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11화>
* * *
중원은 무본주의(武本主義) 사회다.
전낭에 엽전 하나 없어도 압도적인 무력이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재계의 거상과 정계의 거물들이 무인들을 고용하는 건, 금력이나 권력이 무력보다 우위에 있어서 부리는 게 아니다.
금력이나 권력이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지를 알기 때문에 두려워하는 것이다.
배척할 수 없는 두려움은 같은 편으로 만드는 방법밖에 없으니까.
이러한 중원 무본주의의 상징적인 인물이 바로 진유성이었다.
무일푼 하층민으로 시작했지만 압도적인 무력으로 중원을 일통했고, 황실의 위에 섰고, 대명제국을 집어삼켰으니까.
사실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했다.
무본주의를 상징하는 진유성이 품은 간절한 소망이 인본주의라는 것은.
무본주의를 살아본 진유성은 무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일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단전을 부수는 것.
오른팔이 잘리면 좌수검으로 절치부심하는 이들도 단전이 파괴되면 답이 없다.
그래서 진유성은 정말 악독한 이에게는 죽음을 내리지 않았다.
단전을 부수고, 팔과 다리를 하나씩 잘랐다.
제 아무리 거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던 자라도 무를 추구할 수 없게 되면 버림받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원이 무본주의였다면 한국은 자본주의(資本主義)이다.
무본주의에서 가장 두려운 게 단전이 부서지는 거라면, 자본주의에서 가장 두려운 건 통장이 부서지는 것이다.
진유성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김정철 회장을 부른 것이었다.
“……나한테 편의점 차리는 걸 도와 달라고?”
언노운 엠페러의 연락을 받고 헐레벌떡 압구정으로 달려온 김정철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정철이 누군가.
재계 순위 10위권인 JC그룹의 대표이자, 한국 각성 마켓 KPM의 설립자다.
그런 자신을 불러서 편의점 차리는 걸 도와 달라니.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김정철 회장은 곧 신색을 회복했다.
이 간단한 일을 도와주고 유투브 영상을 내릴 수 있다면 나쁜 거래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진유성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단순한 일은 아니었다.
진유성이 원하는 건 그저 편의점을 차리는 게 아니다.
특정 편의점 바로 옆에 편의점을 차려서 망하게 하는 것이었다.
김정철은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편의점 같은 업종은 경쟁 업체와 두드러진 상대 우위를 보이기 힘드네.”
“전부 반값에 팔면 되죠.”
“편의점 물품의 가격은 편의점주가 책정하는 게 아니라 본사에서 책정하는 것이야. 자네 마음대로 가격을 붙일 수 없네.”
“본사가 없으면 되는 거 아닌가?”
편의점은 브랜드 싸움이 된 지 오래고, 브랜드 싸움이라는 건 본사 정책의 싸움이다.
할인을 마음대로 하다가는 본사에서 물건을 공급해 주지 않을 것이었다.
한 업체에서 싸게 팔면, 소비자들은 다른 업체는 왜 싸게 팔지 않냐는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뭐, 편의점 브랜드를 창업하면 가능은 하겠지만……. 신뢰의 문제가 있네.”
진유성이 CMSG라는 편의점 브랜드를 만들면 물건을 아주 싼 값에 팔수는 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신뢰의 문제가 발생한다.
모든 편의점에서 만원에 팔고 있는 물건을 홀로 오천 원에 판다면 어떨까?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의심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었다.
특히 먹거리는 이러한 현상이 심하다.
시간이 흐르면 소비자들이 품질에 별 문제가 없다는 걸 인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사이 다른 편의점 브랜드들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대형 브랜드들이 힘을 합쳐서 무조건 CMSG를 공격한다.
여론을 선동할 것이며, 온갖 트집을 잡아서 공정 거래법이나 소비자 보호법으로 고발할 것이다.
이권을 지키기 위한 기득권의 공격을 생각보다 훨씬 무서우니까.
물론 김정철이 물심양면으로 도와준다면 이러한 공격도 이겨 낼 수는 있다.
그리고는 결국 경쟁 편의점에서 상대 우위를 점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모든 일을 거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겠나? 자네가 원하는 건 즉각적인 보복 같은데.”
김정철의 부정적인 설명을 들은 진유성이 어깨를 으쓱했다.
진유성도 김정철이 한 말을 대충은 예상하고 있었다.
한국에 와서 법, 특히 상인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상법(商法)에 대해 찾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보기에 대한민국은 자신이 꿈꾸던 이상향과 제법 비슷한 나라였다.
아쉬운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완벽한 통치란 불가능한 목표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국의 상인들은 어떤 법을 따라야 하는지가 궁금했다.
진유성이 대명제국을 통치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이 상계를 장악하는 일이었으니까.
하나의 법을 만들면 맹점을 이용해 백성들을 쥐어짜고, 그걸 막기 위해 법을 만들면 또 맹점을 파고들어 고혈을 빼먹는 게 상인들의 특징이었다.
그렇다고 마냥 탄압을 하면 상계가 마비되어서 백성들의 삶이 더욱 어려워지기도 했고.
그러니 진유성이 김정철을 부른 것은 이러한 모든 문제의 해결책까지 예상해서였다.
“JC 이름 좀 빌립시다.”
“JC 이름으로 편의점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그건…….”
“아, 딱 하나만 만들 건데 왜 이렇게 깐깐하게 굴어?”
“저번부터 자네가 은근히 반말을 한다는 생각이 드네만.”
“대놓고 해 줘?”
“……유투브 영상은 내려 주는 건가?”
“이름 빌려주는 거죠?”
김정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진유성이 스마트폰으로 김정철의 먹방 영상을 삭제했다.
염원하던 순간을 목격한 김정철 회장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유투브 영상이 내려가고, 법무팀에서 나서면 빌어먹을 짤방은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한순간에 사라지진 않겠지만, 본래 유행이란 건 재생산이 없으면 시들해지는 법이다.
한결 표정이 좋아진 김정철이 물었다.
“그래서 편의점은 언제 오픈할 생각인가?”
“내일.”
“내일? 벌써 준비를 해 두었나?”
“아뇨? 이제부터 할 건데?”
“물건은? 매장은?”
“알아서 합니다.”
대충 대답한 진유성이 휙 하고 압구정 상가 건물을 빠져나갔다.
김정철 회장은 가끔 이 건물이 진유성의 것인지 자신의 것인지 헷갈렸다.
맨날 진유성이 먼저 떠나고, 자신이 노구를 이끌고 문단속을 하는 것 같았다.
* * *
오태훈, 김승곤, 조석훈.
이들의 공통점은 우산도의 멤버들이자, AA급의 스킬술사들이라는 것에 있었다.
또한 스킬 수집형의 스킬술사들이라는 점도 있었다.
스킬술사들은 보통 두 가지로 성향이 나뉜다.
첫 번째는 주력 스킬을 정해 놓고, 주력 스킬을 보조할 스킬들을 모으는 것이었다.
RPG 게임의 용어를 차용해 ‘스킬 셋을 짠다’라고도 하는데, 보통 대부분의 스킬술사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어디나 별종은 있는 법.
두 번째 성향의 스킬술사들은 스킬을 최대한 많이 모았다.
제 아무리 쓸모없어 보이는 스킬이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배우고 본다.
그리고는 그 쓸모없는 스킬들을 연구하며 어떻게 하면 신선하고 색다른 공격을 할 수 있을까 연구했다.
이러한 수집형 스킬술사들은 성장이 느리지만, 한 번 성장세에 접어들면 폭발적인 성장을 하기도 했다.
오태훈, 김승곤, 조석훈은 전형적인 수집형이자, 수집형 스킬술사들 중에서도 꽤 성공한 이들이었다.
그러니 랭커 이상만 참여할 수 있었던 우산도에 합류한 것이기도 했다.
이 세 사람은 공통점이 많기 때문에 친분이 제법 두터웠다.
그리고 오늘, 이들은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생겼다.
야심한 새벽에 언노운 엠페러의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가 우리를 왜 불렀을까요?”
“글쎄…….”
“가르침을 주려는 거 아닐까?”
“이 야심한 새벽에?”
“고등학생 신분이라니까 새벽 밖에 남의 눈을 피할 시간이 없지 않나?”
본래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추측하는 법이기에, 이들은 희망에 부푼 채 약속 장소로 향했다.
약속장소는 압구정 7층짜리 건물의 1층 상가인데, 세입자가 없어서 텅 비어 있는 곳이었다.
그 옆에는 24시 편의점이 하나 열려 있었고.
조심스레 텅 빈 상가의 문을 열어보니, 문이 열려 있다.
그들이 상가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림자가 드리워지며 어두운 곳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 시간에 왔군.”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던 언노운 엠페러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잘 지내셨죠?”
“물론.”
“저희를 왜 부르셨나요?”
“양평의 펜션에서 수많은 각성자들과 만났지만, 너희들처럼 눈에 띄는 각성자가 없었다.”
“예?”
“정말요?”
AA등급은 각성 세계에서 어깨 펴고 다닐 수 있는 고위등급이다.
하지만 우산도에서는 아니다.
우산도에는 SS급이자, 진유성을 만나 SSS급이 된 것 같다는 문수혁과 차정명이 있다.
그 아래에는 S급도 많고, SS급도 있다.
아직 등급 심사를 받지 않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그들 전체가 독도 게이트 이후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을.
그러니 오태훈, 김승곤, 조석훈은 우산도 내에서 특출 난 각성자들이 아니었다.
“어떤 점이 눈에 띄셨는지……?”
“다른 모든 각성자들의 능력은 내가 쉽게 따라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따라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더 잘했겠지. 난 뛰어나니까.”
“그렇죠.”
“하지만 그대들의 능력은 내가 감히 따라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진유성의 말에 세 사람이 눈빛을 교환했다.
‘우리가 펜션에서 뭘 했었지?’
‘몰라? 뭐 했지?’
‘별거 안 했는데?’
그 순간,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불의의 사고로 펜션의 거실이 부서졌을 때, 그대들이 수습했던 것이 기억난다. 진실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부서진 시멘트가 단단하게 모이고, 장판과 바닥이 부드럽게 이어지더구나.”
“네?”
“너희들의 능력을 보여 다오. 그렇다면 내가 너희들을 S급으로 올려 주겠다.”
“네에?”
“본 교주는 너희들을 믿고 있다.”
진유성이 세 사람의 어깨를 두드려 주고는 텅 빈 상가를 손짓했다.
“가라. 너희들의 능력을 보여 줄 때이다!”
“그러니까…….”
“보수 공사와…….”
“청소를……?”
각성자들의 어처구니없는 표정에 진유성이 기세를 드높였다.
엄청난 압박감이 세 사람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어허!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다. 너희가 과연 S급이 될 자격이 있는지!”
세 명의 각성자들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차마 하진 못했다.
진유성이 뿜는 어마어마한 기운이 무서웠으니까.
그들의 머릿속에 얼마 전에 술자리를 가졌던 상림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
“교주 놈이 억지를 부리잖아? 그냥 해 줘.”
“어차피 해야 할 거, 맞고 하는 것보다는 그냥 하는 게 낫잖아?”
결국 각성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건물의 보수 공사와 청소를 시작했다.
보통의 인부들을 고용했다면 오랜 시간이 걸렸을 일을 각성자들은 순식간에 해냈다.
그들에게 수많은 잡스킬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이 끝나갈 때쯤, 대머리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다 가져왔습니다. 교주님.”
“오, 그래. 어서 설치하도록 하여라.”
편의점에 필요한 진열대와 냉장, 냉동고를 공수해 온 상림이었다.
상림이 잠시 세 명의 각성자를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냥 했어?”
“그냥 했습니다.”
“잘했어…….”
“형님은 그냥 하셨습니까……?”
“그냥 할 걸…….”
상림의 뒤통수를 보니 약간 붉은 것 같기도 했다.
어딘지 공감대와 연민이 폭발하는 그들의 대화였다.
* * *
“아, 진짜 개빡치네.”
진유성을 고용했던 편의점주 김정권이 투덜거리며 자신의 편의점으로 향했다.
미친놈이 다짜고짜 알바를 그만두면서 야간 타임까지 쭉 가게를 봐야 하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더 아쉬운 건, 상소윤의 전화번호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지만.
‘아, 존나 내 타입이었는데.’
그렇게 투덜거리며 편의점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김정권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하고 멈춰 버렸다.
자신의 편의점 바로 옆에…….
<랭킹 1위 각성자도 반한 그 맛! 문수혁과 JC하세요!>
<랭킹 1위는 나다! 차정명과 JC하실 분!>
TV에서 자주 보던 두 각성자의 얼굴을 광고로 쓴 편의점이 떡 하니 차려져 있는 것이었다.
분명 어제까진 없었는데.
단 하루 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