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06화>
진유성의 속 좁은 행동은 계속되었다.
그는 마음에 들게 독후감 추천사를 쓴 15명의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줬는데, 옆에서 듣기에 놀라운 조언이었다.
“다리를 다친 적이 있느냐?”
“어, 네. 근데 완치됐는데…….”
“정기신의 균형을 회복해야지 완치라고 부르는 거다. 마음이 계속 신경을 쓰고 있으면 완치가 아니다.”
진유성의 말에 각성자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완전히 수긍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완벽히 완치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부상 부위를 의식하지도 않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얼떨결에 존댓말을 쓰고 있지만, 눈앞의 청년이 언노운 엠페러가 맞는지 의심된다.
아놀드 벡이나 문수혁, 차정명이 가만히 있는 걸 보면 맞는 것 같긴 하지만…….
‘너무 어려 보이잖아?’
해도 해도 너무 어리다.
20대 초반 밖에 되지 않은 것 같고, 엄청난 동안이라고 해도 30대는 절대 아니다.
각성자의 미심쩍음을 느꼈는지, 진유성이 오른 손바닥을 내밀었다.
“견뎌 봐라.”
“네?”
“두 손을 모아 내가 미는 힘을 견뎌 보라고.”
각성자가 엉겁결에 진유성의 오른 손바닥 위로 자신의 양 손바닥을 겹쳤다.
“잘못하면 손목 부러진다.”
그렇게 말한 진유성이 힘을 주기 시작하자, 각성자가 깜짝 놀라서 자세를 낮췄다.
언노운 엠페러는 딱히 힘을 쓰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주한 손바닥에서 거력이 몰려왔다.
게다가 힘은 점점 거세졌다.
힘의 압력이 임계점을 넘은 순간, 각성자는 공포를 느꼈다.
손목에서 까드득 하는 소리가 나는데, 자칫 잘못하다가는 팔이 뜯겨져 나갈 것 같다.
각성자의 얼굴에 공포가 어리는 것은 옆에서 보기엔 어이없는 장면이었다.
랭커들은 무수한 사선을 넘은 이들이고, 겁대가리를 상실한 이들이다.
그러니 단순한 밀어내기에 죽음의 공포를 느끼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유성의 힘을 받아 내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때였다.
“으아아아!”
숨도 쉬지 못하고 힘을 견디던 각성자가 별안간 소리를 지르며 진유성의 팔을 뿌리쳤다.
더 이상 버티다가는 팔이 부러질 것 같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굉장히 위험한 것이었다.
직선으로 밀고 들어오는 힘을 측면으로 뿌리치는 것은 섬세해야 한다.
지금처럼 막무가내로 뿌리친다면 남아 있는 힘이 정말로 팔을 부러트리게 된다.
진유성이 시기적절하게 힘을 흩어버리지 않았다면 사고가 발생했을 것이었다.
이러한 점을 알고 있는 각성자가 민망한 표정을 지을 때, 진유성이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봐라.”
“네?”
“넌 의식하지 않았는데도 양발이 남긴 족적의 깊이가 다르지?”
진유성의 말은 사실이었다.
죽음의 공포까지 느끼며 진유성의 힘에 대항했던 각성자의 두 발이 남긴 족적.
그것이 확연히 달랐다.
부상을 입었던 왼발의 족적은 얕고, 오른발의 족적은 깊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왼발에 힘이 들어가는 걸 최소화 하고 오른발로 버텼다는 것을 뜻했다.
“아…….”
진유성의 말에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각성자들이 적잖이 놀랐다.
뭘 하나 싶었는데, 이런 깊은 뜻이 있었다니.
아무래도 저 남자는 언노운 엠페러가 맞는 듯했다.
하지만 그보다 큰 문제는.
“펜션이 다 부서졌네…….”
“그러게…….”
펜션의 바닥이 다 부서졌다는 것에 있었다.
바닥 장판과 장판 아래의 시멘트만 부서진 게 아니었다.
함께 설치되어 있던 온돌과 난방시스템도 전부 부서졌다.
진유성이 힘을 발휘한 장소가 건물의 출입문과 연결된 커다란 거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놀드 벡이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냥 밖에서 하지…….”
아놀드 벡이 한국어로 말을 하자 주변 각성자들이 놀랐지만, 놀람보다는 공감의 마음이 컸다.
아놀드 벡이 말이 백번 맞다.
펜션을 다 부술 바에는 그냥 마당에 나가서 했으면 되지 않았을까?
시멘트 바닥에 족적을 남기나, 흙바닥에 족적을 남기나 똑같았을 것 같으니까.
그때 진유성이 아놀드 벡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드벡아, 진짜 그러는 거 아니다.”
“네?”
“네가 아무리 SSS급이라지만 다른 각성자들 무시하고 그러면 안 된다고.”
“제가 언제……?”
“내가 여기서 힘을 썼던 건 저 친구에게 깨달음의 단초를 주기 위해서였다. 깨달음이란 허상과도 같아서 아차 하는 순간 사라지기 마련이거든.”
“……?”
“근데 뭐? 밖에서 해? 그러다가 깨달음을 얻을 시기를 놓치면?”
“…….”
“너는 SSS급이니, 너보다 등급 낮은 각성자의 깨달음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냐?”
“그게 아니고…….”
“안이고 밖이고 중요한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지금, 바로, 해야 했던 것이다!”
장황하게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한 진유성이 각성자에게 다가갔다.
“아놀드 벡의 말은 신경 쓰지 마라. 널 무시하려던 게 진심은 아니었을 거다.”
“어……. 네.”
“내 가르침이 도움이 됐느냐?”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빈말은 아니었다.
신체 밸런스의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건, 죽음과 직결될 수도 있는 문제였다.
“감사합니다.”
각성자의 인상에 진유성이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는 작게 속삭였다.
“그럼 건물의 수리비는 네가 내는 걸로 하자.”
“……네.”
* * *
잠깐의 소동 뒤에 펜션 거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각성자들이 스킬을 써서 뒤집어진 시멘트를 원상복구 시키고, 조각난 장판을 대충 이어 붙인 것이었다.
물론 난방 시스템은 고칠 수가 없으니, 수리비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었다.
그래도 먼지 바닥에서 머물 수는 없으니 각성자들이 나선 것이었다.
그사이, 진유성과 상림은 아놀드 벡의 부탁으로 잠깐 자리를 비웠다.
지금부터 진유성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인데, 진유성이 있으면 편하게 말을 할 수가 없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정돈되고, 아놀드 벡이 편안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문수혁 씨와 차정명 씨를 제외하면 모두 초면이군요. 하지만 전 정말로 팀 우산도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아놀드 벡이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띤 채 말을 이었다.
“독도에 S급 게이트가 열렸을 때가 생각나는 군요. 그때 전 한국이 독도를 포기할 줄 알았습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죠. 모든 사람들이 그랬습니다.”
“특히 일본이 제일 확신했죠.”
“그랬었죠. 하지만 여러분이 일어났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죽음을 자처하고, 죽음을 감내하고.”
아놀드 벡의 말에 우산도 멤버들의 얼굴에 자부심이 묻어났다.
당시의 우산도 멤버들이 엄청나게 거창한 마음으로 독도 S급 게이트에 도전한 건 아니었다.
작은 마음과 작은 마음들이 모여들어 벌어진 큰 뜻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안다.
우산도란 이름이 앞으로 수백 년, 어쩌면 수천 년 동안 역사책에 기록될 것이란 걸.
그게 그들에게 자부심을 주었고, 자부심은 자긍심을 주었다.
한국이 우산도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각성 사회를 구성할 수 있는 이유기도 했다.
하이랭커와 랭커로 이루어진 99명의 각성자들의 엄청난 유대감.
99명에게 부채 의식을 느끼는 수백 명의 연대감.
SG 내부의 리포트에서 본래 멕시코 다음의 각성 자치 독립 국가를 한국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헝가리가 EU에 불만을 품고 선수 쳤지만, 다음 타자는 확실히 한국으로 보고 있었고.
“그래서 여러분을 꼭 만나 보고 싶었습니다. 아놀드 벡입니다.”
SG를 대표하는 인사답게 아놀드 벡의 언변은 부드러웠다.
그에게는 엠페러라는 별명에 어울리는 품위와 고아함이 있었다.
언노운 엠페러의 쪼잔함과 다르게.
“근데 어찌 이리 한국말이 유창합니까?”
“정신계 각성자들의 도움을 받으면 언어를 금방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문자를 읽진 못합니다.”
“아하.”
아놀드 벡이 워낙 첫 마디를 부드럽게 열었기 때문인지, 그들의 만남은 꽤 활기찼다.
각성자들은 평소에 궁금했던 것을 아놀드 벡에게 물었고, 아놀드 벡은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아놀드 벡은 틈틈이 문수혁과 차정명을 살폈다.
진유성에게 언질을 듣긴 했지만, 정말로 두 사람은 SSS급에 도달한 것 같았다.
진유성을 만나기 전의 자신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이 좁은 한반도에 SSS급 각성자가 두 명이라…….’
아직 문수혁과 차정명은 승급 심사를 신청할 마음이 없어 보이지만, 승급하는 순간 세상이 난리가 날 것이었다.
그뿐인가?
우산도 멤버들 전원이 엄청난 성장세를 기록 중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은 독도 게이트에서 값진 경험을 했다.
죽음으로 자신을 던져봤고, 거기서 발버둥을 쳐봤고, 진유성에게 조언을 얻었다.
이 세 가지 것들이 어우러지며 우산도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A급 스킬술사가 S급이 되기도 했고, S급 각성자가 SS급을 넘보고 있기도 했다.
아마 조금의 시간이 더 흐르면 우산도의 99명은 한국 랭킹 1위부터 랭킹 99위까지를 차지할 것 같았다.
아놀드 벡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순간.
차정명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저희는 SG가 우산도를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산도가 아니라, 각성자 집단을 긍정적으로 보지 않죠.”
SG는 각성자의 파벌이나 연대를 경계하는 편이었다.
이는 각성 파벌이 생긴 국가에 너무 많은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한국은 KPM 오픈 이후로 각성 독립이 예정된 국가기도 하고요. 여러모로 SG가 좋아하진 않죠.”
“한데 왜 아놀드 벡은 저희에게 긍정적인 시그널을 보내십니까?”
차정명의 말처럼 아놀드 벡은 한국에 많은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개인이 보유한 마정석을 KPM에 팔기도 했고, 지금도 우산도 멤버들과 만나고 있다.
물론 KPM이 SG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건 아니다.
SG는 언젠간 자신들의 쇄락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그 영향력을 마켓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시아 국가에서 한국이 선택받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KPM이 SG의 대리인인 건 아니다.
조력자에 가까웠고, 조력자는 언제든지 욕심을 품을 수 있는 존재였다.
KPM이 마음만 먹는다면 SG의 입김을 무시하고 홀로 서기에 도전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아놀드 벡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SG를 대표하지만, 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SG가 아닙니다.”
“그럼?”
“평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완벽히 통제되는 게이트의 위험, 혹은 게이트의 위험이 종식되는 것.”
“게이트 종식……?”
“그렇기 때문에 저는 언노운 엠페러와 뜻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게이트 사태를 끝낼 수 있다는 겁니까?”
“저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언노운 엠페러는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산도 멤버들은 본능적으로 지금부터 아놀드 벡이 꺼낼 말이 엄청난 비밀이라는 걸 깨달았다.
각성 사회 초창기에 인류의 꿈은 게이트 사태가 끝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게이트 사태가 끝나는 순간 오히려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마정석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산업이 모두 무너질 것이고, 각성자들은 전부 백수가 될 것이다.
몬스터의 피를 밟고 서는 것에 익숙한 각성자들이 백수가 되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인류의 소망은 게이트 사태의 종말이 아니다.
게이트 리스크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게이트가 전혀 위험하지 않고, 마정석을 뽑아내는 공장 정도로 여겨지는 것.
아놀드 벡이 말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게이트 사태가 종식되는 것보다는 리스크가 사라지는 게 좋다는 걸. 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왜죠?”
“게이트는 인위적이니까요. 누군가가 의도를 가지고 만든 것이니까요.”
이미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었던 문수혁, 차정명을 제외한 각성자들은 침묵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들이 격렬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 건, 이 같은 이야기를 한지후 소장에게 종종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놀드 벡이 좌중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들려 드릴 이야기는 제가 오랫동안 추적하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막상 진실을 알려 준 것은 언노운 엠페러였습니다.”
아놀드 벡은 오랫동안 게이트를 추적해 왔지만, 모든 진실을 알진 못했다.
그가 진실을 알게 된 것은 진유성을 만나면서였다.
그렇게 아놀드 벡이 게이트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세 명의 마도사.
그들을 배척하는 아카샤의 절대 의지.
아카식 레코드를 오염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게이트.
인류의 영성을 착취하려는 마도사들의 계획까지.
우산도 멤버들의 입장에서 쉽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