실물 마켓으로 연결할 수도 있는 거니까.
어차피 현재 정부는 을 이름을 <한국 각성 마켓>으로 바꿔준 것에 대한 빚을 지고 있다.
어떤 사업을 시작하더라도 정부가 날개를 달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딱 하나만 결정하면 된다.
“……하도록 해.”
“정말이십니까?”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JC 편의점 브랜드의 공식 홍보 문구를 ‘JC하자’로 결정하는 것.
사실 어쩔 수 없는 흐름이었다.
기껏 유투브 영상을 내려놨더니, 진유성이 ‘JC하자’로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으니까.
그렇게 JC 본사의 정책이 정해지고, 새로운 편의점 브랜드를 오픈할 부서가 정해지는 사이.
“어떻게 이런…….”
편의점주 김정권은 말도 안 되게 떨어지는 매출을 보며 당황하고 있었다.
담배 매출이 없었다면, 거의 매출이 0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할인 전략으로 맞불을 놓으려고 했지만, 그것도 불가능했다.
JC 편의점은 마진을 제로로 두는 것처럼 물건을 팔고 있었으니까.
결국 방법이 없어진 김정권은 공정 거래 위원회에 신고를 했지만…….
-이 경우에는 애매한 사안들이라서요…….
정치권의 비호를 받는 JC 그룹 신규 사업의 발목을 붙잡을 공무원은 없었다.
그렇게 김정권은 월세는 월세대로 내고, 알바비는 알바비대로 나가면서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오죽 스트레스가 심했으면 남자로서의 기능까지 상실해서, 병원을 다닐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알지 못했다.
이런 모든 일들이 자신이 고용했던 알바생으로부터 비롯된 일이라는 걸.
* * *
광고 제작회사 두드림 픽쳐스는 얼마 전, 야심차게 유투브 영상을 편집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1위와 2위를 다투는 각성자 문수혁과 차정명이 등장하는 먹방 영상을 말이었다.
그들은 정말 최선을 다했고, 결과물에 만족했다.
날아다니는 당근 하나하나에 SG 로고가 새겨져 있었고, 요리 장면과 대외적으로 공개된 각성자들의 훈련 장면을 오버랩했다.
SF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기법들의 선보여지고, 문수혁과 차정명은 일생일대의 몬스터를 잡는 비장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물론 그들이 먹는 것은 요리였지만.
하지만…….
“뭐? 클라이언트가?”
“네. 수정해 달랍니다.”
“아니, 왜?! 이건 진짜 내가 봐도 희대의 역작인데? 이것보다 친근하게 SG를 소개할 수가 있나?”
광고주가 영상의 전면 수정을 요청한 것이었다.
“광고주 코멘트는 뭐야?”
“사람이 중요하답니다.”
“사람이 중요하다?”
“예. SG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각성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이 중요한 거라고.”
직원의 말에 회의실에 모여들었던 두드림 픽쳐스의 팀장과 부장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들의 머릿속에 파팍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설마? 진짜?”
“부장님도 같은 생각하셨습니까?”
두 사람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생각은 ‘각성 독립’이었다.
최근 SG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헝가리와 멕시코 같은 각성 독립 국가들이 생겨났다.
KPM을 만든 한국도 이와 같은 길을 따를 거라는 건, 자명한 일이었다.
문제는 시점과 시발점이었다.
언제 시작할 것인지, 무슨 일을 계기로 시작할 것인지.
멕시코는 통치자 엔리케 카를로가 죽으며 자유 각성 국가가 되었고, 헝가리는 EU 각성 쿼터에 대한 대국민적 불만으로 자유 각성 국가가 되었다.
한국도 어떤 계기가 필요하긴 했다.
전 국민의 치안과 관련된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려면 주류 의견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쩌면, 저희가 아주 큰 판에 들어온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름이 돋는 군. 김정철 회장의 도대체 몇 수를 내다보고 있던 거지?”
이제야 모든 것을 알겠다.
처음 김정철 회장은 체면을 구겨 가면서 먹방을 촬영했고, 유투브에 올렸다.
이는 꽤 큰 이슈가 되었다.
주가도 올랐고, JC 하다라는 신조어도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신조어도 JC그룹의 홍보팀에서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최근 JC 편의점에서 자주 사용하는 홍보 문구니까.
중요한 건 주가 상승이나 신조어가 아니다.
JC 그룹이 국민들에게 친근하게 받아들여졌다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가?
JC 그룹이 국민들의지지 아래 한국 각성 마켓을 오픈했다.
그 다음 스텝으로 자신들에게 각성자들의 먹방 영상을 보냈다.
두드림 픽쳐스는 이걸 ‘SG’와 연관시켰지만, ‘SG’가 아니다.
‘사람’이다.
즉, 이 영상은 SG란 단체의 색은 완전히 빼 버리고 사람을 친근하게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국민들의 눈에 SG의 문수혁과 SG의 차정명이 아니라, 그냥 문수혁과 차정명으로 보이도록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연예인처럼.
이 다음은 뻔하다.
자연스럽게 한국의 각성 독립의 여론을 만들어 낼 것이었다.
“각성자들이 JC 편의점의 홍보 모델이 된 것도 이 때문이었군요.”
“맞아.”
“부끄럽네요. 그동안 광고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떠들고 다녔는데, 막상 저희는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이…….”
부장과 팀장은 진실을 목격한 충격에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곧 온몸이 흥분으로 차올랐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역사책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거대한 변화가 그들의 손에서 시작하는 거니까.
“제가 직접 편집을 지휘하겠습니다. SG도, 각성자도 아닌 사람. 그걸 중점으로 가겠습니다.”
“나도 거들지.”
그렇게 그들은 SG와 각성자란 포인트를 완전히 버리고 사람에 초점을 맞춰 편집점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클라이언트가 SG도 각성자도 빼 달라고 한 건.
가면 요리사에 집중해 달라는 소리였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