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08화>
진유성이 각성자의 신체를 마음대로 조종하는 모습은 믿기 힘든 것이었다.
아놀드 벡, 문수혁, 차정명과 함께 있어서 내세우진 못하지만, 그들도 최상위 등급의 각성자였으니까.
심지어 강제로 푸시업을 하고 있는 각성자는 AA등급의 각성자였다.
그때 진유성이 혀를 쯧쯧 차며 말했다.
“너희는 너무 편하게 힘을 얻었다. 그러니까 본인 몸속에 있는 기운조차 간수를 못하지.”
진유성은 AA급 각성자의 마력 주도권은 뺏을 수 있지만, 이류무인의 내공 주도권은 뺏을 수가 없다.
단전이 형성되고, 내공의 일주천이 가능해지는 이류무인쯤 되면 스스로가 쌓은 내공의 주인이 되는 법이었다.
좁쌀만 한 내공이라고 하더라도 내 것인 것과 내 것이 아닌 것은 차이가 크다.
“혹시 제 마력도 조종할 수 있습니까?”
아놀드 벡의 물음에 진유성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요?”
“너도 안 된다.”
문수혁과 차정명도 안 된다.
진유성도 미처 몰랐던 사실인데, S급으로 평가받는 이들부터는 마력 주도권을 빼앗아 올 수가 없다.
그때 누군가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소리를 질렀다.
“마력 페이백!”
페이백이란 고등급의 각성자들이 사용하는 수법이었는데, 스킬을 쓰고 잔여 마력을 재흡수하는 것이었다.
마력 페이백을 할 수 있어야지만 S급인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S급들은 이것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스킬술사들은 페이백을 할 수 있고, 없고로 굉장히 큰 전투력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각성자들이 페이백에 대해 떠들고 있을 때, 진유성이 말했다.
“앞으로 이 대머리가 가르침을 줄 거니까, 성실히 따르도록 하여라.”
진유성이 상림에게 자기소개를 하라는 듯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상림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입을 열었다.
“상림입니다. 얼마 전부터 수혁이와 정명이에게 마력을 다루는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었습니다.”
각성자들의 시선이 문수혁과 차정명에게 쏠리자, 둘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상림에게 무공을 배우고 있다는 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상태였다.
말해봤자 믿지도 않을 것 같으니, 아놀드 벡이 설명을 끝내면 보탤 생각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자 상림이 단호하게 말했다.
“패션 대머리입니다. 탈모 아닙니다.”
“……?”
“진짭니다.”
“어, 네…….”
“교주님,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없다.”
“다른 사람들은? 질문 있습니까?”
상림은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옛날에도 이렇게 사람이 많을 때면 자신이 교주님의 심중을 헤아리며 상황을 정리했었다.
진유성은 위엄을 지키기 위해서 가급적 말을 적게 했고, 신주청은 진유성을 지키기 위해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MC로서의 역할을 천마신교의 3인자였던 자신의 몫이었다.
‘아니, 그때는 MC라는 말이 없었잖아. 뭐라고 불렀더라?’
교주님의 대외 활동을 보조하는 무슨 호칭이 있었는데,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때 누군가 물었다.
“그럼 앞으로 저희 삶의 무엇이 달라지는 겁니까?”
“달라지는 건 없다.”
각성자들은 각성자의 삶을 살 것이고, 진유성은 고등학생의 삶을 살 것이다.
아놀드 벡은 SG를 대표하는 각성자의 삶을 살 것이고, 상림은 건설 회사 대표의 삶을 살 것이다.
다만 중요한 건 그들의 인연이 약간 얽혔다는 것이었다.
굳이 변화가 있다면 상림이 시간 날 때 이들에게 무공을 가르쳐 줄 것이라는 거?
“근데 언노운 엠페러께서는 고등급의 게이트를 손쉽게 클리어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어, 왜?”
“멕시코나 캘리포니아에 가서 몰래 게이트 클리어해오시면 안 됩니까? KPM에 마정석 좀 채워 넣을 수 있게.”
“마정석? 아, 그거?”
진유성이 피식 웃었다.
진유성도 최근 PPP란 다국적 투자사가 KPM의 마력을 전량 구매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JC 그룹의 김정철 회장이 말해 주기도 했고, 상림이 설명을 해 주기도 했다.
중원인에게 주식이나 파생 상품의 개념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뛰어난 오성을 가지고 있었기에 몇 권의 책을 보는 것으로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주식시장을 이해했다.
그리고는 최근 자신의 재산 중 상당수를 특정 파생 상품에 투자했다.
지금까지는 상림이 진유성의 돈을 관리했는데, 처음으로 진유성이 돈의 투자처를 결정한 것이었다.
진유성이 투자한 상품은 PPP와 KPM의 싸움 중 KPM이 승리할 시 큰돈을 벌어들이는 것이었다.
반대로 KPM이 패배하면 큰돈을 잃어버리는 것이었고.
이러한 투자를 결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본좌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마정석이 남아 있도다.”
“마정석이 있다고요? 가지고 계신 걸 다 판 거 아니었습니까?”
“가진 건 다 팔았지. 김정철 회장이 팔아 달라고 해서.”
“한데 무슨 마정석이 남아요? 설마 몇 그램?”
“어허, 무엄하도다. 내가 고작 그런 그릇으로 보이느냐?”
모든 각성 아이템은 거래시 운송자가 필요하다.
판매자의 인벤토리에서, 운송자의 인벤토리로, 다시 구매자의 인벤토리로.
이것이 헌팅에 나갈 실력이 안 되는 F급 각성자들이 돈을 버는 방법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물건은 운송자가 거래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마정석.
에너지 산업의 재료원인 마정석은 일반 기업이 구매하는 경우에는 ‘무게’로 거래된다.
그렇기 때문에.
“교주님. 혹시 멕시코에서 돈 훔쳐 오셨습니까? 현금 자산이 다 없어졌다는 소문이 있던데.”
“어. 엄청 많더라.”
“그건 왜 가져오셨어요?”
“놔두면 멕시코에서 가장 힘이 쎈 놈이 가져갈 것 같아서.”
엔리케 카를로의 황궁에서 가져온 마정석이 진유성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것도 무려 10톤 가까이.
엔리케 카를로가 수 년 동안 멕시코를 지배하며 모아 놓은 것 같았다.
사실 진유성은 엔리케 카를로의 현물 자산을 티 나지 않게 멕시코의 민초들에게 나눠 줄 생각이었다.
그래서 그쪽 자산은 전혀 손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문득 마정석을 나눠주는 건 멕시코 국민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정부 상태인 멕시코에서 일반인들이 마정석을 제값에 팔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진유성은 차라리 마정석을 자신이 구매하는 형태를 취하고, 달러를 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마정석이 중요해졌지.’
참으로 공교로운 일이었다.
누군가는 우연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중원에서도 이런 일을 많이 겪어 보았다.
목숨을 살려 준 약초꾼이 우연히 천라지망의 샛길을 알고 있는 것 같은.
세상에 진짜 우연은 없다.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다.
진유성이 멕시코 국민들을 생각해서 현금 자산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혹은 그 자산을 탐내서 곧장 현금화를 했다면?
이런 기회는 없었을 것이었다.
“고니야, 돈을 벌고 싶니?”
“네?”
“부자가 되고 싶니?”
각성자들은 진유성이 좀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옆에서 읍읍 거리며 푸시업을 하고 있는 동료를 반면교사 삼아서.
* * *
PPP를 이끄는 다국적의 투자가들이 차트를 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이들은 명목상 투자가일 뿐, 실제로는 대리인이었다.
한국을 견제하고 싶어 하는 동아시아 각국의 대리인.
하지만 그 누구도 자신의 정체를 티내지 않고, 태연하게 투자가 행세를 하고 있었다.
이미 모두가 한 배를 탄 것이었다.
“예상 수익률이 떨어지지 않는군요.”
“누군가 KPM을 떠받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막대한 돈을 풀어서.”
“한국밖에 없죠.”
증권가 대다수가 PPP의 승리를 점치며 너 나 할 것 없이 ‘KPM 하락 상품’에 투자를 하고 있다.
탑승자가 많을수록 수익률은 하락한다.
주식이란 결국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이었다.
한데 예상 수익률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건, 그들과 반대쪽에 투자를 하는 막대한 자본이 있다는 걸 뜻했다.
“호재는 호재인데, 어딘지 찝찝한 호재군요. 한국이 자신 있다는 거 아닙니까?”
“글쎄요. 한국은 외세 대항하는 국민 정서가 꽤 강한 편이니까, 애국 투자가 아니겠습니까?”
“그랬으면 좋겠군요. 이 정도 수익률만 유지된다면 흡족하겠군요.”
PPP가 마정석 구매에 사용한 돈은 5,000억이었고, 파생 상품에 투자한 돈은 2조였다.
총 2조 5천억의 총알을 사용한 셈이었다.
PPP는 KPM의 마정석을 가격 거품이 낀 최고점에 구매했다.
본래 마정석의 시세 130달러.
현재 시세 266달러.
평균 시세의 2배를 주고 구매한 것과 다름이 없으니, 5천억의 절반인 2,500억은 예상된 손실이었다.
이들은 그 손실을 메꾸기 위해 KPM의 하락에 2조란 돈을 베팅했다.
하지만 2조로도 부족하다.
수익률 13%가 나야지 2,500억의 손실을 메꾸는 셈인데, 수익률 13%는 말도 안 되는 수치였다.
그러니 PPP는 순차적으로 돈을 더 투자할 생각이었고, KPM이 추가로 내놓는 마정석도 전부 구매할 생각이었다.
게다가 KPM이 마정석 지급 불능의 상태에 빠져도 완전히 폐업하게 만드는 데도 많은 돈이 든다.
쓸 만한 아이템을 싹 빼가서 거래가 의미 없는 마켓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그들의 총 예산은 40조.
여러 국가가 모였음에도 예산이 40조밖에 되지 않는 것은, 정체를 완벽히 숨겨야 하기 때문이었다.
PPP가 동아시아 국가들의 연합이라는 게 밝혀지면, 전 세계에서 비난이 쏟아질 것이다.
물론 모두가 짐작은 하고 있겠지만, 짐작과 증거는 아주 다르다.
증거가 없으면 비난받지 않는다.
이들이 홍콩의 투자사 HKPP를 끌어들인 이유도 여기에 있었고.
“한국은 저력이 있는 국가입니다. 아마 KPM은 한 번 더 마정석을 준비할 것입니다.”
“그래봐야 1톤 내외일 것입니다. KPM과 SG는 달라요.”
SG의 각성 마켓은 마음만 먹는다면 무제한에 가까운 마정석을 준비할 수 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구비해 놓은 것도 많고, 중국과 북한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각성자가 SG 소속이다.
그래서 SG에게는 감히 마정석으로 장난을 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의욕을 꺾어야죠. 마정석이 공시되자마자 전량 구매해야 합니다.”
“동의합니다.”
그렇게 하루란 시간이 흘렀다.
KPM은 거래에 따라 1.6톤의 마정석을 PPP에 지급했다.
그리고 곧장 새로이 구비한 마정석을 공시했다.
KPM이 밝힌 공시량은 1.6톤.
앞선 재고와 정확히 같은 양이었다.
“생각보다 저력이 있군요.”
“수익률이 소폭 올라갔습니다. KPM의 승리를 점치는 쪽도 생겼다는 거죠.”
“구매하도록 합시다.”
PPP는 곧장 1.6톤의 마정석을 구매했다.
본래 같으면 다른 업체에서도 구매하고 그럴 텐데, 워낙 가격 거품이 껴 있다 보니 PPP외에는 구매하는 곳이 없었다.
이제 PPP는 3.2톤의 마정석을 가지게 되었고, KPM은 다시 재고가 0이 되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뭐?!”
“이게 무슨……!”
“말도 안 됩니다!”
KPM은 다시 한 번 1.6톤의 마정석을 구비했다고 공시했다.
“혹시 다른 마켓에서 구매한 거 아닙니까!”
“이는 분명 조사를 해야 합니다.”
국제 거래법상 마켓과 마켓 간의 마정석 거래는 금지되어 있다.
단기 시세 차익을 이용해 할 수 있는 불법적인 일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었다.
각성자가 개인적으로 구매해서 팔수는 있겠지만, 이는 수수료 때문에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짓이다.
‘생존을 도모하는 KPM 입장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PPP는 잘못 짚었다.
그 어떤 마켓도 KPM에 마정석을 판 곳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톤 단위의 마정석이 거래된 기록 자체가 없었다.
“마지막 발악일 겁니다.”
기호지세였다.
호랑이 등에 올라탄 이상 호랑이가 죽든, 사람이 죽든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었다.
PPP는 다시 한번 1.6톤의 마정석을 구매했다.
그들이 벌써 마정석에 사용한 돈만 2조였다.
개중 1조는 손실이 예정되어 있는 부실 채권과도 같았다.
PPP를 이끄는 이들은 그날 밤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마정석의 공시 시간인 오전 9시.
KPM은 다시 한번 보유 마정석을 공시했다.
다시 한 번 1.6톤이었다.
이제 PPP는 1.6이란 숫자에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설마…….’
‘처음부터 KPM의 계획이었다고?’
싹트기 시작한 불안에 대해서 언급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입을 열면 공포가 전염될 것만 같았으니까.
PPP의 경영자들이 묘한 공포를 느끼는 그 시각.
한국에서는 누군가 그들을 놀리고 있었다.
“이거 완전 호구들이네?”
가만히 앉아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진유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