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0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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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명제국을 대표하는 지역은 북경이고, 북경을 대표하는 지역은 황실은 품은 자금성이다.
하지만 자금성을 대표하는 지역은 황제가 머무는 건천궁이 아니었다.
천신이 머무는 천신궁이었다.
어떻게 보면 역설적인 일이지만, 이제는 대명제국의 그 누구도 황제가 만민을 굽어살핀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황제 위에 황제를 굽어 살피는 천신이 존재한 지 100여 년이 지났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천신궁 안에, 9할의 무를 품은 진유성이 있었다.
프스스스.
진유성의 온몸에서 약동하는 기운이, 들숨과 날숨을 반복할 때마다 커졌다가 작아졌다를 반복했다.
그것은 필시 호흡과 같았지만, 호흡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파괴적이었다.
진유성의 기운이 숨을 들이킬 때마다 천신궁 인근의 기운들이 흡입력을 이기지 못하고 빨려 들어왔다.
진유성이 기운이 숨을 뱉을 때마다 엄청난 기운이 폭사되며 내공의 농도를 농밀하게 만들었다.
“모, 모두 물러서라!”
천신궁 주변을 지키던 무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더 버티다가는 주화입마에 빠질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천신궁의 기왓장을 가루로 만들던 거대한 기운이 진유성의 몸으로 빨려 들어왔다.
마침내 진유성이 눈을 떴다.
반박귀진의 경지에 올라 모든 기운을 완벽히 갈무리할 수 있음에도, 그의 눈엔 정광이 흘렀다.
이것은 그만큼 어마어마한 기운을 품은 탓이었다.
숨을 고르던 진유성이 눈앞의 남자에게 입을 열었다.
“구경 중인가?”
“입신의 무공이란 몇 번을 봐도 신비하군. 마력 코어를 존재의 격과 결속시켜 영혼을 연단하다니.”
“그렇게 말해도 난 모른다.”
“단전을 인간이란 소우주와 합치시켜 삼라만상의 지고한 깨달음을 얻는다. 이건 어떤가?”
“들어줄만하군.”
코웃음을 친 진유성이 옆쪽에 내려놓은 곤룡포를 어깨에 걸치며, 입멸검을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는 말했다.
“여긴 어쩐 일인가. 마도사들의 첫째여.”
“말투가 참으로 예스럽군. 지구에서 살다가 와서 그런가?”
“잡설이 길군. 본론만 말하라.”
“야박하군. 우리가 잡설을 나눌 상대는 서로뿐이지 않나?”
마도사들의 첫째와 9할의 무를 품은 진유성은 손을 잡았고, 이제는 같은 목적을 공유하고 있었다.
그들은 ‘진짜 진유성’을 죽이기 전까지는 같은 편이었다.
하지만 진유성을 죽인 이후, 그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진유성이 한참 동안 말이 없자, 마도사들의 첫째가 잡설을 멈췄다.
“내가 돌아간 이후 중원의 시간은 얼마나 흘렀지?”
“반년이다. 지구란 행성에서는 얼마의 시간이 흘렀지?”
“석 달이 지났다.”
“두 배의 시간 차이가 있는 건가?”
“그렇진 않다. 시간의 편차가 불규칙적이지.”
잠깐 뭔가를 생각하던 진유성이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본좌를 찾아왔지?”
“지구에서 아주 재미있는 걸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거?”
“이 얼굴을 알고 있나?”
마도사의 첫째가 손을 휘두르자, 누군가의 얼굴이 허공에 맺혔다.
그것은 사진만큼이나 정교하고, 동영상만큼이나 생생한 것이었다.
9할의 진유성이 허공에 맺힌 얼굴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신주청이군.”
“신추정?”
“내 수하였다. 얼굴이 묘하게 다른 부분은 있지만, 틀림없다.”
신주청은 로스차일드와 손을 잡고 지구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본래는 타인의 몸에 들어갔기 때문에 외양이 전혀 달라야 했다.
하지만 그가 품고 있는 의념의 힘이 신체의 관성을 초월했기 때문에 육체가 의념을 따라 변화한 것이었다.
9할의 진유성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만, 눈앞의 얼굴이 신주청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군. 본래 중원 출신의 무인이었다는 말이지…….”
“무슨 일이지?”
“이자가 둘째와 손을 잡았다.”
“살아 있다는 말인가?”
“환생이란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지구에서 다시 태어났다. 둘째의 힘을 빌어 기억까지 가진 채로.”
진유성이 냉엄한 태도로 물었다.
“어차피 둘째와 셋째는 네 권속이 아니던가? 너로 인해 탄생한.”
“틀린 말은 아니다. 그들의 마도 코어는 나의 격에서 떼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코어를 흡수하는 것만으로 그들을 죽일 수 있지. 하지만…….”
첫째가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둘째가 신주청과 격을 섞은 것 같다. 낮은 격의 존재와 격을 섞으면 힘을 잃기 마련인데, 그렇지 않은 게 신기하군.”
“벽을 넘지 못했을 뿐, 그는 강한 무인이었다.”
첫째는 진유성의 목소리에서 기꺼운 감정을 느꼈다.
대명제국의 만민을 착취하는 진유성이 보일 법한 감정은 아니었다.
‘확실히 감정을 잃어버린 건 아닌 모양이군.’
마도사들의 첫째는 진유성이 상실의 공간에서 잃은 ‘--’가 감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본인은 스스로에게 희노애락이 존재한다고 단언했었고, 그 말은 사실인 모양이었다.
마도사들의 첫째가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9할의 진유성이 비웃음을 띤 채 물었다.
“너와 나의 약조는 내 눈 앞에 1할의 진유성을 데려오는 것까지다. 너희 형제끼리의 싸움은 내 몫이 아니다.”
“본래라면 그렇지. 하지만 네가 그들에게 힘을 보태고 있다.”
“내가? 내가 힘을 보태고 있다고?”
“그래.”
“이해할 수 있게 말하라.”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네가 두 세계에 대한 진실을 알 필요가 있지.”
첫째가 환상을 보여 주기 위해 손을 휘둘렀지만, 이윽고 인상을 찌푸렸다.
진유성이 그의 환상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환상을 받아들여라.”
“거부할 수 있는지 궁금해서.”
9할의 진유성이 손가락을 까딱하자, 첫째가 다시 손을 휘둘렀다.
9할의 진유성의 눈앞에 환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지구와 중원은 본래 동일한 행성의 쌍둥이 차원이었다.]
이것은 지구의 진유성이 전지의 화신인 타트바에게 받았던 환상과 거의 비슷했다.
9할의 진유성은 첫째의 기억을 엿본 적이 있기에 보다 쉽게 진실을 받아들였다.
[……중원에 남은 전능함은 상실의 공간을 넘어 전지함을 포식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전능의 존재라고 하더라도, 상실의 공간의 법칙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전능의 존재는 전능(全能)의 9할을 잃어버리며 자아의 9할을 보전했다.
그렇게 잃어버린 전능의 9할은 중원에 남았다.
입멸공(入滅功)이란 이름으로.]
환상을 보던 9할의 진유성이 눈을 번뜩였다.
늘 궁금했었다.
입멸공이란 가공할 힘이 대체 왜 해남의 이름 모를 섬에 잠들어 있었는지.
그 뒤로도 환상이 이어졌다.
지구에 도착한 전능의 존재는 전능의 1할을 바탕으로 힘을 키웠고, 마침내 전지의 존재, 아카샤를 습격했다.
하지만 결과는 양패구상에 가까운 아카샤의 승리였다.
아캬샤는 전능의 존재를 차원에서 추방시켰다.
대부분의 힘을 잃어서 더는 세상을 경영할 수 없게 되었고, 간신히 아카식 레코드를 유지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어쨌든 승리한 것이었다.
전능의 존재는 차원의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 다시 한 번 상실의 공간에 들어갔지만, 위상의 수호자를 이기지 못했다.
프스스스스.
그때 첫째가 펼치던 환상이 끝이 났다.
첫째가 진유성을 향해 물었다.
“그가 뭘 잃었을 거 같나?”
“자아겠지. 지구로 넘어갈 때 전능의 9할을 포기하고 자아를 유지했다고 했으니까.”
지구의 진유성이 무의 9할을 포기하고, ‘--’의 9할을 유지했던 것처럼.
“맞다. 힘을 키울 순 있지만, 신의 힘을 품을 그릇은 키울 수 없으니까.”
“자아를 잃어버린 거대한 힘이 이곳으로 넘어왔다는 건데…….”
잠시 생각하던 진유성이 물었다.
“혹, 자아를 잃어버린 전능의 존재가 네놈인 것이냐?”
“호. 바로 알아차렸군. 릴리스란 마녀가 전능의 힘에 욕심을 내어 날 빚어냈지.”
첫째가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어찌 보면 우리는 형제가 아닌가? 너와 나. 둘 다 전능의 힘을 품은 존재니까.”
진유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네가 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냐? 내가 로스차일드를 도와주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아직 눈치를 못 챘나? 여기서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것이 있지 않나?”
“뭐?”
“차원에서 추방을 당한 전능의 존재. 그가 중원에 남긴 막대한 힘은 내가 계승했다. 그렇다면 지구에 남은 자아는 어디로 갔지?”
“그게 왜 지구에 남았지? 추방당한 뒤에 상실의 공간에 들었다고 했으니, 추방된 곳에 남았겠지.”
“추방이란 단어가 그리 간단하지 않거든. 자아는 분명 지구에 남았다.”
진유성이 물었다.
“설마 그 자아를 로스차일드가 흡수했다는 건가?”
“로스차일드, 아니면 신주청. 둘 중 한 사람일 확률이 매우 높다.”
마도사들의 첫째는 전능의 존재가 지구에 남긴 자아를 오랫동안 추적했다.
이는 자아보다는 그릇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신의 힘을 온전히 담을 그릇.
그 그릇을 얻는 순간 첫째는 신으로 격상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한데 얼마 전에 이상한 점을 깨달았지.”
첫째가 말을 이었다.
“중원의 절대자. 그대는 주기적으로 천신궁의 게이트에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그렇다는 건, 그대가 보유한 무의 1할과 ‘--’의 9할을 품은 존재가 지구에 계속해서 나타나야함을 뜻한다.”
9할의 진유성은 이어질 첫째의 말을 예상했다.
“하지만 없었군?”
“맞다. 누군가 한 발 빠르게 그러한 존재들을 사냥하고 있지. 왕후라는 이름을 붙여서.”
“신주청…….”
“그래. 그들이 신의 자아를 얻어 네가 보내는 ‘무’의 1할을 흡수하고 있는 듯하다.”
진유성이 보내는 ‘무’에는 ‘전능’이 담겨 있다.
그러니 전능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가졌다면 얼마든지 흡수하여 강해질 수 있다.
진유성이 물었다.
“확실한가?”
“확실하다곤 말할 수 없지만. 생각해 보면 간단하다. 누가 가장 먼저 파편에 접근하는가를 생각해 봐라.”
“…….”
“전능의 파편에 가장 먼저 닿을 수 있는 자가 전능의 자아를 품은 존재겠지.”
마도사들의 첫째가 중원의 진유성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 더는 천신궁의 게이트에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
“나는 ‘--’를 완전히 비워 낼 때까지 게이트에 들어가는 걸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로 지구의 진유성을 죽일 것이다.”
“불가한 일이다. 0에 수렴한다는 것은 0을 의미하지 않는다.”
10%, 1%, 0.1%, 0.01%…….
중원의 진유성은 게이트에 들어갈 때마다 ‘--’의 90%를 잃어버리지만, 그것은 결코 0%가 되지 않는다.
0.00000000001%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0%가 아니다.
그러나 진유성은 마음먹은 일을 멈춘 적이 없었다.
그것이 설령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머뭇거리지 않는다.
“해 봐야 알겠지. 0에 수렴하는 것이 0이 될 수 없는지는. 그 누구도 해 보지 않은 일이 아닌가?”
“고집을 부리면 널 죽일 수밖에 없다. 난 더 이상 둘째를 불확실한 존재로 키우고 싶지 않다.”
“날 죽일 수 있기는 한가? 마도사여?”
진유성과 첫째의 사이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하지만 의외로 먼저 기세를 흐트러트린 것은 진유성이었다.
“우습군. 신이 되고자 하는 존재가 이토록 멍청하다는 건.”
“무슨 소리지?”
“따라와라.”
그 순간 진유성이 다짜고짜 천신궁을 박차더니, 끝없이 남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잠시 진유성을 쳐다보다가 뒤를 따랐다.
남쪽으로, 남쪽으로.
그렇게 몇 시진이 흐르자, 둘은 평범한 이들에게는 평생 동안 닿을 일이 없는 중원의 최남단에 도착해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속도였다.
“해남이로군.”
진유성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해남의 최남단에서 바다를 달려 더 남쪽으로 향했다.
그러자, 이름 모를 섬이 마법처럼 나타났다.
첫째의 마도술로 감지할 수 없는 섬.
전능의 힘이 담겨 있던 섬.
“여긴 왜 온 것이지? 어차피 빈껍데기가 아니던가?”
그러나 진유성은 대답 대신 섬에 안착해, 안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고오오오오-
거대한 진법을 마주했다.
“이, 이게……?”
놀라는 일이 드문 첫째가 깜짝 놀라서 진유성을 쳐다보았다.
첫째가 놀란 것은 섬의 존재나, 진법의 존재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진유성의 기억을 어느 정도 엿보았으니까.
첫째가 놀란 것은.
“어찌하여 힘이……?”
진법에서 느껴지는 농밀하고도 짙은 전능의 힘이었다.
이 안에는…….
전능의 존재가 남긴 힘이 있었다.
“마도사여. 묻겠다.”
진유성이 말했다.
“네 눈에는 내가 정체도 모를 힘을 계승해서 거들먹거릴 존재로 보이는가?”
“……!”
“내가 이 섬에서 얻은 것은 입멸검뿐이다. 생사입멸을 관장하는 이 힘은…….”
진유성의 손에서 푸른 불꽃이 일렁이며 파즈즈즈 하는 소리를 토해낸다.
“내가 빚어낸 것이다.”
첫째는 그 순간 자신이 ‘진유성’이란 존재를 잘못 판단했음을 깨달았다.
어찌하여 전능의 힘에 입멸공이란 이름이 붙었는가.
공(功)이라 함은 노력과 정성을 뜻하니, 전능의 힘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진유성은 전능의 힘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힘을 키우는 방법을 배운 것뿐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이자는 이미 신이 아닌가?’
첫째는 난생 처음으로 자신이 아닌 존재에게서 형용할 수 없는 아득함을 느꼈다.
그 순간, 중원의 진유성이 선언했다.
“지구의 진유성이 잃어버린 9할은 단순한 무가 아니다. 스스로가 빚어낸 신성이다. 그러니…….”
중원의 진유성이 하늘을 노려보았다.
아니, 차원 너머를 노려보았다.
“그는 내가 내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