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203화 (203/337)

<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03화>

* * *

99명의 우산도 멤버들.

정확히는 사건의 전말을 아는 차정명과 문수혁을 제외한 97명이 스팸 메시지에 당황하고 있을 때.

“흠.”

스팸 메시지를 만든 당사자인 진유성은 태연하게 역사 수업을 듣고 있었다.

물론 진유성이 스팸 메시지를 직접 쓴 건 아니었다.

상림에게 쓰라고 한 것이었다.

-무슨 내용을 쓰라고요?

-우산도 멤버들에게 지존천마를 정독하고 오라는 내용.

그 뒤, 진유성은 상림이 써온 몇 가지 버전 중에서 하나를 골랐다.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현재 우산도 멤버들에게 뿌려진 ‘스팸 메시지’의 형태는 상림이 장난으로 쓴 것이었다.

때마침 상림에게 <스마트폰 특가 구매 기회> 따위의 광고 메시지가 오는 바람에.

아무튼 진유성이 우산도 멤버들에게 소설 지존천마의 독서를 종용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설명을 빠르게 하기 위함이었다.

진유성이 중원에서의 삶은 방대해서 하나하나 풀다 보면 끝이 없다.

그러니 인생 여정의 초반 부분은 적당히 설명하고 넘어가야 했다.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를 떠나서 말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은 자신의 인생 여정을 건너뛰고 싶지 않았다.

특히 고려의 왕자로 태어나, 역성 혁명의 피해자가 되고, 중원의 도망쳐서, 결국 멸마대에 입단하는 부분이 그러했다.

이 부분은 길고 긴 진유성의 인생 중에서도 가장 처절했던 투쟁의 역사였다.

물론 생존대를 꾸리고 정도맹의 추격에서 도망치는 것도 처절했다.

하지만 그때의 진유성에게는 무공이 있었다.

세상 사람들은 진유성이 검기를 사용할 뿐 검강을 쓰지 못하니 ‘일류 무인’이라고 정의했다.

진유성도 남들이 자신을 일류 무인이라고 여기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진유성은 늘 마음속에 한 가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정도맹에서 파견 나와, 복면을 쓰고, 멸마대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교관들.

그들을 검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절정의 무인들이었다.

심지어 무당에서 파견 나왔던 교관은 절정의 끄트머리에서 초절정을 엿보고 있다고들 했다.

그러나 진유성은 그들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죽고 죽이는 생사결 위에서 교관들을 만난다면…… 죽일 수 있지 않을까?’

단순한 오만으로 취급할 수도 있겠지만, 진유성은 무에 관한한 말도 안 되는 직감을 가지고 있었다.

진유성의 이러한 의문이 풀린 것은 멸마대를 도망쳐 생존대주가 되는 순간이었다.

“눈치가 빠르구나.”

가장 먼저 그들의 앞을 막아선 것이 멸마대의 교관들이었으니까.

거기서 진유성은 교관 넷을 죽였다.

그 안에는 초절정을 노리던 무당파의 교관도 있었고.

진유성의 직감이 틀리지 않은 것이었다.

이처럼 생존대의 투쟁은 진유성의 무(武)가 정도맹의 무(武)와 부딪치는 싸움이었다.

상대가 거인일지언정 진유성의 손에도 칼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왕자에서 반란군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었던 어린 시절은 그러지 못했다.

진유성은 무공을 배운 적이 없었고, 고된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었고, 배고픔을 참아 본 적이 없었다.

그 순간이야말로 진유성의 인생에서 가장 처절한 순간이었으며, 그 처절함을 기억하기 때문에 자신이 끝까지 살아남은 것이었다.

‘이건 알려 줘야지.’

그래야 우산도 자식들이 자신의 위대함을 실감할 수 있다.

무공도 없이 반란군을 뿌리치고, 국경을 넘었던 현묘하고 놀라운 지혜!

8살의 나이라고 믿기지 않았던 과감한 결단력!

왕자의 신분이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적응력!

이 모든 걸 알려주고 싶었고, 결국 진유성이 선택한 것이 지존천마의 정독이었다.

거기에는 대부분의 진실이 들어있으니까.

그러니까 진유성이 괜히 지존천마를 보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추천란에 독후감을 쓰라고 한 건,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였지만.

그때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이제 마지막 수업만 들으면 끝이다.

그렇게 쉬는 시간이 다가오자, 진유성의 옆쪽에 앉아있던 지종수가 책상 위로 철푸덕 엎어졌다.

대정고의 학생들은 개인 책상을 쓰고, 책상 간의 거리가 제법 있는 편이었다.

그리고 지종수의 위치를 바로 옆이라고 보긴 애매했지만, 어쨌든 진유성과 가장 가까운 축이었다.

다음으로 가까운 건 왼편의 상소윤이었고.

책상에 얼굴을 대고 하품하던 지종수가 문득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아까는 다시 잠들어 버렸지만, 분명 친구들이 진유성의 옷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흥미로운 주제였다.

“야, 진유…….”

지건.

지종수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교실의 평화를 지킨 진유성이 화장실로 향했다.

그사이 친구들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잠들어있는 지종수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종수, 어제 밤 샜나?”

“그런가 본데? 또 자네.”

“지종수 목소리가 들렸던 거 같은데?”

만약 상림이 지금의 지종수를 봤다면 동병상련이 폭발해 눈물을 흘렸을 지도 몰랐다.

* * *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진유성은 상소윤을 집까지 데려다 주었다.

상소윤이 홀로 밤길을 다니면 유혜연이 걱정한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집에 도착하니 유혜연이 집 앞에 나와 있었다.

“왜 나와 있어? 기다렸어?”

만삭의 유혜연이 집 앞에 나와 있자 상소윤이 후다닥 달려갔다.

그러자 유혜연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쓰레기 버렸는데? 분리수거 날이라서.”

“에이, 뭐야.”

진유성은 유혜연이 말은 그렇게 했어도, 그녀가 쓰레기를 버리고 잠깐 서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저 멀리서 걸어오는 게 상소윤과 자신이라는 걸 알고.

“오늘은 별일 없었어?”

“어, 응. 별일 없었어.”

상소윤이 진유성을 슬쩍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일이 있을 법하면 진유성이 알아서 해결한다.

상소윤은 종종 진유성이 진상들을 재우는 것 같다는 의심을 하고 있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말이 통하는 상대면 타일러 보내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진유성이 가만히 쳐다보면 사람들은 꽤 고분고분해진다.

‘무의식적으로 간첩이란 걸 느끼는 건가?’

어쩌면 진짜일 수도 있다.

사람도 동물이라서 자신보다 강한 존재를 본능적으로 알아본다지 않은가.

그러니 진유성은 같이 일을 하기에 꽤 좋은 파트너였다.

“사장님한테 곧 그만둔다고 말씀은 드렸고?”

“응. 출근해서 말했어.”

“뭐래?”

“알았다던데?”

진유성과 상소윤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 어느덧 2주가 지났다.

두 사람은 한 달을 채우고는 그만둘 예정이었다.

이것은 유혜연의 생각이었다.

유혜연은 상소윤과 진유성이 생각보다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것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녀가 예상하기로 상소윤은 일을 하기 싫다고 징징 거리고, 진유성은 허구한 날 사고만 칠 거 같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철이 들었는지.’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성실하다.

또한 돈이란 걸 얼마나 어렵게 버는지도 약간은 알게 된 것 같다.

하루에 4시간씩 주 5일을 일해도 백 만 원도 못 받는다는 걸 알고 상소윤은 충격을 먹었으니까.

아무튼 유혜연은 두 사람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게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해서 편의점 알바를 시킬 수는 없다.

아무리 공부를 안 한다고 해도-물론 같이 공부를 안해도 성적은 극과 극이지만- 고3은 고3이니까.

처음부터 딱 한 달만 채우고 그만두게 할 생각이었다.

유혜연이 그런 생각을 하며 진유성에게 물었다.

“유성이는 지금 가지? 택시 잡아 줄까?”

“이 앞에 많은데요.”

“어서 다녀와.”

진유성은 아르바이트가 끝나는 즉시 LF 건설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상림이 불러서지만, 실제로는 진유성이 그렇게 시킨 것이었다.

상림에게 중요하게 해 줄 이야기가 있는데, 집에서 하긴 애매했다.

바로, 신주청과 관련된 것이었다.

“어서 가. 늦겠다.”

진유성은 유혜연에게 인사를 하고는 상림의 집 앞을 떠났다.

그러다 문득 기감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았다.

유혜연과 상소윤이 그대로 서있다.

한데…….

진유성은 두 사람의 모습에서 다른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라버니는 이름이 뭐예요?”

“얘가 오라버니는? 무사님들이라고 해야지.”

진유성이란 존재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었던 화전민 모녀.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이 떠올랐다.

그때 진유성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을 안 유혜연이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진유성은 두 사람을 한동안 쳐다보다가 택시를 잡았다.

* * *

상림의 LF 건설은 명동에 있었다.

이는 진유성이 처음 한국에 도착해 서울역 게이트를 클리어하고 상림을 만날 수 있는 이유였다.

우연이라고 보기엔 놀라운 운명이었다.

LF 건설 사옥에 도착한 진유성이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긴 곳은 지하 주차장이었다.

아직 운전을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지 않아 탈 수 없지만, 이곳에는 진유성의 애마가 잠들어 있다.

페라리.

“고놈 참, 아름다운…….”

아름다운 자태라고 좋아하려던 진유성이 멈칫했다.

혼잣말 좀 그만하라는 상소윤의 잔소리가 떠올라서였다.

잠깐 자신의 애마를 구경한 진유성은 상림의 집무실이 있는 최상층으로 향했다.

비서들은 전부 퇴근했고, 진유성에게는 상림의 ID 카드가 있었기 때문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몇몇 돌아다니는 직원들도 진유성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 조카가 온다는 걸 미리 말한 것 같았다.

그렇게 상림의 집무실에 도착한 진유성은 소파에 앉아서 하릴없이 시작을 보냈다.

괜히 유투브에 들어가서 ‘옷 못 입는 남자들의 특징’ 같은 걸 보다가 부들거리기도 했다.

전부 자신이 해당되는 특징들이었으니까.

‘이 자식은 언제 오는 거야?’

진유성은 투덜거렸지만 재촉하진 않았다.

본래 상림은 다른 일정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핸드폰으로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상림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문수혁이었다.

-저랑 정명이도 그 소설을 읽어야 합니까?

두 사람은 진유성과 이미 만난 적이 있으니 안 읽어도 되나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진유성은 단호하게 ‘ㅇ’을 두 개 적었다.

‘생각해 보니까 댓글을 좀 지워야겠는데?’

<지존천마>에는 현실성을 지적하는 독자들의 댓글들이 좀 많은데, 지금까지는 그런 댓글들을 놔두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댓글들이 팀 우산도 멤버들의 선입견을 만들 수도 있다.

안 그래도 믿지 못할 이야기인데, 지레 말도 안 된다고 정의할 수도 있으니까.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상림의 책상 위에 놓여있는 핸드폰을 발견하고는 손을 뻗었다.

진유성은 얼마 전에 상림에게 놀란 적이 있었다.

└너무 재미있게 보고 갑니다. 작가님.

└소설 너무 재미있어요.

상림이 말없이 자신의 글에 남긴 댓글 때문이었다.

응원 댓글을 남겼으면 티를 낼 법도 한데, 상림은 그러지 않았다.

솔직히 크게 감동했다.

진유성은 그때의 일을 상기하며, 상소윤 대신 상림에게 달아 둔 사랑의 매를 없애 주기로 했다.

‘이 핸드폰에도 자동 로그인이 되어 있으려나?’

진유성은 그런 생각을 하며 천마신교가 연재되었던 사이트에 들어갔다.

지금은 연재를 멈췄지만 당시의 댓글은 그대로 있으니까.

다행히 자동 로그인이 되어 있었다.

진유성은 마이페이지에 가서 ‘내가 쓴 댓글 모아보기’를 클릭했다.

거기에는.

└작가놈, 인성 별로일 게 뻔히 보이네.

└딱 봐도 주변 사람들이 싫어할 듯.

└그렇게 살지 마쇼ㅉㅉ

└너 인성 문제 있어?

상림의 사인(死因)이 적혀 있었다.

죽음의 원인.

그때였다.

“아, 교주님.”

문이 열리며 대표실로 상림이 들어왔다.

“언제 오셨어요?”

“상림아.”

“네?”

“왼손이냐, 오른손이냐.”

“네? 갑자기 뭐가요?”

“어느 쪽 손으로 댓글을 적었냐고.”

“댓글이라니 무…….”

그 순간 상림의 눈에 진유성이 들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자신의 업무용 핸드폰.

저 핸드폰으로 자신이 한 짓.

“교, 교주님!”

상림이 대경실색했지만, 이미 늦었다.

스릉.

“둘 중 하나는 자른다.”

진유성이 입멸검을 꺼내서 달려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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