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업하기 싫은 천마님 200화>
압구정은 워낙 번화가라서 사람들의 눈을 피할 곳이 마땅치 않다.
게이트 폭주 사태 이후 재건된 계획도시라서 더더욱 그런 경향이 있었고.
설령 사람들의 눈을 피한다고 해도 도처에 널려 있는 CCTV가 문제가 된다.
물론 진유성 혼자서 CCTV를 피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그가 따라가고 있는 놈들의 동선이 전부 찍히고 있다는 것이었다.
“흠.”
진유성은 한동안 CCTV의 눈을 피하며 그들의 뒤를 밟았지만, 마땅한 장소가 나오지 않았다.
‘김정철한테 부탁하는 게 낫겠군.’
결정을 내린 진유성이 허공섭물의 수법으로 두 명의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빼냈다.
그리고는 신분증을 꺼내고는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신분증을 맡기면 김정철이 알아서 뒷조사를 해 줄 것이었다.
그렇게 진유성이 편의점으로 돌아가려던 순간이었다.
“아, 씨바. 핸드폰 안 되네.”
“바꿀 때가 됐나 보지.”
“지랄 마. 이거 산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야, 담배나 피고 가자.”
두 사람이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압구정 공원의 뒷골목으로 향했다.
압구정 공원 자체는 번화가와 이어져 있지만, 그들이 담배를 피려는 뒷골목은 한산하다.
주변을 둘러보니 CCTV도 2대밖에 없었다.
스스스.
진유성은 기운을 뿜어 두 대의 CCTV를 부숴 버리고는 손에 들린 신분증을 확인했다.
김일도. 박기호.
평범한 이름이고, 평범한 놈들이다.
담배를 입에 물고 나누는 대화는 여타 대학생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일견 천진난만해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진유성은 그들의 폭력성을 목도했다.
왕따 피해자를 고등학교 시절에 괴롭힌 것만으로도 모자라서 우연히 만나자 연락을 취하려고 했으니까.
중원에서도 느꼈지만 평범하다는 것은 절대로 선하다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약자라고 늘 선하지 않고, 피해자라고 늘 선하지 않다.
관과 무림의 수탈을 피해 도망쳐 살던 화전민들의 주된 수입원 중 하나가, 떠돌이 아이들을 붙잡아서 노예상에 파는 것이니까.
누군가의 피해자는 누군가의 가해자가 될 수 있고, 누군가의 약자는 누군가의 강자가 될 수도 있었다.
선과 악은 관계에 따라 나눠지지 않는다.
그저 품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유성이 고독함을 참아 가며 백 년간 중원을 경영한 것은, 적어도 선한 이들이 선할 수 있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생존대를 향해 호의를 베풀었던 화전민 모녀는 베풀었던 호의 때문에 죽었다.
만약 세상이 조금만 정상적이었다면, 그저 호의를 베풀었단 이유로 죽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래서 진유성은 선의가 선의로 끝나는 세상을 원했다.
정상적인 인생들이 얽혀서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사회를 원했다.
그렇다고 진유성이 모든 악을 뿌리 뽑겠다는 탁상공론을 펼친 건 아니었다.
아무리 세상이 어지러워도 선함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아무리 세상이 평화로워도 악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악은 뿌리 뽑을 수 없다.
위정자가 악을 뿌리 뽑겠다는 망상을 품는 순간, 백성들은 힘들어질 뿐이다.
그러니 악은 다만 징죄할 뿐이다.
악을 목격한 매 순간 참고 넘어가지 않아야 할 뿐이다.
진유성이 목격자도 없고, CCTV가 부서진 뒷골목에 서 있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었다.
진유성이 인벤토리를 열어서 오랜 만에 아이언맨 헬멧을 썼다.
이놈들을 처음 만날 때 썼던 것이니, 적절했다.
“뭐야, 한 대 더 펴?”
“어.”
“꼴초 새끼.”
“지는.”
진유성이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는 김일도와 박기호가 또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한데, 채 한 모금을 빨기도 전에 담배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김일도 담배를 주워서 무는데, 다시 한번 담배가 바닥에 떨어졌다.
담배가 입에서 떨어지는 건 종종 있는 일이지만, 두 번 연속은 좀 이상하다.
김일도가 박기호를 쳐다보는데, 박기호의 입에서도 담배가 흘러내렸다.
이번엔 담배가 떨어진 모양이 좋지 않았다.
담뱃불이 그의 손등을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
박기호가 화들짝 놀라서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분명 ‘아, 뜨거!’ 따위의 소리를 질렀던 것 같은데, 아무런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진유성이 탄지공으로 두 사람의 아혈을 짚은 탓이었다.
아혈을 짚으면 안면 근육과 턱관절이 마비되어서 말을 할 수가 없다.
당연히 담배를 물고 있을 힘도 들어가지 않고.
“으으으어.”
“어으어!”
놀란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며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내는 순간, 골목 어귀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김일도와 박기호는 골목으로 들어온 사람이 담배를 피러온 다른 행인인 줄 알았다.
그래서 도움을 요청하려 했다.
갑자기 말을 할 수 없게 됐으니 119를 부를 수도 없다.
하지만 행인의 모습을 보는 순간, 두 사람은 겁에 질렸다.
“으읍!”
“읍!”
어느 날 나타나 그들의 팔꿈치를 부러트려 버렸던 아이언맨 헬멧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소리를 질렀지만 읍읍 거리는 소리만 날 뿐, 크지 않았다.
그나마 읍읍 거리는 소리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안면 근육과 턱관절이 완전히 마비된 것이었다.
조용해진 그들의 앞에 나타난 진유성이 입을 열었다.
“그날 이후, 다른 각성자를 만난 적이 있나?”
두 사람의 눈에 공포가 스쳤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팔꿈치가 부러져서 얼마나 힘들었던가.
김일도와 박기호는 집에 돈이 많아서 깔끔하게 회복했지만, 돈이 없었던 친구들은 여전히 후유증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겁에 질려서 진유성의 질문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저 어떻게든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칠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새 진유성이 마혈까지 짚어 버렸기 때문에 움직일 수도 없었다.
아이언맨 헬멧을 쓴 진유성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 이후, 다른 각성자를 만난 적이 있냐고 물었다.”
진유성이 내공을 이용해 암시를 걸었다.
암시는 복잡한 명령을 수행할 수 없다.
한국의 무협 소설을 보면 사술이 만능처럼 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저 감정을 극대화하는 정도다.
지금 상황에서는 죽음의 공포를 느끼게 할 수 있고.
두 사람은 대답을 하지 않으면 금방에라도 목이 떨어질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잖아?’
김일도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놀랍게도 다시 목소리가 나왔다.
“어, 없어요!”
“없다고?”
“그…….”
김일도가 눈알을 굴리는 게 보인다.
소리를 질러서 근처 사람들의 주목을 끌까 말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진유성은 다시 김일도의 아혈을 짚을 수 있었지만 내버려두었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김일도가 소리를 지른다면 그의 암시는 먹히지 않는 것이다.
무공을 익히지 않은 이들은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 자력으로 극복하지 못한다.
한데, 김일도가 소리를 지른다면?
어떤 이유로든 그의 암시가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풀썩.
소리를 지를까 말까 고민하던 김일도가 갑자기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극한의 공포를 이기지 못해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이게 정상이다.
이번엔 진유성이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고 있는 박기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박기호는 친구가 죽었다고 생각했는지 침을 질질 흘리며 겁에 질려 있었다.
“넌 그날 이후 다른 각성자를 만난 적이 있나?”
“어,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제발?”
“제, 제발 살려, 려, 려 주세요.”
턱이 파르르 떨려 제대로 말도 못하는 박기호를 보며 진유성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진유성은 분명히 선한 사람이다.
장난기가 많아 습관적으로 수하들을 갈구지만, 수하들도 알고 있다.
정말 중요한 순간이 오면 진유성이 그들을 위해 목숨도 걸어 줄 것이라는 걸.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이 천마신교주가 되어 중원을 일통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유성이 만인의 존경을 받는 신 같은 존재가 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유성이 인정이 넘쳐 우유부단하냐면, 그건 아니었다.
진유성은 마음을 먹는 순간 머뭇거리는 법이 없다.
제 아무리 아끼던 수하라도 숨겨왔던 악행이 드러나는 순간, 징죄한다.
그리고 지금.
진유성은 이들을 징죄하기로 마음먹었고, 그건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다.
다만…….
‘암시가 풀린 이유를 모르겠군.’
알 수 없다.
두 사람이 느끼고 있는 공포를 생각하면 그날의 암시도 풀릴 리가 없는데 말이었다.
진유성은 그 뒤로 내공을 이용해 이런저런 실험을 했지만, 여전히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 사이 기절했던 김일도가 깨어나서 무릎을 꿇고 빌기 시작했다.
“사, 살려주세요.”
“아무한테도 마, 말, 말하지 않을게요.”
진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이지 않는다.”
진유성의 말에 두 사람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토록 간단한 말에 격렬하게 반응한다는 건, 두 사람이 극한의 공포를 느껴 본능적으로 변했다는 걸 뜻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포 앞에서 이성을 날려 버리니까.
그 순간이었다.
진유성이 인벤토리에서 가짜 입멸검을 꺼내 들었다.
멕시코에서 가져온 가짜 입멸검은 가짜라고는 하나, 진유성이 알고 있던 입멸검과 꼭 닮았다.
심지어 백 년 가까이 사용하며 손때가 묻은 부분까지 닮았다.
‘이건 모조품이 아니라, 복제품이다.’
진유성은 가짜 입멸검이 진본을 보고 따라 만든 게 아니라, 진본을 그대로 복사한 물건이라는 걸 눈치 챈 상태였다.
이 말은 곧, 마도사들이 중원을 방문해 입멸검을 입수했다는 것이었다.
입멸검은 대단한 검이다.
인과율을 베어낼 수 있는 입멸공의 힘을 극대화해 준다.
하지만 입멸공을 익히지 않은 자에게는 그저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보검에 지나지 않는다.
진유성이 입멸검을 빼어 드는 순간, 김일도와 박기호가 입을 벌렸다.
하지만 다시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어느새 마혈과 아혈을 짚었기 때문이었다.
진유성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프스스-!
근육과 뼈를 잘라 냈다고는 믿을 수 없이 경쾌한 소리.
그 소리가 만들어 낸 결과물은 두 사람의 잘려 나간 팔꿈치였다.
진유성은 악인이 참회해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악인이 평생 동안 겁에 질려 악도, 선도 행하지 않는 모습은 많이 봤다.
지구의 의료 기술이 잘린 신체를 접합한다는 걸 알고 있다.
진유성이 알기로 절단된 지 몇 시간 이내라면 원상 복구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안 될 것이었다.
그렇게 베었으니까.
피 한 방울 묻지 않은 입멸검을 납검한 진유성이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행인들 속에 몸을 묻으며, 두 장의 신분증 사진을 찍어서 김정철 회장에게 보냈다.
-이게 뭔가?
진유성은 김정철 회장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
하나는 지난 1년간 이놈들이 각성자와 접촉했거나, 게이트에 들어간 적이 있는지.
이는 암시가 풀린 이유를 찾아보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앞으로 흐를 1년 간 이놈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는 두 사람의 목숨이 달린 일이었다.
그렇게 편의점으로 돌아가니, 상소윤이 그를 반겼다.
“뭐 이렇게 늦게 오냐.”
“일이 좀 있었다.”
“일은 무슨. 똥 싸고 왔으면서.”
“아니다. 난 생리 현상에서 초월했다.”
“미친놈인가?”
“너는 모른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왔는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큰일을 봤구나?”
“아니라고!”
“애니래고!”
“…….”
진유성은 차마 상소윤을 때릴 수는 없으니, 상림을 때리기로 마음먹었다.