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10화>
* * *
인간을 두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칭하지만, 인간의 본능에는 동물적인 부분이 남아 있다.
특히 우열을 가리는 부분이 그러했다.
짐승들만 상대가 나보다 위인지, 아래인지 판단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들도 본능적으로 상대의 힘을 가늠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와서는 신체적인 강함의 의미가 퇴색됐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건 아니었다.
이런 이유로 진유성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진유성과 마주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싸워서 좋을 것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성은 느끼지 못해도, 본능은 짐작한다.
진유성이 품고 있는 거대한 힘을.
이 말을 반대로 하자면, 진유성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은 본능의 경고음을 일부러 외면하는 것이었다.
어떤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걸 이렇게 두면 어떡해?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은 거 몰라? 그래? 안 그래? 어?”
진유성은 최근에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편의점주를 두고 고민을 하고 있었다.
상대의 시비가 의도적인 게 확실하다면 진유성은 가만 두지 않는다.
그에겐 평화를 가져오는 마법의 지건이 있으니까.
하지만.
‘애매하군.’
이 경우에는 확실히 애매했다.
편의점주가 진유성에게 지적하는 사항들은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들이다.
가게의 주인 된 입장에서는 원하는 것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는 너무 사소해 와닿지 않는 것들이다.
게다가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일들도 많았다.
진유성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은 주간 직원과 야간 직원을 연결하는 시간대다.
그리고 주간에 일을 하는 사람은 편의점주이다.
즉, 점주가 실수해 시작된 부분을 자꾸 진유성에게 떠넘긴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확실히 시비는 거는 부분이라고 보긴 애매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남의 탓을 선호하니까.
진유성을 지적하던 점주가 편의점을 나가자, 상소윤이 다가왔다.
“야, 괜찮냐?”
“뭐가 말이냐?”
“아니, 사장님이 자꾸 너한테만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흠…….”
“야, 때리지 마. 혹시 때릴 거면 아르바이트 그만두고 때려. 그래야 증거가 안 남지.”
상소윤의 말에 진유성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진유성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긴 했다.
중원은 복수의 개념이 단순했다.
당했으면 돌려준다.
그 사이에 공권력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애당초 관이 무림인을 통제할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한국은 아니다.
여기서 진유성이 편의점주의 뒤통수라도 때리면 경찰이 출동한다.
“상소윤.”
“왜?”
“나는 공명정대한 사람이다. 그렇게 쉽게 남을 때리지 않는다.”
“아, 그러세요?”
상소윤은 그렇게 말하면서 진유성을 힐끔 쳐다보았다.
다행히도 진유성은 그 어떤 마음의 상처도 입은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편의점주가 꽤 귀찮게 했음에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역시 또라이도 멘탈이 튼튼해야 할 수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하며 상소윤은 고개를 갸웃했다.
편의점주가 진유성을 귀찮게 하기 시작한 것은 두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그만둔다고 밝힌 시점에서부터였다.
그전까지는 별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았었는데, 갑자기 그러는 것 같다.
‘한 달만 일하고 그만둬서 그러는 걸까?’
하지만 분명 아빠가 말을 잘해 두었다고 했었다.
후임자도 이미 구한 상태이고.
게다가 일을 그만두는 걸로 뭐라고 할 거면 자신한테도 뭐라고 해야 하는데, 자신에게는 오히려 잘해 준다.
이상한 일이었다.
상소윤이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진유성은 한 가지 의심을 하고 있었다.
진유성은 상림과 내기를 했다.
자신이 아무런 사고도 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500만 원을 받아야 한다.
한데, 이번 주만 일하면 아르바이트는 끝이 난다.
즉, 상림이 자신에게 500만 원을 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상림이 편의점주를 움직여서 내기에서 패배하게 만들려는 게 아닌지 의심이 됐다.
합리적인 의심이긴 했으나, 애매하긴 했다.
상림은 돈이 없다고 동정에 호소할 수는 있어도, 뒤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사람은 아니니까.
아니나 다를까, 진유성의 의심을 받은 상림은 펄쩍 뛰었다.
“제가요?! 제가 그런 짓을 왜 해요?”
“500만 원을 주기 싫으니까?”
“아니, 상식적으로 500만 원에 목숨을 걸겠습니까? 제가 교주님을 아는데?”
“흠, 그건 그렇지.”
“그냥 그놈이 잘못을 남한테 쉽게 떠넘기는 타입이 아닐까요?”
상림은 자신의 건물의 세입자인 편의점주를 떠올려 보았다.
나쁜 인상을 받은 적은 없지만, 좋은 인상도 받은 적도 없다.
비트코인인가 뭔가로 우연히 돈을 좀 벌었는데, 할 줄 아는 게 없어서 편의점을 차린 걸로 알고 있고.
“하지만 그렇다면 상소윤한테도 뭐라고 했겠지.”
“소윤이는 너무 사랑스러워서 감히 건들지 못하는 거죠.”
“그럼 나는?”
“교주님은, 음, 존경스럽죠. 멋지고.”
상림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근데 교주님 성격에 그걸 가만히 두셨어요?”
“나는 공명정대한 사람이다. 쉽게 남을 때리지 않는다.”
“때리지만 않았다는 거죠? 어떻게 하셨어요?”
상림은 진유성이 때리지만 않았을 뿐이지, 가만 뒀을 리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사실 상림의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
“회음혈을 점혈해 두었다.”
“지, 진짜요?”
“그러하다.”
“그런 악독한…….”
“악독?”
진유성이 눈을 번뜩이자 상림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저 악독한 손속이 자신에게 올 수 있다는 위협을 느낀 것이었다.
“악독으로 이행시 해 보겠습니다.”
“해 보거라.”
“악당은, 독하게 다뤄야 한다.”
“괜찮네.”
상림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회음혈을 점혈했다는 건, 남자로서의 기능을 마비시켰다는 소리.
고자로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점혈은 영구적이지 않다.
혈도를 점해 놓은 기운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해혈이 되고, 신체의 기능도 되돌아온다.
혈도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해혈이 되는 데 하루 정도가 걸린다.
다만 무공 경지가 높아 점혈법이 고명할수록 그 기간이 길어지는데, 진유성의 경우에는 마음만 먹으면 보름까지도 점혈이 가능했다.
아니, 어쩌면 그 이상도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상림도 진유성의 경지를 전부 짐작하는 건 아니니까.
“근데 교주님, 회음혈을 점혈하는 게 가능합니까?”
“가능하니까 했지.”
“회음혈은 사혈 아닙니까?”
사혈(死穴)이란 충격을 받으면 죽음에 이르는 혈도로, 흔히 급소라고 부르는 곳들이 사혈과 연결된 부분이었다.
사혈의 점혈이 불가능한 이유는, 사혈에 기운이 통하지 않으면 사람이 죽기 때문이었다.
아혈을 짚으면 말을 못하고, 마혈을 짚으면 움직이질 못하고, 수혈을 짚으면 잠에 든다.
하지만 사혈을 짚으면 죽는다.
그렇기에 사혈은 점혈한다기보다는 공격한다고 표현해야 했다.
상림이 알기로는 말이었다.
“혈도를 완전히 막지 않으면 된다. 기운이 지나갈 길이 아주 조금만 열어 놓는 거지.”
“그게 가능합니까?”
“지금 나한테 가능하냐고 물은 것이냐? 한번 겪어 보려고?”
“가능으로 이행시 해보겠습니다. 가암히 교주님의 능력을 의심한 죄는……!”
“시끄럽다.”
“옙.”
“아무튼 500만 원을 준비하여라. 내기는 내기니까.”
진유성이 상림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받지 않아도 상관없으나, 너에게 천신을 능멸했다는 오명을 씌울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니냐?”
“……그쵸.”
“내 마음을 알았으면, 이만 가 보도록 하여라.”
상림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진유성의 방을 빠져나왔다.
속으로는 PPP 사태로 조 단위의 돈을 벌어들이고선 벼룩의 간을 빼먹는다고 욕을 하면서.
상림이 떠나고, 진유성은 고개를 갸웃했다.
역시 상림과는 관계없는 일인 것 같은데, 편의점주가 왜 자꾸 무덤을 파는지 모르겠다면서.
* * *
진유성이 편의점주의 의도를 알게 된 것은 다음 날이었다.
학교가 끝나고, 진유성은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편의점으로 출근했다.
진유성이 평소보다 빨리 움직인 이유는 꾸물거리는 상소윤이 없기 때문이었다.
상소윤은 유혜연의 정기검진에 따라가서 2시간 정도 늦게 출근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평소보다 20분 일찍 도착한 편의점.
진유성은 편의점 간판이 보일 때쯤 인상을 찌푸렸다.
편의점 안에서 통화를 하고 있는 편의점주의 목소리가 들린다.
보통 사람에겐 목소리가 닿을 수 없는 거리지만, 진유성에게는 아니었다.
편의점주의 목소리뿐만 아니라,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진유성이 인상을 찌푸린 것은 통화 내용이 꽤나 어처구니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새끼가 없어야지 내가 집에라도 데려다 주면서 그년을…….”
여기서 말하는 ‘그 새끼’는 진유성이었고, ‘그년’은 상소윤이었다.
편의점주는 상소윤을 꼬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가만히 통화를 들어보니까, 편의점주가 자신에게 귀찮게 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며칠이라도 먼저 그만둬야지 상소윤과 대화를 할 시간이 생기니까.
다만 진유성이 일을 너무 잘해서 딱히 건드릴 부분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시비를 걸었던 건, 알바생을 갈구며 자신이 사장이라는 걸 드러내고 싶었던 것이었다.
‘어이가 없군.’
생각해보니까, 이러한 편의점주의 의도가 몇 번 드러났던 것 같다.
“그, 둘이 사귀는 건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진유성과 상소윤이 어떤 관계인지를 물었고, 그 뒤로도 몇 차례 물었다.
또한 퇴근할 때 괜히 나타나서 둘이 같이 가는지를 물었던 적도 많다.
엄밀히 따지면 아르바이트는 진유성이 하는 거고, 상소윤은 진유성을 도와주는 것이다.
한데도 비상 연락망이 있어야한다며 상소윤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려고도 했었다.
상소윤이 알려주진 않았지만.
하지만 진유성이 어이가 없는 부분은 편의점주가 상소윤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게 아니었다.
그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진유성이 어이가 없는 건 편의점주의 행동과 태도였다.
마음에 든다면서 상스러운 욕을 섞고, 음담패설까지 덧붙인다.
진유성은 중원에서도 이런 놈들을 많이 봐왔다.
어차피 안 될 것 같으니까 상대를 깎아내리는 것이다.
상대를 깎아내려야지 거절당했을 때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
진유성이 혀를 쯧쯧 차면서 상소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신호가 가더니 상소윤이 전화를 받는다.
-어, 왜.
“혹 편의점주가 남자로서 마음에 드느냐?”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 아! 엄마! 아파!
공공장소에서 욕을 했다고 유혜연에게 얻어맞은 상소윤이 진유성에게 화살을 돌렸다.
-너 때문에 맞았잖아!
“이제 출근할 필요 없다.”
진유성이 전화를 끊고는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일부러 소리가 나지 않게 들어온 진유성이 편의점주의 사각지대에 섰다.
진유성의 등장을 모르는 편의점주는 한참동안 통화를 하더니, 시계를 힐끔 봤다.
“올 때 됐으니, 끊는…….”
그리고는 화들짝 놀랐다.
카운터의 한편에 진유성이 서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었다.
“너, 어, 언제 왔어?”
눈치를 살피는 게 진유성이 얼마나 들었는지를 가늠하는 모양새였다.
진유성이 혀를 쯧쯧 찼다.
“찌질하기 그지없는 놈이었군.”
“뭐? 이 새끼가…….”
“먼저 손을 쓰겠느냐?”
진유성이 뒷짐을 지고 가만히 서있지만, 편의점주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진유성도 이제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주먹으로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먼저 시작한 쪽이 무조건 손해를 본다는 걸.
그 사이, 진유성은 편의점주의 회음혈을 점한 내공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었다.
평생 유지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5년 정도는 점혈이 유지될 것이다.
“너…….”
“시끄럽다.”
편의점주가 뭔가를 말하려는 순간, 진유성은 혀를 차며 편의점을 빠져나왔다.
몇 대 때려줄 수도 있겠지만, 이런 놈에게 괜히 공권력의 힘을 얹어줄 필요가 없다.
진유성에게는 더욱 강한 수단이 있으니까.
김정철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탁할 게 하나 있는데요.”
곧장 다급한 김정철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든지 들어줄 테니, 유투브 영상 좀 내려 주지 않겠나? 그게 아니라면 말미의 문구라도 수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